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3
0072 잘못슴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될 즈음, 카페에는 진풍경이 하나 생겨났다. 일종의 ‘기차놀이’가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차놀이의 최선두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소은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뒤집기를 스스로하고, 기어다니기 시작한 소은이는 더 이상 청호가 끄는 왜건에 탑승하지 않았다. 스스로 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소은이의 즐거움이었다.
당연히 그 영역은 집과, 카페였다.
“쁘아!”
진격 앞으로! 라고 외치듯, 소은이는 옹알이를 하며 바닥을 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그런 소은이의 주변에는 동물들이 가득했다. 혹시라도 소은이가 어디에 박지는 않을까, 만에 하나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치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동물들이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청호는 주변을 경계하듯 맴돌았고, 토끼즈는 소은이의 곁에 붙어 혹여라도 넘어지거나 쓰러질 때를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전부였다면 기차놀이라는 말을 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겠는데!”
몰려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따라 붙었지만, 뭔가 아쉬워하는 마루.
“헉헉! 나는 왜 날짐승인가!”
날아다니면 너무 빨라서 따라가지 못해, 두 발로 힘겹게 따라가는 유부.
“마! 이게 바로 딸랑이다!”
“딸랑이를 무시하면 딸랑이로 줘 패뿐다!”
딸랑이를 딸랑딸랑 흔들어대며 바쁘게 뒤쫓는 대포동과 소포동.
“히히, 우리랑 속도가 비슷해!”
“다리 길이가 비슷해서 그런가?”
짜리몽땅한 자기들과 기어다니는 소은이를 비교하고 있는 짜몽이와 치킨이.
“소은이 너무 귀엽다.”
“그치? 솔직히, 동물들 없어도 소은이 보러 올 가치도 있어.”
“청호가 엄청 든든하네. 나도 군견 분양 받아볼까?”
“저기, 아저씨. 죄송한데 제가 앞으로 가도 될까요? 저도 사진 좀 찍고 싶어서…….”
“아, 예. 저는 충분히 찍었으니 비켜드려야죠.”
그리고, 그런 소은이와 동물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대고 있는 손님들까지. 기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줄은, 소은이의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아주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그런 기차놀이에 대해서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기가 기어다니는 바닥이 더러울 수 있거니와,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아기들이 주워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24시간 붙어다니며 완벽하게 케어해주는 동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의 전방 십여 보! 오물 발견! 술빵, 전진!”
“전지이이이인!”
앞 발로 걸레를 꽉 누르고 있는 술빵이가 청호의 외침에 맞춰 뒷발을 박차고 앞으로 미끌리며 나아갔다.
청호가 발견한, 누군가가 흘려버린 커피가 순식간에 닦이며 바닥이 깨끗해졌다.
“오물 제거 완료!”
커피를 닦아낸 술빵이는 곧바로 구석으로 도도도도 달려가더니, 쌓여 있는 깨끗한 걸레들을 새롭게 꺼내어 앞발로 가볍게 눌렀다. 마치 다음 임무를 대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술빵이가 전부는 아니었다.
“전우측 방향 십여 보! 빵 조각 발견! 까치, 강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가락만한 크기의 빵 조각을 발견한 청호는 곧바로 까치를 불러들였다.
카페 건물 밖에서 날고 있던 까치들 중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카페로 진입하여 순식간에 빵 조각을 낚아챘다. 그 자리에는 자그마한 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으우!”
빵 조각을 보고서, 다가가던 소은이만 불만스럽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며 제자리에 멈출 뿐이었다.
목표로 하던 빵 조각을 빼앗긴 소은이는 잠시 엉덩이를 깔고 앉더니, 동그란 두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딱히 흥미가 가는 것은 없던 건지, 그대로 몸에서 힘을 푹- 풀더니 뒤로 휙 넘어갔다.
“아앗!”
소은이가 뒤로 휙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애기 살찐 거 같샤! 오늘따라 무거운 거샤!”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토끼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들어, 넘어가는 소은이의 뒤를 받쳐준 것이었다.
그런 토끼들의 희생정신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곁에 있던 일기토를 붙잡았다.
“토오!”
일기토, 이기토 등등. 토끼즈의 이름이 기토로 끝나다보니, 소은이는 토끼즈를 통일해서 ‘토오’라고 부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토오- 라고 불린 일기토는 곧바로 소은이의 손을 감싸고 있는 벙어리 장갑을 물어, 벗겨냈다.
기어다닐 때는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 씌워둔 것이지만, 앉아 있을 때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지 같은 것이 묻은 장갑을 곧장 얼굴로 가져갈 수 있으니, 소은이가 앉으면 벗겨두라 한 것을 잘 따르는 것이었다.
손을 감싸던 장갑이 사라진 것이 좋은지,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으로 일기토의 털을 움켜쥐었다. 짧은 털이었지만, 그만큼 소은이의 손가락도 작고 짧아 붙잡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
“으악!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제가 의삽니다! 환자의 현 상태는 심쿵……아니, 심정지 상태로 판명 됩니다! 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합니다! 그쪽, 노란 머리하고 빨간 상의에 초록 바지 입으신 분! 119에 신고해주세요!”
“저, 저요? 어어! 119 번호가 뭐더라!”
“앗! 심장이 다시 뜁니다! 재 심쿵의 위험이 있으니 소은이를 볼 수 없는 곳으로 환자를 이동시켜야 합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그 모습에 잠깐 소동이 있긴 했지만,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을 보고서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갑작스런 소란에 시선을 돌리던 소은이가 나를 발견하고, 안아달라는 듯이 손을 내뻗었기 때문이었다.
