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46
1546화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난다
몽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겐 그저 눈 깜짝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게 전부였다.
그러나 진양은 긴 세월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형언할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세 번째 추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망자의 세계로 가서 사람들을 불러왔다.
그리고 추측 참가자로 세계 안으로 들였다.
앞쪽의 과정은 이전과 같았다.
같은 과정이 지나간 뒤에는 정상급 전력들의 결전이 이어졌다.
태일이 권력을 수정하자 살아있는 모든 도군의 도과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때.
진양의 뒤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문의 노조와 수많은 귀재들, 풍도대제, 목사, 몽사 등…….
모두 이미 죽은 자들이다.
그들이 가진 권력은 비록 십 대 권력과 다소 엮여 있는 부분이 존재하긴 했으나, 이것은 혈맥 자체에 새겨진 게 아니라 단순히 학습을 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천제의 권력을 손에 넣은 태일의 실력은 불가사의한 수준이었다.
진양과 함께 수많은 망자들이 가세했지만 태일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또다시 모두가 죽게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진양은 냉정하게 눈앞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을 기록했다.
십방 신조는 당장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처럼 보였지만,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었다.
일단 망자의 세계에서 지원군을 불러오는 건 제외시켜야 할 듯했다.
반면 십방 신조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요소다.
그러므로 전제 조건으로 달아놓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세 번째 추측도 실패로 돌아갔다.
연달아 세 번이나 고배를 마셨지만 의욕은 한층 더 강해졌다.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매번 실패할 때마다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적과 대면한 상태에서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건 충분히 두려워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한 번에 모든 보루를 꺼내놓지 않기로 했다.
하나씩 꺼내며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추측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백 번째 고배를 마시고 난 뒤.
다시 눈을 뜬 진양의 모습을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몸에선 기혈이 빠른 속도로 메말라가고 있었다.
무려 백 번이나 되는 추측이 이어지는 동안 형성된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진양의 눈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절망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멍해져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빛도 이성을 잃은 것처럼 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무려 백 번이나 본 탓이었다.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고, 아직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몽의나 다른 사람에겐 기껏해서 이 다경 정도의 시간이 흐른게 전부였지만, 진양은 그사이 무려 수십만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성, 영혼, 육신.
그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이미 한계치에 이른 것이다.
진양의 변화를 느낀 몽의는 곧바로 손을 거둬들였다.
“진양,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냐?”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일단 회복을 해야 하니 잠시 쉬도록 하시죠.”
십방계를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꿈 세계로 향했다.
진양의 몰골을 본 몽사가 화들짝 놀라며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기혈이 바닥난 진양은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도대체 이게 무슨…….”
진양은 우선 지난 백 번의 시도를 통해 얻은 중요한 정보를 따로 기록한 뒤 망설임 없이 흑검을 휘둘러 수십만 년에 달하는 기억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눈을 뜬 진양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몽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일이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죠. 그나마 사자결을 극강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놔서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미쳐버렸을 겁니다.”
꿈 세계를 빠져나온 진양은 망자의 세계에 퍼져있는 죽음의 기운을 마구 집어삼키며 육신을 회복했다.
기혈이 바닥날 때까지 사자결을 사용해본 게 너무 오랜만인 탓일까?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했다.
다소 회복을 마친 진양은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어떤 정보도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없다.
태일의 성격부터 태일의 반응과 행동까지.
승리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선 가능성 있는 변수란 변수는 모두 고려해야 한다.
“백 번으로 안 되면 천 번을 부딪쳐보면 되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만 번, 아니, 십만 번을 부딪쳐보면 돼.”
진양은 다시 꿈 세계로 돌아와 십방계를 살피며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때, 소책자의 마지막 장을 펼치며 내용을 살피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럴 줄 알았어. 사자결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정도로 개고생을 했는데 아무런 결과물도 얻지 못했을 리 없잖아.”
진양은 다시 추측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지없이 실패로 끝났다.
태일이 진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짓을 벌여봐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소용없다. 인간을 전부 도륙하지 않는 이상 넌 절대 이길 수 없다.”
