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4
64
#재촬영 (2)
그린일보 문화부 기획 회의.
일명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린일보 황진욱 차장이 문화부 선임인 조인순 기자와 신입 기자 정소희를 향해 헤어드라이기를 뿜어내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야아아아! 내가 방금 국장한테 올라가서 얼마나 개박살 나고 내려왔는지 니들이 상상할 시간을 주겠어. 그다음엔 내가 니들한테 어떻게 할지도 상상할 시간을 줄게. 어떻게 된 놈의 신문이 내보낼 기사가 없어, 기사가!”
조인순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차장님, 우리가 노는 건 아니잖아요? 죽어라 뛰어다녀도 신문이 인지도가 없어서 인터뷰를 안 해 주는데, 어떡하라고요?”
“너 지금 내 성격 테스트하냐? 눈 그렇게 뜨지 마, 인상도 쓰지 말라고. 야! 너 아무것도 하지 마. 숨도 쉬지 말란 말야!”
조인순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아예 의자를 돌려서 앉았다.
이번엔 정소희 차례.
소희는 입사한 지 갓 1년도 지나지 않은 신입 기자다.
“야, 정소희.”
소희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질끈 깨물고 대답했다.
“네, 차장님.”
“얼굴 들고 대답해!”
소희가 얼굴을 들자 황 차장이 말했다.
“너 이명호 감독하고 중학교 동창이라며?”
“후우, 네.”
“지금 이명호 감독 오래된 기억 찍는 거 알어, 몰라?”
“압니다.”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찾아가야 될 거 아냐? 찾아가서 밥을 같이 먹든, 미인계를 쓰든…….”
조인순이 의자를 확 돌리더니 황 차장을 째려봤다. 황 차장이 찔끔하며 변명을 했다.
“아, 알았어. 그 말은 취소. 째려보지 마, 취소라고 했잖아. 콱, 그냥! 아무튼 정소희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동운 인터뷰 따와. 강동운 안 되면 이명호 감독 인터뷰라도 따 오라고. 그리고 손예지 이번에 공포 영화 출연하기로 한 거 알지? 손예지 인터뷰도 무조건 따 와야 돼. 알았어?”
조인순이 발끈해서 말했다.
“아니, 무슨 인터뷰 약속 잡아 준 것처럼 인터뷰 따 오라고 말만 하면 저절로 인터뷰가 되는 줄 알아요? 강동운이고 손예지고 가면 그린일보는 들어 본 적도 없다면서 매니저들이 문전박대한다고요. 그럴 거면 차장님이 직접 시범을 보여 주시든가.”
“와, 이것들이 진짜. 야, 내가 니들 때는 민성기 인터뷰하려고 집 앞에서 이틀 동안 밤을 새운 사람이야. 어디 이것들이 그런 패기도 없이 기자질을 하려고 그래? 그리고 정소희 너는 이명호 감독하고 친하다며?”
“친한 건 아니고 그냥…….”
“됐어, 알면 친한 거야. 거기 가면 강동운도 있고 또 얘기하다 보면 한 다리 건너서 손예지도 연결이 되게 돼 있어. 원래 감독하고 배우들은 다 그렇게 알고 지낸다고. 가서 말만 잘해도 떡이 떨어질 텐데 왜 사무실에서 비비적대고 난리냔 말야. 그렇잖아도 사무실 비좁아서 답답해 죽겠는데, 좀 나가, 나가서 뛰어다니라고!”
참다못한 소희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황 차장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 왜, 왜 그러냐? 잘하면 사람 한 대 치겠다?”
“인터뷰 방향은…… 하고 대비시키는 걸로 가면 되죠?”
그제야 홍 차장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렇지. 일단 두 영화가 올여름에 맞붙을 가능성이 높고, 모텔 파라다이스는 KU엔터에서 까였으니까 둘이 맞붙으면 재밌을 거 아냐? 물론 두 영화가 제작비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모텔 파라다이스에 손예지가 붙으면서 관전 포인트가 생겼잖아.”
소희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취재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갔다.
***
영화 촬영 현장.
소희는 멀리서 명호가 강동운을 비롯한 스타 배우들을 조율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소희는 중학교 때부터 명호에 대한 감정이 호의적이진 않았다. 명호는 항상 말이 앞섰고 허영과 허세가 많았다.
소희는 오히려 명호와 정반대의 성격인 태수한테 더 호감이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둘은 단짝 친구처럼 붙어 다녔지만 현재 둘의 위치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격차가 났다.
