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83
1183화 집념
아직 영제가 완전히 죽지 않은 상황에서 기뻐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진양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다.
두 번째로 일념의 바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최악의 경우를 고려했었다.
사실 지금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정도는 아니다.
이대로 일념의 바다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 영제를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진정한 강자는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영제는 진양이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다.
강제로 황위에서 끌어내려지고 도기까지 파괴되었음에도 그는 죽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본인의 힘도 끝까지 지켜내고 있었고 경지 하락도 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중하게 주도정을 포기하는 결단까지 내렸다.
다급하게 자신도 잘 모르는 공법을 배우거나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내는데 치중하지 않고, 일념의 바다의 상황에 최대한 잘 맞게 실력을 쌓고 강해지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그는 이번 윤회에서 지난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어쩌면 진양이 강제로 그를 황위에서 끌어내리지 않았어도 그가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지금까지의 모든 것, 그리고 신조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새롭게 도기를 이루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제의 입장에서 보면 현시점의 대영 신조로부터 받는 도움보단 제약이 훨씬 더 컸다.
모든 족쇄와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며 그는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
일념의 바다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양이 나서지 않았다면 혈라마는 영제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영제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건 단순한 오만이 아니었다.
진양이 일념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영제는 무사히 해탈을 마치고 봉호도군의 자태로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지금도 영제가 밖으로 나올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일념의 바다에서 발휘했던 실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권력의 지팡이를 포기하며 진리의 문은 다시 강화된 백옥 신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토록 큰 대가를 감수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영제가 얻은 모든 것들을 그곳에 완전히 묻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진양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가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영제의 근성을 생각해 보면 그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밖으로 나올 겁니다.”
“이젠 정말로 완전히 이 일을 끝낼 때가 온 거죠. 그래도 다행히 이젠 어느 정도 승산이 보이네요. 이 정도만 해도 쉽지 않았을 거 잘 알아요. 걱정 마세요. 철저히 대비하도록 할게요.”
가희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영제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최후의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선택을 망설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일념의 바다에 발을 들이게 된 순간부터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제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악의도 나중에 생긴 게 아니다.
처음에는 영제가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념의 바다에 다녀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전부 말살시켜버리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녀도, 자소도군도, 장해도군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거 영제가 자신을 대연으로 보냈을 때 어째서 자소도군과 장해도군이 끼어들었던 건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은 정 안 되면 그냥 도망치자는 말을 한마디 덧붙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으니까.
괜히 재수 없는 소리 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사실 진양은 도망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도리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니 말이다.
일부 수도사들이 한 번의 실패만으로 엄청난 집념을 갖게 되고, 심마를 품게 되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다만 현재 영제가 신조라는 족쇄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도망은 불가능할 듯했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로 영제에게 엄청난 원한을 사게 되었다.
아마 근 수만 년 동안 영제에게 이토록 큰 원한을 산 사람은 진양이 유일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탈할 기회를 완전히 박살 내버렸으니, 영제는 진양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벌인 것에 대해 후회가 되진 않았다.
진양도 마찬가지로 영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제의 성격상 결코 진양을 가만히 살려둘 리는 없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니, 영제는 곧 진양의 천겁이고 진양 역시 영제의 천겁이 된 것이다.
그게 전부다.
진양은 상당히 평온했다.
딱히 영제에게 원한을 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상대 정도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가희와의 상의를 마쳐 갈 무렵.
빛무리가 하나 날아왔다.
응백이었다.
빛무리에서 걸어 나온 응백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제자리에 서서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응백의 확고부동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왜 이러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응백이 진양의 흑옥 신문을 본 이후로 생긴 억제할 수 없는 심정을 진양이 어찌 모르겠는가?
흑옥 신문의 응룡 조각상은 진양이 강해질수록 함께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흑옥 신문이 강해지며 조각상은 더 이상 조각상에 그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건 진작 예상하고 있던 일이다.
다만 확신이 들지 않았을 뿐.
지금껏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던 건 응백조차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는 건 작은 희망 하나뿐이다.
설령 희망이라는 것이 불확실한 것이긴 해도 그녀에겐 유일한 한 줄기의 빛이나 마찬가지다.
그녀가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유는 응백이 마지막에 했던 말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간 응룡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응룡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의 흑옥 신문을 통해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양이 응백을 믿는 건 응룡에 대한 응백의 감정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백이 계속해서 진양의 곁에서 그를 돕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
진양이라는 존재가 곧 응룡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흑옥 신문을 꺼내 응백에게 건네주었다.
“제 신문입니다. 하루 빌려드리도록 하죠.”
응백은 흑옥 신문에 새겨진 응룡 조각상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응룡 조각상 구석구석을 쓸어본 뒤 흑옥 신문을 다시 진양에게 돌려주었다.
“괜찮아요.”
어쩌면, 어쩌면 신문에 새겨진 응룡 조각상은 응룡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준 마지막 희망의 등불이 꺼져버리게 된다.
만약 지난번에 흑옥 신문을 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참의 기다림 끝에 눈앞에 보이던 불꽃이 순식간에 꺼지며 다시 암흑 상태가 되어버리는 순간.
이는 곧 견딜 수 없는 절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른 곳이었다면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괴산에서는 다르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의 불꽃을 지켜내야만 했다.
진양은 이번에는 한가롭게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고, 다른 곳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최대한 모든 정신을 끌어모아 오직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먼저 냉정한 진양이 깨닫지 못했던 천마보부터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냉정한 진양은 단순히 도움만 줄 수 있을 뿐, 과정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진정으로 깨닫고 이것을 신통력으로 만들어냈을 때, 냉정한 진양은 비로소 신통력을 부릴 수 있게 된다.
* * *
끝없는 허무 속 유일하게 보이는 한 촌 남짓한 작은 땅.
이곳에는 영제가 조각상처럼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신조의 족쇄에서 벗어나 봉호도군의 경지를 뛰어넘고자 했던 최초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절대적인 힘도 손에 넣었고, 신의 권력도 손에 넣었다.
무엇이든 순식간에 지워버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 촌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완전히 갇혀버리고 말았다.
공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허무 가운데 그의 힘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심지어 그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손에 쥔 권력, 신의 힘, 봉호도군을 초월한 힘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즉시 이곳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수만 년의 수련을 통해 쌓아온 탑을 이대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일념의 바다에서 무려 만 년 동안이나 몸부림을 친 끝에 마침내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
수만 년의 세월 끝에 마침내 지금의 경지와 힘을 손에 넣었다.
이것들은 이미 강한 집념이 되어있었다.
때문에,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집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결단력 있는 진양의 모습은 영제가 진정으로 그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었다.
겉으로는 아쉬움을 전혀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도 이런 진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의 권력을 도대체 무슨 수로 내려놓는단 말인가?
설령 그 권력이 일념의 바다 안에서만 통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삼는다면 미래에는 대황 세계의 권력마저도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곧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영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자신이라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
마치 강한 집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처럼.
영제는 멍하게 가만히 서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지만, 주위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집념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성, 영혼, 육신.
그의 모든 것들이 결단을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영제는 새롭게 얻은 힘을 기반으로 신의 힘과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도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기 시작했다.
혹은 마지막으로 남은 일 촌 남짓한 땅을 완전히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연구해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