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40
마염의 황제 040화
살벌한 이야기를 바르엘은 웃으며 했다.
그는 눈가리개를 풀었다. 빛을 오래도록 보지 못한 눈동자는 탁해져 있었다.
루시펠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게 아까 말하던 그 성과? 하지만 난 저 인간이 네가 말하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그저 그런 인간으로밖에 안 보여.”
피식.
바르엘이 루시펠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싸늘함을 느끼는 루시펠이었다.
“그럼 네가 한번 시험해 볼래? 보아하니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
한순간이지만 루시펠의 눈이 흔들렸다. 꿰뚫어봤다? 자신의 진면목을?
‘이건 뭐야?’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두컴컴한 지하통로를 두 명의 흑마법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숨이 턱에 찬 그들이 헉헉거리며 소리쳤다.
“대, 대법관님! 큰일,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슈페른님이 사원을 찾아와서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슈페른이?”
하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슈페른 녀석… 평소에도 조직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던 놈을 실력만을 믿고 남겨두었거늘, 이런 때에.”
“헤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네?”
바르엘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잘됐군. 그렇잖아도 오랜만에 풀려나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인데. 몸 좀 풀기로 하지.”
루시펠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가 기괴하게 틀어졌다.
“실력 검증도 받아야 할 것 같고.”
***
콰아앙!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동상이 터져나간다.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비켜.”
당황하며 말리던 흑마법사가 픽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뒤에는 이런 식으로 시체가 된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사이로 걸어오는 이는 검은 도포의 중년남은 바로 스페셜 청부업자, 슈페른 마이어였다.
“여기에 이데아로크의 조각이라고 하는 게 있을 거다. 당장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도 모두 저런 꼴로 만들어 버릴 테다.”
“우…….”
슈페른의 박력에 그와 마주하고 있던 흑마법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슈페른이 사원 안에 들어와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내놓으라고 난동을 피운 지 30분. 그동안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흑마법사들이 슈페른의 손에 의해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만두십시오, 슈페른님. 같은 동지를 이렇게 무참히 살해하시다니. 하네스 대법관께서 묵과하지 않으실 겁니다.”
“대법관? 잘됐군. 그 망할 늙은이도 데려와. 그 영감 놈에게도 몇 가지 빚진 게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주춤하는 흑마법사들을 보며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불러오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찾으러 가지.”
“쏴, 쏴라!”
콰아아아!
당황한 흑마법사들은 즉시 지팡이를 들어 불길을 뿜었다. 영혼마저도 재로 만드는 지옥의 불길!
그러나 슈페른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전혀 학습이 안 되는 녀석들이군.”
사아아…….
펼친 그의 손아귀에서 싸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극도의 냉기를 발산해 단숨에 상대의 모든 것을 얼음조각으로 만드는 비기, 극렬한빙장(極烈寒氷掌)!
쩌엉!
날아드는 불길들은 슈페른이 뻗는 장과 부딪힘과 동시에 얼음조각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제길!”
자신들의 마법이 무력하게 소멸하는 것을 본 흑마법사들은 허겁지겁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분명 저기에 있던 슈페른이 보이질 않았다.
허둥거리는 그들의 귓가에 슈페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이었다.
“여기야.”
“헉!”
쿡.
많은 동작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가락으로 인중을 꿰뚫었을 뿐. 머리에 구멍이 뚫린 흑마법사들의 시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쓰러진 그들의 시체를 보며 슈페른은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
“흥! 별것도 아닌 것들이.”
“슈페른 마이어!”
슈페른은 고개를 돌렸다. 시체들이 쌓인 통로 너머에서 급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서 하네스의 얼굴을 찾은 슈페른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영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별거 아니야. 그냥 찾고 있는 물건이 여기에 있는데 내어주질 않더라고. 잡놈들이 상관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아서 손 좀 봐줬지.”
“찾고 있는 물건?”
슈페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을 텐데? 이데아로크의 조각. 여기에 다섯 개 중 두 개가 있다고 들었다. 그걸 받아가야겠어.”
“그 조각으로 뭘 하려는 거냐?”
하네스의 물음에 슈페른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아.”
으득.
슈페른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의 기억이 다시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네놈이 이 일을 맡기기 전에 나는 단 한 번의 실패도 허용치 않는, 100% 완벽을 추구하는 스페셜 청부업자였다. 그런데 그 이터라는 놈 때문에 내 자존심은 걸레가 되어버렸어!”
압도적인 실력 차이. 언제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비참하게 깨져본 적이 있었던가. 거기다 엘프 마을에서 다크 엘프들에게 곤욕을 치르면서 그는 완전히 바보 취급을 당했다. 산산이 박살난 그의 자존심은 이제 무엇을 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내 굴욕을 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바로 내 손으로 이터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 지금을 뛰어넘는, 괴물 꼬마를 박살내 버릴 수 있는 힘이 말이야.”
하네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데아로크의……?”
“그래. 엘프 마을의 보물은 다른 것이었지만 알 제라드의 본당인 이 사원에 있는 것은 진짜. 그것을 내가 갖는다. 그리고 힘을 얻을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그 두 조각을 내어주실까, 영감?”
