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3
마염의 황제 033화
***
“그러니까 넌 우리한테 이데아로크의 조각에 대한 정보를 주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란 말이지?”
잠시 후, 가게 안. 로자리아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구석에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던 흑마법사는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로자리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너희, 알 제라드가 우리를 습격해 온 게 몇 번인데 이번에는 조각의 정보를 준다고? 이게 누굴 바보로 아나.”
“아이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 같은 말단이 뭘 알겠습니까. 저는 그냥 위에서 시킨 대로 한 것밖에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지금 내 말에 토 다는 거니?”
로자리아가 부릅뜬 눈으로 발을 들자 사색이 된 흑마법사는 반사적으로 거기를 가리며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흐아악!”
처참한 광경을 뒤로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레이센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알 제라드라니… 그건 흑마법사들의 연합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왜 너희를……?”
“녀석들은 내가 가진 가즈 블레이드를 노리고 있어. 끈덕지게 쫓아오는 귀찮은 놈들이지.”
질린다는 듯 인상을 팍 쓰는 로자리아. 그녀의 곁에서 흑마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원래 저희가 먼저 찾은…….”
“토 달지 말랬지.”
“끄아악!”
그레이센은 로자리아 몰래 미간을 좁혔다.
‘성가시게 되었군.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노리는 녀석들이 또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상대가 알 제라드라니.’
알 제라드는 공공연히 드러나지 않는 흑마법사들의 어둠의 연합.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과 얽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일이 피곤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레이센은 붉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알 제라드는 어쩌면 자신을 노리고 쫓아오는 원수들보다 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가즈 블레이드가 가드를 까닥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녀석이 알려준 곳으로 가볼 거야? 난 배는 멀미나서 싫은데.”
“흐음…….”
로자리아는 고민했다. 그녀로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게. 그대로 덥석 믿고 따라가자니 함정 같고, 안 가자니 진짜로 조각이 있을지도 모르고. 고민되네.”
“가자.”
일행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말을 꺼낸 것은 이터였다.
“어차피 우리는 조각의 정보를 찾고 있었으니까 함정이라도 확인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함정이면…….”
씨익.
이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부숴버리면 되니까.”
이터의 미소에 엘리스는 뻑 가버렸다.
“역시 이터 씨! 너무 멋져요…….”
엘데라드 숲에서의 사건 이후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이터였다. 그 전에는 자기 의견이나 감정 표현 같은 걸 잘 못하는 무뚝뚝한 녀석이었는데 무슨 계기라도 있었는지 성격이 조금씩 변했다.
‘특히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지.’
방금도 스스로 기억을 찾을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로자리아는 일단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로자리아는 이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히 지금 우리로서는 직접 확인해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지.”
함정이라고 해도 이터가 있다. 그레이센이나 엘리스도 실력이 있으니 어지간한 함정에 당하지 않을 것이고. 저 내시가 사용하는 신성마법도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뭔가 기분이 나쁜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론이었다.
아무튼 결정은 났다. 로자리아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그레트 섬을 찾아 출발한다.”
“우와… 바다를 여행한다니 엘리스는 너무 기대돼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숲에서만 살아온 엘리스에게 바다 여행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려면 배가 필요한데 그레트 섬까지 가는 정기선이 있을 리는 없으니 배를 빌릴 수밖에 없겠네.”
로자리아가 그레이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직감한 그레이센은 짧게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넘겼다.
“훗, 얼마 안 남은 비자금이지만…….”
또다시 두둑한 금화 주머니가 올라온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오는 비자금이다. 어쨌거나 배 값은 준비되었다.
“좋아. 돈은 구했으니 선원들이랑 배만 구하면 되겠네. 야.”
로자리아가 흑마법사를 불렀다. 무릎을 꿇고 있던 흑마법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 저요?”
“우리는 마을 여관에 방 잡고 쉬고 있을 테니까 선원이랑 배 구해서 대기시켜 놔. 마법으로 일일이 확인할 거니까 허튼 생각일랑 하지 말고.”
흑마법사는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저는 그쪽 부하도 아니고, 말단이기는 하지만 자존심도 있는데.”
“그럼 밤새도록 밟히던지.”
홱 돌아서는 로자리아의 어깨를 잡으며 흑마법사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최고 특등급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이렇게 배 준비도 맡겼다. 이제는 쉬는 일만 남았을 뿐.
밖으로 나가려는 로자리아는 문득 자신의 손을 보고 가만히 서 있는 이터를 발견했다.
“이터?”
혹시 기억을 찾을 방법을 구하지 못해서 풀이 죽는 걸까. 로자리아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괜찮아. 이번은 그렇다고 쳐도 아직 시간은 많잖아. 분명히 기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있다.”
