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290
290
마지막 싸움.
현은 매일 천마와 실전을 거듭했다. 저번처럼 무한한 마력이 주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현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모든 걸 사용해 천마강림을 사용한 천마를 상대해야 했다.
‘저건 반칙이지.’
마신의 화신이 된 천마는 천마신공 13성을 항시 사용할 수 있었다. 천마는 순수 무력으로 이미 재앙의 화신과 대등했다. 거기에 변환의 권능까지.
마신은 자신에게 오는 공격을 반사할 수 있었고, 잘린 팔다리를 허공에서 만들어내 붙이기도 하는 등의 권능까지 있었다. 화신이 되었다 함은 천마도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죽은 마신의 화신이 살아 돌아와도 현재의 천마는 못 이길 것 같았다.
현은 죽여도 죽지 않고, 손가락도 댈 수 없는 괴물에게 종일 얻어맞았다. 변환의 치유 능력은 자타를 가리지 않았다.
천마의 공격에 현의 손발이, 때로는 몸뚱이가 펑펑 사라졌고, 그때마다 천마의 권능으로 재생되었다. 현의 안에 물음이 하나 더해졌다.
머리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새것인 나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현의 몸은 머리를 뺀 모든 부위가 천마의 권능으로 새로 만들어진 새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천마의 권능 사용이 완벽해 위화감이 느껴진다거나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완벽해 재생으로 신체나 마력을 회복하는 꼼수도 바랄 수 없었다.
현은 항상 정신과 육체의 한계에 달해 기절했고, 회복의 방에서 깨어났다.
발전이 없지는 않았다. 실전보다 더 실전 같은 수련 끝에 현은 점점 더 예전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마력 적성 자체가 높아진 건 아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끝에 본능이 살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일깨웠다. 전에는 마력 자체를 보고 반응했다면, 이제는 마력의 편린을 읽고 경험에 의존해 대처했다.
한계가 명확한 방법이었지만, 현이 상대해야 할 건 자신의 기술을 쓰는 마력의 화신. 이 방법이 더 잘 통할지도 몰랐다.
“진짜, 한 대만 때려보자. 이 썩을 놈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이 선 채로 기절했다. 밈의 권능으로 자기 최면까지 써가며 버텼지만, 권능의 행사도 공짜가 아니다. 정신력이 다하면 권능의 효과도 떨어진다.
잘린 오른팔에서 지혈하지 못한 피가 철철 넘쳤다. 드래곤 하트의 복용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은 신체가 아니었다면 죽었어도 두 번은 죽었을 출혈이었다.
천마는 권능을 한 번 사용하는 것으로 치료를 마쳤다. 공기가 변해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육신은 치료했지만, 현의 정신력과 마력은 그대로였다.
마력은 자연회복 하는 쪽이 더 도움이 되니 놔뒀고, 정신력은 변환의 권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변환은 실체 있는 것을 바꾸는 권능. 영혼이야 다루기 어렵다뿐이지 실체가 있는 것이지만, 정신에는 실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조율과 변환은 구분되었다.
위원회에 마련된 회복실에 현을 던져넣던 천마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방향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유독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그곳에서는 천마도 처음 보는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십 명의 초월자가 한 사람에게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고, 대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마력을 받아먹고 있었다.
***
마력의 화신에게 무공으로 유효타를 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마력의 화신은 타인의 체내에 있는 마력을 조종할 수 있다. 내부에서 마력이 폭주하면 제아무리 초월자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지 않는 재능이 하나 있다.
마력 흡수 능력자.
선천적으로 몸에 닿는 마력을 흡수하는 체질을 가진 마력 흡수 능력자들은 다양한 마력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주화입마나 마력 폭주에서도 거의 자유로웠다.
에이네가 흡수한 영약이 수백 개가 넘고, 사람에게 흡수한 마력의 속성도 그쯤 된다. 로드가 본 것만으로 그러니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에이네는 단 한 번도 마력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비정상적인 일이군.’
로드는 십수 명의 마력 흡수 능력자와 마력 무효화 능력자를 만나봤다. 그들의 능력은 절대 에이네와 같지 않았다. 초월자 한 명만 있어도 대개 정리가 되는 수준이다.
