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4
0093 마트
소은이가 카페를 종횡무진 움직이게 되며, 카페에는 약간의 밈이라고 해야할지 문화라고 해야할지 모를 것이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공주마마아아아! 나아압시오오오!”
소은이가 여기저기 움직일 때마다 소은이의 행차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문을 넘나들때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재생하고는 했다.
아무래도 자그마한 아이가 뽈뽈 돌아다니니, 괜히 부주의한 사람에게 치이지 말라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소은이의 팬 문화처럼 되어버렸다.
덕분에 처음에는 단순히 동물소리 같은 것이 나던 것에서, 사극풍의 배경음악까지 달린 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근데 왜 소은이가 그 소리를 즐기는 거 같지?’
소은이는 공주마마라는 소리를 괜히 반기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간간히 읽어준 동화에 나온 공주라는 단어를 알기 때문인가 싶었다.
“압빠!”
아무튼, 나는 그 소리 덕분에 소은이가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 수가 있었다.
품에 이기토를 안아들고서 쫄래쫄래 걸어온 소은이를 안아드니, 소은이가 편안하게 안겨들었다.
“소은아 왜?”
“압빠압빠! 까까! 주세요!”
내게 안겨든 소은이는 품에 안고 있던 이기토를 슬며시 내려놓더니, 두 손을 곱게 펼쳐 내밀었다.
열심히 동물들과 잔디를 뛰놀다가 슬슬 배가 고팠는지 과자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소은이 까까 줄까?”
“웅!”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가볍게 웃은 나는 곧바로 소은이를 안아들고서 카운터로 움직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소은이 간식을 24시간 들고다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운터로 다가가니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소은이는 그런 누나를 보자마자 손을 붕붕 흔들어댔다.
“응? 소은이는 왜 데리고 온 거야?”
“과자 좀 주려고. 배고픈가봐.”
“소은이 배고파?”
“우웅!”
고개를 끄덕이며, 제 배를 슥슥 문지르는 소은이의 모습에 누나가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밥을 먹이기에는 조금 애매한 시간임을 확인한 누나는 카운터 아래에서 자그마한 과자봉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소은이가 좋아하는, 아기들에게 딱 맞춘 저염식의 과자가 담긴 봉지였다.
“어? 몇 개 안 남았네. 조만간 사야겠다.”
“몇 개나 남았어?”
“세 개. 넉넉하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아니네.”
손가락 세 개를 펼치는 누나의 모습을 바라본 소은이는 마냥 좋다는 듯이 누나를 따라서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그럼 오늘 마트나 갈까?”
“마뚜!”
그리고, 마트를 갈까 하는 내 물음에 답한 것은 누나가 아니라 소은이였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아이를 놓고 멀리까지 나갔다 올 수 없어,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그 사이에 마트에 맛들려버렸기 때문이다.
카트에 앉아 온갖 상품들과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자기가 먹을 과자를 얻어내는 것이 소은이의 즐거움이었다.
당연하지만, 그건 일종의 유전이기도 했다. 누나도 마트를 꽤나 좋아했으니 말이다. 백화점이 됐든 마트가 됐든 한 번 가면 구석구석까지 다 돌아봐야 성에 차는 누나였다.
“마트 갈까?”
“웅웅!”
머리카락이 펄럭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였다. 마트가 그렇게 좋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누나에게서 받은 과자 봉지를 가지고서 자리로 돌아갔다.
“압빠, 까까!”
자리에 앉아 과자 봉지를 뜯으니 소은이가 어서 달라는 듯이 나를 보챘다.
“아~!”
“아!”
소은이가 원하는대로 과자를 집어 입에 물려주니, 오물오물 잘도 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아기가 한 번에 먹을 정도만 담겨 있는 과자는 양이 많지 않았고, 과자는 금세 사라졌다. 그래도 배가 작은 아기답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압빠, 빠빠!”
적당히 내 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한 소은이는 발버둥치며 내 품에서 빠져나가더니, 그대로 손을 붕붕 흔들어댔다.
그런 소은이의 곁에는 어느샌가 다가온 청호와 유부, 토끼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꼬!”
소은이는 동물들을 이끌고 다시금 잔디밭을 향해 오도도도 달려갔다.
잔디밭으로 나가는 문이 누가 닫은 건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소은이에겐 문제가 아니었다.
“아가씨, 지나가십셔!”
청호 녀석이 재빨리 먼저 다가가, 문을 온 몸으로 밀어내며 소은이가 지나갈 공간을 확보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몸집이 작은 소은이는 동물들이 오갈 수 있는 통로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소은이 전용의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주마마아아아! 나아압시오오오!”
“뺘하항!”
자기 전용의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에 웃음을 터트린 소은이는 잔디밭으로 나가자마자 청호를 붙잡더니, 그대로 녀석의 등허리 위에 올라탔다.
신생아나 다름없을 때부터 청호의 등을 타온 소은이에겐 익숙한 행동이었다.
“절루가!”
청호의 등허리 위에 단단하게 자리한 소은이는 청호의 목덜미를 톡톡 두드리며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청호는 소은이가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나는 동물들과 즐겁게 웃고, 뛰며 노는 소은이의 모습을 한동안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은 카페에 있는 손님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찰칵찰칵 소리와 귀엽다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뒤섞이며 백색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소은이가 열심히 뛰어놀다 지쳐 낮잠도 한 번 쿨쿨 자고나니 시간은 어느덧 카페의 마감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수 많은 손님들을 내보내고, 직원들도 다 돌려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우리 세 가족과 우글거리는 동물들이었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예전처럼 도둑이 들면 그냥 조금만 괴롭히고 잡아두고.”
