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85
1185화 광기 어린 보복
새까만 구슬에서 흘러나온 번개가 진양의 식도와 내장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극한의 힘을 뿜어내려던 구슬은 해안 안으로 빠지고 말았다.
해안으로 들어온 구슬은 영제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냉정한 진양은 침착하게 그것을 해안 가장 깊은 곳으로 던졌다.
그리고 잠시 뒤.
구슬이 폭발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번개가 뿜어져 나오며 강력한 파괴의 힘이 수십만 리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강한 힘이 폭발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끝이었다.
폭발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번개는 다시 한곳으로 모이며 수만 리 이어진 먹구름으로 변했다.
먹구름 안쪽에선 이따금씩 번개가 번쩍이긴 했으나 조용히 허공에 떠 있는 게 전부였다.
한편, 냉정한 진양은 무표정으로 용혈보술을 시전하여 새까맣게 타버린 식도와 내장을 다시 회복했다.
이건 냉정한 진양이 생각해낸 방법 중 가장 적은 대가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만약 가희나 응백이 직접 나섰다면 상당한 양의 힘을 소모하고 나서야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영제의 공격을 무사히 받아내긴 했지만 가희와 응백의 걱정은 한층 더 깊어졌다.
방금 진양이 보여준 모습은 한 사람의 수도사가 해낼 수 있는 범위를 이미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다.
동일한 경지에 동일한 상황에 놓인 ‘인간’은 절대 해낼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사람에겐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수련의 목적은 간단히 말해서 이 한계를 조금씩 뚫기 위한 것.
그러나 냉정한 진양은 이미 그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상당히 무시무시했다.
두 사람에 비하면 경지도 한참 낮고 실력도 약했지만, 가희와 응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영제의 시선이 진양에게 향했다.
세 사람 중 가장 약한 진양만을 진정한 적수로 여기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의 경지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마치 손만 뻗어도 쉽게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과거 진양은 약한 수도사이던 시절에도 그의 손아귀를 무사히 벗어났다.
심지어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또다시 조용히 일념의 바다로 들어와 진리의 권력을 손에 넣고 그를 다시 한번 함정에 빠뜨렸다.
지금 영제는 진양의 경지가 낮다고 해서 결코 얕잡아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적은 응백이나 가희가 아닌 진양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희와 응백이 어느 정도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진양은 아무리 쳐다봐도 도무지 실력이 가늠되질 않았다.
“진양, 앞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패가 더 남아있느냐?”
“아니.”
냉정한 진양은 차갑게 대답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으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영제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넌 내가 지난 만 년간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고 천신만고 끝에 세운 신조를 빼앗아갔다. 그리고 해탈의 길까지 막아버렸지. 네가 아니었다면 난 태미마저도 함께 삼켜버렸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지.
수만 년 동안 힘들게 쌓아 올린 것들이 하찮은 네 녀석의 손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가소롭긴 하지만 진심으로 존경스럽기도 하구나. 존경의 의미에서 넌 특별히 맨 마지막에 죽여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제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기세가 하늘을 찌르며 대도(大道)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수억 명이 동시에 그의 제명(帝名)을 부르는 듯했다.
수만 리에 걸쳐 펼쳐진 위암감이 실체화되며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진양은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한 것 같은 부담을 느꼈고, 정신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생명체의 본능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하게 발휘되며 그를 제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실력의 차이다.
냉정한 진양은 기혈을 불태우며 육신의 본능과 생명체로서의 본능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리고 강제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호흡부터 시작하여 심장 박동, 혈류 등.
인간이 자발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에서 조금은 해방되었다.
기혈의 흐름도 본능의 한계에서 벗어난 듯 한층 더 거칠어졌고, 육신을 이루는 모든 세밀한 알갱이마저 전부 쥐어짜며 불태웠다.
패왕사갑을 시전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벌써 패왕사갑 오 단계에 해당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극한의 수준으로 제어된 육신이었다.
이는 오직 냉정한 진양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에겐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공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양이 거대한 경지로부터 오는 압박과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응백이 먼저 움직였다.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몸에서 지신(地神)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괴산과 한 몸이 되었다.
