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45
1545화 두 번째 추측
태극(太極), 양의(兩儀),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行), 육도(六道), 칠성(七星), 팔괘(八卦), 구궁(九宮), 십방(十方).
십 대 도관의 권력은 원래부터 인간의 수행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그 힘은 모두 같다.
십 대 도관의 권력 중 일부는 인간이 연구해낸 방법을 통해 인간의 혈맥에 봉인되어 있다.
태일은 바람 재앙이라는 기회를 통해 인간의 혈맥에 봉인되지 않은 권력들까지 전부 인간의 혈맥 안에 봉인시켜버렸다.
아니, 봉인이 아니다.
칙봉이다.
태일은 십 대 권력을 전부 인간에게 칙봉한 것이다.
이때부터 십 대 도관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모든 인간이 십 대 도관이 된 것이다.
태일이 마음 놓고 신조를 세울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인간을 소멸시킬 생각이 전혀 없던 것.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완성시켜 줄 만큼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된다.
상고 시대가 막을 내리며 대부분의 십이사와 상고 시대의 고수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상고 이후에 나타난 강자들은 모두 신생 강자들이다.
십만 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줄어든 한계치까지.
이 정도면 신생 강자들을 말려 죽이기에 충분했다.
현재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모든 인간의 혈맥 안에 십 대 권력이 흐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시대의 모든 인간 강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십 대 권력의 영향 안에 들어있던 것이다.
태일은 십 대 권력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존재.
그러므로 아주 작은 변화만 일으켜도 충분했다.
도과는 일말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한 수도사의 수련의 가장 완벽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아주 미세한 오차 하나만으로도 파괴된다.
마치 반드시 정확해야만 하는 수치를 미세하게 수정한 것처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수련 경지가 무너지게 된다.
모든 인간 도군이 죽게 된다면, 인간은 무슨 수로 태일과 싸운단 말인가?
진양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태일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진양은 조용히 태일을 바라보았다.
태일 천제의 지위를 다시 되찾은 십방 대제는 학살극을 벌이고 있었다.
모든 인간 강자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죽어 나갔다.
태일은 한 사람씩 일일이 죽이는 게 귀찮았는지 아예 대놓고 범위 단위로 살인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일격을 날릴 때마다 인간 강자가 죽어 나갔고, 동시에 억에 달하는 범인이 죽어 나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저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단 하나.
가족들과 함께 모여 공포에 떠는 일뿐.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먼지가 되어 소멸하는 것뿐이다.
태일이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는 강제로 이 시대를 끝내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강자들, 전승, 문화 등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것이었다.
종말이 끝나고 난 뒤.
수천에서 수만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고 나면 이 시대에 있던 모든 것들은 기껏해야 미세한 흔적, 폐허, 혹은 후세의 누군가 발굴해낼 유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태일이 인간에게 칙봉한 권력은 세월이 흐르면 인간에게 한층 더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권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
아마 모든 인간이 소멸한다면 조금이나마 희망을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로써 인간은 자기 재기할 희망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의 한계도 도군 아래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제야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일전에 사도 수도사를 추측해 볼 때 그가 최고봉에 오르고 나서 돌연 멈춰버렸던 적이 있었다.
이는 수련을 통해 거물급 고수가 되는 순간 십방 권력이 다시 모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권력의 완전한 지배자인 태일이 이러한 권력이 다시 나타나는 걸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수도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
단순히 예외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게 아니었다.
이론상으로 본다면 이 시대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십 대 도관의 권력을 다시 응집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설사 권력을 응집하지 못한다고 해도 수련 그 자체만으로도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전승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도는 함부로 전해서는 안 된다’라는 진리를 만든 것.
어쩌면 그 뒤에 숨어있는 것은 태일의 이러한 음모일지도 모른다.
경전이 극도로 희귀해지게 된다면 구 할 이상의 공법, 비술, 신통력, 법보 등 모든 것이 십 대 권력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직 완전히 인간에게만 속한 공법만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된다.
진양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건 도과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양은 경전으로 기반을 다졌고, 여러 개의 선천지물을 통해 도기를 형성했다.
그가 배운 공법이나 비술 중에도 분명 영향을 받을 만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기까지 영향을 주기엔 부족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였다.
진양 혼자 이런 경지에 오른 태일을 죽이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아니, 죽이는 건 고사하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태일의 학살극이 끝난 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첫 번째 추측이 끝이 났다.
