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44
1444화 상당히 만족스러운 제자
온후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정말 만족스럽군. 진양, 정말 고맙네.”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성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온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후회할 것 같나?”
“아니. 후회하지 않을 걸세…….”
온후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의 생명의 불꽃, 그리고 생기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
일말의 원한이나 아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흡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진양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쯔쯧. 이런 사람이 고수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말이야. 참 아쉽군.”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백리칠이 진양의 목에 매달리며 물었다.
“아저씨, 이 사람을 계승자로 선택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왜 그냥 죽게 놔두신 거죠?”
“알았어. 금방 다시 만들어 줄 테니……. 응?”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을 뱉은 진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리칠이 물은 건 음식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진양은 대견하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진양은 그녀가 밑도 끝도 없이 착하기만 한 바보가 되길 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악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건 정도가 있는 법.
누군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정상이니까.
“온후는 지금까지 내가 찾아본 사람 중에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사람이야. 난 온후가 완벽한 인생을 경험하기를 바라거든.
뭐, 급할 건 없어. 일단 아침밥부터 차려줄게.”
진양은 백리칠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했다.
이론상 수명이 다하여 죽은 사람은 아무리 각사향을 써도 다시 되살릴 수 없다.
이미 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에 다시 불을 붙인다고 해봐야 얼마 유지되지 않고 다시 꺼져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까지 각사향을 써서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건 전부 수명이 다해서 죽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진양 본인도 마찬가지다.
다만 수명이라면 아직 차고 넘칠 정도로 남아있다.
진양은 각사향에 불을 붙이고 기이과를 하나 꺼내 함께 온후의 몸속에 집어넣었다.
* * *
같은 시각, 고해.
온후는 주위를 살폈다.
멀리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배 한 척이 짙은 안개를 뚫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곳엔 누군가 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뱃사공을 자처했던 사람.
살성이었다.
살성은 의아한 눈으로 온후를 바라보았다.
“이토록 약한 주제에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니?”
그때, 출처를 알 수 없는 힘이 온후를 하늘 위로 붕 띄워 올렸다.
그러자 살성의 배에서 하나의 쇠사슬이 빠르게 튀어 나가 온후를 휘감았다.
그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었다.
* * *
진양은 온후의 생기가 살아나지도 않고, 이성이 회복되지도 않는 것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지?’
진양은 일부러 특별히 수명을 수천 년이나 늘려주는 ‘특등품’ 기이과까지 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활이 되지 않았다.
기름을 충분히 채워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기엔 불이 붙지 않았다.
진양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보았다.
“설마 망자의 세계로 간 건 아니겠지?
에이, 말도 안 돼. 이렇게 약한 사람이 어떻게 망자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어?”
진양은 황급히 소설책을 살폈다.
혹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규칙에 허점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건 없었다.
즉, 수명만 충분히 보충하면 각사향으로 다시 생기에 불을 붙이는 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온후의 이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진양의 소환을 거부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고수가 아니다.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
누군가 망자의 세계에서 온후를 죽인 게 분명했다.
진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온후처럼 약한 사람이 이렇게 빨리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규칙과는 전혀 맞질 않았다.
진양은 어떻게 된 것인지 확실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모든 감각을 온후에게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는 아직 망자의 세계에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발목이 붙잡혀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진양은 붓을 꺼내 온후의 머리에 글을 적었다.
* * *
같은 시각.
온후의 머리에서 글자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는 진양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제 사람입니다. 한 번만 풀어주신다면 후하게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주님?”
살성은 곧바로 손가락을 뻗어 온후의 머리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 * *
‘문주님, 그럼 영부를 조금 더 주실 순 없겠습니까? 뱃사공이 부족해서 너무 힘듭니다.’
글을 확인한 진양은 곧바로 누가 쓴 글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살성이 쓴 글이 확실했다.
‘이런, 아예 새까맣게 잊고 있었군.’
당시 진양은 규칙 자체를 완전히 고칠 수가 없었기에 약간의 세부적인 내용만 더했었다.
뱃사공들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고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면 뱃사공을 전부 장악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배포했던 ‘증서’는 기껏해야 몇 개가 전부였다.
그 이후로 진양은 이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뭐, 그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지.”
