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본체의 등장
나귀를 타고 달린 진양은 반나절 만에 사천리를 움직였다.
진양은 고심 끝에 방향을 결정했다.
현재 진양이 도망치고 있는 방향은 북쪽이 아닌 남동쪽이다.
왜 하필 남동쪽이냐?
영태성종은 일도협에서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만약 영태성녀가 보낸 고수들이 들이닥친다면 진양이 감히 미치지 않고서야 영태성종이 있는 쪽으로 도망갈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진양은 남동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움직인 진양은 숲속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한편 나귀는 지치지도 않는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진양이 굽는 고기가 완전히 익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때, 진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게 노을이 걸린 하늘 위로 오색 구름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보였다.
오색 구름은 남동쪽 방향에서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빠른 속도로 오색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유성우가 지나가며 남긴 흔적과 같은 긴 꼬리가 남았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오색 구름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꿀꺽-!
진양은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채칠향차? 설마 했는데 진짜로 나타날 줄이야.”
“흠……”
진양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생각을 마친 진양은 아직 다 구워지지 않은 고기를 나귀의 입에 쑤셔 넣은 뒤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먼 길을 직접 나선 것으로 보아 진양이 제거한 화신은 영태성녀에게 매우 중요한 화신인 듯했다.
영태성종과 진창주는 무려 삼만 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화신을 제거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영태성녀가 진창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허공을 건너뛰는 특별한 공법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특별한 비행 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다.
영태성녀의 마차인 오채칠향차는 무려 여덟 마리나 되는 쌍시용마(雙翅龍馬)가 끄는 마차다.
쌍시용마는 용마의 혈통을 가진 존재로서 강인한 체력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쌍시용마를 한 무리로 묶는다면 서로의 신통력에 힘을 입어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되고, 잠도 자지 않고 무려 한 달이나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체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평범한 수도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사실 성녀라는 이름은 성종 내에서 젊은 사람 중 한 사람을 골라 간판으로 내놓은 존재에 불과하다.
성종의 덩치가 커지며 성종 내의 자원은 더욱 제한적으로 변했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으나 성종 내의 고수나 노인들은 경쟁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들까지 경쟁에 참여하게 되면 일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성종에 칼날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성종 내에선 젊은 세대 사이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특히 성자와 성녀의 칭호를 가진 이들은 서로 간의 사이가 더욱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기회만 찾아온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베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현천성종이 서열 일 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성종의 종주들이 싸움을 벌여 정한 것이 아니다.
제자들 간의 경쟁과 실력 차이로 인해 이러한 서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전체적인 실력 면으로 현천성종의 젊은 세대는 천 년 가까이 절대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일 위라는 서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근 수십 년 동안 마석성종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간단하다.
지난 세대의 마석성종의 성자와 성녀가 전부 다른 이들에게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맞아 죽었을까?
한 사람은 현천성종의 성자에게 맞아 죽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영태성녀에게 맞아 죽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호량 삼성종(三聖宗)의 성자와 성녀는 총 여섯 명. 이들 중 현재 살아남은 사람은 영태성녀 한 사람뿐이었다.
마석성종의 성자와 성녀가 죽은 뒤 영태성자는 현천성종의 성자와 성녀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영태성자를 처치한 현천성자와 현천성녀는 곧바로 영태성녀를 새로 발견한 비경으로 끌어들인다.
이때까진 몰랐다.
그러나 당시의 전투로 두 사람은 영태성녀가 얼마나 강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현천성자와 현천성녀는 함께 영태성녀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두 사람의 호도인(護道人)은 매복하고 있다가 영태성녀의 호도인을 제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호도인이 영태성녀의 호도인을 제거하고 현천성자와 현천성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있었다.
현천성종의 두 간판이 영태성녀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참고로 두 사람의 호도인은 신해기 최고봉에 오른 고수들이다.
당시 영태성녀는 이제 막 신해기에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영태성녀는 오히려 더욱 강렬한 기세로 두 사람을 몰아붙였고, 그렇게 두 호도인까지 깔끔하게 때려죽였다.
그렇게 네 명이나 죽인 영태성녀는 시신을 챙겨 현천성종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신을 산문에 걸어두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현천성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제자 모집에까지 영향이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보통 젊은 세대들 간의 경쟁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종문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젊은 세대의 싸움엔 윗세대들이 끼어들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호도인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보호 대상을 돌봐주기 위해 존재하는 보모가 아니다.
