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64
164
전성기
드래곤의 브레스는 뤼필의 권능에 막혀 사방으로 분산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탈출부터!”
현의 말에서 느껴지는 위급함에 뤼필은 권능을 사용해 공간을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권능은 실현되기도 전에 막혔다.
드래곤이 뿜어내는 막대한 마력에 권능이 휩쓸렸다. 평범한 드래곤이라면 불가능하겠으나 저 드래곤은 달랐다.
마법의 사도. 마법의 진리를 깨우친 드래곤이다. 그녀가 처음 봤을 때와 뿜어내는 마력의 양도 차이가 났다. 저 드래곤은 수명을 깎아가며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마력에 막혀서 안 돼요!”
뤼필이 식은땀을 흘렸다. 드래곤의 힘은 단순히 마력을 쥐어짠다고 낼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권능이 막혔다.
그녀의 눈이 붉은 책을 향했다. 드래곤에게 지지 않을 존재감을 가진 책에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모종의 권능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붉은 책과 비정상적인 힘을 보이며 폭주하는 드래곤. 둘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게 뭔지는 뤼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여기서도 도망가지는 않겠지?”
“저는 이성을 잃은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아요.”
폭주한 드래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사히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다. 뤼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브레스가 끝나고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드래곤이 그 거대한 몸체로 날갯짓하며 떠 있었다.
현은 드래곤 주변의 공간이 비틀리는 것을 보았다. 공간의 비틀림을 비집고, 4명의 드래곤이 나타났다.
붉은 책이 미친 듯이 빛을 뿜었고, 새로 나타난 드래곤들의 눈도 붉게 물들었다.
“로드한테 따져야겠어. 부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현이 어두워진 낯빛으로 양자폰을 들었다. 뤼필도 있겠다 일 키울 것 없이 여기서 정리하려 했는데, 드래곤 5명… 이성을 완전히 잃었으니 이미 명으로 칠 필요도 없이 드래곤 5마리.
폭주하는 드래곤 5마리는 조율의 성인이라도 힘들었다. 성인은 강하지만, 무적은 아니다. 때에 따라 개인에게 토벌되는 경우도 있다.
재앙이 진짜 무서운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인이 죽으면 또 다른 성인이 태어나고, 사도가 죽으면 또 다른 사도가 태어난다. 화신을 제외하면 죽여도 죽여도 재앙의 절대값은 줄지 않는다.
초월자 한 명이 탄생하는 데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필요하다. 재앙의 신도가 되고 성인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재앙의 영혼을 받아들이면 끝이다. 새로운 재앙의 신자가 탄생한다.
현이 참전한 두 번의 대전에서 사도와 성인은 소모품이었다. 죽어도 죽어도 부활하는 악몽과 같은 소모품. 성인과 사도의 역량에 따라 취급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소모품이라는 점에선 같았다.
성인들은 일반적인 초월자보다 강한 건 맞지만, 초월자 10명을 혼자 상대한다거나 하는 무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교환비가 성립했다면 성인과 사도들을 무한 돌격시키는 것만으로 근원 세계는 멸망했을 것이다.
수명까지 깎아가며 광분한 드래곤 5마리는 현과 뤼필이 힘을 합쳐도 벅찬… 죽을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현은 붉은 책을 낚아채 허리춤에 끼웠다.
뤼필의 권능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드래곤 다섯 마리의 입에 마력이 모였다. 뤼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건 못 막아요.”
현도 안다. 직격하면 성인이고 나발이고 날아가 버릴 밀도의 마력이다.
“잠깐이면 돼.”
현은 뤼필을 어깨에 짊어지고 달렸다. 브레스는 입에서 나간다. 조준이 정확하지 않고, 작고 빠른 적에게는 적합한 공격이 아니다. 브레스의 위력이 조금이라도 경감되길 빌며 현은 빈손으로 양자폰을 빠르게 두드렸다.
콜 넘버 000. 모든 통신 장치에 강제로 연락을 넣는 비상연락망.
윌리엄이나 리센에게 느긋하게 연락하고 있기엔 늦다. 엉덩이 무거운 초월자들을 움직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통화음이 세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됐다.
