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61
1261화 문을 여는 법
소 진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오. 그대가 살아있을 때 나의 문하에 있던 제자 여덟과 진선신수(鎮山神獸)를 죽이긴 했지만, 그것은 살아있을 때의 일이오. 마찬가지로 당시 내가 그대를 소멸시켜버린 것 역시 살아있을 때의 일이지.”
소 진인의 말에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의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소 진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날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당시의 원한을 아직 잊지 않은 모양이오. 다만 지금의 그대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소.
허나 그대가 나의 제자들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는 모르는 법. 또다시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없소. 그러니 미리 은원을 날려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소 진인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소 진인이 손을 뻗자 남자는 그 자리에서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죽이고 나자 소 진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무시무시한 살기도 깨끗하게 사라지며 원래의 온화한 도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뒤를 도는 순간.
주위에 있던 망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한 걸음씩 물러났다.
눈앞에서 소 진인의 무서움을 목격한 이상 그 누구도 그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멍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양은 그제서야 왜 모든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진양을 죽이러 온 것으로 오해를 했던 것이다.
소 진인은 다시 진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방금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 진인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겐가?”
“아닙니다. 전 그냥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살피러 온 것뿐입니다. 어차피 제게 들어갈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요. 괜히 달려들었다가 엄한 사람들과 은원을 맺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군. 난 또 자네가 저곳에 들어갈 생각으로 다른 이들과 경쟁을 하려는 줄 알았네. 그래서 지난번 진 빚도 갚을 겸 도와주기 위해 온 걸세. 다만 이 늙은이와 같은 생각이라는 점은 다소 의외로군.
나 역시 문 뒤의 일엔 관심 없네. 단지 여기 있으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한시라도 더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것뿐이거든.”
“어휴, 경쟁은 무슨요. 감히 저따위가 뭐라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망자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소 진인을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이런 고수와 경쟁을 한다고? 상상만 해도 골이 땡기는군…….’
‘목적이 다르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다행이다. 문을 노리고 온 게 아니었어!’
물론 진양도 겉보기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까지 온 망자들 중 상고 지부에 다른 사람을 환생시킬 순 있어도 자기 자신은 환생시킬 수 없는 애매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부는 ‘환생’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직접 환생하는 걸 본 적도 없었고, 검증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생이라는 것 자체가 상고 지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음모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굳이 이런 얘기를 해봤자 좋을 게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진양을 믿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봤던 모든 경고문을 작성한 게 진양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선행을 베풀다가 죽게 된 게 분명했다.
다른 일로도 한참 바빠 보이는 진양이 거대한 문 안쪽을 살펴볼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사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모두가 안심하는 사람은 진양이 유일했다.
때문에,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진양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괜한 문제를 일으켜 스스로 귀찮은 일을 자초하려는 자도 없었다.
괜히 상고 지부라는 벌집을 쑤셔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진양에게만큼은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된단 말이지.”
크게 할 일이 없었던 진양도 혼자 조용히 음표와 거대한 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 다른 사람들도 음표로 이루어진 미궁 속에 숨겨진 길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달라붙어 해결책을 찾고 있는 만큼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계절도 없고, 낮이나 밤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도 상당히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대략 반년쯤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서천연은 마침내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참고하여 음표로 이루어진 미궁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선구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한 이족 망자가 분신을 만들어 길을 가로지르도록 했다.
음표 속으로 들어간 망자의 분신은 쉴 새 없이 깜빡거리며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모두들 이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음표 미궁을 건너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건 진양과 소 진인 두 사람뿐이었다.
“전 가서 구경이나 해 볼 생각입니다. 마침 또 다른 볼일도 있어서요. 함께 가시겠습니까?”
“난 괜찮네. 여기서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일세. 이 늙은이는 신경 쓰지 마시고 다녀오시게나.”
진양은 소 진인과 인사를 한 후 곧장 음표 미궁을 향해 들어섰다.
음표를 따라 움직이니 마치 주위의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처럼 깜빡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음표 미궁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문에 새겨진 두 해골은 더 이상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해골의 머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마치 문 앞으로 몰려든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시무시한 위압감 외에 또 다른 힘이 모든 이들을 압도했다.
