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8
178
#일본 방송의 취재 (3)
생방송이 시작됐다.
부조정실에서 한재성 피디가 큐 사인을 주자, 뒤쪽 벽면에 달려 있는 ‘영혼을 찾아서 ’이라고 적힌 패널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에 녹화 불이 들어왔다.
카메라가 줌아웃으로 뒤로 빠지더니 한석후 아나운서가 화면에 등장했다.
조연출이 사인을 주자 한석후가 멘트를 시작했다.
“영혼을 찾아서를 기다려 주신 시청자 여러분, 그동안 녹화방송으로 진행되던 저희 영혼탐정이 오늘은 예고해 드린 것처럼 특별 생방송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석후입니다.”
이어서 화면이 커트된 후 여느 때처럼 프로그램 타이틀 음악과 화면이 브릿지 영상으로 나갔다. 그사이 한석후 아나운서가 빈 소파를 향해 인사를 했다.
“선배님, 예전에 한 번 뵙고 인사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오늘 이렇게 선배님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도 영광입니다.”
다른 진행자라면 무척 어색했을 상황인데, 한석후 아나운서는 그동안 흉가를 찾아서 방송을 진행하면서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져서 꽤 자연스럽게 얘기를 했다.
최성식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네. 우리가 만난 게 자네가 한밤의 토크쇼 사회 볼 때였지, 아마?]태수가 최성식의 얘기를 앞에 놓인 키보드로 쳐서 화면에 자막으로 나타나자 한석후는 물론이고 취재진도 다들 놀라워하며 웅성거렸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태수의 말을 통해서만 최성식의 존재를 느끼다가, 한석후에게 대답하는 걸 보고는 비로소 최성식의 영혼이 빈 소파에 정말로 앉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겐토 피디가 무슨 일인지 나나미 작가에게 물었고 나나미가 통역으로 겐토에게 상황을 알려 줬다. 겐토는 물론 나나미도 태수와 최성식의 자연스러운 대화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정말 어떠한 제한도 없이 사람을 대하듯 영혼과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일본은 물론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브릿지 영상이 끝나고 다시 카메라에 녹화 불이 들어오자 한석후가 활짝 웃는 얼굴로 멘트를 시작했다.
“그럼 오늘도 변함없이 저와 함께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진행자와 게스트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이 없으면 저희 프로그램도 없겠죠? 이젠 굳이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오늘은 일본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오셨기 때문에 제가 제대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배우이자 영혼을 보는 남자, 장태수 씨 나오셨습니다.”
태수가 앉은 자세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장태수입니다.”
태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나미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방송으로 들은 것보다 현장에서 들으니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가 훨씬 듣기 좋았던 것이다.
한석후가 태수 앞에 놓인 키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장태수 씨는 최성식 배우님의 행동과 말을 여기 놓인 키보드를 이용해서 저희들한테 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전소민 기자 나오셨습니다.”
전소민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한석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 스튜디오에 아주 특별한 분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우리들의 곁을 떠난 이 시대 최고의 배우…….”
한석후가 감정이 벅찬지 잠시 호흡을 끊었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최성식 배우님의 영혼이 지금 여기 제 옆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배우님.”
한석후가 인사를 했고 최성식도 생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마주 인사를 했다.
태수가 그런 최성식의 모습을 키보드로 쳤고 그 내용이 화면 하단으로 지나갔다.
[방금 최성식 선배님이 여러분에게 인사를 했습니다.]단톡방 채팅 창에 글들이 쏟아졌다.
[나 방금 소름 돋았음. 정말 저 소파에 최성식 배우님 영혼이 있는 거임?] [최성식 배우님 어떻게 얼굴 한 번만 볼 수 없나?] [영혼도 의자에 사람처럼 앉아 있을 수가 있나?] [이 방송 진짜 대박이다.] [오늘 이 방송 처음 보는 사람인데 장태수라는 사람이 정말로 영혼을 볼 수 있는 건가요?] [그건 내가 보증함. 거짓말이면 내 손에 장을 지짐.]한석후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저희 프로그램을 보신 분들은 당연히 알고 계실 겁니다. 비록 저희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최성식 배우님을 볼 수가 없지만 장태수 씨는 배우님을 바라보면서 계속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 내내 최성식 배우님의 이야기는 장태수 씨가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석후가 태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자, 그럼 장태수 씨가 오늘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방송이 가능하게 됐는지 시청자분들에게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사실 오늘의 방송도 최성식 배우님의 영혼과 장태수 씨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방송이거든요.”
