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62
1262화 모든 사람을 이용해 먹은 것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상고 지부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상고 천정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진양을 습격한 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상고 천정의 사람이 그림자를 사용하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를 쫓아가지 않은 것도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손을 뻗어 문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밖으로 퍼져나오며 미친 듯이 날뛰던 힘들이 다시 문 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진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능력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거대한 두 해골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은연중에 느껴지던 적의와 힘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진양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젠장! 속았다!”
천지의 변화로부터 비롯된 물건은 어떤 것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는지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주인이 없는 상태다.
설령 그것이 선천지물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얼마든 연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문은 연화가 불가능했다.
즉,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일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오직 완전히 주인이 없는 물건만 연화시킬 수 있다.
누군가 일 할, 아니, 일 푼이라도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면 연화는 불가능하다.
방금 전 벌어졌던 모든 일을 떠올려 보니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것을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진양도 예전에 같은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부군은 아무런 소유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순간 소유권을 갖게 된 것이다.
진양은 부유섬 끝자락에 문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문이 나타났다.
부군의 신문 원본과 팔 할 이상 닮은 문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부군의 신문이 망자의 세계로 흘러들며 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변화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이 문은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어야 부군이 문의 일부 소유권을 가질 수 있을까?
단 하나의 전제 조건만 있으면 된다.
바로 이 문을 단 한 번도 연 적이 없으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문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두 개의 신문을 만들면 된다.
물론 수도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모든 사람에겐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본인의 모든 기반, 힘, 그리고 잠재력을 동원하여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신문을 만들어낸다면 하나의 신문을 만들어냈을 때보다 최소 두 단계 이상 높은 잠재력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선택을 한 수도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진양은 누군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견문도 얕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두 개의 신문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결과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기반과 기초가 강할수록 좋다는 생각에만 집중하다 보니 하마터면 하나의 신문조차 열지 못할 뻔했다.
만약 진양이 명문 문파에 속해 다른 천재들과 같이 천하의 고수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이러한 길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부군의 신문이 두 개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아예 연 적도 없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말을 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양은 아니다.
그것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자신도 두 개의 신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양 역시 두 개의 신문 중 하나인 백옥 신문을 열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백옥 신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진양은 체념하며 백옥 신문을 법보로 사용하기로 했다.
또 다른 신문인 흑옥 신문은 거대한 힘을 빌려 간신히 열 수 있었다.
다시 부군의 신문으로 돌아와서,
신문에 아무런 의미 없이 조각상이 새겨져 있을 리는 없다.
처음에는 신문에 새겨진 거대한 해골 남녀 조각상과 여러 종족의 해골 조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알 수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자신의 힘으로 신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신문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열기 위해선 여러 종족의 강자들이 합심하여 함께 문을 밀어야만 한다.
그가 살아있을 땐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게 전혀 불가능했다.
각자 서로의 이득을 찾아다니기도 바쁜데 아무 이득도 없이 남 좋은 일을 누가 한단 말인가?
그러나 망자의 세계라면 얘기가 달랐다.
방금 전 진양을 포함한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 모를 여러 종족의 강자들이 합심하여 함께 신문을 밀었다.
이 중에는 상고 천정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풍도대제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생전에 부군과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문이 부군과 관련된 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문을 열겠다는 이들의 결심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설령 진양이 방금 깨달은 모든 것들을 문을 열기 전에 깨달았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에게 얘기해 준다고 해도 이들을 막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발버둥 칠 필요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하든 결과는 결국 같을 수밖에 없으니까.
기껏해야 과정을 조금 바꾸는 게 전부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망자들이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이 문은 부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문이 열리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두 가지의 의미를 갖게 된다.
첫째, 망자의 세계에 다음 단계의 변화가 진행되며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둘째, 지금까지 굳게 닫혀있던 부군의 신문이 마침내 열리게 된다.
문이 열리기 전엔 부군은 아무런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었지만, 두 번째 의미가 생기는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진다.
두 번째 의미의 소유권이 완전히 부군 한 사람에게만 속하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의미와 두 번째 의미는 사실상 하나로 묶이게 된다.
마음대로 가르고 싶어도 가를 수가 없는 것!
그렇게 부군은 자연스럽게 거대한 문의 일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진양은 문이 열리고 나서야 마침내 습득을 시도할 기회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습득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앞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 진양의 판단을 증명할 밑받침이 되어주었다.
어째서 거대한 문 주위에 천음으로 만들어진 음표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던 걸까?
어째서 강자들이 음표 미궁을 파해하고 나서야 그곳을 건널 수 있게 만들어져있었던 걸까?
어째서 문에서 떨어진 곳에는 온갖 방해 공작이 펼쳐져 있었지만, 막상 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걸까?
어째서 문에 손을 가져다 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조차 없던 걸까?
이 모든 의문은 단 한마디로 결론지을 수 있다.
부군, 그 망할 놈이 모든 사람을 이용해 먹은 것이다.
어쩌면 거대한 문의 해골들이 진양의 눈치를 보던 것도 부군의 의도적으로 꾸며놓은 계획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해골의 행동에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서 거대한 문을 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진양뿐이기 때문이다.
진양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중 망자의 세계에 적합한 공법조차도 없다.
그러니 망자의 세계에 적합한 연화법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오직 진양만이 습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 모든 것이 상대가 일부러 꾸민 일처럼 느껴졌다.
분명 두 개의 거대한 해골에게선 영성이 있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성을 가진 두 존재가 죽어서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가 망자의 세계로 들어와 반드시 망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곧바로 망자의 세계의 변화에 뒤섞이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진 그렇다고 쳐도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있었다.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도 그 주인이 죽게 되면 습득 능력은 주인이 없는 물건으로 판정했다.
물론 아직까진 산 자의 세계에서만 확인한 규칙이긴 하지만, 아마 이곳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문을 습득할 수 없다는 건 곧 부군이 일부 소유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부군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은 죽은 후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허무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다.
허무 상태, 즉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면 주인이 있는 것으로 판정될 리 없다.
그러므로 결론을 내자면…….
일부 소유권을 쥔 부군이 이미 망자의 세계에 나타난 게 확실하다.
때문에, 소유권이 인정이 된 것이다.
설사 부군에 대한 모든 추측이 틀렸다고 해도 소유권과 관련된 부분은 틀릴 수가 없다.
망자에 나타난 자들 중 거대한 문의 일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건 오직 부군이 유일했다.
한마디의 거짓으로 온 세상을 완벽하게 속이고, 이젠 모든 사람을 이용해 스스로의 신문을 열도록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다만, 진양은 부군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으로는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귀공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은 그 어떠한 악당보다도 새까만 놈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모든 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목격한 것만 보고 따진다면 그 목적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큰 목적을 품게 되면 반드시 수많은 이들의 비참한 죽음이 뒤따르게 되는 법.
어쩌면 진양도 그 수많은 이들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빛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부군이 망자의 세계에 나타났다면, 어쩌면 문이 열리는 순간 그도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문이 가진 두 번째 의미는 그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함께 문을 밀었던 수많은 고수들 중에 부군이 숨어있었다는 뜻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부군이 생전에 가졌던 지위, 실력, 경지 등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이 순간에 망자의 세계에 나타났을 리 없다.
‘그렇다면…….’
진양은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곧장 누군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