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67
0066 빨래
“수환아.”
청호가 이끄는 왜건에 탄 소은이를 뒤따라 잔디밭을 서성이고 있으니, 어느새 누나가 다가와 나를 불렀다.
“응.”
“쟤들……. 슬슬 씻겨야 하지 않을까?”
누나의 말에, 나는 잔디밭을 뛰놀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씻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좀 꼬질꼬질하다- 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대충 보면 깨끗한 녀석들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털이 뭉쳐있다던가 먼지가 끼어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보인 것이었다.
“하긴, 마지막으로 씻은 게 좀 됐지? 씻겨야겠다. 아니, 말 나온 김에 바로 할까?”
나는 곧장 창고에서 커다란 고무대야를 가져왔다. 빨간 바게쓰, 또는 고무다라이 라는 표현으로도 불리우는 그것을 가져왔다. 성인도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만큼 무거웠기에 바닥을 질질 끌면서 올 수밖에 없었다.
잔디밭 일부를 조금 망가트리며 잔디밭의 중심으로 고무대야를 가져온 나는 곧바로 주변을 뛰노는 동물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씻자! 목욕 시간!”
그리고, 내 외침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모든 녀석들이 도망쳤다. 마치, 방학식날 집에 가라는 소리를 들은 초중고 학생들 같았다.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아니, 청호 너 임마. 너는 소은이를 왜 데리고 도망치는 건데. 내 딸 내놔 임마!’
“안 씻는 놈은 소은이랑 못 놀 줄 알아!”
그리고, 그렇게 도망친 녀석들은 이어진 외침에 다시금 집합했다. 도망친 녀석들 가운데 돌아오지 않은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녀석들은 언제 도망쳤냐는 듯이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꺄아!”
도망친 청호 덕분에 왜건에서 스릴 넘치는 주행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소은이는 즐겁다는 듯이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소은이를 납치한 전적이 있는 청호를 붙잡았다.
“저, 저 부터임까?”
“당연하지. 니가 소은이랑 제일 많이 붙어있잖아.”
내 말에 청호는 포기한 건지는 몰라도, 고무대야를 향해 스스로 걸어갔다. 물이 찰랑일 정도로 차 있는 것을 본 녀석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폴짝 뛰어올라 고무대야에 다이빙했다.
풍덩- 소리가 나며 내부에 있던 물 일부가 주변으로 튀었다.
“흐허어어……. 물 온도가 딱 좋슴다.”
“당연하지. 너희들이랑 대화하는 것 말고도, 물 온도 맞추는 초능력도 있거든.”
“쥔님은 역시 대단하심다.”
나를 올려다보는 청호의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곧장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의 몸 곳곳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아부에 목욕 면제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으허억! 거, 거긴 안 됨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여기가 제일 더러워 짜샤!”
나는 청호의 구석구석을 박박 문지르며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애견샴푸도 써가며 깨끗하게 씻기고 나니, 고무대야에 있던 물이 꽤나 꼬질꼬질하게 바뀔 정도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녀석을 고무대야에서 빼낸 다음, 흐르는 물로 한 번 헹궈주었다.
“털지마. 지금 털면 소은이한테 물 다 튄다.”
털을 털기 위해 다리에 힘을 빡! 주던 녀석은 눈치를 보더니, 저 멀리 구석진 곳으로 가서 몸을 파르륵 털었다.
그리고, 녀석이 몸을 털자마자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 두 명이 커다란 수건과 건조기를 들고 다가가 청호를 순식간에 말려냈다.
다시 뽀송뽀송해지니 기분이 좋다는 듯, 녀석은 소은이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토끼들 만큼이나 청호를 좋아하는 소은이는 제게 다가오는 커다란 얼굴을 가볍게 만져주었다.
“이건 아가씨의 은총을 받은 검다!”
괜히 흥분하는 듯한 청호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녀석을 가볍게 밀어냈다.
“이번엔 너희들이야.”
나는 토끼들을 들어올렸다.
“으우우우!”
제 손에 잡힌 토끼들을 빼가니, 소은이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토끼들을 대신해 청호의 얼굴을 소은이에게 쥐여 주고서, 토끼들을 모두 빼냈다.
“히익! 우리들은 깨끗한 거샤!”
“연약한 토끼즈는 물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샤!”
“물 싫다는 거샤!”
내게 들어올려진 토끼들은 몸을 파르르- 떨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나는 녀석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너희들은 물에 들어갈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토끼는 물로 직접 씻기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는 동물이었다. 자기들끼리 충분히 청결함을 유지하는 녀석들이기도 하거니와, 토끼들은 개나 고양이 이상으로 피부가 약한 동물들이었다.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가도 문제가 되는 동물이었다.
나는 물에 적신 수건을 이용해서 녀석들을 가볍게 닦아주는 것만으로 녀석들의 목욕을 끝냈다.
“휴……. 살았샤.”
“물은 너무 싫은 거샤.”
토끼들 스스로 청결을 유지하기 힘든 쪽으로만 깨끗하게 만들어주니, 토끼즈는 개운하다는 표정과 함께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꺄우웅!”
깨끗하게 만든 토끼들을 왜건에 다시 집어넣어주니, 소은이가 무척 좋아하며 토끼들을 붙잡았다. 아니, 토끼들에게 매달렸다.
“이, 이러면 씻는 것도 괜찮은 거샤……!”
소은이에게 안기게 된 사기토가 행복에 겨운 듯한 표정으로 코를 씰룩였다.