태수가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편안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방송은 최성식 배우님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어떤 여성분을 찾기 위해서 기획이 됐습니다. 그 여성분의 이름은 미경이라는 분이고 성은 그분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서 밝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미경 님은 최성식 배우님이 무명 시절 힘들게 배우의 생활을 이어 가고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합니다. 만약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최성식 선배님도 없었을 거라고 하시네요. 안타깝게도 그분은 아직까지 저희 제작진에게 연락을 해 오지 않으셨습니다. 저희는 이 방송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분의 연락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석후가 말을 받았다.
“자, 그럼 오늘은 최성식 배우님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추모의 방송으로 저희가 꾸미려고 합니다. 최성식 배우님의 영혼이 있는 자리에서 추모의 방송이라고 하니까 무척 어색하긴 한데요. 먼저 시청자분들이 배우님에게 보낸 사연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석후가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을 읽었고 그동안 최성식은 마치 실제 토크쇼에 나와 있는 것처럼, 또한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처럼 반듯한 자세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들었다.
태수는 키보드를 두들겨서 그런 최성식의 모습을 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단순 자막이 아니라서 묘사와 문장력이 없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연을 다 읽은 한석후가 말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최성식 배우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한 것에 대해 최성식 배우님이 답변을 갖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참고로 질문 중에서 배우님에 대한 질문이 아닌 영혼과 사후 세계에 대한 질문은 저희 제작진이 미리 걸러냈다는 말씀을 드리며 양해를 구합니다.”
한석후가 시청자들의 질문을 한 가지씩 던졌고 최성식은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을 했다.
태수는 마치 동시통역가라도 된 것처럼 최성식의 답변을 키보드를 두들겨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내보냈다.
처음엔 낯설고 놀라워하던 시청자들도 자막으로 보이지 않는 최성식의 영혼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최성식의 영혼이라는 존재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 제작진으로부터 한석후에게 메모가 전해졌다.
메모를 본 한석후의 표정이 변했다.
“잠시 여기서 질의응답 시간을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제작진한테서 메모가 도착했는데, 최성식 배우님이 찾고 있는 미경 씨 가족이라는 분한테서 전화가 와서 지금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취재진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고 최성식도 표정이 변했다.
태수는 이전까지 여유롭던 최성식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봤고 그런 변화를 자막으로 쳐서 띄웠다.
한석후가 말했다.
“그럼 제가 전화를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스튜디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여보세요?”
잠시 뜸을 들인 후 한 여자의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미경 씨의 조카 되는 한희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희정 씨. 먼저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미경 씨의 조카분이라고 하셨는데 왜 한미경 씨가 아니고 조카분이 전화를 주셨나요? 한미경 씨는 지금 저희가 통화를 할 수가 없나요?”
-네. 안타깝게도 저희 이모는 통화를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석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통화를 못 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저희 이모가 이 세상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순간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들이 탄식을 쏟아 냈고, 희망을 품고 대화 내용을 듣고 있던 최성식은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 그렇군요. 사실 최성식 배우님이 말씀하시길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걸 보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러자 전화기에서 놀라운 얘기가 들려왔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저희 이모님이 돌아가신 건 바로 오늘입니다.
최성식이 눈을 번쩍 떴고, 태수도 깜짝 놀라서 권 피디를 돌아보고 자신이 직접 대화를 나누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권 피디가 그렇게 하라고 사인을 줬다.
태수가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한석후는 진행자에 불과해서 제대로 대화를 이끌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장태수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돌아가셨다니 조금만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사실은 저희 이모님은 한 달 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투병 중이셨습니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 최성식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셨어요. 젊으실 때 잘 알던 사이였다고.
