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69
1269화 이 몸이 말한 거라고!
“그리고 보니 아직 존함을 듣지 못했군요. 존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대취라고 합니다.”
“아, 대취 대인이셨군요. 전 일단 먼저 가보겠습니다. 괜히 실력도 안 되는데 끼어들자니 겁이 나서 말입니다. 그럼 이만.”
진양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포권을 취하며 자리를 떠났다.
대취는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선 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진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와서 말을 꺼낸다고 해도 늦다.
대취는 폐허 조각을 빠져나왔다.
그의 몸은 형상과 색깔은 주위의 모습과 동화되었고, 천천히 조각처럼 맞춰지고 있는 폐허를 향해 다가갔다.
한편, 진양은 한참을 돌아 한 조각에 몸을 숨긴 채 멀어져가는 대취를 지켜보고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잠입을 할 순 없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대취는 썩 믿음직스럽지도 않았다.
왠지는 몰라도 망자의 세계엔 어리숙해 보이는 녀석들이 너무 많았다.
부유섬에서도 만났었고, 심지어 나중에 만난 풍도대제도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했다.
처음 봤을 때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그런 녀석을 만나다니.
그는 겉보기에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전부 본인의 입으로 말을 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고 천정 사람들이 단순히 조각 맞추기를 좋아해서 땅을 다시 맞추고 있는 것일까?
절대 그럴 리 없다.
누가 봐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분명 대지가 부서질 때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죽은 상고 세계는 부서지고 난 뒤 이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설령 당시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이곳까지 남아있을 리는 없다.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한때 이곳에서 죽은 망자가 유일하다.
대취가 말했다.
이곳은 마종의 땅이었고 마종에선 절세의 천재가 나타났었다고.
그러나 그는 태미 천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죽은 천재는 마존의 도결을 개선하여 큰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서도 강한 위력을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죽으며 이 공법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상고 천정 사람들이 찾으려는 건 바로 죽은 천재였다.
아마 그의 망령이 이곳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일자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지만 사용한 자는 반드시 죽게 되는 공법.
진양은 이 말을 듣자마자 곧장 자신의 십이마검을 떠올렸다.
과거 진양은 죽음을 무릅쓰고 온전하게 십이검을 펼쳤었다.
그러나 십이검이 완성되기도 전에 또 다른 공법이 되어버렸다.
그에 따라 무기도 변화했다.
검인 듯하면서도 검은 아니고, 칼인 듯하면서도 칼은 아닌 그런 상태였다.
영제를 벨 때 자기 자신도 확실하게 베었다.
진양은 지금까지 자신이 죽게 된 이유가 영제가 한발 앞서서 두 사람의 생명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제의 생기를 베면 자신의 생기를 베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취가 한 말을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십이마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십이마검은 초식도 훨씬 적고, 위력은 극단적이며, 도에 발휘하기 훨씬 더 적합하면서, 위력은 일자결에 버금가는 공법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시전 후에는 자기 자신까지 베어 죽음에 이르는 결과를 만들었다.
모든 게 한 조각처럼 맞아떨어졌다.
즉, 어쩌면 당시 자신이 사용했던 극강의 공법은 마존의 도결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당시 영제가 생명을 공유했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도 자신을 베어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십이마검이 당시 절세의 천재가 도결을 개선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맞다고 한다면, 십이마검은 어떻게 이어져 내려온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목숨까지 걸었지만 결국은 온전한 십이검을 시전하는 데 실패했다.
즉, 이 공법 자체가 온전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누구든 그런 상황에서 십이마검을 펼치면 높은 확률로 마존의 도결로 바뀌게 되는 것.
무엇보다 십이마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꽤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반적인 수도사라면 세 검만으로도 진원과 기혈을 소진하게 된다.
설령 영혼과 수명 등 불태울 수 있는 모든 걸 불태운다고 해도 제 구검까지는 펼칠 수가 없을 것이다.
태미 천제가 모두가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규칙까지 깨며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
어쩌면 개선한 공법은 위력은 거의 그대로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시전한 수도사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폐인이 되는 상황도 모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라면 태미 천제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전승된 십이마검은 사실 온전하지 않은 공법이거나, 마존 도결을 시전하기 전에 사용하는 공법이 분명하다.
끝까지 시전하다 보면 결국 도결을 시전하게 되니까.
진정한 공법은 계승될 수가 없다.
오직 마검을 만들어낸 자만이 가능하다.
일자결처럼 운이 따라줄 필요도 없지만 일자결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공법.
심지어 심각한 수준의 희생을 치를 필요도 없는 공법.
만약 이런 공법이 존재했다면 진양도 크게 두려워했을 것이다.