그리고, 그렇게 씻은 녀석들이 소은이에게 이쁨 받는 것을 본 다른 녀석들이 고무대야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청호가 씻은 이후로 물을 새로 받던 고무대야였는데, 아직 남아 있던 녀석들의 절반이 그 고무대야에 다이빙했다.
첨벙첨벙 소리가 울려퍼지며 라쿤들이나 거위들, 개와 고양이 일부가 고무대야에 들어가 있었다.
아직 고무대야에 들어가지 않은 녀석들이 있긴 했지만, 그 녀석들도 들어가고는 싶지만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니들 뭐 하냐…….”
“빨리 씻기도!”
“씻겨 주시오!”
“……………………………씻.”
심지어, 그 게으른 나태 녀석마저도 고무대야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유부는 날개를 펼쳐 물에 빠지지 않도록 허우적거리면서 씻겨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어이 없는 그 광경에 나는 물론이고, 빨래……가 아니라 동물들을 씻기는 것을 돕던 직원들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녀석들의 말투에서 황당함을 느끼는 나와 다르게, 직원들은 동물들이 먼저 나서서 고무대야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자발적으로 목욕을 요구하는 동물들 덕분에, 동물들의 목욕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왼쪽 앞발.”
“여기요!”
내 말에 마루는 왼쪽 앞발을 슥- 내밀었다. 하도 미친듯이 달린 탓에 꼬질꼬질하기가 다른 녀석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폰지에 애견샴푸를 짜서 슥슥 문질러주니 때가 빠지고, 녀석의 이름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의 색상과 비슷한 원래 털색을 되찾았다.
“이번에는 내다!”
“응, 아니야. 유부 너 이리와.”
내 말에 라쿤들이 분하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며 고무대야 속으로 뽀그르륵 잠수했다.
“흠흠, 이 유부가 먼저 하게 되었구려.”
그리고, 그런 라쿤들의 모습에 유부가 첨부엉첨부엉 고무대야에서 헤엄을 치며 나왔다.
부엉이 역시도 스스로 털을 고르며 청결을 유지하는 동물이니 만큼, 나는 가볍게 물을 뿌리며 녀석이 쉽게 다듬지 못하는 곳을 주로 정리해주었다.
“허어……. 역시 그대가 해주는 목욕은 시원하구려!”
“물 온도가 딱 맞으니까 그렇겠지. 자, 너도 저기가서 말리고 와.”
유부는 곧장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뽀르르- 뛰어갔다. 날개를 펼치면 물이 털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법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송풍기 앞에서 날듯이 날개를 촤악- 펼치고 바람을 즐기는 녀석을 뒤로 한 채, 이번에는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나태를 건졌다.
“내는!”
“너희들은 좀 기다려. 아니면 알아서 씻고 있던가.”
내 말에 라쿤들이 투덜거리더니, 고무대야에 담긴 물을 손으로 끼얹어 제 머리를 씻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건져낸 나태를 씻겼다.
이전부터, 동물들 가운데 씻기기 가장 편한 녀석이 나태였다. 저항하기도 귀찮아 하는 녀석이다보니, 씻기는 것에 조금도 힘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흐느적거리는 녀석을 대충 문지르고 샴푸로 씻기고 헹군 다음, 마중나온 직원에게 넘기니 빨래를 말리듯 들어올린 채로 바람을 뿌리고 있었다.
나태가 씻겨지는 사이 깃털을 모두 말리고 돌아온 유부가 소은이의 양산겸 부채를 자처하는 모습을 본 나는 계속해서 동물들을 씻겼다.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씻고 있는 라쿤들에게 더 열심히 씻으라고 샴푸를 뿌려주고, 거위들을 씻겨주었다.
거위들 역시 따로 씻겨줄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 수가 많다보니 꽤나 힘이 들었다.
그래도 힘차게 씻겨내고 나니, 고양이들이 쪼로록 다가와 있었다. 풍성한 털들이 물에 젖어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어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씻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분명 씻기려고만 하면 도망치던 고양이들인데, 소은이를 들먹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녀석들은 희귀 고양이인 ‘수속성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네가 웬 일로 도망을 안 가냐?”
“흥. 씻기기나 해라.”
남캣은 내 말에 늘상 그렇듯 싹퉁바가지 없게 대꾸했다. 하지만 어서 씻기라는 듯이 발을 내미는 모습에 녀석을 씻겨줄 수밖에 없었다.
“후……. 힘들다.”
남캣 이후로도 다른 고양이들과, 소은이 때문에 씻어야 하긴 하는데 씻기는 싫다는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던 짜몽이 같은 애들까지 씻기고 나니 완전히 지치게 되었다.
특히, 욕실 청소할 때나 쓸법한 솔을 가지고 등껍질을 박박 문질러 줘야 했던 한무 때문에 노동 그 자체였다.
“수고했어. 시원한 거라도 마시고 쉬어.”
“어……. 그래야겠다.”
햇빛 아래에서 열심히 움직였더니 더워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 차례 동물들을 싹 씻기고 나니 오히려 개운함이 느껴졌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서 느긋하게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또 다시 소은이를 데리고 주변을 산책하는 청호. 그런 청호가 끄는 왜건에 탑승한 토끼즈와 유부. 거기에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른 동물들. 심지어, 이제는 그런 동물들을 따라다니는 손님들 까지 붙어, 일종의 기차놀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노동과 더위에 지친 몸을 에어컨 바람으로 식히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동물들은 물론이고 사람들도 내 딸을 좋아하니, 괜히 어깨를 으쓱이게 되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