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이 모습은 안 되겠어
피이이이이익-
거대 문어의 남아있던 기혈이 전부 거대 벌레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벌레는 점점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형상을 갖춘 벌레는 허공에서 떨어져 핏빛 호수로 빠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핏빛 호수는 전부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호수 옆에 있던 언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래에선 거대한 벌레가 튀어나와 언덕 자체를 깔끔하게 삼켜버렸다.
벌레는 계속해서 커다란 입을 벌리며 주위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 수십 리 내의 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벌레에게 집어삼켜졌다.
“소주님, 고정하시지요.”
어디선가 빛이 흘러들어오며 전신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풍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두 눈이 새빨갛게 달아 올라있는 양범을 황급히 말리기 시작했다.
“소주님, 오해십니다. 여기 있는 요왕은 사해에서 붙잡아 온 겁니다. 둘 곳이 없어 잠시 이곳에 두었던 것인데……”
전신풍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붉은빛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저항하려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붉은빛이 전신을 휘감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그렇게 그는 몸이 굳어버린 채 땅 위로 쓰러져버렸다.
“놀랍습니다. 소주님께서 혈해생만마(血海生萬魔)의 이상(異象)을 일으키실 만큼의 실력을 갖추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수준의 이상이라니……”
전신풍은 발버둥 쳤으나 허사였다.
“너희가 수련한 공법들은 완전하지 않은 만큼 허점이 존재하지. 너희들의 목숨은 내 손안에 있다. 비록 나의 경지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개미 새끼 하나 죽이는 것처럼 쉽게 널 죽일 수 있다!”
양범은 마치 시체를 바라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주님, 고정하시지요.”
곁에 있던 우수가 나섰다.
“소주님, 제가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얼마나 충직한지 이 땅이 알고 하늘이 압니다!”
전신풍은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며 금방이라도 터뜨릴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양범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소주님, 확실히 다른 마음을 먹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수가 한마디 보탰다.
“흥!”
양범의 콧방귀와 함께 붉은빛이 사라졌다. 그러자 거대한 벌레도 점점 허상이 되어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벌레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대략 검지 굵기만 한 송곳니가 날아와 전신풍의 체내로 박히며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 기회다. 최선을 다하여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허나 또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그때는 혈충(血蟲)의 먹이가 될 것이다.”
붉은빛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전신풍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버렸다. 그의 얼굴색도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분명 몸속으로 송곳니가 날아와 박혔으나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양범이 원한다면 언제든 자신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허상이 되어 사라진 혈충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전신풍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단지 간을 보려고 했었던 것이었는데.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기혈유충(嗜血蠕蟲)이라니.’
장해도군이 양범에게 이토록 무시무시한 괴수를 주었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혈유충은 수천 년은 거뜬히 살 만큼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사실은 무량도원을 쉽게 박살낼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주님, 전 그저 중요한 소식을 입수하여 한시라도 빨리 전해드리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정말로 그 어떠한 마음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전신풍은 끝까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소주님께서 찾으시는 그 진양이라는 놈. 놈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뭐?”
양범의 눈빛이 반짝였다.
“며칠 전에 횡단산맥에서 놈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한 수도사 집안의 조상 묘를 파헤치고 떠나려던 참에 발견됐다고 하더군요. 묘를 도굴당한 가족들은 크게 분노하며 큰돈을 들여 놈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전신풍은 금종이로 만들어진 현상 수배서를 공손하게 건네주었다.
금종이에 그려진 자의 얼굴은 누가 봐도 진양의 모습이었다.
종이에 그려진 진양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누군가를 약 올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느낌이었다.
* * *
횡단산맥.
진양과 똑같은 모습을 한 누군가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울창한 숲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발끝은 가볍게 땅끝을 박차며 마치 날아가듯 빠르게 움직였다.
지형은 매우 험난하고 복잡해 보였지만 그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남자는 거대한 나무 아래서 멈춰 섰다.
고개를 돌려 뒤를 살피며 더 이상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자는 이를 부득 갈며 중얼거렸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겨우 몰락한 가문의 조상 묘를 한 번 둘러봤을 뿐인데. 왜 갑자기 떼거지처럼 몰려오는 거야?”
잠시 숨을 돌린 남자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쪽으로 한 수도사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황구(黃狗)를 탄 상대방은 큰소리로 웃으며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양! 어디 이번에도 도망쳐 보시지!”
수도사가 배를 걷어차자 황구가 포효성과 함께 진양의 모습을 한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황구가 가까이 다가오자 남자는 재빨리 몸을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순식간에 황구의 등 뒤로 이동했다.
이어서 진양은 장검을 뽑아 들어 망설임 없이 황구의 엉덩이로 찔러넣었다.
