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289
289
구원의 빛
현은 모습을 감추고 위원회를 나왔다. 그리고 에베레스트를 찾았다. 고요한 황혼의 설산은 손님이 없어 고즈넉했다. 현은 손에 든 보석을 이리저리 굴렸다.
보물이라면 이골이 난 현도 처음 보는 보석이다. 둥근 모양 안에 흰색이 있고, 흰색 안에 오색이 번쩍이며 어우러졌다.
믿음의 결정. 교주는 보석을 그리 불렀다.
구원교는 위험할 정도로 세계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모이는 믿음. 그 힘의 결정이 현의 손에 있었다.
‘성인들도 제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 줄 압니다. 제가 죽거든, 그 보석을 사용하십시오. 믿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현에게 보석을 넘기며 교주는 그리 말했다. 현은 인지도와 밈의 세계를 열었다. 보석에 모인, 보석으로 모이는 어마어마한 인지도가 보였다.
이건 교주에게 모일 믿음이다. 그 믿음에는, 죽은 교주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걸 사용하면 교주는 부활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는 현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겼다.
“중요한 때거든. 볼 일은 빨리하자.”
“방해할 생각은 없다.”
설산 구석에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제일 먼저 싸움을 달려갈 줄 알았는데.”
“승산이 있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승산이 아예 없다면 싸움의 의미가 없다.”
현은 천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마 아닌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독종.
“할 일이 있다면 빨리해라.”
“길어지는 일인가 봐?”
“네 하기에 따라서.”
손을 대지 않겠다 했다. 그럼 천마는 자신의 말을 지킬 것이다. 현은 천마에게서 관심을 돌리고, 집중했다.
심호흡, 그리고 발현.
깨닫지도 못한 새에 보석이 깨어졌다. 깨진 보석의 인지도와 믿음이 현에게 흘러들어왔다. 교주의 깨달음, 믿음의 사용법이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그건 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순수했다.
‘어렵지 않군.’
아키아가 만든 공간에 갇히기 전이라면 갈팡질팡 감을 못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질문과 답을 반복하고 있는 현은, 교주의 뜻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믿음이 모인다. 작디작은 힘. 먼지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힘이 모이고 모여 환하게 빛난다.
구원교 전체의 믿음. 그들의 바람. 구원으로의 갈망이 고스란히 현의 것이 되었다. 이 안에는 필시 교주의 믿음도 있으리라. 교주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이 바라는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게 교주가 가진 힘의 근원이니, 그 믿음이 이 안에 없을 턱이 없다.
믿음의 힘을 빌려 현은 진리를 꿰뚫었다.
광활한 우주는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었다. 흐르는 동시에 흐르지 않고 정체되며, 움직인다. 모든 개념이 뒤섞인 세계다. 세계의 법칙을 이루는 근본 원칙.
이른바 근원 세계의 근원. 현은 믿음을 그러모았다. 앞뒤로 무한한 공간에서 무한한 것들이 어지러이, 그러나 규칙에 이르러 움직이니 이것이 모두 진리다. 그에 비하면 이것은 얼마나 자그마한가.
현은 믿음을 믿었다. 밈의 성인 이전에 김우현이라는 인간으로서.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살아야 할 사람이 죽는 현실에 작은 구원은 존재해도 좋을 것이라 믿었다. 현의 안을 떠도는 수 없는 물음과 답변 중. 이 순간 그 하나만이 오롯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현은 한데 모은 구원에서 살포시 손을 뗐다. 빛없는 진리 안, 구원은 단 하나의 빛이 되어 표표히 빛났다. 현은 알았다. 끝없는 파도의 어디로 쓸려가더라도, 저 작은 안식처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죽음이 있고, 거기서 안식을 찾는 사람이 있는 한 저것은 이 외로운 심연에서 외로운 표류를 계속할 것이다. 진리로 환원되는 영혼들에게 잠시의 안식을 주기 위해.
믿음이 사라지며 현의 권능도 급격히 약해졌다. 현은 튕겨지듯 현실로 돌아왔다.
