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8
0037 난장판이구먼
두 마리의 라쿤 사이로 파고든 남캣은, 곧바로 냥냥펀치를 갈겼다.
파바바박, 소리가 나며 남캣의 앞발이 두 마리의 라쿤을 거침 없이 후려쳤다. 라쿤들의 풍만한 뱃살들이 출렁이며,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으아아악!”
“아이고 나 죽네!”
순식간에 남캣에게 뚜드려맞은 두 마리의 라쿤들은 앞발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얻어맞는 사람들이 취하는 그 모습이었다.
“너구리 놈들이 뒤질라고. 깝치지 마라?”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마리의 라쿤을 반쯤 떡실신 시킨 남캣은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는 듯 꼬리를 살랑이며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남캣을 잠깐 바라보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두 마리의 라쿤을 바라보았다.
‘상대도 봐가면서 덤벼야지.’
아프다며 꿍꿍대는 라쿤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쟤들은 그렇다 치고, 일단 서로 인사부터 해. 아, 너희들 혹시 따로 이름이 있어?”
나는 교육을 한다고 잠시 뒤로 미루고 있던 질문을 이제서야 꺼냈다.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토끼들이 착착착, 일렬로 자리를 잡더니 입을 열었다.
“일기토샤!”
“이기토샤!”
“삼기토샤!”
“사기토샤!”
“오기토샤!”
“그래서 우리는 토끼즈샤!”
옆 나라의 흔한 전대물마냥, 하나씩 자기 소개를 하는 모습에 나는 잠깐 황당함을 느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렬로 쪼로록 선 상태에서, 자기 차례마다 이름을 언급하며 앞발을 들어올리는 모습은 정말 전대물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자기들을 통틀어서 토끼즈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영지보다 더 괴상한 작명 센스를 가진 인간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자기들을 토끼즈라고 소개한 토끼들은 곧바로 개들의 주변으로 몰려갔다. 특히나 옅은 주황빛을 띄고 있는 자기들 털색과 비슷하게, 크림색의 골든리트리버인 마루에게 들러붙는 것이었다.
“너 마음에 드는 거샤!”
토끼들은 마루의 주변에서 폴짝폴짝 뛰어대며 호감을 드러냈다.
마루 역시 그런 토끼들이 싫지는 않은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순식간에 절친한 친구가 된 듯, 서로 몸을 부벼대는 토끼들과 마루의 모습을 잠깐 바라본 나는 거위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은?”
내 물음에 거위들은 갑자기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녀석들에겐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덟 마리의 거위들은 너무나도 똑같이 생겼기에, 사육사들이 딱히 이름이라고 할만한 것을 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한 녀석 이름을 지어주고 돌아보면, 저 녀석이 이름을 지어준 그 녀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덟 마리가 똑같이 생긴 탓이었다.
“그럼 내가 지어줄까?”
“좋아요!”
“조으다!”
“이름이다!”
“이없찐 탈출!”
수다스런 거위들 답게, 녀석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쳤다. 이름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어야 좋을까- 고민했다.
“너희도 토끼즈처럼 통일 된 이름이 좋을까?”
“뭐든 좋아요!”
“우리에게 이름을 달라!”
“이름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는 거위즈다!”
거위들은 내 말에 미친듯이 환호했다. 어떤 이름이든, 이름만 받으면 된다는 듯했다.
나는 그런 거위들의 모습에 안심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을 내뱉었다.
“구거일, 구거이, 구거삼, 구거사, 구거오, 구거육, 구거칠, 구거팔.”
내 앞에 쪼로록 서 있는 거위들을 한 마리씩 가리키며, 녀석들에게 이름을 하사해주었다.
거위를 뜻하는 영단어인 구스(Goose)의 ‘구’, 거위 할 때의 ‘거’. 거기에 순서대로 1부터 8까지의 숫자를 붙여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저주스러운 작명센스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거위들은 무척 기뻐했다.
꾸액꾸액- 소리를 질러대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 정도였다.
“후후. 마음에 들어?”
내 물음에 거위들은 당연하다며, 더더욱 가열차게 소리를 지르며 빙글빙글 돌았다. 날개까지 파닥거리니 소음 그 자체였다.
“시끄럽다, 새대가리들.”
거위즈는 소음공해에 열받아 다시 나타난 남캣에게 떡실신 되고나서야 조용해졌다.
나도 거위들의 소음에 피곤해지기 직전이었기에, 기절한 녀석들을 깨우지 않았다. 녀석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거북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무라고 하네.”
거북이는 자신에게 한무라는 이름이 있다고 알렸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었으나, 뭐라 하기엔 너무나도 애매했다.
거북이에게도 이름이 있음을 확인한 나는,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고 있는 두 마리의 라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끄으응…….”
“아이고……!”
두 녀석은 남캣에게 얻어맞은 영향인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수십 대를 얻어맞았으니,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아무리 나와의 약속으로 인해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너희, 괜찮은 거야?”
