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 * *
서형이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혹시 놈들이 아직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시문 님이 저놈들 부수는 데 마력석 필요 없는 줄?”
해영도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지도요. 녀석들 은근히 얼 빠진 데 있어 보이던데요.”
“너희가 결코 돌 인간을 쉬이 여겨서는 안 된다.”
시현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그들이 이제껏 허술하고 두서없이 행동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그래도 되었던 것이다.”
하유관이 포위당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두는 바로 태도가 진지해졌다.
시현이 힘주어 말했다.
“저들이 처음에는 우리를 약하고 무력하다 여기고 되는 대로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저들도 그동안 제 편을 여러 번 잃었다.
앞으로는 적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돌 인간들은 생각하는 것이 인간과 다르나 고도로 지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우리도 더 굳게 각오해야 한다.”
“예!”
적색대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단이 지도 위쪽을 짚어 보이면서 물었다.
“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정대로 천천곡으로 들어갑니까? 일부 지형은 황야보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천천곡은 중부의 두 산맥 사이로 다천관과 하유관을 잇는 강줄기가 지났던 자리였다.
물 얻기가 쉬운 데다가 골짜기를 빠져나가면 바로 다천관과 이어져 상단들이 애용하는 경로였다.
중부의 가운데를 갈라놓는 산악과 암석 지대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시현이 단에게 물었다.
“천천곡이 그리 험한 곳이냐? 물이 모여 물산이 많고 골짜기 바깥에 비해서는 거석이 적다 들었는데.”
“맞게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천천곡도 여간 방대한 지역이 아니니까요. 너른 숲과 샘이 있고 마을이나 소읍이 자리잡은 곳도 있지만 돌무지도 있고 높은 절벽을 끼고 길이 좁아지는 지형도 있습니다.
놈들이 작정하고 우리를 노린다면 치풍산에서처럼 절벽이 장군석이 되어 덤벼올 염려가 있습니다.”
절벽이 장군석이 된다는 말에 적색대의 몇 명이 입을 딱 벌렸다.
치풍산을 가 보았던 서형은 오히려 더 상상이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시현이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해영이 말했다.
“어차피 중부를 가로지르려면 산악 지형과 계곡 지형 둘 중 하나는 지나야 하니까요. 제 생각에는….”
그때 수레 주위에 둘러서 망을 보고 있던 몫꾼들이 소리쳤다.
“거석이 옵니다!”
“동쪽에 여러 놈입니다!”
“뭐라고?”
시현이 크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는 곧바로 몫꾼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멀리 지평선으로부터 무언가의 무리가 움직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찌푸리고 지평선을 보며 시현이 물었다.
“거석이 맞느냐? 내겐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거석 같긴 해요. 돌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은데….”
하늘인이라 눈이 더 좋은 호란이 망설이는 소리를 냈다.
단이 걸낭에서 망원경을 꺼내 들여다보며 말했다.
“거석입니다. 달려오고 있어요. 일곱… 아홉 놈인데… 그런데 기결이 없는데요.”
“기결이? 정말이냐?”
단이 시현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빛나는 무늬가 없습니다. 아홉 놈 다요.”
시현이 서둘러 망원경을 받아들었다.
거석 무리가 더 가까워지면서 호란과 몫꾼들에게도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의 말이 사실이었다.
거석들은 하나같이 둥그렇고 땅딸하게 생겼고 팔다리가 길지 않아 보통 거석보다 위협적인 느낌이 적었다. 크기도 더 작아 보였다.
하지만 몸체 어디에도 빛나는 나선무늬가 없었다.
시현이 망원경을 내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놈들이 내게 대응하여 형태를 바꿨구나. 내가 거석을 깰 때 기결에서 새어나오는 기운을 이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저것들은 지닌 기운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이제까지처럼 다가오는 걸 느낄 수가 없다. 마력석 없이 깰 수도 없겠다. 준, 내 대련을 가져오너라.”
시현이 찌푸린 것과 반대로 적색대 몫꾼들 사이엔 상황에 맞지 않게 들뜬 기색이 감돌았다.
왼몸조 강호가 어깨를 세우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근질근질하다는 듯이 말했다.
“기결이 없으면 몸통 가운데 딱딱한 데도 없다는 거 아니야? 더 쉬워진 거 아니야?”