“허억…!”
심연이, 끝 모를 세계가 머리에 자리잡아 떨어지지 않았다. 까딱하면 자아를 잃을 위기였으나, 현은 금세 회복했다.
왜 나는 나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나라 부르는가?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들이 현의 정체성을 다잡아줬다.
현실로 돌아온 현이 이번에야말로 천마와 마주했다. 천마의 몸에서 나오는 그건 성인이 아니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천마는 성인을 넘어 화신이 되어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천마였다.
“마력의 성인이 되었나?”
“아니, 밈.”
천마의 시선이 곱지 않았기에 현은 바로 대답했다. 현이 모르는 장소에서 둘 사이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천마의 일이니 보나 마나 싸움이겠고,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진 것 같았다. 저 천마가? 마력의 화신이 상대라면 그럴 법도 했다. 천마신공도 일단은, 마력을 소모하는 무공이니까.
“낮의 싸움을 봤다면 알겠지. 그놈은 네 기술을 사용한다.”
“그야 보면 알지.”
“형태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미세한 파동까지 일치한다고 하면?”
“내 마력을 관찰하던 건, 그 때문이었나?”
현은 회귀 직후 벌였던 천마와의 싸움에서, 천마는 현의 마력을 관찰했다. 천마와 마력의 화신 사이의 충돌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전생의 천마는, 어쩌면 현이 모르는 곳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
“전생의 감각과 비교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지?”
“5할.”
가능한 모든 마력적인 성장을 끝냈음에도, 현이 마력을 느끼고 다루는 기술은 전생의 절반밖에 안 됐다. 그것도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법. 경험을 빼고 따지면 1/3쯤 되지 않을까.
벽을 한 번 더 넘으면 모르겠는데, 그 벽은 전생의 현도 구경하지 못했다. 현이 10년간 깨달은 건 믿음이지 마력이 아니었다.
“마력의 화신은 완전하지 않다. 네 기술을 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 기술이 화신이 사용할 권능까지 안 된다는 건 아는데, 그걸 본인 앞에서 보통 그렇게 말하냐. 말은 알겠네. 내 기술이니. 완전히 파훼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니 최대한 전생의 감을 되찾아라?”
“말이 빨라서 좋아.”
낌새로 봐선 천마가 자신을 도와줄 분위기다. 하지만 왜? 천마가 현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내가 마력의 화신을 죽이면, 너한테는 뭐가 남는데?”
“전술적 승리.”
“과연, 설욕인가.”
천마가 투신의 성인을 죽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마력의 화신이 나타났다.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회귀 직후부터 천마는 물밑에서 여러 작업을 펼쳐왔을 것이다.
천마가 힘이 아닌 전술로 승부했다는 게 의외였지만, 천마라면 또 말이 되었다. 천마가 바보가 아니라는 건 그녀와 싸워본 사람이라면 모두 안다.
천마의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변했다.
“시작부터 13성이냐.”
“권능을 사용해라. 안 그러면 죽는다.”
에베레스트 정상이 폭삭 내려앉았다.
***
함대는 박살 났지만, 함대의 부품마저 못쓰게 된 건 아니었다. 형체도 남지 않은 고물도, 마력만 있으면 에이네는 재활용 할 수 있다.
에이네는 우주에 나와 있었다.
“요건 엔진, 요건 밑판, 오 제어 기판이 살았네.”
우주에 떠다니는 함선의 잔해가 차례차례 에이네의 손에 들어갔다. 에이네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함선의 부품은 나사 하나까지도 근원 세계에선 구하기 힘든 양품이다.
나노 머신과 마력이 있으면 만들어내지 못할 건 없지만, 마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그런 부품이 지천… 우주에 널려있다. 손 뻗으면 닿는 게 보물이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원회에게 뜯어내 이제는 세 개가 된 아공간 주머니로 에이네가 부품들을 집어넣었다.
“됐다.”
