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5
0004 카페에서
누나에게 헛소리를 한 덕분에 옆구리에 손가락 크기의 멍을 얻은 나는 아픈 옆구리를 문지르며 누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래?”
“지금, 잘못한 사람이…… 말대꾸?”
“……미안.”
누나의 사과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아무튼, 앞으로는 드라마 볼 때 허락받고 봐.”
“진짜? 장난이 아니라?”
“그래! 어디, 드라마에서 본 걸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어.”
누나는 내 단호한 표정에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면 되잖아…….”
웬만한 아줌마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누나는 여전히 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누나, 우리가 얼마나 사귄 건지 알고 있어?”
“그걸 왜 몰라. 십 년인데…….”
“그렇지? 거기다가 누나의 처음은 나고, 내 처음은 누나고.”
“야아! 그걸 밖에서 말하면……!”
누나는 내 말에 다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밀어내고 계속 입을 열었다.
“근데, 그렇게 십 년 동안 사귄 남자를, 드라마에서 본 내용 때문에 의심해? 누나가 생각해도 혼나야겠지?”
빠-안히 바라보는 내 눈빛에 누나는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며 내 시선을 피하려 했다.
‘누가 놔둘 줄 알아?’
시선을 피하려는 누나의 양 볼을 감싸며 내 시선을 마주보게 만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누나의 동공은 더 세차게 떨렸다.
“잘못했지? 혼나야겠지?”
“으, 으응…….”
누나는 결국 내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삐죽 나와 있던 입술을 원위치로 되돌렸다.
그리고, 내 두 손에 양 볼이 감싸진 채로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가까이 다가오는 내 얼굴 때문인지, 누나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가볍게 감았다.
“할망구……. 오늘따라 그립구먼……. 거기서 잘 지내고 있을랑가 몰라.”
“꺅!”
바로 뒷편에서 들려오는 웬 영감님의 목소리가 누나와 내 정신을 일깨웠다.
화들짝 놀란 누나는 내 손을 쳐내며, 한껏 달아오른 얼굴에 손 부채질을 해댔다.
좋은 순간을 방해한 영감님에게 한 소리를 하고 싶었으나, 우수에 젖은 듯한 그 모습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화받어어어어- 전화아아아- 받어어어어어-
게다가, 갑자기 울리는 내 전화에 더더욱 영감님께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010 – **** – ****]“누구지?”
“모르는 번호야?”
“어.”
휴대폰에 떠오른 번호는 내가 알지 못하는 번호였다. 지인들의 번호를 다 외우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게 모르는 번호로 연락할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막 퇴사를 해버린 참이라, 회사와 관련 되어 꼭 필요한 것들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렉카일보입니다. 신수환씨 되시나요?”
그런데 받은 전화는 내 예상과는 어마어마하게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렉카일보? 그거 찌라시 전문인 곳 아니던가?’
특히, 렉카일보라는 곳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삼류 찌라시 인터넷 언론이었다. 쓰는 기사의 절반은 구라, 남은 절반은 광고라는 찌라시 언론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별 건 아니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초능력을 개화 하셨다고요?”
“……어떻게 아셨나요?”
“에이, 영업 비밀이죠. 그래서, 잠시 인터뷰 가능하신지?”
“인터뷰도 영업 비밀이라서요. 그렇다고 기사가 아니라 소설 쓰면 아시죠? 그럼 수고요.”
나는 상대방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올 것을 대비해 빠르게 번호를 차단했다.
“누구야?”
“렉카일보라는데, 내가 이번에 능력을 개화한 걸 벌써 알고 있네?”
“……다시 들어갈까?”
누나는 살짝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시청을 바라보았다.
내가 능력을 개화한 것이나, 내 번호를 알게 된 경로가 단 한 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특수한 초능력을 개화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몰래 파는 걸로 뒷돈을 챙기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시청을 노려보는 누나를 진정시켰다.
“됐어. 그게 아니라도 어차피 조만간 알려질 일이었으니까.”
내가 애니멀 커뮤니케이팅 초능력을 개화한 것이 알려질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전 세계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 능력인데, 한국인이 그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에 언론이 흥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검증이 됐든 안 됐든, 일단 국뽕 한 사발 말아서 특종을 쓰고 보는 것이 언론이었다. 능력이 형편 없어도 두 번 다시 이야기만 꺼내지 않으면 잊혀지니, 그들로선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내게는 오히려 그것이 반가운 상황이었다.
“……왜?”
“내가 앞으로 뭘 할 건지 말해줬잖아.”
“아.”
누나는 내 말에 입을 살짝 벌리며 얼빵한 모습을 보였다.
귀엽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다시금 꼬집힐 것이 분명했다.
나는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내뱉지 않고, 실수하지 않도록 한 번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기는 게 더 좋아. 시작부터 유명세를 얻고 간다는 건 그만큼 메리트가 있으니까. 나처럼 인기로 먹고 살 생각이라면 말이야.”
