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또 다른 계략
진양은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마침내 대전 앞에 도착했다.
멀리서 볼 때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으나 막상 올라와 보니 그렇지 않았다.
대략 이십 리 정도 되는 평평하게 다져놓은 땅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정면에 위치한 무려 백 장이나 되는 대전 앞에는 현천성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들의 왼쪽에는 마석성종의 사람들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영태성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어서 아래로 세 성종에 종속된 문파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 중 현천성종의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마석성종과 영태성종이 뒤를 이었다.
진양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마석성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화련이 진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던 진양은 조용히 마석성종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영태성종 사람들이 몰린 곳엔 익숙한 두 사람, 임지청과 영태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쪽으론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석성종에 화련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정중앙에 위치한 작은 탁자 앞에 앉아있는 백발노인이 장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들 축하하러 와주어 정말로 고맙소. 참으로 영광이 아니할 수가 없구려. 그럼 일단 호양보종부터 치도록 하겠소.”
‘현천종주로군.’
진양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소문대로 상당히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젊을 때 중상을 입어 수명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삼천 살에 큰 위기를 맞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헛소문은 아닌 듯했다.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기운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양은 시선을 돌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진양에게 향해있던 시선은 현천종주가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모두 종주에게 향했다.
그러나 아닌 사람도 있었다.
진양을 바라보던 사람들 중 몇몇 사람은 곧바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현천성종의 장로로 추정되는 한 노인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마석성종의 한 여자 수도사, 그리고 영태성녀였다.
영태성녀는 곧바로 시선을 옮긴 것처럼 행동했으나 진양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시선이 조금 더 진양에게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다소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웬만해선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고수가 비록 미세하긴 해도 반응을 보였다는 건 상당히 놀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야? 날 보고 놀란 건가?’
진양은 조용히 마석성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진양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설마 내 정체를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아, 혹시 날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판 것도 영태성녀 아닐까? 왜 그런 거지? 보복 때문에? 아니면 고의로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진 형, 왜 이제 오는 겁니까?”
화련이 진양에게 다가와 물었다.
진양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옥련을 끌던 인마들이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현천성종에서 많은 인마를 준비했다고 하던데, 아마 다급하게 준비하느라 길을 모르는 초짜 인마를 데려온 모양입니다.”
화련은 크게 개의치 않다는 듯 진양을 마석성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왔군.”
진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현천성종 깊은 곳에서 날아올라 하늘 위에 걸렸다.
진짜 태양이 뿜어내는 빛조차 덮어버릴 듯한 눈부신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천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태양 가운데 한 마리의 거대한 황금새의 모습이 보였다.
황금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낸 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진양은 고개를 들고 똑바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눈이 부시지 않았다.
까마귀와 비슷한 형상을 가진 황금새의 머리에는 세 개의 화염 깃털이 달려있었고, 눈에선 순금색의 화염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이 될 것 같은 기세였다.
진양은 놀란 기색이었다.
황금새의 정체가 바로 못생긴 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모습이 대단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지금 보니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보였다.
진양의 머릿속에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위엄이었다.
[못생긴 닭, 다시 살아났군.] [눈깔이 달렸으면 똑똑하게 뜨고 쳐다보거라! 어딜 봐서 내가 못생겼단 말이냐?]닭이 발끈하며 소리를 치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휴,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진양은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유덕,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데려갈 순 없다고.]닭은 한시라도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는지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언제 널 데리고 나간다고 했어? 생각해 봐. 여기서 제일 널 데리고 현천성종을 빠져나가고 싶어 할 사람이 누구일지 말이야.] [진유덕, 또 무슨 꿍꿍이인 게냐?] [흐흐흐, 네 말이 맞아. 난 널 데리고 현천성종을 빠져나갈 수 없어.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데리고 빠져나간 다음 다시 내가 데리고 가는 건 가능하지. 여기 내 맞은편에 있는 잘생긴 노친네 보이지? 네가 자발적으로 다가온다면 설마 밀어내기야 하겠어?]진양이 수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로군!]닭은 시선을 돌려 영태종주를 바라보았다.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는 겉보기에는 사십에서 오십 대 정도로 보였다.
