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95
0094 발전개
“헥헥헥헥! 쥔님!”
거의 내 고정석이나 다름 없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며 살아있는 CCTV로 활동하던 도중 마루가 다가왔다.
한바탕 거하게 뛴 다음 온 건지 털이 부스스하고, 상승한 체온을 낮추기 위해 열심히 헥헥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왜?”
“그거, 안 돌아가요! 뛰는데 안 돌아요!”
“그거?”
“달리는 거!”
마루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알아차린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개들을 위한 트레드밀로 다가갔다.
무동력의 트레드밀로, 무한궤도 같은 바닥을 힘으로 밀어내며 걸어가는 형태의 트레드밀이었다.
동력원이 없으니 고장날 일이 뭐가 있는 건가 생각하며 다가가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멀쩡한데?”
“근데, 안 돌아가요!”
내 물음에 마루가 트레드밀에 올라타더니, 낑낑거리며 트레드밀을 밀기 위해 용을 썼다. 하지만 녀석의 말대로, 트레드밀은 잠깐 꿀렁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 그 때 소리가 이상하다 했어.”
설치한 직후, 마루를 비롯한 개들이 열심히 뛸 때 나던 소리가 불길하더라니. 결국 이렇게 되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혹시나 싶어 트레드밀을 앞뒤로 여러차례 밀어봤다. 물론, 그런다고 돌지 않던 트레드밀이 도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트레드밀의 커버를 벗겨보았다. 혹시라도 간단하게 부품을 교체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 과학상자 같은 것들을 가지고 논 덕분인지는 몰라도 간단한 기계의 분해와 조립 정도는 할 줄 아는 남자라고!
“끙…….”
다만 그런 기대감은 순식간에 박살이났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커버를 열자마자 쏟아진 내부의 부품 조각들 때문이었다. 롤러를 지탱해주는 베어링이 산산조각나서 구슬이 굴러다녔고, 롤러 자체도 마모가 심하게 되어 있었다. 교체를 하려면 내부의 부품을 싹 다 교체해야 할 정도인 것이었다.
“그래, 이거 만든 사람들도 설마 개가 이 정도로 뛸 거라곤 생각 못했겠지.”
어떤 골든리트리버가 최고시속 70킬로미터를 찍냐고. 무슨 말도 아니고.
마루가 청호보다 대단한 건 달리기 속도였다. 처음에는 청호보다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었는데, 매일같이 뛰고 또 뛰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치는 순간까지 뛰니 더 빨라지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종을 초월한 수준의 달리기 실력을 가진 마루가 전력을 다 해서 달리니 일반적인 트레드밀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루야. 이건 더 이상 못 쓰겠다.”
“에엑!”
마루는 내 말을 믿기 힘들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꿈쩍하지 않는 트레드밀에 포기를 해버렸다. 녀석은 시무룩하게 트레드밀의 곁에 웅크리고 앉았다.
‘무슨 세상을 다 잃은 것마냥…….’
축 늘어져서 힘이 하나도 없는 듯한 그 모습은 보는 사람도 축축 처지게 만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마루를 거칠게 쓰다듬어주고선, 카페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곧장 덩치가 좋은 직원들을 불러냈다.
“일 해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 무거운 걸 좀 들어야 하거든. 오만 원 현금지급, 선착순 셋!”
“저요!”
“준비된 참일꾼 등장!”
“사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저……! 아, 까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이 손을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역시 돈이 최고야!
“그럼 세 명은 일하러 가자.”
몇 년의 시간동안 함께하며 어느덧 형동생 관계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된 직원들을 이끌고 다시금 트레드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게 지금 박살났거든. 그래서 치워야 해. 고물상에 연락해서 가져가라고 할 거니까, 밖으로 옮겨주기만 하면 돼. 그 다음에 원래 있던 캣휠 큰 거를 다시 꺼낼 거야.”
“옙!”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한 세 명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부품 조각들을 대충 내부에 쑤셔넣고 커버를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셋이서 힘을 합쳐 트레드밀을 들어올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체력이나 힘 하나는 좋은 우리 동물들을 제어하거나, 온 힘을 다해 진상짓을 하는 인간들을 쫓아내기 위해 특별히 체격을 보고 뽑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히이이잉!”
다만 덩치에 맞는 힘으로 인해 순식간에 트레드밀이 사라지니, 곁에 있던 마루가 무척 서글픈 듯한 소리를 내며 낑낑거렸다.
마치 고장난 것이긴 해도 트레드밀이 사라지니,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낑낑거리는 마루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녀석을 진정시켰다.
녀석은 서글프다는 듯이 축 늘어져서, 내 다리에 머리를 척 올렸다.
그런 마루를 쓰다듬으며 잠시 기다리니 트레드밀을 버리러 갔던 세 명이 빠르게 돌아왔다.
“사장님, 버리고 왔어요. 캣휠 꺼내올까요?”
“어. 부탁할게.”
“잠시만 기다리세요!”
세 명은 잠깐 힘 쓰고 오만 원이라는 돈을 벌기 때문인지, 호다닥 달려갔다. 그들의 얼굴엔 땀방울이 살짝 맺혀 있음에도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곧이어 드르륵-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캣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트레드밀 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무게였기 때문인지, 끌차에 끌고 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와아앗!”
그리고, 그렇게 끌차에 실려 끌려오는 캣휠의 모습을 바라본 마루가 벌떡 일어나더니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바람이 붕붕 불어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 어어! 마루야 비켜줘!”