“그렇긴 하지.”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뮤튜브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생각인 내게는, 대중들의 관심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전화받어어어어- 전화아아아- 받어어어어어-
“또 전화 오는데?”
마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전화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안 받아?”
“아까 그 인간이 다른 번호로 연락한 걸 수도 있으니까. 조금 기다렸다가 삼류 찌라시가 아니라, 괜찮은 곳에서 터트려야지.”
공중파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일류라고 칭할 수 있는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삼류 찌라시와 인터뷰를 해봐야, 하지도 않은 말이 퍼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느니, 삼류 찌라시와는 인터뷰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커피나 마시러 가자.”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사이에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누나의 20대 인생이 모조리 담겨 있는, 누나가 만들어낸 카페였다. 물론, 아버님과 어머님의 지원 역시 담겨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타지역으로 여행가지 않는 이상, 커피를 마실 땐 무조건 누나의 카페에서 마시는 것이 우리만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앗! 사장 언니! 사장언니남친 오빠도 안녕!”
버스를 타고 누나의 카페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반기는 것은 카페의 바리스타인 영지였다.
덧붙이자면, 그녀는 매번 나를 사장언니남친 오빠라는 긴 호칭으로 불러, 적응되지 않게 만들었다.
“따로 일은 없었니?”
“넹! 손님도 없었어요!”
“……그게 일이 아닐까?”
“에헤, 그런가?”
영지가 조금은 띨빵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커피를 뽑는 실력 하나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유에는 이 녀석도 포함 되어 있었다.
“난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수환이 너는?”
“얼어 뒤져도 아이스지!”
내 말에 영지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한 잔, 아이스 한 잔! 오천 원 입니다 손님!”
“저기, 나 사장이거든?”
“에헤헤.”
영지는 해맑게 웃으며 포스기에 찍은 주문내역을 초기화했다.
누나는 그런 영지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커피를 뽑아온 영지는 자기 역시 자리를 잡고서 우리 곁에 앉았다.
“저도 있어도 되죠? 커플만의 비밀 얘기 할 거 아니죠? 그럼 심심한데다 남자친구 없는 저는 무척 서러울 거예요!”
테이블에 총 세 잔의 커피를 내려놓은 영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 편한대로 해.”
“뭐, 비밀 얘기를 할 거는 아니니까 있어도 돼. 대신, 손님 오면 알지?”
“와아!”
영지는 누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만세를 하더니 진열장에 놓인 과자 몇 개를 집어왔다.
“카페 디저트를 영지가 다 작살내고 있네?”
“사장 언니가 먹어도 된다 했거든요? 그죠오?”
영지는 누나에게 들러 붙어 애교를 부렸다.
키도 자그마한 주제에 귀염성까지 있다보니, 누나는 그런 영지의 행동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근데, 사장언니남친 오빠는 오늘 회사 안 갔어요? 오늘 화요일인데! 혹시, 휴가?”
“아, 회사는 그만 뒀어.”
“에에? 왜요? 누가 괴롭혔어요?”
‘그 사장에 그 직원이냐…….’
묘하게 누나처럼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영지의 모습에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마른 세수를 했다.
내 모습이 웃긴지, 누나는 가볍게 키득거리며 웃더니 영지에게 설명해주었다. 내가 새로운 초능력을 얻어, 그쪽으로 일을 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와! 동물이랑 대화가 되는 거예요? 부럽따아아!”
카페에서 손님이 없으면 동물 관련 뮤튜브를 챙겨보는 누나의 곁에 있기 때문인지, 영지 역시 동물을 꽤나 좋아했다.
“나중에 보여줄 게. 뭐…… 대화를 하는 건 나 뿐이긴 하지만.”
“헤헤, 기대할 게요!”
영지는 헤실거리는 웃음을 짓더니 다람쥐마냥 빨대를 오물오물 물며 커피를 마셨다.
누나는 그 모습이 귀여운 것인지, 영지가 가져온 디저트들을 하나씩 그녀에게 먹였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행복하다는 듯이 웃던 영지는 갑자기 박수를 짝- 치더니 무언가 말을 했다.
“우이 하헤 헤하헤오 하워여!”
다만, 입 안 가득한 디저트 덕분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다 먹고 말하는 게 어때? 하나도 못 알아 듣겠거든?”
내 말에 영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엄청난 속도로 턱을 움직였다.
그리고, 입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씹은 영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내용물을 한 번에 삼켰다.
“우리 카페, 펫 카페로 바꿔요!”
“펫 카페?”
“네에! 애견 카페나, 고양이 카페처럼 동물들을 모아두는 거예요! 그럼 엄청 귀엽겠다아!”
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외침이었으나, 그 소리를 들은 누나는 두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