중학교 때 명호는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태수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당시엔 둘 다 소설을 주로 썼는데 글을 보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명호는 늘 모호한 감정을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걸 좋아했고 태수는 스토리 라인이 뚜렷하고 강렬한 이야기를 선호했다.
둘의 기본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태수가 더 성공할 것 같았는데, 태수는 집안 환경이 좋지가 않아 꿈을 펼치지 못했다.
반면 명호는 외삼촌이 한강대학교 학과장인 한정호 교수였고 아버지는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로, 그야말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
지난번 동창 모임에서 만난 태수는 안타까울 정도로 많이 위축된 모습이었다. 반면 명호는 볼 때마다 승승장구하는 중이었고.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내가 볼 때는 쟤 영화 진짜 별거 없는데 왜 계속 기회를 잡는 거지? 언젠가는 분명히 한계가 올 텐데.’
생각에 빠져 있던 소희는 명호의 목소리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소희야, 언제 왔어?”
“어, 명호야.”
“야, 왔으면 왔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랬으면 내가 더 일찍 끝내는 건데.”
“무슨 소리야. 저런 명품 배우들 데려다 놓고 나 때문에 촬영 중단하면 안 되지.”
“야, 여기선 감독이 왕이야. 강동운이건 조승수건 다 필요 없어. 그나저나 오늘 누구 인터뷰 시켜 줄까, 말만 해.”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명호는 변한 게 없었다. 늘 허영과 허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중간에 막 인터뷰해도 괜찮아?”
“내가 다른 매체는 전부 출입 금지시켰는데 너한텐 예외지, 하하.”
명호의 이런 과한 친절이 소희에겐 오히려 부담이었다.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강동운 가능해?”
“강동운? 아, 어떡하냐? 강동운은 오늘 촬영 없는데? 조승수나 전지혜는 어때? 아니면 나는? 내 인터뷰는 필요 없어?”
황 차장이 명호의 인터뷰라도 따 오라고 했지만 명호는 추후 전화나 서면 인터뷰로 대체할 작정이었다. 보나 마나 인터뷰 핑계로 치근덕댈 게 뻔하니까.
“너 혹시 손예지하고도 인맥 있어?”
“손예지? 손예지 알지. 사실 이번에 손예지 캐스팅하려고 몇 번 만났거든. 왜, 손예지 인터뷰 필요해? 내가 연결해 줄까?”
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주면 고마울 것 같아.”
명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둘이 술 한잔하는 거다?”
***
프리 프로덕션이 거의 막바지로 가면서 크랭크인 날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태수는 박흥식 감독 옆에 거의 붙어서 살다시피 했다.
박흥식 감독은 거의 모든 시간을 콘티 작업에 매달렸다. 시나리오가 수정되면서 콘티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씬들이 많이 생겨났던 것이다.
콘티는 글로 된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미리 그림으로 그려 보는 과정이다.
따라서 콘티를 보면 나중에 완성될 영화의 그림이 한눈에 보인다. 연출 공부를 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박흥식은 콘티 작가와 콘티 작업을 할 때 항상 태수를 불러서 함께 작업했다.
콘티 작업을 할 때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할 경우도 생기고 태수의 의견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독단적으로 작업을 하는 반면 박흥식은 늘 주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중견의 베테랑 감독이라면 모르지만 데뷔하는 신인 감독에겐 장점이었다. 물론 본인의 연출관이 확고한 경우를 전제로 하는 말이지만.
박흥식이 콘티 작업에 태수를 참여시키는 건 태수의 능력을 남다르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콘티 작가인 정인혜는 감독이 앵글과 구도를 말하면 태블릿을 이용해 거의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려서 화면에 띄워 주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 줬다.
“장 작가, 여기 10씬에서 민수가 원혼과 처음 만나는 장면 말이야.”
“네, 감독님.”
10씬은 쉼터에서 가족들이 식사 기도를 하는 도중에 민수가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그 원혼을 보는 장면이다.
민수는 컴컴한 지하실의 전등 스위치를 올리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자 옆에 있던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며 배전함을 찾는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원혼이 나타난다.
원혼은 태수가 퇴마를 했던 모텔 파라다이스에서 사람들을 현혹시켜 죽음으로 몰아간 우물 속 사귀의 모습을 참고해서 글로 묘사를 했다.
언뜻 보면 노파의 모습인데 입에서 뱀처럼 긴 혀가 나와 날름거리고 움직일 땐 뱀처럼 기어 다니는 그런 형태로 묘사했다.
