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48
1148화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다소 회복된 운친왕은 무표정을 하고 있는 진양을 바라보았다.
다시 보니 진양은 상당히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만약 진양이 없었다면 그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황위를 잃은 대제에게 이토록 많은 보루가 남겨져 있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약속한 대로 성실히 거래에 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황태손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황태손은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친왕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 섰다.
한참 뒤.
다시 정신을 차린 황태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톱으로 뺨을 긁어 피를 낸 뒤 자신의 손을 붉게 물들인 채 운친왕을 향해 내밀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운친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위는 기꺼이 포기하겠소. 원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심지어 나의 목숨까지도 전부 내어주겠다고 맹세하겠소.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하겠소. 돌아가신 나의 부친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주겠다고 피의 맹약을 맺어주시오.
아버지께서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소. 그저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돌아가시게 방관할 수만은 없소!”
한참 동안 황태손을 바라보던 운친왕은 황태손이 했던 것처럼 손톱으로 뺨을 긁어 피를 냈다.
그리고 손을 붉게 물들이며 황태손의 손을 잡았다.
“약조하겠소. 허나 그대의 목숨은 필요하지 않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태손을 썩 못마땅하게 여기던 운친왕이었다.
심지어 태자보다도 못한 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황태손을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지금껏 대연 황실에 제대로 된 인물이라면 선태자가 유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황태손도 자신의 아버지의 절반 정도는 따라간다고 해도 무방할 듯했다.
운친왕과 황태손이 맞잡은 두 손에서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황태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친왕의 상징인 머리 장식과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었다.
평범한 도포로 갈아입은 그는 자신의 도궁을 불러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것을 파괴해버렸다.
스스로 도궁을 파괴한 이상 대연 신조의 힘을 부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황태손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황태손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천박한 웃음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웃음이었다.
더 이상 황위 쟁탈전을 이어나갈 방법이 없다.
그의 실력으로 운친왕을 꺾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황위가 아니다.
단지 황위를 이용해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었을 뿐.
예전 같았으면 이를 위해 계속해서 태자와 싸움을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길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부친이 자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을 죽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황태손은 돌연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싸움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친왕은 태자가 아니다.
그러니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 하나만 들어주겠다는 약조만 하면 그만이다.
황태손은 공손히 예를 갖춘 뒤 미소를 띤 채 먼 곳으로 비틀거리며 떠났다.
운친왕은 이럴 필요는 없다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은 다시 내려갔다.
황태손은 일부러 운친왕을 안심시키려고 이렇게까지 한 것이다.
혹여나 다른 이들이 불필요한 생각을 가질까 봐, 불필요한 얘기를 하고 다닐까 봐 아예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 더 이상 황위를 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황태손의 뒷모습은 저 멀리 지는 석양과 함께 천천히 사라져갔다.
운친왕은 그제서야 몸을 돌려 도성 쪽으로 날아갔다.
진양은 여전히 멀리 보이는 황태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부친의 억울함을 풀고자 했던 그 마음은 과연 황태손 스스로 가지고 있던 집념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생각일까?
“그만 생각해. 어차피 이건 당사자 아니면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계산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원래의 진양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황태손의 본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생각을 심어주었다고 해도 애초에 본심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본심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일단 최악의 경우부터 계산해 보자고. 아무래도 대제는 젊었을 때 삼신도군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것 같거든.
삼신도군이 연관되어있는 이상 완전히 성불되었다고 해도 쉽게 믿어선 안 돼. 그러니 미리 방비를 하는 게 좋겠지.
어쩌면 대제가 삼신보술을 익혔을 수도 있잖아.”
“알겠다. 지금 바로 생각해 보겠다.”
냉정한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았다.
비주가 대연 도성으로 향하는 동안 두 진양은 앞으로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금으로서 가장 큰 변수는 대제의 조서에서 언급됐던 바로 그 황족이다.