결국 기쁨을 참지 못한 마루가 끌차 위에 있는 캣휠에 올라타려했다. 휘청거리며 캣휠이 넘어가려 하자, 직원들이 급히 붙잡으며 마루를 밀어내려 했다.
그 정도로 좋은가- 싶으면서도, 나는 재빨리 녀석을 말렸다.
“마루! 이리와! 씁!”
강하게 소리치니 마루가 꼬리를 말더니 재빨리 내 곁으로 달려왔다. 물론, 그 와중에도 캣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기다리면 설치해줄 거니까, 가만히 기다려.”
“네!”
그제서야 마루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스윽, 스윽, 스윽.
당연한 말이지만,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고는 하지만 꼬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열심히, 힘차게 바닥을 쓸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루의 재촉아닌 재촉 때문인지 세 명의 직원들은 곧바로 캣휠을 설치했다.
끌차에서 내리고, 무거운 몸체가 넘어가지 않도록 바닥 깊숙히 고정대를 심었다. 게다가 빠르게 돌 것을 대비해 회전축에 윤활유까지 촉촉하게 뿌려준 직원들이었다.
“사장님, 다 됐어요.”
“수고했어. 자, 여기 수고비.”
“우효!”
수고비로 오만 원 지폐 한장씩을 넘겨주니 직원들이 기뻐하며 카페 내부로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마루를 캣휠로 슬쩍 밀어주었다.
마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캣휠로 달려갔다.
“좋아! 좋아아아!”
캣휠로 올라간 마루는 그대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드르르르르르르륵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저 녀석, 헬창이 조져지는 근육의 느낌을 맛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을 맛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새 거 사기 전까지 박살 나지만 마라.’
하지만 그런 것 보다도, 캣휠이 금방 망가질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건 부수지 말고, 적당히 뛰어.”
“네에에에에에!”
콰가가가각!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뛰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속도를 올리는 마루의 모습에 한숨을 절로 나왔다. 지금 바로 새거 주문해야겠네.
나는 개들이 쓸 수 있는 트레드밀을 내구성 위주로 검색해보며 카페로 돌아갔다.
그런데, 마루가 타고 있는 캣휠이 박살나는 건 아닌가 싶어 흘긋거리며 휴대폰을 보고 있으니, 직원 중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사장님.”
“어, 왜?”
“마루가 타는 캣휠 보고 생각난 건데, 저기에 발전기 한 번 달아보시면 어때요?”
“……발전기?”
나는 무슨 소리냐는 듯한 시선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캣휠을 그냥 돌리기만 하면 뭔가 좀 아쉽잖아요. 저렇게 빨리 돌리는데, 발전기라도 달면 재미도 있지 않겠어요? 마루한테 막, 기가와트 발전개 같은 게 붙는 거죠.”
“……그건 또 무슨 괴상한 소리야.”
나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당장하자. 가서 재료 사와! 비용처리 해줄테니까 다 사와!”
발전기를 단다고? 이건 못 참지.
나는 직원을 내쫓았다. 철물점이나 전기상가 문 닫기 전에 다 사와!
“헤엑, 헥! 사장님 다 사왔어요!”
내쫓겼던 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품에 각종 자재 같은 것들을 한아름 안고서 돌아왔다.
“혼자서 설치 못 하지? 몇 명이면 돼?”
“어, 저 까지 네 명이면 충분할 거 같아요.”
나는 다시금 직원들 사이에서 선착순 세 명을 뽑았고, 전기 관련 된 전공을 가진 직원을 비롯한 네 명이 캣휠에 달라붙었다.
“우우…….”
다시금 캣휠을 빼앗기게 된 마루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지금 그 불만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발전기라고!
직원들이 뚝딱뚝딱 캣휠에 보강재를 붙이고, 모터를 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금세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오……. 공대생 작품.”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기능은 제대로 한다고요.”
비록 결과물은 공대생의 과제같은 결과물이었지만, 그 기능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중에 시트지 같은 걸 붙이면 봐줄만한 정도였다.
“여기 전력계도 붙였고, 작동 실험할 용도로 전구도 달아놨어요. 테스트도 해서, 마루가 타기만 하면 돼요.”
“마루야!”
시작하면 된다는 소리에, 나는 곧장 마루를 불렀다.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마루는 그대로 캣휠에 올라탔다.
“뛰어!”
내 말에 마루가 곧장 뛰기 시작했다.
“오오오!”
“불 들어왔다!”
마루가 뛰기 시작하자 캣휠 주변에 달려 있던 전구에 미약하게 빛이 들어왔다.
깜빡깜빡 하는 것이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루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니 전구의 빛이 밝아져갔다.
퍼어엉!
“으악! 터졌어!”
그리고, 마루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그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기를 버티지 못한 전구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사장님……. 350w 나오는데요?”
“그게 어느 정돈데?”
“그 왜, 아파트 베란다 보면 태양광 발전기 붙은 거 있죠? 그거랑 비슷해요. 소형 엔진 발전기가 700w 정도 될거고요.”
“마루가 두 마리면 소형 엔진 발전기란 소리지?”
“네.”
“…….”
나는 열심히 뛰는 마루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저게 개야 발전기야.
하지만 말을 잃은 나와 달리, 직원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안전장치랑 배터리도 좀 연결해서 휴대폰 충전기 같은 거 달아둘까요? 주변에 전구로 장식도 좀 하고요. 그럼 예쁠 거 같은데.”
“……사와.”
전기 전공을 한 직원의 능력 덕분에, 우리 카페에는 발전기…… 아니, 발전개가 생겼다. 덤으로 야외 조명장치 겸 휴대폰 충전대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