“응?”
뜬금없는 말에 로자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터는 희미하게 빛나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난 알 수 있다.”
이터는 로자리아를 바라보았다.
“이데아로크의 조각… 녀석이 말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해골들로 가득 찬 퀴퀴한 동굴 속.
음산한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리치, 바르카드의 은신처였다. 그는 방금 이데아로크의 네 번째 조각을 찾아오는 임무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정구 너머로 비치는 루시펠이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넌 자꾸 실패만 하잖아. 많지도 않은 아만다티움 골렘도 덕분에 확 줄었지, 아마?”
“그, 그건!”
“이번에 또 맡긴다고 해서 네가 해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아마 십중팔구 골렘이나 더 때려부수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는 바르카드지만 루시펠은 짓궂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렸어. 넌 그쪽 일 신경 끊고 그냥 돌아오기나 하면 돼. 그럼 안녕…….”
그 말을 끝으로 루시펠은 사라졌다. 바르카드는 꺼져버린 수정구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앙상하게 남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굴욕을 주다니… 이게 다 소류, 그놈 때문이야!”
화르륵.
퀭한 눈에서 푸른 안광이 폭사한다. 분노한 바르카드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퍼졌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네 녀석은 반드시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말겠다. 반드시!”
수정구를 끈 루시펠은 웃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악동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재미있는 일 하나 추가.”
***
“결투장… 이라고?”
호아족 마을에 서신이 도착했다. 그것은 소류에게 전달된 것. 그 내용은 이러했다.
“단신으로 우리의 부대와 맞서싸우는 용맹한 전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대의 용기에 감복한 바 우리는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일주일 안에 우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전사가 그대를 찾아갈 것이다. 그와 싸워 이겨라. 그대가 그와의 승부에서 승리한다면 우리 알 제라드는 호아족 앞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하지만 만약 이기지 못했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용감한 전사에게… 라고? 이런 개자식들!”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호아족 청년 하나가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계속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멋대로 결투 신청이라니. 게다가 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서 생각하라고? 얕잡아보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승부라고 해도 놈들이 정정당당한 승부를 할 리가 없어. 이건 소류를 끌어내려는 함정이 분명해!”
소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젊은이들의 분노를 듣고 있던 장로가 소류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소류?”
“놈들이 진짜 정당한 승부를 해올 거라곤 생각할 수 없어. 하지만 저런 조건까지 내거는데 싸우지 않을 수도 없겠군. 오늘부터 해변에서 놈을 기다린다.”
젊은 청년 하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벌써? 서신에는 일주일 안에 온다는데…….”
“일주일 ‘안’이다. 일주일일 수도 있고, 더 빠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만약 함정이라면 날짜부터 조심해야겠지.”
소류는 방 안에 기대어져 있는 마창을 들었다.
“디파를 이용하면 해변에서 마을까지는 1분이면 도착해. 나를 끌어내서 마을을 노릴 속셈일지도 모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신호탄으로 호출해 줘.”
“미안하다, 소류. 우리에게도 힘이 있었다면…….”
호아족의 청년들이 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소류는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할 거 없어. 이 마을에서 전사는 나뿐이니까. 마을을 지키는 게 내 몫인 건 당연하다. 신경 쓰지 마.”
“오빠.”
소류의 곁에서 그의 여동생 티나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류는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냐. 설마 너 오빠가 질까봐 걱정하는 거야? 오빠가 얼마나 센지 잊었어?”
“아니야, 그런 거. 당연히 우리 오빠가 이길 거야.”
소류는 피식 웃었다.
“그럼 됐어.”
티나에게서 시선을 거둔 소류는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놈들은 약속했다. 이번에 지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나는, 그리고 마창 펜릴은 절대 지지 않아. 이번에야말로 놈들이 다시 쳐들어올 엄두조차 나지 않게 만들어주겠어.”
“소류…….”
소류는 마을 밖으로 나섰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뒤로하고 그는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놈들의 최고 전사라고?’
씨익.
소류의 입가에 자신감 어린 미소가 걸렸다. 마창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어떤 놈이든지 덤벼라. 박살을 내줄 테니.’
Chapter 2-2. 마창(魔槍), 펜릴의 주인
“에퉤퉤! 아직도 소금에 절어 있는 기분이야. 불결해, 불결해. 몸에 녹이라도 슬어버리면 어떻게 해.”
넝쿨들이 엉망으로 뒤덮인 숲 속에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반박했다.
“나도 찜찜한 건 마찬가지야. 편하게 손에 들려 가는 주제에 불평 좀 그만 할 수 없니?”
숲을 헤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로자리아 일행이었다. 그들의 몰골은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