“걱정마십셔!”
“우리만 믿으라!”
“올때 츄르.”
내 말에 동물들은 저마다 대답을 하며, 집 안 곳곳으로 흩어졌다.
녀석들과 함께한 것이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 수준이다보니 녀석들은 이제 우리가 집에 없더라도 불안해 하지 않았다. 우리 역시 녀석들을 놔두는 것에 불안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럼 출발할까?”
“소은아, 마트가자. 마트!”
“마뚜우!”
누나의 손길로 카시트에 올라탄 소은이는 팔다리를 휘적휘적 흔들며 마트에 가는 것을 기뻐했다.
나는 모녀가 참 마트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트로 향했다.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금세 마트에 도착해서 주차까지 마무리했다. 평일 저녁인 탓에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누나가 소은이를 챙기는 사이, 나는 카트를 챙겨왔고 소은이를 카트 유아시트에 앉혔다.
“소은아, 오늘은 아빠 발로 차면 안 된다?”
“웅!”
저번에 마트에 왔다가 기분 좋은 소은이의 발길질에 아랫배를 걷어차인 기억이 떠올라, 주의를 주니 해맑은 미소가 돌아왔다. 괜찮겠지?
“수환아, 뭐 사기로 했지?”
“일단은 소은이 과자였지. 그거 말고는 물티슈도 좀 사야겠더라. 아, 나 면도크림도 필요해.”
“오늘 오길 잘 했네. 왔으니까 필요한 거 다 사자.”
“……어, 그래.”
누나의 말에 나는 삐걱거리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걸 다 사서 가겠다는 건, 사실상 마트를 구석구석 싸그리 다 돌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압빠, 까까!”
내가 미는 카트에 나를 마주하고 앉은 소은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관심도 없는지 해맑게 과자를 요구했다.
“일단 소은이 까까부터 살까?”
“웅.”
소은이가 그렇게도 원하는 과자를 찾기 위해, 과자가 있는 코너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찾아가니 소은이가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눈을 데록데록 굴리기 시작했다. 어떤 과자가 좋을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바라보고 있으니, 소은이가 엄마엄마 소리를 하며 자기가 원하는 과자를 골랐다.
“이거는 안 돼.”
“히웅…….”
성분표를 보고 안 좋겠다 싶은 누나의 단호한 말에 소은이가 무척 아쉬워했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할지, 평소에도 가장 좋아하던 과자 봉지 하나를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마치 매일같이 안고다니는 토끼즈를 대신해서 과자 봉지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못 해도 며칠 정도는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을 카트에 담은 누나는 이제는 자신의 시간이라는 듯이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과자 코너에서 가장 가까운 음료 코너를 지나 생필품 코너와 가구, 의류 코너까지 빠짐 없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환아, 여기 면도크림 있네. 자, 평소에 쓰던거.”
“저번에 보니까 치킨이가 또 남캣한테 방석 뺏겼던데, 치킨이가 쓰게 방석 하나 더 살까?”
“이 옷 너무 귀엽다! 소은아 입어볼래?”
“저기 다있스 있는데, 저기도 가자. 뮤튜브 보니까 필수템 추천하는 거 있더라.”
“유부 먹일 고기가 넉넉하게 남았던가?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사자.”
“시식이네? 소은아, 만두 먹어볼까? 이게 만두야. 뜨거우니까 호- 불어서. 수환아 너도 먹어봐.”
“아, 계란도 좀 사야겠다. 몇 알 없던 것 같아.”
마트를 둘러보기 시작한 누나는 정말 지치지도 않는지,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덕분에 차오르는 것은 내 다리의 피로와 카트였다. 카트는 소은이가 앉아 있는 자리를 제외하면 짐칸과 아래의 추가 공간까지도 가득한 상황이었다.
“아, 개운해!”
오랜만에 마트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닌 것이 그렇게 좋은지, 소은이를 안아든 누나는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구매한 물건들을 차에 실어올리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짐을 가득 들고 돌아온 집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동물들의 황당한 반응이었다.
“뭐고! 우리꺼는 엄나!”
“느그만 입이고 우린 주둥이제!”
“……너네 주둥이 맞잖아.”
“이건 라쿤 차별인기다! 집도 지켰는디, 주는 기 와 없노!”
라쿤들은 자기들 것은 사오지 않았다고 투덜거렸고.
“츄르는?”
“집에 많은데 그걸 왜 사와아악!”
“츄르를 사오지 않은 죄를 달게 받아라!”
남캣 이 녀석은 츄르를 사오지 않았다고 냥냥펀치를 마구잡이로 날려댔다.
“나도 드디어 깔고 앉을 게 있어!”
남캣에게 방석을 빼았겼던 치킨이는 기뻐하며 제게 주어진 새 방석을 물고 도망쳤다.
‘왜 마트를 갔다가 왔는데 더 피곤한 거지?’
나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에 피로를 느끼며 가볍게 씻고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마트를 구석구석 돈 탓인지, 금세 잠이 쏟아지며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