괴산의 힘이 영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신의 기운이 나타나기 무섭게 영제의 뒤로 허무가 펼쳐졌다.
일 촌 남짓한 그곳에는 자색 제포를 입은 남자의 허상이 서 있었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데, 마치 허공 너머의 응백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때, 위엄 넘치는 대갈이 응백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건방진 것!”
응백의 영혼과 이성이 심하게 뒤흔들렸다.
마치 지신으로서의 권력이 순간 붕괴되어버린 것처럼 그녀는 더 이상 괴산의 힘으로 영제를 압도하는 게 불가능했다.
응백은 새하얗게 질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육신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으려고 하고 있었다.
태생적인 수준의 차이 때문이었다.
“태미 천제!”
일념의 바다가 태미 천제의 유산일 줄은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상고 천정의 신들 중 서열 십 위 권과 오 위 권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오 위 권과 삼 위 권도 역시 마찬가지다.
태미 천제.
천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상고 천정에서 정점에 오른 신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개 지신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녀는 상고 명산의 지신도 아니다.
선천적인 수준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그녀는 감히 숨조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제가 돌연 뒤를 돌더니 자신의 뒤에 펼쳐진 허무 속 태미 천제의 허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선 차가운 빛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잔뜩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악의가 화산처럼 솟구치며 강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장 물렀거라!”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영제의 악의가 요동치며 하나의 검광이 만들어졌다.
검광은 곧바로 허무를 휩쓸고 지나갔다.
일 촌 남짓한 땅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허무도 점차 소멸되며 그곳은 다시 괴산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제는 진양보단 태미 천제에게 진심 어린 증오를 느꼈다.
그는 언제든지 진양에게 최대한의 고통과 함께 죽음을 선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진양을 붙잡아 평생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며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도록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진양이 아니었다면 그는 태미 천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실은 누군가의 장기 알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온갖 고생을 다하여 간신히 해탈을 하고도 결국엔 태미 천제의 장기 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대황 전체를 통틀어 오직 그만이 장기 알이 될 만한 강자였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몰래 가지고 노는 것.
이것이 바로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영제의 최후의 선이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영제가 아직 태자였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가 사랑하던 여인을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제의 폭주가 시작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날 이후 그는 모든 이들의 칭송을 받던 태자에서 무자비하고 냉혈한 폭군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그는 상고 천정과 태미 천제, 그리고 모든 판국을 짠 사람을 극도로 증오했다.
반대로 진양에겐 별다른 증오심을 느끼지 못한 것.
일개 개미 새끼에 불과한 진양이 가소롭게 기어오르긴 했지만, 영제는 그가 자신의 적수가 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에게 경의를 느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답은 최선을 다해 진양을 죽이는 것.
영제는 과감하게 자신과 일념의 바다에 남아있던 마지막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태미 천제의 징표가 기회를 노려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까지 파괴해버렸다.
영제는 태미 천제가 영원히 부활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끝없는 타락 속에 수없이 많은 세월을 흘려보내고 태미 징표마저 사라져버리길 바랐다.
이는 곧 가장 단순한 복수였다.
치명적인 곳을 찔린 영제는 엄청난 수준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태미 천제에 대한 원한은 이미 그 어떤 원한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태미 천제의 허상이 나타남으로써 그에게 세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우세를 준다고 해도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허상의 힘이나 태미 천제의 권력을 사용할 마음도 없었다.
일종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태미 천제의 허상의 도움 없이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상대를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그에겐 복수가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설령 진양 일행을 모두 쓸어버린다고 해도 태미 천제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에 큰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영제의 모습에 가희는 다소 의외인 듯하면서도 충분히 이해한 듯한 표정이었다.
창백해졌던 응백의 얼굴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괴산의 힘으로 영제를 압도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괴산의 힘을 통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전투를 하는 건 가능해졌다.
냉정한 진양은 여전히 아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바깥 상황을 살피던 진양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영제의 이런 모습에 진심으로 경의를 느꼈다.
그는 비록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폭군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이처럼 자신의 금기를 잘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 영제의 기억을 들여다본 적이 있기 때문에 영제가 어떻게 폭군이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곧 영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금기이자 역린이다.
그 누구도 감히 건드려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영제의 광기 어린 보복을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