Druid RAW novel - Chapter 337
0336 밀봉지몽
“힝훙잉흥, 후후으후웅.”
저녁을 먹고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시간. 그 시간에, 소은이는 거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노랜지 모를 것을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정한 속도와 박자로 움직이는 다리에 은수가 시선을 빼앗겼다. 소은이의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고양이가 장난감을 휙휙 흔들어 주면 그것을 잡기 위해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은수야, 그러면 안 돼.”
내가 느낀 그 느낌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은수는 화악 튀어나가 소은이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은수를 재빨리 잡아채서 안아들었다. 지금 소은이가 바닥에 엎드려서 다리를 까딱이는 것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이가 집중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소은이가 바닥에 엎드려서 하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가져온 숙제였기 때문이다.
“눈나랑 몬노라?”
“조금 있다가 놀자. 누나가 숙제를 다 하면, 그때 놀아달라고 하는 거야.”
“웅.”
아쉬워하는 은수의 모습에, 나는 은수와 놀아주었다. 주로, 꼬물꼬물 손가락을 움직이며 놀 수 있는 것들을 해주었다. 특히, 은수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유아용 지혜의 고리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것이었다
손바닥으로 살짝 가렸다가 풀어낸 것을 보여주면 두 눈을 아주 크게 치켜뜨는 등 놀란 모습을 보였는데,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그러면서 또 해달라고 몸을 방방 흔드는데, 그 모습도 너무 귀여운 나머지 지혜의 고리를 수십 번이나 끼우고 풀길 반복했다.
“은수야! 눈나랑 놀자!”
그리고, 은수의 시선을 빼앗은 채로 잠깐 노닥거리니, 소은이가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숙제를 다 한 것 같았다.
“소은아, 숙제 다 했어?”
“웅웅! 여기!”
소은이는 숙제를 다 했으니 확인해달라는 것처럼 내게 숙제 뭉텅이를 내밀었다.
가장 위에 있는 ‘수학’이라고 적힌 책을 펼쳐 보았다. 내부에는 초등학교 2학년 수준에 맞는 문제들이 가득 있었는데, 오늘의 날짜가 표기된 부분이 딱 보였다. 오늘의 숙제임을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음음. 잘했네.”
“그치?!”
“그래. 왕눈이랑 큰눈이한테 도움받지는 않았지?”
“웅! 이제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10초짜리 계산기라는 별명을 가진 타조들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니,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틀린 부분이 있지 않을까 세세히 봤음에도 100점이었다.
그 외에도 단어의 뜻을 맞추는 국어 문제 풀기, 도덕심을 길러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겠는 도덕 문제 풀기 등등. 여러 숙제들을 점검했다. 아주 가끔 한두 문제 정도 틀린 부분이 나왔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성인들에게 맞춰보라 해도 틀리는 인간들이 100% 있을 문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숙제들을 확인하고 나니, 일기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공책이 눈에 들어왔다.
“소은아, 아빠가 이거 봐도 돼?”
“일기장? 웅! 괜찮아!”
소은이는 내가 일기장을 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솔직히, 일기장에 쓰는 이야기들은 하루 동안 소은이가 재잘재잘 떠드는 이야기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뭘 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내게 이야기를 해준 다음에 일기장에 적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소은이의 일기장은 그저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소은이가 은수의 손을 잡고 놀러 나가는 것을 배웅해 준 나는, 곧바로 소은이의 일기장을 펼쳤다.
