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넋이 나간 젊은이
진양은 두루미의 등에 탄 채 먼 곳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널린 건물의 잔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막혀있는 바닷물이 보였다. 동부가 일부 파괴된 듯했다.
심지어 두 명의 수도사가 부서진 틈을 따라 해저로 도망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수의 위에 틈이 생기며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누군가는 도망쳤다는 뜻이었다.
가장 먼저 도망친 것은 양범이었다.
그는 완벽하게 상대를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가 이수의 위에서 살아서 도망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강천이 온전히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십이검과 같은 강력한 마성을 지닌 괴이한 검결을 알고 있었다는 것 역시 그의 예상 밖이었다.
진양은 새롭게 얻은 두 권의 기능서를 살펴보았다.
한 권은 십이검으로 기능서에는 요결이 적혀있었다. 강천이 진양에게 전수해 주었던 것과 한 글자도 빠짐없이 같은 내용이었다.
물론 전수해 준 부분 외의 내용도 있었는데 이는 강천 스스로 깨달은 내용일 뿐이었다.
십이검은 강력한 마성을 지닌 검결로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실력이 한 단계씩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의 검에 하나의 경지가 올라간다.
처음 세 번의 검은 진원 기혈(真元氣血)을 사용한다. 그다음 세 번의 검은 자신의 수명도 함께 깎아 먹기 시작하고, 이어지는 세 번의 검은 신혼을 소모한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의 검이 어떤 것을 대가로 요구하는지는 강천조차 깨닫지 못한 듯했다.
확실한 건 아홉 번의 검으로 무려 세 개의 경지를 뛰어넘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강천은 수명을 불태우고 스스로 입마 상태에 빠지며 검결의 진의까지 발휘했음에도 겨우 여섯 번의 검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단 여섯 번 만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모하고 평범한 사람보다도 못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평범한 수준의 수도사였다면 아무리 죽음을 불사하며 검결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네 번째 검이 한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결의 창시자는 십이검까지 펼쳐낼 수 있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휴~”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정직해진다.’
조상님들의 말이 틀린 말은 없는 듯했다. 적어도 강천은 십이검에 대해서는 진양을 속이지 않았다.
주머니 역시 습득 능력으로 순식간에 연화가 된 것으로 보아 그가 완전하게 진양에게 넘겨준 것이 분명했다.
강천은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던 듯했다. 적어도 자신이 진짜라고 하며 말했던 것들은 전부 진실인 듯했다.
그때 진양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눈을 들어 보니 누군가에게 한 입 물어뜯긴 듯한 건물 사이로 해요가 푸른 치마를 펄럭이며 맨발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건물 밖을 향해 걸어가며 고개를 들어 진양을 바라보며 가볍게 코웃음 쳤다.
“역시. 몸에서 향기가 나던 사람은 너였구나.”
해요는 마치 술에 취한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완전히 건물 밖으로 나온 그녀는 발걸음을 멈춘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네 신선한 피를 마시고 싶구나. 분명 신선한 만큼 달콤한 향기가 나겠지.”
진양은 강천의 관을 수습한 뒤 두루미의 등에 앉아 한참 동안 해요를 노려보았다.
그때, 진양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백리 칠과 한 몸에서 태어났으나 백리 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게 네 한 마디에서 느껴지는구나. 참으로 가련하구나. 아직도 자아가 살아나지 못했다니. 백리 칠과 세 번째 몸은 모두 자아가 살아났거늘. 명성은 네가 가장 높으나, 가장 불쌍한 것도 너구나.”
“비록 네가 누군지 잊긴 했었으나 네 몸에서 나는 향기는 기억하고 있지.”
해요가 미소를 지었다. 웃는 그녀의 얼굴은 천지를 환하게 비출 듯한 아름다움이 묻어나왔다.
“자신 있으면 덤벼봐. 날 죽인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신선한 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겠지.”
진양이 말했다.
“널 처음 보는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네 피를 모조리 마셔 나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도록 할 것이다.”
해요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해요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서진 틈이 있는 폐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건축물의 잔해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밝은 빛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부서진 건물들은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었다.
진양은 땅에 선 채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똑똑하군. 행궁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건 알고 있었는데 기억 속의 장면을 조종할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 부서진 틈에 기억 속의 장면을 떠올려 틈을 메꾸고 다시 나를 이곳에 가두다니. 그리고 너도 부서진 틈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게 되었구나.”
