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57
1257화 훌륭한 신물
당시 진양이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진곤의 손에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무시무시한 자라면 무슨 짓을 해도 놀랄 것도 없다.
당시 그곳에 남겨져 있던 게 진곤의 일부 정신뿐이라곤 하지만, 진곤의 본체는 분명 그곳에서 깊은 잠에 빠진 채 사망 상태를 억제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밖으로 나오는 것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황 영야의 땅에 있는 육신 상태로 망자의 세계로 올 수 있는 길로 향할 것이다.
도문의 귀재들이 육신 상태로 망자의 세계에 들어온 이후로 그 길은 더 이상 비밀통로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고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고수들은 원한다면 얼마든 이 통로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곳을 통해 망자의 세계로 온다면 소멸되었다가 다시 망자의 세계에서 육신이 형성되고, 과거의 기억이 천천히 깨어나길 기다려야 하는 과정을 겪을 필요가 없다.
예전에는 크게 염려할 것도 없었다.
진곤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진양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진양을 보내주었다.
이때 깨달았다.
진양이라는 존재는 진곤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보단 도움이 되는 존재에 가깝다는 것을.
그렇다면 서로 친구가 되진 못해도 적이 될 일은 없었다.
그러나 현재 진양은 풍도대제 쪽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상의 반응으로 보아 풍도대제와 부군은 금방 칼을 뽑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과거 진곤은 죽은 상태에서 검둥이를 난도질하여 토막 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곤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런 능력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잠재적인 위협의 존재, 그리고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진곤까지.
그러니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정 안되면 사상을 베어버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
진양의 질문에 사상이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진곤을 본 적이 있나?”
“남아있는 정신의 일부만 봤죠. 하마터면 그의 칼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게다가 시괴의 본체도 본 적이 있죠.”
“흠…….”
사상이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난 그 두 사람의 상대가 못 돼.
시괴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야. 애초에 생명체가 아니니 이곳에 올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진곤은 확실히 큰 골칫덩어리군.
특히 이곳으로 넘어오며 전생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가 익힌 노자결은 이곳에 존재하는 제약 따위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으니까.”
한참을 중얼거리던 사상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성이 찢겨 나간 부분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무리해서 기억을 계속해서 파내다 보니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게.”
사상은 다시 벌렁 누워버렸다.
마치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
진양은 주먹을 꽉 쥔 채 그를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게 한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 하죠. 하지만 적어도 뭘 해야 할지는 얘기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오면 한 곳에 불러 모으고,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이 생기면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도록 하게나.”
“그럼 적어도 신물 같은 건 줘야…….”
그러나 진양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상은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깔끔하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일단 사상을 살려놔야 풍도대제의 사람을 만났을 때 큰소리를 치거나 불복하는 자들을 베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진곤과 먼저 만나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사상을 베어버리고 부군 쪽으로 합류할 것이다.
어차피 양쪽 다 제대로 된 녀석들은 아니니 그 어느 쪽에도 진심으로 충성할 생각은 없다.
진양은 관을 꺼내 사상을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건 안 될 듯했다.
관에 들어있는 게 사상이라는 걸 누가 알아본단 말인가?
그래서 유리로 만든 관을 꺼내 사상을 집어넣었다.
신물이 없다면 사상을 신물로 삼아가지고 다니는 수밖에.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진양은 방금 사상과 나눴던 대화를 돌이켜보았다.
첫째, 사상은 시괴가 어떻게 죽은지 전혀 모르고 있다.
앞서 이곳에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괴보다 훨씬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둘째, 문.
앞서 진양이 추측했던 대로 망자의 세계의 구조는 수도사의 수행의 길과 매우 비슷했다.
팔십일 개의 부유섬은 팔십일 개의 영태를 의미했고, 영태의 끝에는 신문이 있다.
수도사의 길로 망자의 세계의 변화의 정도를 구분지은 것이다.
망자의 세계는 이제 막 영태의 경지에 올랐다.
이어서 신문이 나타난다면 다음 단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 영태의 끝엔 아직 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설령 문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미 부유섬 끝에 도달한 사람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진양은 사상을 관에 넣어 챙긴 뒤 첫 번째 부유섬으로 되돌아왔다.
