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4
0073 돌잔치
누나와 내가 걱정하던, 소은이의 걸음마가 해결 된 뒤. 카페는 물론이고 뮤튜브는 더더욱 번창했다.
아기는 가만히 누워 있어도 귀여운 존재지만, 삑삑! 소리를 내고 번쩍번쩍 빛이 나는 신발을 신고 쫑쫑거리며 뛰어다닐 때가 더 귀여웠다. 기저귀 때문에 두툼하고 빵실빵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그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누나와 나는 그 모습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의 코 앞에 놓인 한 가지 행사 때문이었다.
“네네. 그 때로 예약할게요. 인원이요? 어……. 그냥 최대 수용 가능 인원으로 잡아주세요. 비용은 신경안 써도 돼요.”
“예약 됐어?”
“어. 가격대가 좀 높은 곳이다보니, 여유가 있었다네.”
“다행이다……. 소은이 걸음마만 걱정하다가 첫돌을 못 챙길 뻔 했잖아.”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놓인 행사라는 것은 한 달 가량이 남아 있는, 소은이의 첫 생일 파티였다.
○ ◑ ● ◐ ○ ◑ ● ◐ ○
새순이 올라오고, 헐벗은 나무에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 즈음. 소은이의 첫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당연히 오늘은 소은이의 첫 생일이기도 했고, 소은이의 돌잔칫날이기도 했다.
“요오! 축하한다!”
“축하는 내가 아니라 소은이가 받아야지. 소은이 생일인데.”
“왜, 그 뭐냐. 돌잔치 자체가 그거잖아. 1년 생존을 기념하고 뭐……. 그런 거 있잖아.”
“지금이 조선시대냐.”
돌잔치를 위해서 예약해둔 홀의 입구에서, 나는 내가 부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가장 먼저 찾아와 소은이의 생일을 축하해주며, 각종 선물들을 내게 떠넘겼다.
‘아이씨, 이거 어떻게 집에 들고 가지?’
뮤튜브나 카페로 버는 수익만 하더라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기에 축의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만큼의 선물이 쌓이고 있었다.
이거 용달이라도 불러야겠는데- 생각이 들 정도로, 입구의 근처에는 선물보따리가 쌓이고 있는 것이었다.
기저귀같은 아기 용품은 물론이고, 유모차 같은 물건까지 쌓이고 있었다. 심지어 유모차만 하더라도 벌써 3대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손님들이 들어올 것을 예상하던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우리 부모님과 누나네 부모님을 보며 꾸벅- 인사했다.
따로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알아서 잘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냥 손님들처럼 느긋하게 오신 것이었다.
“오셨……?”
그런데 앞장서서 성큼성큼 움직이는 아빠와 아버님의 모습에 맞이하려던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두 분이 나를 그냥 쌩-하니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어휴, 저 인간을 어떡하면 좋을까?”
“……아빠는 왜 저래?”
“왜 저러겠니. 소은이 보겠다고 저러는 거지. 어휴……. 평소에는 죽어라 게으르던 양반이 소은이 보러 빨리 가자고 어찌나 재촉하던지.”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런 모습에 곁에 계신 어머님께 시선을 돌리니, 어머님 역시 엄마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 지었다. 아빠나 아버님이 소은이에게 푹 빠졌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아빠나 아버님의 메신저 프로필이 소은이 사진으로 바뀐지 오래였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요즘도 2, 3일에 한 번씩 소은이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라고 닦달하는 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웃고 있던 도중 아빠와 아버님이 다시 성큼성큼 나오더니 나를 툭툭 건드렸다.
“얌마. 소은이 어디 있어.”
“신서방. 소은이 어데 있노.”
“……소은이를 왜 나한테서 찾아요.”
“니가 애 아빠잖아.”
“자네가 애비잖나.”
“아니…….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맞추는 아빠와 아버님의 모습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에 인내심이 바닥난 아빠가 내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어댔다. 아니, 나를 흔든다고 소은이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소은이 어디 있냐고!”
“저, 억! 저기!”
짤짤 흔들어대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손가락으로 소은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흔들어대는 아빠의 손에서 풀려났다.
아빠와 아버님은 곧바로 내가 가리킨,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두 분은 이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저, 저게…….”
“으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나는 갑자기 몸을 굳힌 두 사람을 보며 의아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허, 참……. 네 능력이 대단하다고 듣긴 했는데, 저런 것도 할 수 있던 거냐?”
“뭐가? 아아, 청호랑 유부?”
나는 아빠의 떨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는 소은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청호가 있었다. 앞에서 질질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손잡이 부분에 앞 발을 올리고 뒷발로 이족보행을 하는 상태로 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청호가 끄는 유모차의 최상단에는 유부가 도도하게 앉아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리 청호가 서있다고 하더라도 유모차와 눈높이가 비슷하다보니, 유부가 시야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차양막과 선풍기 거치대가 있는 유모차로 인해 실직하여, 이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양산겸 부채에서 360도 감시 레이더로 전직한 것이었다.
“소은이가 주변에 기어다니는 녀석들이 워낙 많다보니 잘 안 걷더라고. 그래서 쟤들보고 두 발로 걸어다니랬는데, 이제는 저러고 있네.”
“네가 시킨 거냐?”
“저러라고 시킨 건 아냐. 지들이 소은이가 좋다고 저러는 거지. 자발적 고생? 뭐, 그렇게 생각해도 될 걸?”
당당한 내 모습에 아빠와 아버님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황당이고 뭐고, 두 분에게 중요한 것은 소은이를 보는 것이었다.
“소은아! 할아버지 왔다!”
“외할아비도 왔으야!”