특히 진양의 십이마검은 망자의 세계의 제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상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공법의 가치는 한층 더 높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상고 천정 사람들이 조각 맞추기에 눈이 뒤집힌 것도 분명 이러한 이유 때문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입 큰 녀석은 자기 입으로 실컷 떠들어놓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멍청할 리 없다.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분명 진양을 설득해서 안으로 잠입하게 만든 후 뒤통수를 치려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진양은 아예 그가 제안할 여지조차도 차단해버린 것.
설령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혼자 들어갈 것이다.
진양은 망자의 세계로 건너온 후 최대한 모든 사람들을 우호적으로 대해왔다.
그러나 이유도 모른 채 무려 두 번이나 암살 시도를 당했다.
이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다.
나중에 상대가 공법을 전부 갖추고 나서 후회하면 늦는다.
무엇보다 무슨 공법을 얻을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일자결을 얻을 수도 있고, 마존 도결을 얻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보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어째서 ‘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법들은 경전보다 훨씬 더 강한 걸까?
고수들이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가 따로 있기라도 한 걸까?
진양은 몸을 숨긴 채 한 조각에서 또 다른 조각으로 옮겨가며 대취가 앞서나간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며칠 뒤.
사자결을 펼치며 주위의 미세한 정보에 집중하고 있던 진양의 눈에 대취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돌로 위장하고 한 조각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백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망자가 날아와 한참 조각 맞추기가 진행 중인 대지로 그 조각을 가져갔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는 곳을 무려 몇 군데나 지나쳤으나 그 누구도 조각에 무언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거 꽤 좋은 방법인데.’
반나절 후.
진양도 적절한 조각을 하나 찾았다.
모양도 비어있는 대지와 얼추 들어맞을 것처럼 생긴 조각이었다.
진양은 천천히 조각 안으로 들어가며 그것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망자가 날아와 그것을 대지가 있는 곳으로 밀었다.
다소 회색빛을 띤 대지에는 삼각형 모양의 빈 공간이 있었다.
거대한 망자는 가져온 조각을 빈 공간에 끼워 넣었다.
이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만 장 높이의 탑에서 은은한 빛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러자 조각과 대지 사이의 틈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한 조각이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지 아래 깊은 곳.
진양은 힘과 기운을 숨긴 채 조용히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어서 거대한 탑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흩어졌다.
진양은 그제서야 천천히 지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시 합쳐진 대지 위로 폐허가 숲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때는 상당히 번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종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마종은 마치 도문처럼 오랜 시간 전승이 이어진 거대 세력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처참하게 부서진 폐허만 봐도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종 사람들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점이 통째로 박살 나고 전멸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후대에도 마종과 관련된 기록과 이름이 남아있었다.
다만 전부 다른 이름으로 변형되어있었다.
아마 남겨진 전승들이 후세로 전해지며 벌어진 일인 듯했다.
그러나 아무 찾아도 순수한 ‘마종’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도문의 귀재들은 적절하게 머리를 잘 썼다.
이들은 시기에 적절하게 판국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대표자로 뽑아 상황에 대처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은 잔해를 살펴보던 진양은 문득 마종 사람들이 꽤 기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론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
굽히지 않고 버티다간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때도 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때.
거대한 탑에서 빛이 흘러나와 대지 전체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은 재빨리 지면 아래로 숨었다.
그러자 빛이 지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남아있던 힘은 대지로 그대로 스며들었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에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호! 태호! 태호!”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은 순식간에 수천만 명이 동시에 소리치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다.
마치 그는 대지 위에 서 있고 머리 위의 하늘이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천만 명의 외침은 위엄 넘치는 함성으로 바뀌었다.
“태호!”
그와 동시에 태호는 강한 빛을 뿜어내는 태양이 되어 끝없이 팽창하는 하늘 정중앙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진양은 마치 하나의 세계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점점 험악하게 변했다.
“내 마음속에 강제로 태호라는 말을 심어 세뇌시키려는 거냐? 일개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이 몸의 이성과 자아를 왜곡시키려고 하다니. 웃기지도 않는구나!”
진양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포효성을 터뜨렸다.
“망자의 세계에는 태양이 없다. 이건 이 몸이 말한 거라고!”
목소리가 끝없이 커진 세계 안으로 퍼져나갔다.
그 울림은 마치 천지의 진리가 된 것처럼 삽시간에 사방으로 강림했다.
끝없이 팽창하던 하늘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던 태양은 그곳에 박혀있었다.
마치 생동감 넘치는 그림과 같은 모습이었다.
진리가 강림하는 순간.
뿜어져 나오던 빛과 열이 모두 사라졌다.
태양은 빛을 잃고 파괴되었다.
세계의 진리에 의해 강제로 지워져버린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환상들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