모든 마력 흡수 능력자가 에이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재앙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막말로 에이네가 천마신공으로 신체를 강화하면, 아무리 많은 드래곤이 있어도 정면에서 에이네를 이길 수 없다.
모든 마법은 흡수되고 그건 그대로 신체 강도의 상승으로 이어질 테니까.
에이네에게 흡수된 마력의 총량은 성체 드래곤 3명이 가질 양을 넘어섰다. 로드가 가진 순수한 마력량도 거기까진 아니었다.
-로드, 아무리 해도 이 이상은 위험한 게?
초월자 하나가 로드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공사다망한 초월자들이 모인 건 에이네가 그들에게 제시한 이득 때문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과학, 그리고 그 과학의 성인.
에이네가 초월자들에게 미끼로 제시할 건 많았고, 미끼에 낚인 초월자들이 이렇게 나와 있었다.
-뭐가 말인가? 마력 폭주가? 아니면 과학의 성인 자체가?
-둘 다입니다.
저 몸에 든 마력이 폭주하면 위원회 본부쯤은 우습게 날아갈 폭발이 일어날 테고, 에이네가 그 마력을 온전히 다뤄내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재앙의 등장이라 두려우리라.
갑자기 들려온 천마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는 끊어졌다.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군.”
“왜… 무슨 볼일인데?”
에이네가 흠칫 어깨를 떨며 답했다. 과학의 성인이고 나발이고, 천마는 천마였고, 여전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에이네였다.
천마가 손을 뻗자 사방의 마력이 에이네에게 몰려들었다. 노도와 같은 마력의 기세에 초월자들이 공급하던 마력이 끊어졌음에도, 에이네에게 흘러드는 마력의 총량은 더 늘어났다.
“오…….”
에이네는 자신에게 흘러드는 마력의 흐름을 바라봤다. 한 번 봤던 거지만, 무한한 마력이라는 건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천마는 에이네를 유심히 살폈다. 눈은 허공의 마력을 쫓으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네의 손을 거쳐 간 고물들은 새것이 되어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갔다.
천마는 마력을 공급하고, 에이네는 이때다 싶어 마력이 잔뜩 필요한 작업을 차례차례 끝냈다.
에이네의 마력이 가득 차기까지는 12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근처를 맴돌던 초월자들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
몸을 돌린 천마는 로드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천마는 로드를 지나쳐 걸어갔다.
“끄응. 드디어 다했다!”
에이네가 시원하게 기지개 켰다.
***
천마가 찾아갔을 때, 현은 이미 깨어 있었다.
“열한 번째 최후의 안드로이드는 언제 만들어졌지?”
“에이네? 그건 나보다, 저쪽이 더 잘 알 건데.”
현은 천마가 열고 들어온 문 너머에 날아다니는 드론을 가리켰다. 드론이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드론에서 김 교수의 목소리가 나왔다.
-개발 시기 말입니까? 아니면 완성 시기 말입니까?
엿듣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 게 과연 과학다웠다.
“영혼이 깃든 순간.”
-수정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거, 공교롭게도 12년 전 오늘이군요. 시간은 새벽 3시 24분 11초.
“생각보다 오래됐는데.”
-그녀가 갇혀있던 이유는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거 말곤 갇혀 있을 이유가 없고, 그 때문에 기약 없이 잠들어 있었죠. 궁금증은 풀리셨습니까?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고, 드론은 원래 자리로 날아갔다.
“마력을 보더군.”
“에이네가?”
“그리고 만지기도 했고.”
“걔 마력 적성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전생의 너와 비교하면 어떻지?”
현이 잠깐 고민했다. 에이네와 전생의 자신의 비교? 에이네의 마력 적성이 높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비교해본 적은 없었다. 비교할 이유가 없으니까.
“의왼데 이거… 딱 잘라 말하기 힘들어.”
“마신의 화신은, 마력의 화신을 강림시키기 위해 너를 죽였다 했다.”
“그래서?”
“마력의 화신이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마력의 화신의 화신체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하더군.”
천마는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소였다. 그리고 천마를 따라 현의 입꼬리도 실실 올라갔다.
“사람 잘못 봤군.”