잘생긴 외모에서는 기품까지 느껴졌다.
[일단 소리부터 내보자고. 사람들에게 호양보종이 아직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만들어줘야 저 노인네도 협조할 테니까.]손상을 입은 호양보종과 다시 소리를 낼 수 있는 호양보종은 지니고 있는 가치가 다르다.
그때, 현천종주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타오르는 태양 곁에 착지했다.
그다음 체내에 있는 힘을 태양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둥-!
맑은 종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순간 물결이 일어나며 하늘을 뒤덮은 장막을 벗기자 검푸른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현천성종이 설치한 취영대진이 강제로 걷어진 것이다.
종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퍼져나가며 성해주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자 마석종주와 영태종주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호양보종이 울렸다는 건 곧 현천성종의 진파법보가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호량의 최강자는 여전히 현천성종이라는 것.
바로 그때였다.
붉은 태양이 갑자기 한 줄기의 빛으로 변하며 쏙- 하고 영태종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영태종주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진양 역시 놀란 척하며 화련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화 형, 설마 저거 보물이 주인을 선택한 겁니까?”
진양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쥐 죽은 듯 고요해진 장내에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시선은 영태종주에게 향해있었다.
영태종주는 웅대한 마음과 함께 큰 뜻을 품고 있었다.
바로 영태성종을 강하게 만들어 한 서열 위로 올리는 것이었다.
단순히 명성 떄문이 아닌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서였다.
이번에 연회에 참석한 것은 호양보종이 어떤 상태인지 직접 자신의 눈으로 살피기 위해서였다.
만약 호양보종이 힘을 잃었다면 마석성종과 손을 잡고 곧바로 전력을 다해 현천성종을 칠 생각이었었다.
설령 현천성종을 멸문시키는 것까진 무리일지라도 세 성종 중에 가장 뒤로 끌어내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현천성종의 일부 지역과 자원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 된 이상 영태종주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호양보종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가진 현천성종에게 누가 감히 덤빌 수 있겠는가?
마석성종과 영태성종이 괜히 조용히 지내던 것이 아니다.
두 종문의 수중에는 호양보종에 대적할만한 대규모 살상력을 가진 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양보종의 위력이 극에 달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한 기록은 세 성종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현천성종의 한 선친이 호양보종을 울려 사해에 있는 한 섬을 통째로 흔적도 없이 가라앉혀버렸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같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이끌어 낼 만한 사람은 없지만, 어쨌든 두 성종은 호양보종의 힘에 대적할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와 동일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는 법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쨌든 영태종주는 반쯤 자포자기 상태였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잔뜩 흥분하여 떨리는 가슴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순진한 사람이 아닌 만큼 가장 먼저 보였던 반응은 의심이었다.
혹여나 현천성종이 비열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손에 들려있는 손바닥만 한 종에선 따끈따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최대한 감추곤 있으나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위엄까지 더해져 이것이 진짜임을 증명했다.
죽음과 같은 정적을 깨고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영태종주에게 들린 말은 ‘보물이 주인을 선택’이 전부였다.
현천성종은 선친들로부터 내려온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주 오래전에는 호양보종을 태양으로 삼고 현천성종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매달아두었었다.
호량 전체에 위협을 가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사해에 살고 있는 생물에게 위협을 강하기 위한 목적이 훨씬 더 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현천성종은 더 이상 호양보종을 완전히 연화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현천종주조차 겨우 삼 할밖에 연화시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즉, 호양보종은 주인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래! 현천성종에 실망한 호양보종의 원령이 적합한 주인을 발견하고 현천성종을 버린 게 틀림없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영태종주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원래 계획대로 싸움을 벌여도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전세는 한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호양보종을 가지고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영태종주는 호양보종을 꽉 쥔 채 힘차게 내달렸고,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감히 어딜!”
분노 섞인 일갈과 함께 현천종주의 모습도 사라져버렸다.
어찌나 빠른지 그 속도가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모두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마석종주는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도대체 왜 일이 갑자기 이렇게 흘러가게 된 거지? 아니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계획대로 현천성종을 쳐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