백 번의 시도를 통해 결과물을 손에 넣은 건 진양뿐만이 아니었다.
태일 역시 계속해서 추측이 이어지며 머릿속에도 미묘한 감각들이 쌓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략적인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저항할 수가 없었다.
목사가 남긴 약점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그는 진양이 목줄을 잡아끄는 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매번 추측이 이어질 때마다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대지를 바라보았다.
곳곳이 망가지고 부서진 대지와 사방에 흩날리는 먼지를 보는 그의 눈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솔직히 무서운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계속해서 가다간 모든 감각에 무뎌져 버릴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거든요.”
“그럼 포기하거라.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결말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마찬가지로 다음 시대에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도 줄 수 있다.”
“닥쳐!”
진양이 이를 바득 갈며 소리쳤다.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난 아직 지치지 않았어. 못해도 십만 번은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어?
겨우 네놈 하나 때문에 내가 변할 거 같아? 아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진양의 목소리에선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진양은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십만 번이라고 못을 박은 이상 단 한 번도 부족해선 안 된다.
한편 그런 진양의 모습에 십방 대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반복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모든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진양을 설득하는 건 결코 불가능할 듯했다.
진양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목도편에 의해 얼굴에 남겨진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십방 대제는 결코 주도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진양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십방 대제를 자신의 추측 세계 안으로 끌어올 수 있다.
또한 원하는 만큼 얼마든 추측을 다시 진행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십방 대제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하니 진양도 더 이상은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추측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백 번 단위로 나눠서 진행하고, 백 번의 추측이 모두 끝날 때마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진양과 몽의가 힘을 합치면 순식간에 수천 번의 추측을 끝내는 것도 가능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힘들면 쉬고, 회복되면 움직이고.
이런 식으로 같은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천 번, 오천 번, 그리고 만 번…….
어느덧 삼만 번이나 반복되자 십방 대제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진양 혼자만 고통받는 게 아니었다.
진양은 아예 작정하고 십방 대제까지 함께 고통의 구덩이 속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백 번의 추측이라고 해 봤자 이들에겐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아주 잠시 멍해지긴 했지만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고, 금세 다시 회복되었다.
십방 대제는 진양의 행동을 간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고통이 되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진양을 죽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중에는 진양의 행동을 파악할 때마다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양의 역겨운 행동으로 인해 그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세대나 이어지는 고통 속에 반석처럼 흔들림 없던 그의 의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거의 끝나갈 즘이 되어서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덧 오만 번째.
십방 대제의 손끝에서 펼쳐진 살초는 가희를 포함한 진양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지어 진양이 자주 가던 식당마저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버렸다.
그러나 진양은 무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십방 대제가 실수로 개미를 밟아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 십방 대제가 돌연 멈춰 섰다.
진양의 시선이 십방 대제에게 향했다.
그의 얼굴엔 마치 ‘어딘가 문제가 있군’이라고 적혀있는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어서 절망스러울 정도로 역겨운 느낌이 십방 대제를 덮쳤다.
심지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역한 느낌이었다.
“진양, 잠시 대화를 나눠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화는 개뿔!”
진양이 이를 바득 갈며 소리쳤다.
물론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괴로운 건 진양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떻게든 참아내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일 뿐.
“내가 네놈이랑 한가하게 대화나 나누려고 이러는 줄 알아?
헛된 희망은 버리는 게 좋아. 이번만큼은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먼저 죽거나, 아니며 내가 먼저 죽거나.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날 테니까!”
진양은 대답조차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다시 모든 것을 초기화했다.
이어서 육만 번째.
진양은 망자의 세계에서 불러온 고수들과 진을 갖추고 십방 대제와 격렬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쓰러지고 난 뒤.
십방 대제는 또다시 진상을 깨달았다.
“진양!”
“쯔쯧. 이번에는 저번보다는 조금 더 늦게 눈치를 챘군. 자, 그럼 어디 계속 진행해 볼까?”
“자, 잠깐…….”
대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모든 것이 초기화되었고, 같은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