에이네가 빵빵한 아공간 주머니를 흐뭇하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재료 수급이 수월하다면 예정보다 훨씬 빨리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에는 마력 걱정도 없었다.
특수 제작된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조심 공간이동 스크롤을 찢어 에이네는 위원회 본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숨만 쉬어도 마력이 쌓이는, 숨을 쉬지 않아도 피부를 통해 마력이 흡수되는 공간이다.
마력이 새어나갈새라 문을 닫고 에이네는 방 중앙에 앉아 회수한 고철들을 하나씩 꺼냈다.
수십 종류의 마력이 그녀에게 흡수되었지만, 에이네는 어려움 없이 그것을 흡수했다. 무인이든 마법사든, 싸우지 않으면 자연스레 모이는 마력이 낭비된다.
김우현과 리센의 강력한 주장 아래 낭비되는 마력을 흡수하는 시설이 만들어졌고, 이 공간이 바로 그 시설이었다. 위원회 본부에 머무는 사람이 만 단위고, 초월자가 30명이 넘는다. 특히 초월자들의 방으로는 마력 통로가 직접 연결되어 있기까지 했다.
마력을 펑펑 써도 쓰는 것보다 쌓이는 양이 많으니 에이네는 요즘 매일이 즐거웠다.
교주를 포함, 근원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미끼가 투입된 탐색전 후 위원회는 마력의 화신을 향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마력의 화신은 이미 동대륙을 검게 물들이고 남대륙을 그 검은 공간에 가두고 있었다.
에이네가 방의 벽면에 설치된 화면 중 하나를 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현이 천마에게 들려와 치유 공간에 던져지고 있었다.
이 방과 같이, 저 공간 또한 현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
마력의 화신이 사용하는 기술의 연원을 모르는 초월자가 없었고, 그걸 본 초월자들은 마력의 화신을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으로 현을 꼽았다. 그건 지구 출신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을까?”
“삼촌?”
수아람이 쌍심지를 켜자 우가혁이 식은땀을 흘렸다. 현을 빼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최강은 바로 수아람이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당연한 걱정이지.”
“윌리엄 삼촌까지 그러기에요?”
“혼자서 화신을 잡는 거니까. 로드도, 천마도 못했던 일이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있나.”
보란 듯이 천마가 현을 수련시키고 있다. 천마마저 현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설프게 군대를 파견해 마력의 화신의 성장을 도와주기보다는 현이 준비될 때까지 두고 보자는 것이 위원회의 여론이었다.
위원회가 총동원되어도 마력의 화신을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니 그게 현재로선 최선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놈이 가면, 다음은 우리 차례일 테니.”
리센의 말에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현이니까 그나마 가능성이라도 있다. 현이 혼자가는 게 기정사실이 된 것도 현만이 마력의 화신을 감싼 마력을 ‘살아서’ 뚫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력의 화신은 가까이 있는 생명체의 체내에 있는 마력을 직접 조작할 수 있다. 교주와의 싸움 말미에 마력의 화신은 힘이 빠진 교주의 체내의 마력을 직접 조작해 치명상을 입혔다.
마력 기반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재앙의 이름을 보면 알고, 물리력으로도 안 된다는 걸 본능의 성인과 과학의 함대가 보여줬다.
현이 아니면 사실상 마력의 화신에게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는 차례대로 지옥행이라는 건가. 외롭지는 않겠어.”
“지금 그게 할 소리…… 하아. 말을 말아야지.”
수아람이 우울하게 한숨 쉬었다. 모두 맞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런데 심검은 마력을 안 쓰지 않나?”
우가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검신에게 모였다. 가만 생각하던 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벨 수 있겠어.”
검신이 문을 향했다. 윌리엄이 물었다.
“어디 가?”
“마력을 베기 위한 수련.”
검신이 나가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감을 표했다.
“저놈도 맹한 구석이 있어.”
“머리에 검밖에 안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없던 가능성이 생겼군.”
“나도 심권을 익혀야 하나.”
“전생의 경지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삼촌?”
수아람의 째려보기에 우가혁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