푹-
장검에 찔린 황구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수십 장을 날뛰기 시작했다.
진양은 큰소리로 웃은 뒤 빠르게 몸을 움직여 거대한 나무의 뒤로 향했다. 이어서 몸집이 작아지는 듯싶더니 그대로 숲 사이로 달려갔다.
“이놈! 네 이름 심명이지? 이 몸이 똑똑히 기억해두마. 나중에 네 조상 묘를 전부 파헤쳐 일광욕을 시켜 줄 테니까 기대하거라!”
진양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숲속에 울려 퍼지는 협박 소리뿐이었다.
수도사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씩씩대며 땅으로 내려온 수도사는 황구의 상태를 살폈다.
황구의 엉덩이에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도사가 황구의 엉덩이에 박혔던 장검을 뽑아내자 황구는 상처를 핥았다. 그러나 혀가 닿기 무섭게 재채기와 함께 눈물과 콧물을 쥐어짜며 깨갱거리기 시작했다.
수도사는 황구의 피를 손끝에 적혀 맛보았다. 그러자 혀끝에서 눈물이 팽 돌 정도로 알싸한 매운맛이 느껴지며 황구처럼 눈물과 콧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진양,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쫓아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자 지나간 자리에 쌓인 낙엽 사이에서 나무뿌리에 붙어있던 그림자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림자는 형상을 갖추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몸을 털어내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멀어져 가는 수도사 무리를 바라보았다.
“겨우 그딴 실력으로 이 몸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진양은 피식 웃으며 수도사들이 간 방향과 반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숲을 빠져나온 진양이 뺨을 가볍게 만지자 겉모습이 바뀌었다.
이어서 진양은 옷도 화려한 법의로 갈아입었다.
잘생긴 귀공자의 모습을 한 진양은 성큼성큼 도시를 향해 다가갔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진양은 곧바로 이곳에서 가장 큰 주루로 향했다.
주루에 도착한 진양은 많은 양의 영석을 꺼내 들고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어서 진양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귀를 기울였다.
이곳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장씨 집안에서 꽤 큰 돈을 들였어. 이렇게 많은 금종이 수배지를 뿌리다니. 그저 오래전에 버려진 조상 묘를 파헤쳤을 뿐 아니던가? 그렇다고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일세. 근데 장씨 집안은 이미 오래전에 몰락한 집안 아니던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난 거지?”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진양은 더욱 긴장하며 귀를 바짝 기울였다.
진양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저 지나가던 길에 괜찮아 보이는 묘가 있어서 살펴보았던 것뿐인데 이렇게 난리가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신해 수도사까지 친히 움직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장씨 집안에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 진유덕이라고 불리는 자 말일세. 그자는 현천성종에서 수배령을 내린 사람일세.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행적을 찾아내진 못했다고 하더군.”
“현천성종이라고?”
“여기서 끝이 아닐세. 요 며칠 시끌벅적하다 싶어서 알아보니 마석성종과 영태성종에서도 그에게 수배령을 내린 모양일세. 심지어 만영상호도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진유덕은 몇 년 전에 이미 모습을 감추었고 지금까지도 그 행적이 묘연하다고 하지. 그러던 참에 놈의 꼬리가 붙잡힌 걸세. 모두들 거액의 현상금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듣자 하니 현상금이 상품 영기(靈器) 한 개로 올랐다고 하더군. 자기가 원하는 걸로 골라갈 수도 있고 자신에게 맞는 걸로 맞춤 제작 요청도 가능하다나 봐.”
술잔을 기울이던 진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꿀꺽-
진양은 술잔에 남은 술을 모두 비운 후 술값으로 영석 몇 개를 남겨둔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간 진양은 골목 구석으로 향했다.
이어서 진양이 가볍게 몸을 흔들자 그의 모습은 우직하게 생긴 뚱보로 변했다.
그렇다. 그는 진양이 아니라 장정의였던 것이다.
다시 골목을 빠져나온 장정의는 조용히 인파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의 행색은 누가 봐도 평범하고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산수(散修)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온갖 근심이 가득한 표정까지 더해지니 누가 봐도 돈이 다 떨어져 더 이상 수련을 할 수 없는 산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정의는 일부러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이런 표정을 지은 게 아니다.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은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진 사형,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삼대 성종도 모자라 만영상호까지 끌어들이다니. 설마 그들의 가족묘라도 파헤친 게요? 무심하기도 하지. 그렇게 좋은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날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니오?’
장정의는 매일 문파 안에서 찌그러져 고되게 수련을 하다 어쩌다 한 번 외출을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이상한 누명을 써버리게 된 것이다.
만약 장정의가 기지와 실력을 적절히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장정의는 긴 한숨과 함께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앞으로 또다시 사형의 신분으로 위장했다간 정말로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