나는 끙끙거리는 두 라쿤이 약간 걱정되었다. 바닥에 웅크리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놈 고양이 맞나? 왜 그래 쎄노?”
“뒤지는 줄 알았다! 내 순간 우리 할매 봤다아이가.”
걱정은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녀석들은 자기들의 풍만한 뱃살을 슥슥 문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한테는 까불지 않는 게 좋을 걸?”
“까불지 말라꼬? 웃기지 마라! 우리가 힘이 없어서 글체, 맷집은 좋다 안카나!”
“맞다! 우리가 쪼매 방심해서 글치, 고양이는 암 것도 아닌기라!”
내 말에 라쿤들은 격분하며, 당장이라도 남캣을 찾아나설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남캣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네.”
“끄아아악!”
“라쿤 살려!”
언제 다가온 건지 모를 남캣이, 라쿤들의 말을 듣고서 두 녀석을 다시금 후려팬 것이었다.
두 녀석은 두 번째 임에도 거위들과 달리 기절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또 다시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 이건 또 방심해서 그런기라.”
‘얘들은 미련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남캣에게 깨지고도 허세를 부리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녀석들의 이름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동물들을 이끌고 잔디밭의 구석으로 향했다. 떡실신한 거위들을 깨우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마리도 빠짐 없이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잔디밭의 구석에는 동물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인간들을 위한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긴 했지만, 동물들이 쓰기에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번은 짜몽이가 자세를 잡던 와중 짜리몽땅한 다리로 인해 빠질뻔한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화장실로 찾아온 나는 동물들에게 화장실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바닥에 자그마하게 구멍을 뚫어놓고, 그곳으로 배변을 하면 자동으로 처리되는 시스템이었기에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거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업자가 미친놈처럼 보던 게 아직도 생각나네.’
정신병원을 추천하겠다는 것처럼 부산에 있는 정신병원들을 검색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났다. 내 초능력 덕분에 어떻게 무마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그 생각을 잠시 떠올리던 나는, 간단하게 알려주었음에도 잘 이해하고 벌써부터 화장실을 사용하는 한무의 행동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붕붕 휘저어 상념을 떨쳐낸 나는 잘 했다며 거북이의 목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흐허어…….”
한무는 내 손길에 목을 더 길게 뽑으며 좋아했다.
잠시동안 거북이 가죽의 질감을 느껴보며 쓰다듬은 나는, 다른 동물들도 한 번씩 이용해보도록 시켰다.
토끼들이나 거위들은 물론, 아프다고 앓던 라쿤들까지 문제 없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됐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묘한 냄새가 나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배변 활동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변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는 지금이라면 동물들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딱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가르친 나는 어느새 회복한 두 마리의 라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이제야 말로 두 녀석의 이름을 확인할 차례였다.
“내는 대포동.”
“내는 소포동이데이.”
얘들도 이름이 정상은 아니네.
나는 두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되자마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두 녀석을 관찰하다 보니, 나름대로 잘 지었다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포동이라는 녀석은 소포동에 비해 덩치가 조금 더 큰데다 뱃살이 더 포동포동해보이는 것이었다.
대(大)포동과, 소(小)포동이라는 느낌으로 생각하자면 나름대로 잘 지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수환아. 애들 교육은 다 끝난 거야?”
그리고, 두 포동이들의 뱃살을 바라보고 있던 도중, 누나가 찾아왔다.
“어, 기본적인 건 다 끝냈지. 왜?”
“이제 슬슬 카페 마감하려고 했더니, 남아 있던 손님들이 얘들도 한 번씩 좀 보고 가면 안 되냐고 그래서.”
“애들을? 뭐……. 안 될 건 없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카페의 영업이 종료되는 시각이 가까워진 탓에 손님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 보다는, 그래도 조금 적은 수의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겨졌다.
“사람들이 너희들이랑 조금 놀고 싶다는데, 잠깐 놀아주고 올래?”
동물들은 흔쾌히 내 말을 받으며 사람들이 몰려 있는 카페 내부로 쪼르르-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동물원에서 당근 같은 것들을 조금씩 받아먹으며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토끼들이었다. 녀석들은 폴짝폴짝 뛰며 빠르게 달려가, 사람들에게 엉겨붙었다.
다만 아직 녀석들을 위한 간식을 팔고 있지는 않았기에, 손님들이 간식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귀엽다며 난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토끼들을 뒤따라 거위들과 라쿤들이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 안에서 인간들을 바라보다가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녀석들은 금세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거위들은 사람들에게 몰려가, 자신들을 쓰다듬으라는 듯이 머리를 들이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앞 발을 손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라쿤들이었다.
“앗! 그거 가져가면 안 돼!”
“으악! 고양이 간식 도둑이야!”
“흐하핫! 약탈의 시간인기라!”
의자와 테이블을 올라가더니 사람들이 놔둔 고양이용 간식들을 훔쳐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손님들은 그런 라쿤들을 뒤쫓았고, 라쿤들은 그런 손님들을 피해 카페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허허, 난장판이구먼.”
그 모습을 바라본 한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애초에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