진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런 식으로 나와 직면한다고 해서 날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진양은 제자리에 선 채 한참을 기다렸지만 해요는 덤벼들지 않았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진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번쩍이는 화려한 빛 사이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벽화들이 걸려있었다.
수많은 벽화에는 생령이 화기애애하게 뛰놀고 있었으며, 근처에 있는 조각상들은 진양을 바라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허……”
진양은 실소했다.
이제 보니 해요도 완벽하게 기억 장면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변화를 일으켜 진양을 다시 이곳에 가두는 것뿐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것으로 보아 아직은 다소 이른 시기인 듯했다.
아마 이 장면은 해요 선자가 없던 시기였을 것이다.
현재 서 있는 곳은 부서진 틈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설령 계속해서 이곳에 서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에 해요가 나타났을 거고, 해요장혼곡과 함께 모든 생명체들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곳에 서 있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해요의 계획이다.
진양은 다시 새로운 기억의 공간에 서 있었다.
진양은 벽화의 생령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벽화를 따라 앞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통로 깊은 곳에서 들릴 듯 말 듯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진양이 발걸음을 옮겨 앞쪽으로 향하자 음악 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옥구슬이 쟁반에 굴러가는 듯 청량하고 면화같이 부드러운 음악 소리는 한곳에 모여들며 끝없이 이어졌다.
따뜻한 듯하면서도 미지근한 곡조는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느껴지는 몽롱함과 같았다.
진양은 모퉁이를 돌아 한 대전의 뻥 뚫린 대문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음악 소리는 바로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쪽에는 수많은 손님들이 양쪽으로 둘러 앉아있었다.
상석에 앉은 한 젊은 남자 교인(鲛人)은 잔뜩 취한 모습으로 한쪽에 노출이 심한 여자 교인을 끌어안은 채 쉬지 않고 술잔을 비워내며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방녀(蚌女)들이 금을 켜고 있었고, 수요(水妖)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수요괴(多手妖怪)는 타악기를 두드리고 있었고, 수많은 해족(海族)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중앙엔 인간의 모습을 닮은 해족이 있었는데,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채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무녀가 자리를 비켜서는 순간 가려져 있던 탁자가 나타났는데, 그곳을 본 진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긴 탁자 뒤로 눈이 풀린 채 바보같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는 바로.
진우달이었던 것이다!
그는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양은 순간 뚜껑이 열릴 뻔했다.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보이지도 않던 인간이 알고 보니 이런 곳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누군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누군 맛 좋은 술에 아리따운 여인까지 구경하면서 편하게 쉬고 있었을 줄이야!’
진양은 진우달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볼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허!”
진양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힘껏 볼을 몇 번 잡아당기자 진우달의 눈빛은 점점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순간, 진우달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밀어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악! 구 형, 왜 이러는 거요?”
“왜 이러냐고?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당신은 여기서 뒈졌을 거요!”
잔뜩 화가 난 진양은 진우달을 냅다 걷어찼다. 진우달은 뒤로 넘어지며 땅을 굴렀다.
‘이딴 허접한 삼류 매술(魅術)에 홀려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을 정도라니. 그나마 내가 구하러 왔기에 다행이지.’
“크흠……”
진우달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개를 숙여보니 바지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진우달이 멋쩍은 듯 말했다.
“구 형, 걱정을 끼쳐 미안하오. 근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잘……”
“됐으니까 어서 가기나 합시다!”
진양은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인간 운은 말도 안 되게 좋은 게 분명하다.’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부서진 틈의 범위 내에 있었다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해요가 진양을 붙잡기 위해 기억 장면으로 부서진 틈을 메워버리기라도 했다면 큰일이었다.
그나마 진양이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끼고 이곳으로 와보았기에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곳에 갇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삼원 수도사나 되는 인간이 여자 요괴가 부리는 허접한 매술에 걸려 바지에 실례까지 하다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현천성종의 이 장로가 가장 아끼는 자가 이렇게 여자에게 쉽게 매혹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성종 내의 다른 여제자와 경험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대단한 바람둥이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순둥이였던 것이다.
진양이 밖으로 향하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진우달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곳에서 향락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진양과 진우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 모습에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대전을 빠져나오자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는 사라져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전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주위의 풍경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구 형, 아직 탈출하지 못한 거요?”
진우달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