한층 더 신중하게 생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온갖 개고생을 하긴 했지만 추측 계획을 세운 게 잘한 일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약 이러한 과정 없이 무모하게 태일에게 달려들었다면, 지금쯤이면 망자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측을 마친 진양은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흑검으로 두 세계를 베어버렸고, 기억을 최초의 순간으로 다시 되돌렸다.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무려 수천 년의 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몽의나 다른 생명체에겐 이제 겨우 한순간이 흘렀을 뿐이다.
진양은 고개를 돌려 몽의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몽의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진양은 눈을 감고 다음 추측을 이어나갔다.
조급할 것도 없고 초조할 것도 없다.
진양은 이미 장기전으로 이어갈 생각까지 마쳤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시도해 보면 되고, 두 번으로 안 되면 열 번, 열 번으로도 안 되면 백 번, 천 번이든 계속해서 시도하면 된다.
진양은 자신이 반드시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막상 실전에 돌입했을 때 자신의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싶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망자의 세계로 가는 게 가장 싫었다.
생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했다.
두 번째 추측이 시작되었다.
진양은 우선 어떻게 해야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해결할 수가 없다.
상고 시대의 인간 선조들은 어쩌면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결말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가시를 제거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주 밖에서 부군이라는 변수를 끌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 열두 번째 십이사일지도 모르는 부군은 진양을 끌어들였다.
진정한 변수로서 말이다.
그리고 진양은 확실히 많은 것을 해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선 그렇다.
힘만 봐도 상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극복할 수 없는 열세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다.
애초에 극복할 수 없는 열세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던 것이다.
뒤늦게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미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가장 직관적이고 단순한 해결 방법도 있다.
바로 시간이다.
오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새로운 강자를 양성하는 것.
강자가 거물급 고수가 되면 십 대 도관 중 하나의 권력이 응집된다.
그러나 미리 준비를 해 둔다면 태일도 미처 발빠르게 대처하진 못할 것이다.
이때 어떤 방법으로든 권력을 인간의 혈맥에서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일을 무려 열 번이나 연달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진 구덩이를 메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태일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다.
권력을 모두 소멸시키기 위해 기껏 양성한 고수들을 전부 희생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 개의 권력이 모두 응집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수가 필요할지도 미지수다.
어쩌면 수백 명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천 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매우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애초에 수백에서 수천이나 되는 봉호도군을 양성할 수 있었다면 진작 힘으로 밀어붙여 태일을 꺾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방법도 하나 존재한다.
인간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제거하는 것이다.
혈맥이 모두 끊어지면 칙봉된 권력은 자연스럽게 다시 천지지간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어쨌든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들은 전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대영 신조와 십방 신조의 전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진양은 조용히 산 정상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
심지어 각사향으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는 일마저 화신에게 맡겨버렸다.
그렇게 어느덧 이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영 신조는 십방 신조 본토 진출을 앞두게 되었다.
진양은 그제야 눈을 뜨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나버린 세월과 함께 그의 눈빛도 바뀌어있었다.
아무리 사자결을 통해 시간을 가속화 한 추측 세계 안에 있다곤 하지만, 실제로 진양은 이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양은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일단 더 이상은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힘을 이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찾아야만 했다.
진양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지난 추측 때와 똑같이 진행되었다.
십방 대제와 교전을 벌이고, 희자결을 통해 기희와 한 몸이 되었다.
경지를 초월하는 순간 모든 힘이 진양에게 속하게 되었다.
이어서 십방 대제가 옥새를 꺼내 드는 바로 그 순간.
진양은 봉신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옥새는 단순한 신기나 천제의 권력 구상지물이 아니다.
그것은 십방 신조의 국운이 모여 만든 상징물에 해당했다.
때문에 봉신서는 제대로 된 힘을 전혀 발휘할 수가 없었다.
십방 대제는 지난 추측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태일이 되었고,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또다시 참담한 패배가 이어졌다.
태일은 이번에도 진양을 죽이지 않고 끝까지 남겨두었다.
패배한 직후 벌어질 참담한 광경을 빠짐없이 모두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진양의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밀려왔다.
분명 이것이 단순한 추측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진양은 피하지 않았다.
끝까지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했다.
특히 태일과 관련된 정보라면 사소한 것까지도 전부 기억했다.
그렇게 두 번째 추측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