현은 위치 좌표와 함께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드래곤 다섯이 미지의 권능에 의해 폭주 중. 다시 한번 전달한다. 드래곤 다섯이 미지의 권능에 폭주 중. 감염형 권능으로 추측되니 해당 지역에 드래곤의 접근을 엄금하며 빠른 지원을 바란다. 이상, 김우현.”
“잠깐,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그건 전체 통신이라고요!”
따로 지원을 부른 것과 달리 원군만 오지 않는다. 현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몰려들 것이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지. 다른 방법으로는 연락을 돌리다간 지원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판이니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5분도 못 버텨요. 제가 달릴 테니까 놔주세요.”
현의 어깨에서 내려온 뤼필이 자기 발로 달렸다. 둘의 속도에 브레스가 쫓아오지 못하고 허공에서 반쯤 흩어졌다. 그 덕에 뤼필의 부담도 줄었다.
이성을 잃었어도 싸우는 법까지 잊은 건 아닌지 드래곤들이 브레스를 멈췄다.
드래곤들이 포효했다. 하늘에서 마법이 비처럼 떨어졌다. 범위 섬멸 마법이 대다수였고, 정밀 저격 마법이 중간중간 껴 있었다.
‘이성은 없어도 마법은 쓸 줄 안다는 건가.’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현과 뤼필은 갈라졌다. 현은 오감에 육감까지 동원해 마법 사이를 지나갔고, 뤼필은 달리며 날아오는 마법을 튕겨내고 있었다.
뤼필 또한 두 번의 대전에 참전했다 살아남은 사람이다. 전력 차가 압도적이라고 눌려 죽는 일은 없었다.
다섯 드래곤은 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정확히는 현의 허리에 달린 책을 정밀 저격 마법으로 쏘아댔다.
엘프의 숲, 엘프와 수인의 싸움은 현의 머리에 없었다. 그리고 현실에도 없었다. 드래곤의 브레스와 마법 폭격에 숲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뤼필도 간신히 막고 있는 공격이다. 일개 엘프가 버틸 화력이 아니었다.
현의 몸에 상처가 빠르게 늘어났다. 몸을 지켜주던 아티팩트는 진즉 부서졌고 마법이 스칠 때마다 가죽과 근육이 찢어지고 있었다.
정밀 저격 마법은 강력한 개인을 겨냥해 만들어진 마법이다. 그런 마법이 피부 위를 스치고 무사하리라 비는 것은 욕심이다.
현은 그냥 버텼다. 1시간 같은 1분이 지났고, 연락의 효과가 나타났다. 검은 빛살이 드래곤 하나의 목을 때렸다. 목이 부러진 드래곤은 검은 유성과 함께 땅에 떨어져 땅을 긁었고, 그러는 중에도 연신 폭음이 울렸다.
“천마…….”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뤼필이 중얼거렸다. 시작부터 거물이 튀어나왔다. 일 대 일로는 성인도 이길 거라는 괴물.
천마는 추락한 드래곤을 향해 계속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드래곤이 겹겹이 방어막을 펴 공격을 막았지만, 방어막이 생겨나는 속도보다 깨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리고 공격이 계속될수록 드래곤은 방패를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수명을 바치며 마력이 배 가까이 상승한 드래곤을 천마는 개 패듯 팼다. 그냥 드래곤도 아니었다. 그녀가 함정에 빠진 자리에 있던, 마법의 사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폭격이 멎었다. 드래곤들이 천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천마는 아랑곳않고 한 놈만 노렸다. 천마의 전신에선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현은 저게 어떨 때 나타나는 증상인지 알았다.
천마신공 11성. 천마가 낼 수 있는 최대치보다 한 단계 아래.
천마는 12성의 천마신공으로 잠깐이나마 마신과 동수를 이뤘다. 드래곤을 때려잡는 데는 11성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천마를 시작으로 초월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도착한 초월자는 10명. 이 정도면 많이 움직였다 싶었다.
윌리엄에게 부탁했다면 이 반수도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현이 불만인 게 있다면, 그중 셋은 현이 모르는 놈이라는 거였다. 셋이 현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저건 적이다. 셋이 현을 보며 살기를 뿌려댔다.
부적과 지팡이를 들고 있는 프라그하 로포르 부녀가 아니었다면 벌써 공격하고도 남았을 살기였다.
-도와줘?
