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42
842화. 전진
선잠을 자던 장목화는 괴수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피범벅이 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머리를 덥석 무는 꿈을 꾸었다.
이로 인한 극심한 두통에 장목화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정신을 뻗어 성건우의 의식에 접촉했다.
새로운 것도 없는 어둠과 미약한 빛이 눈앞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달리고 있는 성건우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에 장목화의 의식 역시 그를 따라 뛰어야만 했다.
다음 순간, 성건우가 외쳤다.
“징조가 나타났어요! 혼란이 시작됐어요!”
줄곧 이 순간을 기다리던 장목화가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난 현실 신세계에 들어가 그 소용돌이 같은 건물에 접근해볼게.”
“하지만 우린 아직 어느 쪽을 도울지 못 정했어요. 플로라와 버나드를 비롯한 이들이 신세계를 떠나도록 도와야 할지, 아니면 이곳의 질서를 유지하며 혼란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성건우가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말했다.
장목화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건 우리가 아직 신세계 본질을,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해서야.”
그래서 신세계의 질서를 타파하면 현실은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었다.
“맞아요, 맞아.”
성건우가 깊이 공감했다.
일찍이 이 방면의 문제를 고려했던 장목화는 잠시 고민 끝에 말했다.
“이건 사실 하나의 기회이기도 해. 정상적인 상황에서 신세계에는 나름의 질서가 존재해. 그곳에 갇힌 이들은 어떻게 승급해야 할지도 모르고 달지기들이 뭘 원하는지도 몰라. 그래서 네 조사는 계속 제자리만 맴돌았던 거야.
하지만 혼란이 시작되면 질서는 붕괴하게 돼 있어. 질서 아래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것들이 드러나겠지. 너는 이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환원해야 해. 그러고 나서 다시 선택해도 늦지 않을 거야.”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왜 여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좋아, 정신력 낭비하지 말고 무슨 변화가 생기면 다시 알려줘.”
장목화는 즉시 교류를 마쳤다.
“알겠어요!”
성건우가 손을 흔들었다.
* * *
연락을 마친 후 성건우는 혼란 자체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덜컹! 덜컹!
길가 건물들은 흔들리는 땅 위에서 그 묵직한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그 사이 유리창들도 언제든 깨져버릴 듯 덜거덕거렸다.
지면에도 가늘지만 또렷한 균열이 일었다. 그 균열들은 유천과 플로라를 비롯한 이들이 밝힌 가로등 불빛 아래 또렷하게 드러났다.
주위의 어둠 속, 다른 신세계 강자를 대표하는 등불들이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탑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제자리에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보려는 듯 느릿하게 탑 쪽으로 이동하는 불빛들도 있었다.
탁! 탁! 탁!
성건우는 점점 더 빠르게 진문 등을 추월해 대열 중간쯤에 이르렀다.
이 위치에서는 전방 상황을 관찰하기도 편했고, 질서가 붕괴하는 가운데 특정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자리한 이곳에서 탑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 * *
지진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와중, 이들은 평소에는 거의 발을 들이지 않는 구역에 진입했다.
그렇게 어느 경계선을 통과한 순간, 유천 등을 비롯한 이들의 눈빛이 동시에 굳어졌다.
이곳에서 보니 탑 내부 조명만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위 건물들도 마치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에 일행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유약한 유천이 내뱉듯 중얼거렸다.
“신세계 각성자가 이렇게나 많다니⋯⋯.”
이곳에 자리한 불빛들은 핵심 구역 밖에 존재하는 신세계 강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평소 외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아마도 탑에 의해 가려져 있었던 것 같았다.
콰르릉!
옆쪽에 있던 한 건물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한 줄기 깊고 거친 균열은 유천을 비롯한 이들의 전방을 가로질렀다.
휙!
거친 폭풍이 불어닥치며 모두가 휘청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균열 반대편의 한 아파트 같은 건물 안에서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미끄러지듯 나왔다.
레드리버인인 그는 흰 셔츠에 남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하반신에는 갈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이는데,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분위기가 상당히 우아해 보였다.
남자는 성건우 일행으로부터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
그리고 옅은 파란색 눈동자로 맞은편을 한번 훑어본 뒤 목청을 높였다.
“여기는 뭘 하러 왔나?”
버나드가 덜덜 떨며 답했다.
“부원장, 우리는 탑으로 들어가려고 하네. 자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야. 비키거나, 죽거나!”
“저자가 제8 연구원의 부원장?”
성건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원장은 두 손을 휠체어에 얹고, 비웃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기는! 너희들은 애쉬랜드에 재난만 야기할 뿐이야!”
“왜지?”
성건우가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며 물었다.
휠체어에 앉은 부원장은 그를 힐긋 보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 몰려온 걸 보면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군. 애쉬랜드에 재난을 야기하든 어쩌든 신세계를 떠나 자유를 되찾아야겠다는 거야?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설명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플로라는 입술을 몇 번 떨면서도 반박하지는 못했다.
버나드를 비롯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은 적막해졌다.
그들은 분명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곳에 와 있었다. 아무리 많은 이유도, 아무리 많은 감정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이들의 걸음을 저지하진 못했다.
