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41
1541화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
가희는 비록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많은 걱정을 안고 있었지만 쉽게 털어놓을 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한 번 시집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비록 대영을 나서자마자 발목이 붙잡히긴 했지만, 그래도 갔다 왔다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이것 때문에 진양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까 봐 오랜 시간 동안 노심초사했었다.
게다가 그녀가 진양보다 한참 더 나이가 많은 것도 걱정이었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영제의 그림자에 의해 그녀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도 걱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진양도 분명 복수를 위해 죽음을 택할 테니까.
진양이 돌연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 역시 걱정이었다.
이 외에 자신이 진양보다 높은 경지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이었다.
어쨌든 수많은 걱정들이 그녀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전장에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리는 그녀였지만, 이런 그녀조차도 수많은 걱정 앞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결국은 한 사람의 여인이다.
여인의 감정은 단순히 지식이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다소 급작스러운 혼례였기도 하고, 생각 이상으로 소박한 혼례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한층 더 기쁨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성대하고 복잡한 혼례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외한 단출한 혼례식이 더 좋았다.
그래야 훨씬 더 순수한 의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진양이 용감하게 한 걸음 다가와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기뻤다.
불꽃이 흘러나와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두 팔을 뻗으며 진양을 끌어안았다.
불꽃이 두 사람을 감싸는 순간, 진양의 체내에 있던 열반의 불꽃도 동시에 뜨겁게 타오르며 가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과 하나로 합쳐졌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눈물을 글썽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말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어요…….”
“제가 너무 늦은…….”
진양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진양의 말을 막았다.
“아뇨. 조금도 늦지 않았어요.”
침묵이 흐르며 두 사람은 완전히 불꽃에 휩싸였다.
진양이 설치해두었던 봉인도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주변엔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흔적 없는 힘이 주변을 휩쓸었다.
연회장에서 울려 퍼지던 시끌벅적한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다.
모두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쏟던 장정의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참 술잔을 주고받던 고수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연장자인 촉룡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진양의 신방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응룡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
촉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달빛이 하나로 모여들고 있었다.
모여든 힘은 성하(星河)를 따라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뻗어졌다.
수많은 별들이 마치 인간들의 미소에 화답이라도 하듯 반짝이며 빛을 냈다.
그는 긴 세월이라는 강 속에서 인간들이 남긴 수많은 흔적들을 보았다.
미개한 시대에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베어 물며 지은 환한 미소부터, 풍년이 들어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까지.
태어날 때 주변 사람들이 짓고 있는 환한 미소.
그리고 죽을 때 자신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까지.
태어날 때의 고통은 크지만, 고통 뒤에 찾아오는 기쁨은 더욱 달콤한 법.
촉룡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성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러나 두 눈에선 굵직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천존이 남긴 희자결(喜字訣)인 듯합니다.”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온 몽의가 한마디 했다.
“희자결은 상고 시대에 이미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단 한 번도 실전된 적은 없었던 겁니다.
일자결은 인간의 핏줄에 녹아있다는 전설이 있죠.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른 종족들만 해도 핏줄에 수많은 정보와 공법 등이 녹아있는데, 인간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을 리는 없죠.
다만 천존이 인간의 핏줄에 녹여 넣은 것은 단순히 신통력이나 힘만 있었던 건 아니었을 뿐이죠.”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큰 기쁨을 얻는 데 정해진 운명이나 공법, 지름길은 없다.
“훌륭합니다.”
촉룡은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희자결을 두 사람이 함께 익히는 것이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불문 수도사들 사이에 환희선(歡喜禪)이라는 수련법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은 환희를 통해 열반에 드는 것.
환희는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했다.
인간의 일자결은 제일 처음 입문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마치 봄비가 가늘고 부드럽게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는 듯한 고요함만 있었을 뿐이었다.
평온한 분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와 새의 지저귐은 마치 두 사람에게 축하의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축복하는 듯했다.
이 순간 바다의 괴수들도 평화로운 얼굴로 바다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달을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볼 순 없었지만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있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힘은 조금씩 대황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오늘 밤 모두가 큰 기쁨을 누렸다.
더 이상의 슬픔이나 분노 따위는 없었다.
천지지간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기운은 이 순간 모두 사라졌다.
방탕한 자도 스스로를 돌이켜보았고, 악인조차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 * *
다음 날.
진양은 가희를 품에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난 뒤.
그는 무언가 변화를 느낀 듯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겠네요.”
가희는 직접 진양이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진양은 조용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오늘 진양이 떠나야 한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평범한 범인 여인처럼 자신의 부군이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고 그를 배웅하고 싶었을 뿐.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당신을 도울 테니까요.”
“알았어요. 나중에 태일을 죽이고 나면 그때…….”
그러나 진양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괜히 재수 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겠죠. 큰일을 앞두고 괜한 소리를 했다간 꼭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가희는 피식 웃으며 진양의 가슴을 툭 쳤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돌아오면 반드시 그대와 혼인을 하리다’라는 말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이 몇 없다는 건 진양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예 머리를 써서 먼저 혼례를 올려버린 것이다.
“대황은 소저에게 맡길게요. 남은 건 제게 맡겨주세요.”
말을 마친 진양은 돌아섰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딛기 무섭게 무언가 잊은 듯 다시 뒤돌아섰다.
진양은 가희를 끌어안고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어서 진양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진양이 떠난 뒤.
가희의 눈빛은 굳은 의지로 반짝였다.
그녀는 곧장 궁성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대영 신조 곳곳에 울려 퍼졌다.
십방 신조와의 전면전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이제부터는 그 어떠한 희생도 아까워해선 안 된다.
전투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단숨에 밀어붙여야 한다.
대영 신조의 대제인 그녀도 이젠 직접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 * *
융합은 이제 모두 끝이 났다.
그러나 진양은 십방계로 가지 않았다.
망자의 세계로도 가지 않았다.
대신 대황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진양은 그곳에서 대황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곧 큰 전쟁이 벌어질 거야. 하지만 난 대황이 파괴되는 걸 바라지 않아. 난 이곳에 있는 모든 걸 각별히 생각하고 있거든. 이곳에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남겼던 모든 흔적들, 그리고 기억들이 남아있으니까.
긴 세월에 걸쳐 일어났던 천제, 그리고 신과의 전쟁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만약 이번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인간은 다시는 재기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겠지. 그러니 그 어떠한 희생을 감내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만 해.
지금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
먼저 전쟁에 의해 과거 최강의 세계라고 일컬어졌던 상고 세계처럼 대황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세계 자체가 죽음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곳을 완전히 망자의 세계로 만들어버리는 것.
물론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을 지켜낼 순 있을 거야.
하지만 방금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남아있는 대황이 파괴되는 걸 바라진 않아. 설사 그게 대황 구석에 있는 이름 없는 작은 섬일지라도 말이야.
그래서 세 번째 선택지를 생각했어. 바로 대황 전체를 연화시켜 해안 안으로 집어넣는 거지.
이렇게 한다면 설령 누군가 나의 계획을 눈치챈다고 해도 나의 허락 없이 대황 본토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불가능해질 테지.
이것이 내가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이야. 앞으로 삼 다경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 봐.”
복제된 십방계는 진짜 십방계와 완전히 융합되었다.
더 이상 둘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십방 대제가 이 사실을 눈치챌까 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설령 눈치챈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전면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를 이길 수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십방계에는 십방 대제만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에 있는 강자의 수만 해도 대황의 강자보다 많았다.
진양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강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강자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반을 확보하고 강자를 성장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진양의 시간은 결코 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