조서는 아마도 오래전에 쓰였을 거다. 대제의 성격상 결코 아무에게나 황위를 물려줬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엄청난 고수는 아닐 거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황위를 물려줬을 리도 없다. 대황에 존재했던 역대 신조 중에 단 한 번도 어린 황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아무 기반도 실력도 없이 황위를 노렸다간 어떤 꼴이 나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이 모든 게 대제의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대제가 최후의 발악을 위해 이름 없는 녀석을 세운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야.
어쩌면 그 누구도 그 황족에게서 빈틈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냉정한 진양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본 운친왕은 절대 자신에게 아무 위협이 되지 않는 자를 이유 없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사람이 아니다. 운친왕 역시 황태손처럼 황위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지, 진심으로 그 자리를 탐내는 건 아니니까.
그는 황위에 오르자마자 대연 신조의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의 경지에 오를 것이고 마침내 도군의 반열에 오르게 되겠지.
도군의 경지에 오르고 황위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설령 대제가 다시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달라.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반드시 제거할 필요가 있어. 어쩌면 조서에서 언급했던 그 황족은 대제가 다시 부활하기 위해 남겨둔 보루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철저하게 죽이고 성불시켜야 한다.
대제는 어쩌면 눈속임에 눈속임을 더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로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세운 인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를 중심으로 모든 황족을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더 나아가 황족의 먼 친척까지도 의심해 봐야 할지도 모르지. 조금이라도 의심의 싹이 있는 녀석들은 완전히 제거하는 게 안전하니까.”
이어서 냉정한 진양은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도표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원래의 진양은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차라리 대연 황실과 연관된 사람이라면 전부 다 죽이자고 하지 그러냐?”
“확실히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긴 하군.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실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일을 벌인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냉정한 진양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
원래의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 자신의 일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음 같아선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항상 극단적인 게 문제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 방법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확실히 가장 간단하면서도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원래의 진양이 말했다.
“전투도 끝났으니 이만 쉬도록 해. 뒷일은 아무래도 내가 처리하는 게 좋겠어.”
냉정한 진양은 잔말 없이 주도권을 원래의 진양에게 넘겼다.
그리고 홀로 흑백의 세계에 남아 계속해서 계산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 가는 곳투성이였다.
대제가 결코 아무나 후계자로 세웠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건 눈속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눈속임이라면?
그렇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시 눈을 뜬 진양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따사로운 햇살까지 내리쬐고 있으니 이제야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친왕은 고개를 돌려 진양을 힐끔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진양의 분위기가 바뀐 탓이었다.
어쩌면 전투력을 대폭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신통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할 뿐 굳이 묻진 않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도성으로 돌아가 승리의 결실을 취하는 것뿐이다.
태자는 대제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영혼과 이성이 모두 소멸되어버렸다.
황태손은 스스로 도중을 폐지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떠나버렸다.
이제 황실에 운친왕과 황위를 두고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실력이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황실 내에 불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못했을 뿐이다.
만약 여기서 누군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대연은 곧장 내전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운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될 것이다.
이걸 대영이 놓칠 리는 없다.
반드시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대연을 완전히 찢어놓으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대연 내에 있는 모든 세력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운친왕의 등극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를 탐내다 대를 잃을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다만 조서에 언급된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운친왕과 진양이 도성에 도착하기 무섭게 누군가 조서에서 언급되었던 인물을 운친왕의 앞으로 데려왔다.
과연,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아부하는 건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정말로 조서에 언급된 게 이 자란 말이냐?”
진양과 운친왕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다. 황족 내 서열도 확실하고 같은 항렬 중에 동명을 가진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나이는?”
“작년 말에 태어났으니 아직 한 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
진양의 얼굴은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요람에 누워있는 아이가 바로 대제가 다음 계승자로 지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여러 장정들에게 둘러싸이고도 울기는커녕 세상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살면서 이토록 구질구질한 인간은 죽은 대제가 처음이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도무지 마땅한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제가 최후의 보루로 이용하고자 남겨둔 아이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아이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