진양은 계속해서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일단 온후를 다시 데려오는 건 급한 일이 아니다.
어렵게 직접적으로 망자의 세계와 연락이 닿은 만큼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 * *
진양은 살성에게 망자의 세계에서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도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고해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반대편으로 태워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뱃사공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량으로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는 거대한 배는 그가 가진 배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비록 뱃사공으로서의 ‘형기’는 적지 않게 늘어나긴 했지만, 그의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뱃사공 일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근래 들어서 그는 더 이상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도 않았고, 성격도 예전에 비해 많이 온순해졌다.
진양은 그렇게 살성과 두 시진 정도 떠들고 나서야 온후를 놓아달라고 했다.
온후를 휘감고 있던 쇠사슬이 풀리며 온후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끌어당겨지듯 빠른 속도로 하늘 위로 사라져버렸다.
살성은 온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과연 조사님의 안목은 틀리지 않군. 문주께선 확실히 이전에 비해 강해지셨어. 강제로 망자의 세계에 있는 망자까지도 다시 부활시키실 정도라니.”
* * *
진양은 손에 든 붓으로 온후의 이마를 찍었다.
붓이 온후의 이마를 건드리는 순간 빛이 모여들었다.
은연중에 온후의 허상이 붓을 따라 다시 육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완전히 꺼져버렸던 온후의 생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멈췄던 심장도 다시 힘차게 뛰었다.
자글자글했던 주름도 점차 사라지며 그는 다시 젊어지기 시작했다.
온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열댓 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년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온후가 눈을 떴다.
그는 멍한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겐가? 난 분명 죽었을 텐데…….”
“죽었을 텐데가 아니라 죽은 게 맞다네. 단지 내가 다시 자네를 살렸을 뿐이지.”
진양은 위장을 모두 벗으며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다음 무심보경 보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다시 기회도 주어졌고, 무심보경도 주어졌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수련하도록.
뭐, 굳이 익히지 않아도 돼. 익히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다른 공법을 찾아봐도 무방하니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온후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귀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고수들이 자신의 전승을 계승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온갖 공을 들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이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계승자를 검증하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했다.
도무지 자신의 어떤 모습이 진양을 만족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기연이 자신의 눈앞에 찾아왔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나자 백리칠이 누구인지도 떠올랐다.
그는 소년이었던 시절 온몸에서 영기를 뿜어내고 있는 한 선자(仙子)에게 길을 가르쳐준 적이 있다.
소년은 당시의 일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 바로 백리칠이었기 때문이다.
온후는 곧장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제자 온후, 사부님을 뵙습니다.”
“어허,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면서 갑자기 예를 갖추긴. 얼른 일어나.”
진양은 괜찮다는 듯 그를 일으키려 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온후는 매우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를 모두 갖춰나갔다.
그러다 자신의 손에 자글자글하던 주름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뒤늦게 살펴보니 수명도 꽤 많이 늘어났고 몸도 소년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분명 진양이 이렇게 만들어준 게 틀림없었다.
진양은 그를 망자의 세계에서 건져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명과 보경까지 주었다.
어느 하나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큰 은혜였다.
한편, 진양은 온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에 상당히 흡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온후가 완전하게 일생을 끝마치도록 하는 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 * *
하루 뒤.
“무심보경은 비록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공법이긴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단점을 안고 있는 공법이기도 해.
어떤 길을 택할지, 또 어떤 방식으로 수련을 할지는 오직 네게 달려있어.
물론 수련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네게 달려있고 말이야.”
“잘 알겠습니다.”
온후 역시 보경을 읽고 나니 진양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어째서 그가 완전히 일생을 끝마치도록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절대로 자신의 본심을 저버리지 않도록 해야 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전부 네게 달려있으니까.”
진양은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전보책과 그를 가르칠 분신을 남겨둔 채 백리칠과 함께 길을 떠났다.
적어도 문턱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니 이제 남은 건 전부 스스로의 몫이었다.
게다가 그를 가르쳐줄 분신까지 특별히 남겨두고 왔으니 초반 수련엔 보탬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원래는 다양한 사람을 살펴보며 보책을 뿌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제자를 찾게 되었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 아니라면 온후는 장차 진양이 기대하는 훌륭한 모습의 고수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