“빠아빱!”
“어이고, 무릎에 먼지가 가득하네. 열심히 기어다녔어?”
“쁘아!”
보호대와 폭신한 솜을 넣어둔 무릎 부분이 조금 까매진 것을 털어낸 나는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흠……. 이제 슬슬 정리할까.”
이미 6시를 조금 넘긴 상황이 되며, 날이 어둑어둑해진 것을 본 나는 카페를 조금 일찍 닫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이상 카페에서 휴식을 취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내 결정에, 직원들은 기쁘다는 듯이 마감을 시작했고, 소은이 손을 잡고 흔들어주는 사이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역시 직원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은 빠른 퇴근 또는 보너스지.
손님들을 내보내고, 마감까지 마친 우리는 곧장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소은아! 이모 해봐! 이모!”
“무오!”
“무오 말고 이모!”
“무오!”
“힝.”
바로, 처제이자, 누나의 사촌 동생인 영지가 함께 집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영지는 소은이를 안아들고 히죽히죽 웃다가, 울상을 짓는 것을 반복하며 우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 먹고 갈 거지?”
“네엥! 소은아, 이모랑 맘마 먹자아!”
“맘마!”
“아우, 귀여워!”
소은이가 귀엽다며 발을 동동 구른 영지는 식탁의 한 켠에 위치해 있는 아기용 식탁의자를 가져와 소은이를 앉혔다.
아직은 이유식을 떠먹여 줘야 하는 나이지만, 숟가락을 쥐여주니 소은이는 숟가락을 꼬옥 움켜쥐고서 흔들어댔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은 나는,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해둔 저녁 거리들을 꺼내어 세팅하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그 사이 누나는 소은이가 먹을 이유식을 준비했고 말이다.
“소은이, 아아!”
“영지가 있으니까 편하네.”
식사가 시작되니, 나와 누나는 평소와 다르게 편안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아기인 소은이를 먼저 챙기다보니 정작 우리의 식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지가 소은이에게 이유식을 떠먹이고 있으니 편할 수밖에.
어쨌거나, 그렇게 오랜만에 편안한 식사시간을 가진 우리는 거실에 모여앉아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언니.”
“응?”
“소은이는 언제쯤 걸을 수 있어요? 사실, 소은이가 걸으면 주려고 발광삑삑이 신발 주문했는데……. 헤헤헤.”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소은이의 걸음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우리는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원래 아기들은 첫돌이 될 즈음이면 걸음마를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은이는 생일이 가까워져감에도 걸음마를 하지 않고 있었다.
“글쎄……. 사실, 원래 소은이 정도면 걸음마를 시작하긴 해야 해. 근데, 소은이는 아직 걸음마를 할 생각이 없나 봐.”
그러한 사실을 누나에게 들은 영지는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껏 선물로 신발을 샀는데, 신겨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호, 혹시 어디 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렇진 않다고 하더라. 오히려 건강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조금 늦게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기다려보래.”
“그래. 소은이가 아직 걷지는 못 해도, 열심히 뽈뽈거리면서 기어다니잖아. 그치이?”
“뺘!”
내 말에 소은이는 그렇다고 맞장구치듯 두 손을 들어올렸다.
그 때, 현관 근처에서 경계를 서듯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청호가 슬그머니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물들을 위해 놔둔 급수기에서 물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어?”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살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청호가 물 마시러 가는 모습을 본 소은이가 갑자기 기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잠깐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물을 마시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청호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심까?”
“청호야.”
“예. 말씀하십셔.”
나는 진지한 모습으로 청호에게 명령했다.
“앞으로 두 발로 걸어다녀라.”
“……잘못슴다?”
“두 발로 걸어다니라고. 이족보행. 저기, 저 녀석처럼.”
나는 때마침 앞발로 사료를 붙잡고, 뒤쪽 두 발만 이용하여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가는 라쿤을 가리켰다. 아니, 저 놈 간식 또 훔쳐가네.
호다닥 도망치는 라쿤들에 대한 생각을 대충 밀어내고서, 나는 청호의 앞발을 붙잡았다.
“소은이가 걸음마를 안 해. 아무래도 주변에 죄다 네 발로 다니는 녀석들 밖에 없어서 그런 거 같아. 그러니까, 네가 두 발로 좀 걷자.”
“……개는 두 발로 못 걷지 말임다.”
“개소리하지 말고.”
“제가 개지 말임다.”
“팍 씨.”
청호는 내 말에 머리 아프다는 듯이 두 발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녀석은 금세 머리를 치켜들더니, 호다닥 뛰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순간 녀석이 도망친 건가- 싶었으나, 녀석은 다시금 되돌아왔다. 소은이를 태우고 다니던 왜건에 앞 발을 터억- 걸치고서 체중을 분산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것도 이족보행이지 말임다!”
녀석은 자신감 넘치는,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청호의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가 왜건의 테두리를 붙잡더니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
“소, 소은이가!”
청호의 모습을 본 소은이가 청호를 따라하듯, 왜건을 붙잡고 일어섰다. 아직 다리의 근육이 부족한 탓에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걸음마의 시작이었다.
누나와 나는 물론이고, 영지까지 합세하여 소은이가 우뚝 서는 모습을 촬영했다.
당연하게도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우리 카페에는 새로운 명물이 탄생했다. 바로, ‘유모차 끄는 청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