진양은 똑똑히 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진양의 백옥 신문에서 빛이 흘러나와 무지개다리를 이루며 형체 없는 힘의 압력을 견뎌냈다.
이어서 신문에서 부문이 피어오르며 훨씬 더 강한 힘이 일어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진양에게서부터 밀어냈다.
“어떻게 해야 문을 열 수 있겠소?”
한 망자가 모두에게 물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각자의 방법을 말했다.
문에 대해 깨우침을 얻어보자는 사람도 있었고, 문의 현묘함에 대해 찾아보자는 사람도 있었고, 문에 흐르는 기운을 잡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옆에서 망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서천연의 머릿속에 일전의 경험이 떠올랐다.
때론 복잡한 방법보단 단순한 방법이 답일 때도 있는 법.
여기까지 오며 문제를 해결했던 것도 전부 의외로 단순한 답뿐이었다.
‘수도사만의 방법이 아닌 평범한 방법이라…….’
서천연은 한참의 고민 끝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밀어서 여는 건 어떻겠소?”
순간 주위엔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기괴한 표정으로 서천연을 바라보았다.
한 차례 정적이 흐른 뒤.
누군가 먼저 나서서 힘으로 문을 밀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전부 달려들어 문을 밀기 시작했다.
공법이 아니라 단순히 힘으로 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온갖 강자들이 모여 공법이나 신통력이 아닌 단순한 힘을 사용하다니.
산 자의 세계였다면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때, 문에 새겨진 거대한 해골 조각의 자세가 바뀌었다.
문을 여는 것도 아니고 닫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문을 여는 자세가 된 것이다.
주위에 있던 수많은 종족의 해골 조각들은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 포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진양은 왠지 모르게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진양도 문에 손을 얹었다.
체내에서 흘러나온 힘이 거대한 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마치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를 대수로이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꽤 많은 이들이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새로 도착한 망자들도 함께 합세하여 문을 밀기 시작했다.
끼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에 아주 작은 틈이 벌어졌다.
안에선 더욱 강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안쪽에는 바깥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묵직한 힘이 모여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추측대로라면 문 뒤에는 망자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 누구도 몰래 힘을 숨겨놓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한마음이 되어 문을 열자 틈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문 사이에 벌려진 틈이 삼 척 정도 되었을 때.
문틈 가까이 있던 한 망자가 순간적으로 손을 놓으며 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천천히 열리던 문이 다시 닫히려고 했다.
“다들 잘 들으시오. 먼저 들어간다고 해서 큰 이득을 본다는 보장은 없소. 허나 여기서 서로 합심하여 문을 완전히 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할 것이오.”
털보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문을 여는 데만 집중했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며 문 안에서 빛이 밖으로 쏟아져나왔고,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신비로운 기운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망자들은 서로 질세라 문 안으로 달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군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진양의 발밑에 나타났다.
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독사처럼 진양의 발을 타고 올라왔다.
이어서 진양의 뒤로 사람의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오른손으로 진양의 머리를 노렸다.
몸을 피하려던 진양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재빨리 붓을 꺼내 상대의 몸에 징표를 남겼다.
그때, 검은 그림자의 가시가 낡은 총채에 의해 감싸진 채 진양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이어서 낡은 철검이 그림자를 꿰뚫었다.
상대는 신음을 내며 재빨리 거대한 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자 그가 휘감았던 부분의 살이 떨어져 나가며 사라져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양의 몸 절반이 뼈만 남게 되었다.
진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무표정으로 거대한 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자네가 이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네. 그가 누군지는 이 늙은이도 제대로 보진 못했네만, 아무래도 상고 천정의 사람인 것 같군. 괜찮다면 내가 대신 나서도 되겠나?”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은 완곡하게 소 진인의 호의를 거절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겨우 이런 곳에서는 날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갑작스럽게 습격을 받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러나 상고 천정의 사람들이 자신을 노리는 것도 전혀 이상할 건 없다.
현재 진양은 겉으로는 상고 지부 사람의 행세를 하며 상고 지부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거기에 환생 신통력까지 가지고 있다.
오히려 진양을 노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