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47
1547화 모의실험이 아닌 실전
잠시 휴식을 위해 진양이 눈을 뜨는 순간.
몽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양, 이만하면 충분하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답을 얻지 못했다면 함께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는 건 어떻겠나?
설사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넬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세.
자네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 이미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만큼의 일을 해냈다고.”
진양의 몰골은 처참했다.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비쩍 말라 있었으며, 눈은 퀭했고,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눈에는 초점조차도 잡혀있지 않았다.
과도하게 힘을 소모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한 탓이었다.
어느덧 한계에 가까워졌다.
이론상으로 따지자면 해안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힘을 담을 수 있는 초대형 단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
물론 힘 자체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양 자체의 한계는 존재한다.
이 정도로 극한의 상황에 몰린 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진양이 힘겹게 입을 열며 말했다.
“사숙님, 전 괜찮습니다. 십만 번 반복하겠다고 했으니 절대 한 번도 부족해선 안 되겠죠.
놈을 죽일 수 없다면 정신적으로 괴롭혀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의지가 완전히 박살 날 때까지 말이죠.
어디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보자고요.”
말을 마친 진양은 다시 꿈 세계로 돌아가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한편 몽사는 더 이상 차마 눈 뜨고 지켜만 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진양의 미간에 가볍게 손을 얹자 진양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이성까지도 완전한 휴식 상태에 이른 깊은 잠이었다.
“이미 한계치에 가까워졌어요. 이대로 계속해서 하다간 죽게 될지도 몰라요.”
몽사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옆쪽에서 백옥 신문이 솟구쳐 올랐다.
백옥 신문 표면에서 뻗어져 나온 가지는 진양의 육신 아래쪽을 받쳐주었고, 이를 통해 선초의 힘이 주입되며 진양의 육신과 정신을 회복시켰다.
몽사가 가볍게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녀는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그의 뒤로 풍수사, 목사, 풍도대제 등 이제 막 망자의 세계에서 넘어온 망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깊이 잠든 진양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이 모든 걸 진양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겁니까?
이래선 안 됩니다. 결코 진양 혼자서만 모든 짐을 짊어지도록 해선 안 됩니다.”
풍도대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제게 묻지 마십시오.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설사 무언가 알고 있는 게 하더라도 말씀드릴 수도 없고요. 그랬다간 뜻하지 않은 변화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풍수사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차마 더 이상은 진양의 몰골을 지켜볼 수가 없었기에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몽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설사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누구도 결코 진양을 비판할 순 없습니다.”
목사도 한마디를 남긴 채 조용히 사라졌다.
“문주께선 이미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아무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는 저희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문주’라고 그를 칭하는 조사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어딘가 달랐다.
그는 비로소 한층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진양 외에 도문의 문주 자리를 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도문의 귀재들도 그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참이 지난 뒤.
진양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제가 얼마나 잔 거죠?”
“많이는 아니에요.”
몽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십이, 나 얼마나 잤어?”
진양은 몽사는 무시한 채 십이에게 물었다.
“삼십일 정도 주무셨습니다.”
“사, 삼십일! 큰일이군. 나도 모르게 너무 여유를 부렸잖아.
아무래도 시간 가속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겠어. 이러다간 십방 대제 녀석이 약점을 제거할 방법을 찾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몽사는 진양을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십이가 몽사를 말렸다.
“무슨 수를 쓰든 절대 말릴 수 없을 거예요. 소협께서 얼마나 고집이 센 분인지는 제가 잘 알거든요.”
“하지만 본인은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고 늘 말버릇처럼 얘기했는걸요.”
“저도 그건 알고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말버릇일 뿐이랍니다.”
* * *
추측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십방 대제는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대제가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도 무한으로 반복되는 상황은 무시무시한 고문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게 비정상이었다.
십방 대제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불가능한 것도 문제였지만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악몽과 같은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 진양이 파둔 또 다른 함정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진양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정신을 차리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진상을 빠르게 파악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예 자발적으로 고통스러운 무한의 굴레 속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혹여나 고통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일부러 가장 아픈 곳을 찔리기도 했다.