산 정상에 관을 세워두고 자신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멀리 한 망자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관 안에 든 사람을 확인한 상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진양은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상대는 사상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외에 상대가 전생에 어떤 실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대략적으로 판단해냈다.
이를 마친 진양은 무표정으로 물었다.
“누구냐? 여기까지 왔으면서 기본적인 예조차 갖추지 않다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는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진령옥(鎮靈獄) 옥장 사명이 대인을 뵙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직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나지 않아 대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대인의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진경업이다. 사상 대인의 밑에서 일하고 있지. 사상 대인께선 이성이 찢겨 나가는 부상을 입으시는 바람에 회복 중이시라 지금은 내가 모든 걸 맡고 있지.”
사명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양을 아군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천천히 관 안에 들어있는 사상의 모습을 살폈다.
‘사상 대인에게 이토록 큰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다니. 그렇다면 진 대인은 절대 만만하게 볼 사람은 아니겠구나.”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저기 끝으로 가서 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거라. 굳이 그곳에 있는 강자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문이 나타나면 내게 가장 먼저 알리도록 하거라.”
“존명!”
사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곧바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진양이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잠깐. 어째서 사명 대인과 같은 성씨를 가지고 있는 거지? 사 대인과 같은 집안 출신인 게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 성은 사상 대인으로부터 받은 겁니다. 저 역시 사상 대인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군. 사상 대인께서 미처 얘기해 주지 못하신 부분인 듯하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날 사경업 대인이라고 부르도록 하거라.”
진양은 멀어져가는 사명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진령옥.
그곳은 아마 상고 지부에 있는 하나의 조직일 것이다.
어쩌면 예전에 상고 지부 조각에서 보았던 비춰진 세계와 비슷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런 곳을 관장하고 있던 자라면 전생에 분명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였을 것이다.
진양이 곧바로 그를 떠나보낸 건 물어볼 게 전혀 없어서가 아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죽음의 기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반 시진 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자가 나타났다.
그는 머리가 없었다.
아니, 머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사상의 관을 발견한 상대는 더 이상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살기는 곧장 검은 기운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사상! 마침내 이런 꼴이 되었구나! 꼴 좋다!”
진양은 곧장 화혈마도를 꺼내 참동일도(斬冬一刀)를 펼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양의 일도는 상대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는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서며 대부분의 힘을 피했고, 남은 부분은 육신의 힘으로 버텨냈다.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은 것으로 보아 진양이 펼친 것이 참동일도라는 것을 알아본 듯했다.
“진 대인의 도법이군. 당신은 누구시오?”
“진경업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잠시 후.
“사실 저는 일부러 사상의 신통력에 걸려든 척하며 이들과 한 패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를 자신의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몰래 징표를 베어버렸죠.
하지만 아직은 사상을 죽여선 안 됩니다. 아직 풍도대제의 사람들에게 알아내야 할 정보도 많이 남았고, 또 그들을 부리려면 사상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전 이곳에서 같은 편을 막고 있어야 합니다. 혹여나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면 제가 다시 환생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괴인은 손에 들고 있던 머리를 내려놓고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어쩐지. 진 대인의 도법은 함부로 전해지지 않는 건데, 어떻게 진 대인의 도법을 알고 계신가 했더니. 이런 신통력을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인, 그럼 전 뭘 하면 되겠습니까?”
진양은 소책자와 붓을 꺼냈다.
“일단 본인의 일생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적어놔야 하거든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환생에는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서 말입니다. 게다가 나중에 다시 접선할 때도 편하니…….”
진양은 상대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투 소책자에 적었다.
기록을 마친 뒤엔 늘 하던 과정을 통해 상대를 환생시켰다.
그를 떠나보내고 난 뒤 진양은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마주할 사람들에게 적당히 둘러댈 만한 내용들도 이만하면 충분히 쌓였겠지.’
과연, 사상은 훌륭한 신물이 되어주었다.
양쪽의 사람 모두 그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양쪽 모든 사람들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사상이 깨어난다면 강한 자극을 주어 다시 잠들도록 만드는 게 좋을 듯했다.
다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앞서 지나간 두 사람은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런데 어째서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했던 걸까?
서로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게다가 지금 또 다른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