오랜 수감 생활에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애쉬랜드에 어떤 재난이 일어날지는 일단 이곳을 떠난 후에 살피고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소용 있어! 적어도 나는 설득할 수 있다고!”
성건우가 다급하게 입장을 표했다.
거센 돌풍과 심한 지진 속에, 부원장이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알아?”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부원장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너와 네 동료들은 구세계 파괴의 진정한 원인을 알아내기 직전에 이르러 있지. 그리고 그건 우리가 사력을 다해 지키려고 하는 거야. 그게 퍼져나가면 애쉬랜드는 영원한 혼란과 끝없는 재난 속에 빠지게 될 테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때맞춰 너와 네 동료들을 제거하지 못했다.”
“꼭 당신들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말하네.”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이때 플로라를 업고 있던 유천이 재촉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최대한 빨리 이곳을 통과해야 해!”
동시에 그는 업고 있던 플로라를 또 다른 신세계 강자에게 넘겼다.
성건우는 재빨리 부원장에게 물었다.
“탑 근처에는 왜 이렇게 등불이 많은 거야? 이렇게 많은 신세계 강자들이 다 어디서 온 건데?”
부원장은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이더니 매우 이상하게 답했다.
“저들은 다 장생의 일부⋯⋯.”
성건우가 매우 흥분했다.
“오! 내 말을 들어봐⋯⋯.”
“말할 필요 없다.”
부원장은 휠체어에 얹은 두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사유 이식은 거리를 뛰어넘어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효과를 발휘하지. 그래서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듣고 싶지 않아.”
현재 그와 성건우 일행 사이의 거리는 약 20미터였다. 그리고 평범한 신세계 강자의 감지 범위는 이곳에서 10미터로 제한되어 있었다. 거리 증대를 선택한 일부의 감지 범위만 15미터에 달했다.
때문에 이 정도 거리에서 일반적인 능력으로는 감지 범위 밖에 있는 부원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한편 사유 이식과 같은 능력은 힘을 목소리에 녹여 그 소리로 목표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신세계는 목소리에 대해선 아무 제한도 하지 않았다.
물론 20미터 정도 떨어진 만큼, 조금 전 이들도 거의 고함치듯 대화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전에 질문할 때 바로 능력을 부가했었어야 하는 건데. 네 레벨이 높을 거라는 생각에 ‘봐봐’나 ‘내 말을 들어봐’ 등을 붙여야만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성건우는 상당히 실망한 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 부원장은 이미 그의 귀를 꽉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다 유천을 비롯한 이들이 계속해서 이동하려는 듯 꿈틀거리자 부원장은 의아하다는 듯 성건우에게 물었다.
“아까 무슨 용기로 나한테 말을 건 거냐? 내가 너한테 사유 이식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안 되든?”
성건우의 답을 들으려고 그는 귀를 틀어막은 손가락을 살짝 떼었다.
성건우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대가는 하반신 마비잖아? 그건 장생 영역의 대가가 아니고.”
도구는 신세계 강자에겐 딱히 효과가 없었다. 설령 신세계 강자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건 그가 분리해낸 힘 일부였고, 그 역시 신세계의 제한으로 인해 감퇴하고 말았다.
부원장이 피식 웃었다.
“내가 원래부터 하반신 마비 환자고, 다른 대가를 선택했을 가능성은?”
“그건 생각 못 했네!”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부원장은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성건우가 유천을 비롯한 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들은 전부 당신을 알아. 당신 능력이 뭔지도 알겠지. 이분들이 당신과 기꺼이 대화하려는 걸 보면 사유 이식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야.”
이것이 바로 그가 감히 부원장과 대화하려 했던 진정한 이유였다.
이윽고 몸의 왼편을 덜덜 떨고 있던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원장은 작열하는 문 영역이야. 춤과 경련 등의 능력을 장악하고 있지.”
“조용!”
유천이 말을 끊었다.
이쯤 되니 그도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긴장되고 절박한 작전이 왜 갑자기 다과회가 됐지? 느낌이 안 살잖아!’
분위기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 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유천이 목청을 높였다.
“부원장은 지금 혼자뿐이야. 그러니 몇 명이 나서 저자를 포위 공격하고 나머지는 그사이에 우회해서 안으로 진입하지. 시간이 곧 생명이야!”
유천의 말을 듣고도 부원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휠체어 바퀴를 뒤로 몇 미터 굴리며 깊고 거친 균열과의 거리를 더 벌릴 뿐이었다.
성건우도 막 부원장과 직접 부딪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캐낼 작정으로 포위 공격에 자원하려던 그때였다.
어느새 버나드를 비롯한 이들 곁으로 와 있던 미몽교단의 진문이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정면을 맡아 그의 능력을 유도하도록 하지. 자네들은 측면으로 돌아 협공을 시도해봐.”
진문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전부 경험이 풍부한 신세계 강자였다. 이 방안의 관건은 참여자가 동시에 부원장의 능력 범위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맞춰 차례대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후발대가 그 범위에 진입했을 때 부원장은 일단 사용하고 있던 능력을 중단하고 다시 주위에 자리한 모든 인간 의식을 조준해야만 상응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틈이 곧 진문의 기회가 될 터였다.
“좋아.”
유천이 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