청호가 끄는 유모차의 앞으로 다가간 두 할아버지들은 소은이에게 인사했다.
성장하며 사람도 잘 알아보고, 단어도 많이 늘게 된 소은이는 그런 할아버지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부!”
“으하핫! 봤냐, 나보고 할아버지라고 했잖아!”
“허, 웃기지 말그라. 나한테 한겨.”
동갑이라 절친한 사이가 된 두 분은 소은이가 자신들에게 할아버지라고 했다며 투닥거렸다. 사돈지간이라기 보다는 친구사이 같은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을 때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좀 부끄러웠다.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뭐 하는 거예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분을 말리기 위해 다가가려 했다. 먼저 걸음을 옮기는 엄마와 어머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휴, 화상아.”
“내가 오기 전에 말했잖여. 쓸데없는 소리 하덜 말라고.”
“아아악!”
두 분은 사이좋게 엄마와 어머님께 귓바퀴를 붙잡혔다. 그러게 좀 자제하시지.
“하무!”
“그래, 할머니예요. 소은아.”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와 이래 귀여운가 모르겠네.”
두 할머니는 소은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서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두 할아버지들의 귀를 잡아당기며 행사가 진행 될 홀 내부로 들어가셨다.
‘어째, 언니동생 하시더니 너무 닮아가는데?’
끌려가는 아빠와 아버님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다. 물론, 그런 안쓰러움은 곧 이어 찾아온 또 다른 동창에 의해서 사라졌지만.
그렇게 한동안 초대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어느새 돌잔치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소은이 아버님? 곧 시작할 거예요.”
돌잔치 진행을 맡은 이벤트 업체의 직원이 와서 곧 시작할 것이라 알려주었다. 나는 간단하게 거울을 보고 머리가 헝클어진 부분을 매만지고서 돌잔치가 진행 될 홀의 내부로 들어갔다.
내 친구들, 누나 친구들. 거기에 양가 부모님들의 친구들까지. 결혼식을 방불케하는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지나, 가장 전방에 위치해 있는 길쭉한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미 소은이를 안고 있는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빠빠!”
“얼른 와. 이제 시작한대.”
나를 발견한 소은이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 모습에 절로 흐뭇한 웃음을 지은 나는 누나의 곁에 앉았다.
“우리 소은이가 태어난 게 벌써 일 년이네.”
“그러게. 소은이 처음 젖 먹인 게 며칠 전 같은데.”
나와 누나는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과, 자칭 소은이 팬인 내 친구가 만들어둔 소은이 생일축하 플래카드를 보며 실감을 느꼈다. 소은이가 벌써 만으로 1살이 됐다니!
그리고,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큼큼- 곧, 신수환님과 정하은님의 자녀 신소은 양의 돌잔치가 진행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동시에, 홀을 채우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고, 곧이어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소은이의 첫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이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이어지기는 것을 시작으로 돌잔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소은 양이 태어난 이후, 지난 1년간의 성장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 영상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소은이 생일 축하인사 이후 이어진 것은 나와 누나가 열심히 촬영했던 소은이의 영상이었다. 포대기에 둘둘 말려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소은이가 꺄르륵 웃는 영상부터 시작해서, 처음으로 걸음마를 시작하고 삑삑이신발을 신고 삑삑 걸어다니는 영상까지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소은이의 성장 과정 전체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상은 그 길이만 하더라도 30분 가량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그 누구도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사회를 봐야 하는 사회자는 물론이고 조명이나 오디오를 관리할 이벤트 업체 직원들 마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영상을 볼 정도였다.
“어, 어어…….”
영상이 끝이 나고, 검은 화면이 나오자 사회자가 잠깐 멍한 모습을 보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 이후로 선물 증정식이 있었지만, 이미 많은 선물들을 미리 받은 상황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 소은이의 본격적인 생일 축하가 시작 되었다.
생일이라고 하면 빼놓기 힘든 케이크와 촛불 불기가 이어졌고, 소은이의 이름을 담은 생일축하 노래까지 다 함께 불렀다.
자기 생일 축하해주는 것임을 알기라도 하는지, 소은이는 사람들이 단체로 노래를 불러주는 것에 해맑은 웃음으로 보답했다.
“아아, 계속 소은 양의 미소를 보고 있고 싶네요. 하지만 이제 돌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남았으니 아쉬움을 잠시 접어두고, 돌잡이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구석에서 미리 준비해둔 것인지 고급스러운 비단이 깔려 있는 트레이가 테이블에 셋팅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여러 물건들이 가득하게 놓여 있는 상태였다.
돌잡이 하면 빠지지 않는 연필이라던가 책, 실 같은 것은 물론이고 청진기나 마이크, 공 같은 것들도 쟁반 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사회자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며,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면 돌잡이로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이런 것도 직업인가- 싶은 것도 직업이 되는 시대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신 손님 분들 중에서, 돌잡이에 올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에 잠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하나씩 나와 쟁반위에 물건을 놓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이 들고 온 게임기를 빼앗아 얹는 부모도 있었고, 정보는 곧 돈이 된다며 USB를 얹는 사람도 있었다. 그 외에도 장난감 칼이라던가, 계산기, 종이 비행기, 하모니카 같은 것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덕분에 쟁반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차게 되었다.
“자, 더 이상 물건을 놓을 분들이 계시지 않은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돌잡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소은 양이 원하는 것을 집도록 해주세요!”
나와 누나는 쟁반이 놓인 테이블 위에 소은이를 내려놓았고, 소은이는 쟁반에 놓인 것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과연, 소은 양은 어떤 물건을 잡을까요?”
사회자의 말처럼 소은이가 어떤 것을 잡을 지 무척 궁금했고, 기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