[아빠 비바룸이 탐나따! 엄청 갖구 시퍼!] [싱글이랑 벙글이가 엄청엄청엄청 기엽다.] [오늘은 지연이랑 놀았다. 지연이는 ?遲見?엄청 조아한다. 나처럼 동물들이랑 말을 모태도, ?遲繭岵?말을 할수 이써서 그러타고 해따.] [아침에 화장실가고 싶어서 깨따. 잘라구 했는대 아빠가 침대에 누워 있길래 아빠 위로 올라갔다. 역시 아빠 위에서 자는 게 제일 조타!] [은수랑 놀다가 은수가 쉬야가 마렵다고 해따. 나는 은수 누나니까 은수를 화장실에 보내줘따. 손도 씻겨따!]소은이의 일기장은 한 문장으로 끝나는 짧은 일기부터, 수백 문장이 될 정도로 긴 일기도 가득했다. 주로 그날에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짧게 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어린 탓에 맞춤법이나 악필이라는 문제가 가득했다. 문제를 놓고 맞추라고 하면 맞추긴 하는데, 직접 쓰라고 하면 말을 하면서 그 발음을 고스란히 적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물론 크게 걱정할 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어차피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쳐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어릴 땐 악필이 따로 없었고, 맞춤법은 알지도 못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피식 웃으며 소은이의 일기장을 잠시 읽던 나는, 아주 긴 내용을 담고 있는 일기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일기장 한 장으로 부족해서 몇 장이나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일기에 써진 내용은 내가 소은이에게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늘은 낮잠 자다가 꿈을 꿔따!]미래에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고 장래희망 같은 것을 말하는 꿈이 아니라, 잠을 쿨쿨 자면서 꾸었던 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 일기는 내 흥미를 자극했다. 나는 소파에 편안한 자세를 잡고, 그 내용을 읽어나갔다.
○ ◑ ● ◐ ○ ◑ ● ◐ ○
붕붕붕붕붕-!
“우웅, 오 분만 더어…….”
잠을 자던 소은이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자신의 잠을 방해하려는 손길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내 이상함을 느꼈다. 아침에 깨워주는 아빠라면 뽀뽀를 쪽쪽 해대며 깨웠을 것이고, 엄마라면 부드럽게 끌어안아 토닥이며 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붕붕- 소리가 나며 자신을 건드리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제야 소은이가 눈을 꿈뻑이며 정신을 차렸다.
“우아?!”
그리고, 정신을 차린 소은이는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무척 거대한 꿀벌들이 주변에 그득그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붕붕붕.
“오와! 날개다!”
바로, 소은이의 뒤에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날개는 소은이가 원하는 대로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입고 있던 토끼 모양 잠옷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웬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의 옷이 있었다.
“나 꿀벌이 된 거야?”
소은이는 날개와 노랑검정 줄무늬 옷을 보며 단박에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가득한 거대 꿀벌들도 설명이 가능했다. 꿀벌이 거대해진 게 아니라, 자신이 작아졌으니 거대한 꿀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아!”
예전에 자신이 주인공으로 찍은 영상의 모티브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꿀벌이 되어, 꿀벌들의 집에 들어왔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기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소은이는 현 상황을 빠르게 수긍하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웃음을 짓던 소은이의 시야에 빠르게 움직이던 꿀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꿀을 모아야 돼!”
“꿀! 저기 꽃 있어!”
“꽃은 저기도 있는데?!”
“그럼 다 같이 가!”
“출바아아알!”
꿀벌들은 꿀을 모으기 위해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부를 밝혀주는,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입구 부근을 바라보고 있으니 꿀벌들이 무척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에 꽃가루를 그득하게 달고 있는 꿀벌들이 들어왔고, 다른 꿀벌들이 그렇게 꽃가루를 모아 오기 위해서 열심히 벌집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움직이는 꿀벌들을 잠시 구경하고 있으니, 한 마리의 꿀벌이 다가와 소은이를 톡톡 건드렸다.
“저기 밖에 꽃 많아.”
“웅?”
꽃이 많다는 소리에, 소은이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은수한테 주면 되나? 싶었다.
“저기, 밖에, 꽃, 많아.”
“웅?”
다시 한번 꽃이 많다고 하는 꿀벌의 말에도 소은이는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꽃이 많은데 어떡하라고?
“……꽃가루 모아와.”