박흥식 감독은 물론이고 손예지나 투자사에서도 그런 원혼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특히 엔딩에서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모텔 복도의 벽을 타고 빠른 속도로 기어 오는 원혼의 모습은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연출만 된다면 한국 공포 영화의 명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박흥식이 물었다.
“이 지점에서 원혼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엔 타이밍이 너무 빠르지 않아?”
공포 영화에서 원혼은 마지막까지 최대한 정체를 숨겨야만 존재감과 공포를 유지할 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미지의 공포라는 감정이다.
태수는 정확한 컷의 연출을 알아보기 위해 환상 속 지하실 영상을 떠올렸다. 이미 몇 번 본 영상이지만 다시 봐도 무서운 장면이었다.
화르르르륵.
민수가 배전판을 찾기 위해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춘다. 지하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을 비출 때마다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이어진다.
거기에 심장을 조이는 배경음의 효과도 상당히 좋고.
이리저리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쾅! 하는 효과음과 함께 원혼이 나타나지만 놀란 민수의 손전등이 흔들리면서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태수의 설명을 들은 박흥식이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손전등이 흔들려서 원혼이 살짝만 보였다가 사라진다? 그럴 수 있겠네. 우리가 어두운데 들어가면 손전등을 한 군데만 계속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리저리 비추는데 뭔가가 휙 지나가는 느낌이라는 거지?”
정확하게 영상 속에서 봤던 그 느낌이었다.
“네,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잠깐 쉬었다가 할까?”
회의실을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우우우웅.
휴대폰을 보니 손예지였다.
“네, 누나.”
-뭐 하니?
“지금 감독님하고 콘티 짜고 있어요.”
-후후, 나도 궁금하네. 잘돼 가?
“네. 촬영 들어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도 이번 작품은 마음껏 즐기면서 찍고 싶어.
“그렇게 될 거예요.”
-참,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니? 내가 맛있는 거 사 줄 테니까 저녁 같이 먹자. 내가 단골로 가는 파스타집이 있거든.
손예지가 저녁을 사 준다는데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싶었다.
“전 무조건 오케이죠.”
-그럼 내가 톡 보낼게. 음…… 만날 시간은…… 화보 촬영 끝나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가 하나 생겼거든. 그거 짧게 끝내면…… 7시쯤 어떠니?
“좋아요, 누나. 7시요.”
***
신사동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 6시 42분.
소희가 손예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을 봤다.
명호가 연결을 해 줘서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약속 시간인 6시 40분에서 벌써 2분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손예지가 중요한 다른 약속이 있어서 7시까지만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했던 걸 감안하면 인터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약속을 잡아 달라고 명호한테 무리하게 부탁을 한 건 자신이니까.
소희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질문하기 위해 인터뷰 용지를 읽고 또 읽으며 정리를 했다.
그런 소희의 등 뒤에서 손예지 특유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많이 늦었죠? 미안해요.”
정말로 급하게 왔는지 손예지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하죠. 갑자기 이렇게 인터뷰 부탁을 드려서. 안녕하세요, 그린일보 문화부 정소희 기자라고 합니다.”
손예지가 받은 명함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린일보는 처음 들어 봐요.”
어디를 가든 제일 먼저 듣는 얘기다.
“아, 예. 저희 신문이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럼 바로 인터뷰로 들어가도 될까요?”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마음이 너무 급했고 다른 얘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보통 이런 심층 인터뷰는 최소 30분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해야만 한다.
소희는 우선 요즘의 근황에 대해 물었고 손예지가 답변을 했다.
근황만 얘기했는데 이미 시간은 6시 5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말이 점점 빨라졌다.
다음으로 어떻게 공포 영화에 출연할 결심을 했는지 물었다.
워낙 의외의 선택이라서 손예지 입장에서는 아마 똑같은 질문을 수 없이 받았을 테지만 인터뷰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같은 얘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
물론 영향력 있는 매체들은 충분한 시간과 평소의 친분을 이용해서 색다른 얘기를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손예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시나리오죠 뭐. 제가 요즘 계속 이미지를 소모하는 것 때문에 변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근데 그 시나리오가 딱 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굉장히 젊은 친군데…….”
손예지는 뒤풀이에서 태수를 만나 시나리오를 전달받고 집으로 돌아와 캔 맥주와 육포를 뜯으며 밤을 새워 가며 시나리오 읽은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줬다.
아직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이미 6시 59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소희가 급하게 다음 질문을 하려는데 손예지가 입구 쪽을 향해 손을 들며 말했다.
“죄송한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약속한 친구가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