“네놈.”
“시시하군.”
하네스의 앞으로 누군가 걸어나왔다. 바르엘이었다.
“상황 파악 완료. 그러니까 승부에 진 개새끼가 애먼 데 와서 낑낑거리고 있는 거지?”
“뭐야?”
슈페른이 인상을 확 구겼다.
“감히 이 몸에게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이로구나.”
바르엘은 그런 슈페른의 시선을 무시하며 하네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내가 없애버려도 상관없나?”
“어차피 조직에 등을 돌린 녀석이다.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올 리도 없겠지.”
돌려 말한 승낙. 바르엘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슈페른을 바라보았다.
“들었나? 널 죽여버려도 된다는군.”
“큭. 미친놈이 주둥이만 살았군.”
‘감히 이 슈페른을 뭘로 보고.’
슈페른이 싸늘한 살기를 피워올리며 바르엘을 노려보았다.
“좋아. 영감이랑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네놈부터 찢어죽여 주마.”
바르엘은 조소했다.
“할 수 있다면.”
팔짱을 낀 채로 허공에 뜬 루시펠은 못 미덥다는 얼굴이었다.
“괜찮겠어? 저 녀석, 지금까지 계속 갇혀 있었잖아. 저런 몸으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지켜만 보고 있어.”
하네스의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가 걸렸다.
“곧 재미있는 것을 보게 될 테니.”
“……?”
자세를 잡고 마주한 채 상대를 관찰하던 슈페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자식, 허풍이 아니다.’
건들거리며 서 있는 바르엘은 겉보기엔 허점투성이였다. 하지만 막상 치고 들어가려니 아무런 틈이 보이질 않았다. 슈페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바르엘이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기다리기 지루해. 빨리빨리 덤벼.”
“건방진…….”
깊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저력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길게 끌 필요 없이 단번에.’
슈페른의 주위로 새하얀 기가 몰아쳤다. 그와 함께 슈페른은 무서운 속도로 바닥을 박차고 나아갔다.
“무극(無極)!”
순간적으로 시전자의 속도와 힘을 몇 배나 상승시켜 주는 상승의 비술, 무극권. 한줄기 바람이 된 슈페른이 바르엘의 정면을 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적이 바로 코앞을 치고 들어오는데도 바르엘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무극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것인가?
‘됐다.’
“하앗!”
슈페른이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터져나가는 바닥과 함께 슈페른의 허리가 돌아가며 강한 기운의 주먹이 뻗어나갔다. 전력을 다해 내지른 발경. 그것이 바르엘의 가슴에 작렬했다. 그리고…….
“크아악!”
부러졌다.
주먹이 부서지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슈페른은 물러났다. 바르엘의 가슴과 부딪힌 그의 손은 걸레처럼 으깨져 있었다.
슈페른은 기가 막혔다. 바르엘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공격을 한 자신의 주먹이 부러지다니. 바위나 철갑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단함이다.
경악하는 슈페른의 눈을 보며 바르엘은 피식 웃었다.
“장난하냐? 지금 그게 주먹이라고?”
바르엘은 슬쩍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진짜 주먹이란 이런 거지.”
주먹을 쥔 바르엘의 신형이 슈페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슈페른이 그를 찾았을 때는 바르엘의 주먹이 그의 가슴에 정통으로 작렬한 뒤였다.
퍼억!
“크아악!”
콰르릉!
튕겨나간 슈페른과 부딪힌 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루시펠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엄청난 육체 강도. 뛰어난 몸놀림. 파괴력을 지닌 주먹까지. 확실히 수준급이네.”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의 범주 안이야. 저런 걸로 마장기까지 쓰러뜨릴 수 있을까?”
“글쎄.”
하네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크으.”
슈페른이 신음을 내뱉었다. 박살난 잔해들 사이에 처박힌 그는 먼지와 상처로 엉망진창이었다.
일어나는 그를 보며 바르엘이 피식 웃었다.
“아직도 숨이 붙어 있다니. 생각보단 꽤 끈질긴 녀석이군.”
바르엘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시 그의 신형이 슈페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큭!”
콰아앙!
주먹에 부딪힌 기둥이 박살난다.
날아드는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슈페른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떠오르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허공에서 나타난 바르엘이 깍지 낀 손으로 슈페른을 내리쳤다.
퍼억!
공격에 얻어맞은 슈페른은 바닥에 처박혔다.
바르엘은 비웃음을 흘렸다.
“너무 허약하군. 큰소리치던 실력은 다 어디 갔나?”
“비, 빌어먹을!”
슈페른은 이를 악물며 냉기를 모았다. 남아 있는 마지막 힘으로 끌어모은 극한의 냉기. 극렬한빙장이다!
“어디, 이것도 받아볼 수 있다면 받아보거라. 얼음조각으로 만들어줄 테니!”
슈페른은 비명과도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바르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르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닫아놓은 힘을 개방했다.
빙(氷)과 반대되는 염(炎).
바르엘의 몸 안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열기는 극렬한빙장의 냉기를 단숨에 꺾어버리며 주위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