같은 왼몸조인 차은도 눈을 빛냈다.
“어. 그리고 쟤들 보통 거석보다 작은 거 같은데? 속도도 느리고.”
“작아, 작아.”
“팔다리가 짧아서 공격 범위도 짧겠다.”
몫꾼들이 수런거리는 사이 서형이 시현의 앞에 와서 섰다.
그가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맡겨 주시겠습니까?”
“적의 전력을 아직 모른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시현의 말에 서형이 씩 웃었다.
“전력을 파악해드리겠습니다. 마력석도 아껴드리고요.”
시현이 준에게서 대련을 받아들고 말했다.
“호란과 적색대가 함께 맞서되 수레의 여섯 장 앞에서 적을 맞으라. 만일의 경우 지원하겠다.”
“예!”
서형이 힘차게 대답하고 대열에 지시했다.
“펼친 대열로 두 장 앞에 대기! 왼몸조는 돌출 선봉! 우대와 천수는 호위로 빠져라!”
“예!”
대열이 수레 앞쪽에 죽 벌여섰다. 호란도 무리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달려오는 무늬 없는 거석들은 이제 형체가 확실할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보통 거석보다 훨씬 작았다.
몸통은 굵직했지만 키는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다. 반수는 서형하고 고만고만해 보였다.
다리가 짧아서 달려오는 속도도 그만큼 느렸다.
그래도 기결이 없는 거석이라니 처음이었다.
호란은 조금 긴장해서 주먹을 쥐고 기다렸다.
옆에 선 서형이 호란을 내려다보며 히죽이 웃었다.
“이제 조건이 똑같아졌구만? 어디 한 번 해 보자, 큰몫꾼!”
호란은 긴장이 풀려서 웃고 말았다.
“이건 경쟁 같은 게 아니잖아.”
“그래? 난 너한테 이길 건데. 물론 저 돌멩이들한테도 이기고.”
서형이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하유관…. 아, 아니지. 시문 님의! 적색대!”
“적색대!!”
서형의 선창에 따라 몫꾼들이 한꺼번에 목소리를 높였다.
서형이 외쳤다.
“목숨을 다해서 적을 격파하고 무리를 지킨다! 기세가! 하늘에! 닿는다!”
“하늘에! 닿는다!!”
“돌격!”
머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몫꾼들이 일제히 땅을 닫았다.
대열보다 한 장 반 앞에 나와서 서 있던 왼몸조 강호와 차은이 폭발하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가장 먼저 적과 마주한 두 사람은 각각 무늬 없는 거석의 몸통 한가운데에 전력으로 주먹을 박았다.
반응이 있었다. 공격당한 두 놈은 몸체가 푹 꺼지고 금이 간 채 비틀댔다.
양옆의 다른 거석들이 강호와 차은을 포위할 것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적색대 안에서도 특출한 몸놀림을 가진 둘에게 놈들의 길지 않은 팔다리를 피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공격을 피해 물러섰던 강호와 차은이 다시 자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대열도 전선에 도달했다.
대열은 자연스럽게 두셋씩 짝을 지어 거석에 맞섰다.
다들 확신을 가지고 몸통의 공략에 나섰다.
왼몸조의 선공이 나머지 대열에게 계측기 역할을 해준 모양이었다.
호란 역시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그는 가운데서 강호에게 덤비려는 놈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개중에는 큰 놈이었지만 그래도 그간 상대해온 거석들에 비하면 한참 작았다.
호란의 주먹이 거석의 몸통을 힘껏 쳤다.
두툼한 몸통이 크게 쫙 갈라졌다.
그래도 놈은 계속 움직이며 호란에게 팔을 휘두르려 했다.
“어쭈!”
호란은 뒤로 빙 돌아서 놈을 돌려찼다.
땅딸한 몸체가 공처럼 땅바닥에 굴렀다.
쫓아가 높이 뛰어오른 호란은 낙하하며 양 무릎으로 몸체를 강하게 찍었다.
퍼석 소리를 내며 몸통이 산산이 갈라져 흩어졌다.
몸을 세우고 보니 거석 두 놈이 단채와 다른 둘을 사이에 끼우려 하고 있었다.