자신의 보호 대상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구해주기 위해 있는 존재들이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가끔 젊은 세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엔 설령 보호 대상이 맞아 죽는다 하더라도 호도인이 나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조금 다르다.
호도인이 상대 종문의 젊은 세대를 상대로, 그것도 둘이나 달려들었음에도 오히려 역공에 당해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조용히 상대를 처치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체면이 심각하게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젊은 사람 간의 경쟁은 양지건 음지건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모두 이러한 경쟁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 세대 위의 고수를 보내 젊은 세대를 공격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무질서한 살육이 벌어질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젊은 세대는 종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게 된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곧바로 상대 종문 고수들의 표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천성종은 이 사건으로 금기시되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엄청나게 체면을 구기고 말았고, 이로 인해 꽤 오랜 시간을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진양이 현천성종에 있을 때 성자와 성녀의 얘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건 어째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건 이후로 죽은 성자와 성녀를 대신할 젊은 세대들이 선발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선발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영태성녀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이 말은 즉, 영태성녀가 지난 십 년 동안 무려 넷이나 되는 현천성종의 성자와 성녀, 그리고 둘이나 되는 호도인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십 년 전, 영태성녀는 현천성종의 한 고위층 장로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전투의 승패는 가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전투에선 영태성녀가 다소 우위에 있었는데, 이 일로 체면을 한 번 더 구긴 현천성종은 한동안 성자와 성녀 선발을 포기했다고 한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선발해봐야 십중팔구 영태성녀에게 또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세간에 퍼져있는 소문은 여기까지였지만 제대로 퍼져나가지 않은 다른 소문도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아직 진양이 듣지 못한 소문과 영태성종에서 간간이 뿌려대는 소문만 봐도 확실했다.
영태성녀는 감히 진양이 건드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영태성녀의 본체와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어.’
만약 그녀에게 정체를 들키기라도 한다면 진양은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진양은 숲속 양지바른 곳을 찾아 화상용을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양범도 묻어주었다.
물론 이전에 수습했던 삼장거의 시신도 잊지 않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묻어주었다.
‘휴, 이제 끝났군.’
마지막으로 삼장거의 시신까지 묻어준 진양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났다.
모든 볼일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나귀를 타고 영태성종 쪽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도망부터 가고 보자고.’
* * *
영태성녀의 오채칠향차는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일도협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후.
일도협에 도착한 오채칠향차가 지면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한 순간 쌍시용마가 갑자기 힘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차게 날갯짓을 해도 다시 날아오르지 못한 채 협곡 깊은 곳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바로 그때, 강렬한 빛이 마차 내에서 뿜어져 나오며 마차와 쌍시용마를 감쌌다.
빛은 마차와 쌍시용마를 일도협 가장자리의 땅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철컥-
마차 문이 열리며 조각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영태성녀의 본체였다.
곱게 땋아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하얀 치마, 아름다운 술이 달린 외투.
그녀의 몸에선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와 물결치며 주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리 내에 있던 모든 요괴, 짐승들이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듯 침묵에 빠졌다.
한편 수십 리 밖에 있던 수도사들도 위협을 감지한 건 마찬가지였다.
일도협으로 향하던 그들은 마치 엄청난 크기의 산봉우리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공포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튀어!”
한 신해 수도사가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방금 전 하늘 위로 빠르게 날아가던 오색 빛깔의 차련을 떠올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수십 리 밖으로 도망쳐 나오고 나서야 무시무시한 중압감이 서려 있던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대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삼원 수도사가 잔뜩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영태성녀다.”
신해 수도사의 얼굴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네? 영태성녀 말씀이십니까? 그녀가 여긴 왜 온단 말입니까?”
“그게 뭐가 그리 궁금한 게냐? 어쨌든 운이 좋았어. 괜히 잘못 걸렸다간 뼈도 못 추렸을 테니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못 믿겠단 말이냐? 멍청하긴! 영태성녀가 어째서 세간에 퍼진 소문에 비해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설마 그녀가 네게 사근사근 대해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신해 수도사는 차갑게 그를 비웃은 뒤 계속해서 몸을 돌려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