“아! 웅!”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꿀벌이 포기하고서, 말을 돌려 하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했다.
그제야 뜻을 확실히 인지한 소은이는 등 뒤에 자라난 날개를 파닥파닥 움직이며 벌집 밖으로 날아갔다.
“와! 우리 집이다!”
벌집 밖으로 나온 소은이는 익숙한 건물을 보았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동물원을 말이다.
잠시 그것을 구경하던 소은이는 주변에서 풍겨오는 달짝지근한 냄새에 이끌려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곳에는 꽃들이 가득한 화분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달콤한 냄새가 풍겨오는 중이었다.
꽃들에는 이미 여러 꿀벌들이 열심히 꽃가루를 채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소은이가 비어 있는 꽃으로 다가갔다.
꽃 내부에는 꽃가루가 꽤나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게 있는 꽃가루에, 소은이는 꽃가루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엣, 퉤!”
물론, 맛은 없었다. 꿀벌들이 꽃가루를 씹어내서 만드는 것이 꿀이었으니, 그냥 꽃가루를 먹는 것이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꽃가루가 꿀이 되는 것을 아는 소은이는, 옷에 가득 달려 있는 주머니에 꽃가루들을 쑤셔 넣었다. 솜사탕 같은 꽃가루들을 주머니가 부풀 정도로 챙겨 벌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익숙한 대로 집으로 들어갈 뻔했지만, 마치 여기가 집으로 가는 길이야! 하고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벌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꽃가루 줘!”
벌집으로 돌아온 소은이는 꽃가루를 챙기고 있는 벌들에게 자신이 가져온 꽃가루를 넘겨주었다. 주머니 구석구석 꽃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빼내어 건네 주니, 그 꿀벌이 꽃가루를 베어 물었다.
옴- 꽃가루를 씹는 꿀벌의 모습은 소은이에게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 맛없는 걸 먹다니! 난 엄청 맛없었는데!
하지만 이내 더더욱 놀랄만한 모습을 보였다. 꽃가루를 씹던 꿀벌이 벌집의 비어있는 칸에, 씹던 것들을 뱉었기 때문이다. 꿀이랑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의 것들이 꿀벌의 입에서 쏟아졌다.
이후, 주변에서 다른 꿀벌들이 다가와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씹어서 만들어진 것에 함유된 물을 증발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저게…… 꿀……?”
그 과정을 지켜보며 꿀이라는 게 설마 꿀벌들이 씹어서 만드는 거였어?! 하고 놀란 소은이는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잠시였다.
“꿀 먹어!”
“꿀이다!”
식사 시간임을 알리며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소은이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꿀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꿀을 들이키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꿀벌들이 씹어서 만드는 거면 뭐 어때. 맛있는데! 응, 압빠가 꿀은 건강에도 좋다고 했어.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를 마친 소은이는 양손으로 꿀을 떠서, 맛있게 먹었다. 먹는 게 아니라 흡입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맛있게.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가면 꼭 꿀을 손으로 퍼서 먹어봐야지! 그렇게 결심한 소은이는 열심히 꿀을 퍼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깰 정도로 말이다.
“화장실! 화장실!”
잠에서 깨어난 소은이는 다급히 화장실을 찾았다.
○ ◑ ● ◐ ○ ◑ ● ◐ ○
소은이가 열심히 써둔 일기를 읽은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꿈을 참 생생하게 꿨나 보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호접지몽이던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른다는……. 이러면 소은이 꿈은 밀봉지몽인가?”
호접이 나비를 뜻하니, 꿀벌을 뜻하는 밀봉지몽이 맞는 표현 같기는 했다.
뭐, 그 표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은이가 열심히 써둔 일기를 탁- 덮었다.
“……잠깐만. 저번 주에 소은이가 손으로 꿀을 퍼서 먹다가 누나한테 혼나지 않았던가?”
일기에 적어두었던 것을 고스란히 실천한 소은이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웃음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