“그런 거다.”
현과 에이네의 마력 적성은 비슷하다. 하지만 마력 총량으로 따지면 에이네의 압승, 게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현과 에이네 둘 중 누가 마력의 화신에 어울리냐고 한다면, 그건 에이네다.
“마신의 화신하고 대화할 수 있는 거냐?”
“그래.”
“반응 장난 아니겠어.”
천마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미 화신은 만들어졌다. 그것만으로 나는 성공했다!
마신의 화신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발악에 가까웠다. 누가 예상했을까. 마력의 화신이 돼야 했을 영혼의 주인이, 마신의 화신이 강림했을 때 캡슐에 갇혀 의식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천마가 돌연 정색했다.
“그렇다고 적이 약해지는 건 아니지.”
화신체를 잘못 골랐다고 하나, 현과 에이네의 차이는 그릇의 크기, 마력의 총량 차이에 불과했다. 마력의 화신은 여전히 강력했고, 근원 세계 전체가 달려들어도 패색이 짙은 난적이었다.
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강 9할. 며칠만 더 하면 되겠어.”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마력의 화신은 한결같이 우직하게 움직였다. 자신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건 없다는 듯 같은 속도, 같은 경로를 유지했다.
현은 마력의 화신이 지나갈 경로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올 것 같긴 했는데, 진짜 왔냐.”
“혼자보다는 둘이 낫잖아?”
땅을 걷어차며 지루함을 달래던 에이네가 말했다.
“네가 나한테 이름을 지어주면서 했던 말. 기억해?”
현의 시선이 저 멀리 기억을 헤맸다. 그리 많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짧은 인간의 생애에선 상당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득한 기억 속, 에이네와의 첫 만남은 기억에 선명했다.
“기억하지. 여자가 알몸으로 달려드는 경험은 흔한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게 과학이 디자인한 최고의 미녀임에야.
“이런 썅…….”
현은 에이네가 휘두르는 공격을 가뿐하게 피했다. 제풀에 지친 에이네가 다시 땅에 화풀이를 시작했다. 그리곤 꾸물거리며 어색하게 말을 건넸다.
“전생에, 네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었어?”
“검신, 무신, 윌리엄, 리센, 로드. 경우에 따라 천마랑 뤼필까지 들어갈까.”
“수아람은?”
“딸에게 등을 맡길 수는 없지.”
“그래도 생각보다 얼마 없네.”
“지나가던 소환자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근원 세계에 이만큼이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저 멀리, 마력의 화신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대륙을 검은 공간으로 격리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거기 내가 추가되면, 환생하고 나서는 내가 처음이란 거구나.”
“그럴 자신은 있고?”
“자신이 없으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어.”
검은 갑옷이 에이네의 몸을 감쌌다. 회귀 전에 쓰던 나노 슈트보다 몇 단계는 진보한, 그녀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물건이었다.
철컥. 머리의 가면이 내려왔다. 가면의 눈 부분이 붉게 빛났다.
“이제 이름값은 해야지.”
“힘들걸.”
마력의 화신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둘을 발견한 마력의 화신의 얼굴에 가학적인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 지금 즐겨둬라. 즐기려면 지금밖에 없으니.
현이 권능을 사용했다. 교주의 힘은 자신을 믿는 구원교의 신자들에게서 나왔다. 교주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뿐이었다. 자신에게 오는 믿음을 받는 일.
밈의 성인은 훨씬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세상에 떠도는 밈.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 그 세계를 다룰 수 있는 세계에서 단 셋뿐인 사람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이 몰려든다. 현은 그 믿음을 하나로 엮었다.
가슴을 떠도는 질문과 답변을 한곳에 잠시 몰아두고, 하나의 생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고, 죽어야 할 사람도 죽을 것이니, 저기 있는 건 절대적인 악이라.’
권능과 믿음이 묶인다. 모여든 밈이 현이 관철하는 단 하나의 믿음과 하나 된다.
희망과 절망이 모두 모여 한데 뭉치니, 그 힘은 누구에게 비할 바가 아니며.
“탈계, 정의.”
사람의 믿음이 투영되어 실체 이루니, 주술사들은 그걸 이리 부른다.
신(神).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