그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 이런 고통을 줬던 사람은 없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이곳이 진양이 만들어낸 세계 안인지, 아니면 진짜 십방계 안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렇게 또다시 한 번의 추측이 끝을 맺을 무렵.
진양은 곳곳이 파괴된 대지에 선 채 십방 대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걱정 마. 아직 만 번은 더 남았으니까.”
추측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느덧 몽의도 한계에 이르려는 순간.
진양은 마침내 십만 번째 추측을 마쳤다.
또다시 잿더미가 되어버린 십방계.
진양은 돌연 기침과 함께 선혈을 토해냈다.
흩뿌려진 피는 끈적한 기름 비슷한 물질로 바뀌었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진양, 각자 한 걸음씩 물러나서 잠시 대화를 나눠보는 게 어떻겠나?”
한계에 이른 건 십방 대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의미가 없었다.
의지 하나로는 더 이상 버틸 수도 없었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더욱 극심한 고통이 밀려온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느덧 자이이성도 한계에 도달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진양과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일단 무한의 굴레부터 멈추는 게 우선이었다.
“창과 방패가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나가봤자 결국 양쪽 모두 만신창이가 되는 결과뿐이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니냐?”
진양은 심하게 몸을 비틀거렸다.
그의 일곱 구멍에서는 기름처럼 새까맣고 끈적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물론 잘 알고 있지.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박살 날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 아니야?
태일, 그럼 계속해서 놀아보자고.”
말을 마친 진양은 모습을 감추며 모든 것을 초기화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눈속임일 뿐이었다.
겉으로는 다시 초기화를 시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사라진 진양은 탁몽술을 통해 가희의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만난 가희는 여전히 붉은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지 빠르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소저, 보고 싶었어요. 정말 많이요.”
“네? 진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예요?”
“그냥 너무 오래 못 봐서요.”
확실히 진양에겐 상당히 오랜 시간이었다.
추측은 무려 십만 번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지나간 모든 시간을 합하면 족히 사억 년에서 오억 년은 될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고통이 폭발을 일으켰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수많은 잡념들, 그리고 아직 끝내지 못했던 말들도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갑작스러운 모습이긴 했으나 가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진양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한참이 지나고 난 뒤.
어느덧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진양이 입을 열었다.
“이제 전면전을 개시하도록 하죠. 더 이상은 기다릴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어요. 반드시 단숨에 십방 대제를…….”
진양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아냈다.
수많은 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탁몽술을 통해 나타났던 몽경은 무너져내렸다.
진양은 천천히 눈을 뜨며 피를 쏟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살폈다.
그리곤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태일을 죽이러 갈 겁니다. 저와 함께 가실 분 없습니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덧 수많은 망자들이 진양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은 곧장 십방계로 향했다.
이번엔 추측을 통한 모의실험이 아닌 실전이었다.
진양이 입을 벌리자 끊임없이 검은 피를 흘리고 있는 두루마리 하나가 튀어나와 손에 잡혔다.
한편 진양이 나타나자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시달렸던 십방 대제는 곧바로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지난번과는 달랐다.
죽음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과거의 인간 강자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양은 두루마리를 든 채 천마보(天魔譜)를 읊으며 최대한 모든 힘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이제 막 본격적으로 내용을 읊으려는 순간.
누군가 진양을 멈춰 세웠다.
허공에서 손이 하나 불쑥 튀어나와 진양의 어깨를 잡은 것이다.
이어서 악사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느긋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여기부턴 내가 하지.”
악사는 곧바로 천마보를 읊기 시작했다.
느긋하고 여유롭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갔고, 대신 광기 어린 모습이 나타나며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갈라지며 화염과 번개가 뒤섞인 거대 운석이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화염과 번개에 휩싸인 거대한 운석은 점차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거대한 손이 나타나 그것을 십방 신조의 제도 밖으로 튕겨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묵양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는데, 돌인지 금속인지 구분할 수 없는 괴상한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