그때 최성식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태수가 재차 물었다.
“근데 왜 진작 연락을 하지 않으셨나요?”
-혹시라도 최성식 선생님한테 부담이 될까 봐 연락을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최성식 선생님 사고 소식을 들으신 후에 이모님도 상태가 악화되셨어요. 사실상 의식이 없어지셔서 지금까지 연명 치료만 해 오고 있었죠. 그러다가 며칠 전 방송을 보게 된 겁니다, 최성식 선생님의 영혼이 저희 이모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방송을요.
“아…….”
태수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쏟아 냈다. 과연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한미경의 조카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그래서 저희가 어젯밤에 가족 회의를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영혼을 찾아서라는 방송을 보면 이모도 돌아가시면 육신에서 영혼이 분리되겠구나. 이모는 젊을 때 사고를 당해서 평생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사셨어요. 근데 영혼이 되면 생전에 못 가 본 곳도 자유롭게 가실 수가 있겠구나.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계속 하는 것보다 우리가 놓아드리면 혹시 이모의 영혼이 최성식 선생님을 뵈러 방송국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희는 가족 회의 끝에 조금 전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이모의 산소 호흡기를 뗐습니다.
순간 스튜디오에 탄성이 이어졌고 최성식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태수에게만 들려왔다. 태수는 그 부분은 굳이 자막으로 상황을 내보내지 않았다.
한석후도 감정이 벅찬지 잠시 숨을 돌린 후에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가족분들의 소망처럼 혹시라도 한미경 씨의 영혼이 저희 스튜디오를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끝까지 저희 방송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 이모의 영혼이 꼭 그곳으로 가서 최성식 선생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최성식 선생님을 한 번 뵙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한미경의 조카가 전화를 끊었고, 한석후가 태수를 돌아보고 물었다.
“아…… 지금 최성식 배우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최성식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태수가 이번에는 키보드를 두들기지 않고 숙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감정이 많이 격해지신 것 같습니다. 울고 계세요.”
숙연한 가운데 다시 술렁이는 스튜디오.
한석후가 물었다.
“그럼 한미경이라는 분의 영혼이 저희 스튜디오로 찾아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영혼이라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쉽게 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또한 최성식과 달리 마음의 한이 없다면 곧바로 하늘로 승천했을 수도 있고.
만약 한미경의 영혼이 이곳에 나타났다면 최성식이 제일 먼저 알아봤을 것이다. 같은 영혼끼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최성식도 혹시 한미경의 영혼이 오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이름을 불렀다.
[미경아…… 미경아, 여기 와 있니? 미경아!]최성식의 간절한 외침에도 한미경의 영혼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성식의 영혼은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지켜보는 태수가 안타까울 정도로 서럽게 흐느꼈다.
시청자들이 지금 최성식이 뭐 하고 있냐고 질문을 쏟아 냈고 태수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채팅 창에 최성식을 위로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한미경 씨의 영혼이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꼭 방송국에 와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끝없이 이어졌다.
태수가 혹시 몰라서 주문을 읊었다.
‘귀기탐색.’
화르르르륵.
공기가 흔들리며 허공에 지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지도에 붉은 점 두 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태수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붉은 점이 두 개라는 건 최성식 외에 이 스튜디오에 또 한 명의 영혼이 있다는 소리였다.
최성식은 물론이고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태수의 행동을 지켜봤다. 지도상으로 붉은 점이 표시된 곳은 취재진의 뒤쪽이었다.
다시 주문을 읊었다.
‘안명부.’
허공에 노란 부적이 떠올랐고 태수가 즉시 부적을 집어서 그 기운을 눈가에 문질렀다. 시야가 푸르게 변하며 취재진 사이에 섞여 있는 흐릿한 영혼의 모습이 보였다.
영혼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가 바로 최성식이 찾고 있는 한미경이란 확신이 들었다.
숨어서 최성식을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눈물이 공기에 닿는 순간 산화하며 아름답게 흩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태수가 한미경의 영혼을 향해 다가갔다.
취재진이 놀라서 길을 열어 줬고 한미경의 영혼이 다가오는 태수를 보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태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한미경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