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98
1498화 완전히 간파한 듯하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셔도 좋습니다. 다만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을 낳을 뿐이죠.”
진양은 살기로 가득한 매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초에 매염을 죽이려고 찾아온 게 아니다.
단순히 그가 자신을 위한 정보원이 되었으면 했기에 찾아온 것뿐.
그러니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한편, 매염의 몸에선 강력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숨결은 점점 더 거칠어졌으며, 눈의 흰자는 점차 사라져갔고, 어느덧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입마 상태에 빠질 듯한 모습이었다.
조윤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상대를 소멸시킨다고 해서 끝날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윤은 아예 대놓고 당당하게 이곳까지 들어왔다.
그를 죽인다고 해도 또다시 다른 자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가 여기까지 나타난 것만으로도 진양의 능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십방 대제의 촘촘한 감시망을 피해 사람을 보낼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쩌면 계속해서 자신의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올지도 모른다.
매염은 곧바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이성을 되찾았다.
살기를 간신히 짓누르는 그는 돌연 진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기가 일렁이며 진양의 체내에 흐르는 진원을 전부 봉인했다.
“네놈을 계율사로 데리고 갈 것이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뭐,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요.”
진양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양이 보내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 조윤이라는 자를 계율사로 보낸다.
이것은 곧 십방 대제에게 모든 것을 넘긴다는 뜻이었다.
최대한의 손실은 막고자 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이미 궁지에 몰린 이상 더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예 수습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이다.
매염은 다시 한번 팔을 휘둘러 그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봉인시켰다.
이 순간 그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빠르게 득과 실에 대해 판단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조윤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런 그가 계율사로 들어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조윤이 무슨 일을 당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곳에서 무슨 말을 할지다.
만약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는다면 역으로 약점을 잡히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한층 더 곤란한 지경이 이를 것이고, 상대에게 끌려다니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일단 지금 상황에선 조윤을 절대 계율사의 손에 넘겨줘선 안 된다.
조윤이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와 자신을 만난 건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당하든 이미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이런 사람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계율사 안에서도 영혼이 뽑힌 채 팔백 년이나 천등(天燈)을 밝히며 말라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던 사람조차도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다음으로는 주도권에 대한 문제다.
하나의 약점을 잡혔다고 해서 아예 주도권까지 상대에게 넘겨선 안 된다.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될 것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매염은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손을 뻗어 진양을 감싸고 있는 마기를 거둬들였다.
그의 입을 다시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봉인했던 진원도 다시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진양이 원하는 건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단순히 당신을 통해 정보를 얻고 싶은 것뿐이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요.”
“좋다. 그럼 진양이 알고 싶어 하는 건 무엇이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전 단순히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급할 거 없습니다. 차차 알게 되실 거니까요.”
진양은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섰다.
두 걸음 정도 가던 그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가도 되는 거 맞죠?”
“마음대로 하거라.”
진양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손을 내밀었다.
“혹시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게 있을까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 쓰려고요.”
매염은 영패를 하나 꺼내 그에게 던졌다.
영패를 손에 넣은 진양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일단 당장은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다.
혹여나 민감한 것을 묻게 된다면 그를 궁지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가 한층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게 만들어주고 싶었고, 한층 더 십방 대제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야 앞으로도 질 좋은 정보들을 주기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진양은 그에게 사다리를 놓아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십방 대제와도 허공 너머로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진양은 곧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거리로 향했다.
* * *
진양이 떠나고 난 뒤.
매염은 진법과 금제를 펼치며 방 안을 단단히 봉쇄시켰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재차 방 안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작은 금속 원판이 들어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 영패를 꺼내 금속 원판에 끼워 넣었다.
그다음 공손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소인 매염, 사주(司主) 대인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사옵니다.”
대략 몇 다경이 지난 뒤.
원판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누군가 빛 가운데서 걸어 나왔다.
검은 장삼을 입은 한 남자였다.
아무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얼굴, 다소 하얗게 물든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눈에는 현묘함이 가득했다.
분명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매염은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십방 신조 계율사의 사주.
십방 신조 내에서 대제 다음으로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신조의 이인자였다.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차분히 자리를 잡고 앉으며 물었다.
“말해 보거라. 무슨 일로 날 찾은 것이냐?”
매염은 상당히 긴장한 눈치였다.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사주를 소환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납득할 만한 사유가 아니라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된다.
때문에 매염은 한층 더 신경 써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조윤이라는 자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길, 진양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했었습니다.”
“뭐라고?”
평온하던 사주의 눈빛이 돌연 날카롭게 변했다.
그가 말하는 오직 진양은 단 한 사람뿐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 조윤이라는 자가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아 더욱 깊은 내막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 보거라.”
“비록 짧은 식견이오나 소인은 그가 정말로 진양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진양이 소인을 통해 정보를 얻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인지는 말하지 않았으나, 추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이어서 매염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한층 더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전에 대제께서 직접 분부하신 만큼 진양과 관련된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는 소인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때문에 옆에서 대화를 들은 두 명의 수하를 죽여 입막음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우선은 상대의 요청에 응하는 척 넘어가 주었습니다.
일단은 여지를 남겨두어야 대어가 잡힐 것이라고 판단했고, 또 조윤이 말한 앞으로 연락을 주겠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급한 사안이라 도저히 보고드릴 틈이 없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매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심장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해낸 최선의 해결 방법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선 어떤 선택도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예 강행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오히려 단호하게 마음을 먹고 머리 아픈 문제를 위쪽을 향해 던진 것.
사주는 아무 말 없이 매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 다경쯤 지났을 무렵.
그가 돌연 웃음을 터뜨리며 말해다.
“이만 일어나거라. 네 판단은 아주 훌륭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상대와의 연락을 이어가도록 하고, 이 일은 폐하 외엔 더 이상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지금부터 언제 어디서든 내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사주 대인.”
매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검은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손에는 펄떡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이어서 온몸이 새까만 괴물이 그의 가슴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늑대처럼 생겼으나 두 개의 손이 달린 존재였다.
괴물은 들고 있던 심장을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순간 매염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반항할 힘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극심한 고통이 몰려와 그의 영혼과 이성, 그리고 온몸의 구석구석을 강타했다.
마치 수억 개의 바늘에 의해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괴물은 심장을 절반 정도 먹어 치우고 나서야 다시 매염의 가슴 안으로 되돌려놓았다.
이어서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췄다.
매염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약간의 혈흔이 남은 것 외에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도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한 것처럼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주가 냉담한 눈빛으로 매염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즉시 보고하도록.”
이어서 그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매염은 비틀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마치 중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얼굴은 샛노랗게 변해있었다.
아무래도 사주는 자신의 잔꾀를 완전히 간파한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찬성인 듯했다.
정보라면 얼마든 줄 수 있다.
십방 신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이 계율사니까.
다만 무엇을 어떻게 줄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즉, 이 부분만큼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