프라그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현은 소매를 잡아 오는 뤼필의 손길에 대답을 망설였다.
“지원이 더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 둘까지 빠지면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방법은?”
“피곤하지는 않죠?”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긴 한데, 아직 할만해.”
믿음의 부작용은 벌써 고쳤고, 24시간 쉬지 않고 싸웠던 나날이 허다했던 것에 비하면 몸과 정신은 매우 양호했다.
뤼필이 웃었다.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바라보는 몽상가의 미소가 아니었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악동들이 짓는 웃음이었다.
뒤처리는 언제나 현과 다른 마녀들의 몫이었고.
그녀가 현의 손을 잡았다.
“저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선사해주었던 그 모습. 다시 한번 보여줘요.”
강대한 권능이 현의 몸을 감쌌다. 그러고도 모자라 권능은 현의 몸 안까지 들어왔다. 현은 권능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현실 왜곡. 현실을 왜곡하는 힘. 조율의 신자의 생각대로 현실을 조율, 조작하는 힘.
현의 외형이 변했다. 그럭저럭 잘생긴 중년의 얼굴이 매끈한 이십대로 돌아갔다. 키가 조금 작아졌고 근육도 줄었다.
현은 육신의 변화를 느낄 새가 없었다. 보이는 세상이 달라졌다.
폭풍처럼 격렬히 움직이는 마력이 보였다. 마력이 가진 냄새가, 맛이, 촉감이, 소리가 전해졌다.
자신의 것이었던, 그러나 잃어버렸던 감각.
흘러드는 정보의 홍수에 현은 정신이 아찔했다. 마력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세계가 나에게 덮쳐드는 경외감과 그에 따르는 황홀감.
완전히 포기했던 마력 적성이 돌아왔다.
현이 프라그하와 로포르를 보았다. 현의 눈빛을 이해한 부녀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날뛰는 드래곤들을 향했다.
“찾은 건 외형뿐인 것 같군. 겨우 그걸로 우리 셋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하찮은 질문이다. 현은 답하지 않고 양팔을 벌려 마력을 느꼈다. 마력 적성은 돌아왔지만 잃어버린 마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몸 안에 있는 마력은 그대로였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5분 남짓.”
창백해진 뤼필이 대답했다. 육체를 바꿀 뿐이다. 고작 그것뿐인 권능이었는데, 그녀는 남은 힘 대부분을 소모해야했다. 그러고도 육체의 유지 시간은 5분밖에 안 됐다.
“그 반이면 돼.”
뤼필에게는 겨우 5분이었지만, 현에게는 5분 씩이나였다. 마력 적성이 돌아왔다. 정신력도 충분하다.
상대는 풋내기들이다. 하물며 셋 중 하나는 엘프였다.
엘프의 얼굴에 있는 문신. 종족차별주의 단체 중 하나의 문양 같았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다. 엘프가 마법을 쏘았다. 드래곤의 마법에도 뒤지지 않는 위력의 마법이 현 앞에서 흩어졌다. 징조도 없었다. 그냥 현 앞에서 마법이 자취를 감췄다.
이어 마법을 준비하던 엘프는 옆에 있던 여자에게 제지당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현을 가리켰다.
“잘 보고 쏘란 말이야! 마력이! 주변의 모든 마력이!”
“기분 좋으니 충고 하나 해줄게. 날 죽일 거였다면, 발견한 그 순간 필사의 일격으로 끝내야 했어.”
현은 전투 중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필요한 말이었다. 살짝 부족했던 시간을 방금 벌었다.
현의 몸과 활짝 벌린 양손을 축으로 마력이 모였다. 마력의 폭풍에 뤼필의 몸이 휘청였다. 폭풍의 눈에 있는 현은 평온하기만 했다.
드래곤들이 뿜어낸 마력이 대기에 가득했다. 현은 그것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거대한 마력 폭풍이 현의 몸으로 들어갔다.
충만감을 느끼며 눈을 뜨고 숨을 내쉬었다. 숨결에 마력이 섞여 나왔다. 꽉 채우진 못했지만, 싸울 정도는 되었다.
절망적이던 전투들에 비하면 여유롭다. 너무 여유로워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우라, 리아, 아스모스.”
환계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세 체의 정령이 나왔다.
정령들의 존재감이 공간을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