호란은 곧바로 한 놈을 뛰어 차서 날려버렸다.
“야아!”
거리낄 게 없어진 단채가 기합성을 내며 제 앞의 놈에게 쳐들어갔다.
호란도 걷어찼던 놈이 일어나기 전에 따라붙었다.
무늬 없는 거석의 몸통은 기결보다는 훨씬 물렀지만 보통 거석의 팔다리보다는 단단했다.
그래도 치는 요령이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
공격할 때마다 주먹에 담은 기운이 몸체 전체에 충격을 퍼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치니 이놈도 세 방에 끝이 났다.
두 놈째를 쓰러뜨린 호란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가고 있었다.
겨우 한 놈 남아서 몫꾼 몇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석을 향해 서형이 쿵쿵 돌진해갔다.
“어느 놈들이 아직껏 꾸물꾸물하고 있냐!”
서형이 소리치며 거석의 정가운데를 거세게 후려쳤다.
큰 주먹에 맞은 바위 몸체가 두부처럼 터져나가면서 내려앉았다.
“대장, 그거 우리가 깨던 건데….”
억울한 듯이 말하는 강호에게 서형이 코끝으로 웃었다.
“누가 지금까지 꾸물거리래?”
“하나 깨고 그놈은 두 개째였다고.”
“누가 지금까지 꾸물거리래?”
서형은 똑같이 말하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석들은 모두 부서져 땅에 구른 채였다.
산산이 박살난 놈도 있고 형태가 꽤 남아 있는 놈도 있었지만 움직일 기색이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빛나는 기결이 없으니 깨놓은 몸체가 다시 붙는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서형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공략 끝! 정렬! 복귀한다!”
“이야!”
몫꾼들이 소리치며 열을 갖췄다.
수레 앞으로 돌아가자 시현이 웃는 얼굴로 모두를 맞았다.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구나. 다들 대단하다. 정말 잘해주었다. 아무도 부상하지 않은 것도 잘하였다.”
“예!”
시현은 열을 해산시키고 다시 지도를 놓아둔 탁자 앞에 섰다.
회의가 마저 진행될 것을 알고 아까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현이 말했다.
“놈들의 표면이 깨어지니 비로소 거석이 지닌 기운이 느껴졌다. 힘의 크기도 특징도 이전의 거석에 비해 별다른 점은 없는 듯하였다.
수가 많아지면 마력석을 들여서 싸워야 하겠다만, 새로운 거석이 너희가 상대하기에는 이점이 있으니 걱정은 덜하구나.”
“염려 말고 맡겨주십시오! 한 번 싸워 봤으니 다음엔 더 잘 상대할 수 있습니다. 수가 늘어도 문제 없습니다.”
서형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좋다. 든든하다. 다만 앞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거석의 변화를 보면 돌 인간들이 내게 맞설 방책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놈들이 방도를 확실히 세우고 나면 공세가 더 격해질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무늬 없는 거석은 내가 미리 기운을 읽을 수 없다. 놈들이 매복을 하거나 야간에 접근하여 기습을 할 경우 알기가 어렵다.”
해영이 말했다.
“산길과 암석 지대에서는 매복당하기도 쉽고 놈들을 그냥 바위하고 구별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천천곡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습니다.”
“음…. 네. 맞습니다.”
단도 동의했다.
“천천곡 안에도 길이 몇 갈래가 있습니다. 되도록 노숙할 일을 없게 하고 구불구불한 길목을 피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모두 잘 부탁하마.”
방향을 확정한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해 목적했던 마을에 도착했다.
천천곡 초입에 자리한 마을로, 여기서부터는 다천관의 속령이었다.
일행은 여각에 행장을 풀었다.
호란이 저녁을 먹으려고 상에 앉자 맞은편의 서형이 으쓱거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어이 큰몫꾼! 아까 봤어. 요령 못 부리게 됐는데도 꽤 하던걸. 그래도 뭐, 나만은 못한 거 같던데?”
호란은 또다시 웃어버렸다. 그는 조금 기분이 묘해져서 말했다.
“그렇게 호승심 있는 게, 진짜로 똑같네.”
“누구랑?”
서형은 무심코 물었다가 곧바로 눈치를 채고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혹시 길형이 말이야? 너도 길형이 알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