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
2화 시체를 묻다
사실 그는 이 세계에서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진양은 이라는 남들과는 다른 기본 능력이 있었다. 그가 가진 기본 능력은 시체를 만지고 시체의 물건을 얻는 일종의 ‘습득 능력’이다. 그가 시체를 만지면 시체의 흔적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런 그에게 시체를 처리하는 일은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진양의 손이 시신 근처에 다가가자 진양의 손에서 흰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흰 안개는 마치 진양의 손에서 나온 다른 손 같았다.
그런데 흰 안개가 시체에 닿자!
안개 속에서 흰빛을 뿜어내는 광구(光球)가 생겨났다.
환영의 손이 진양의 손으로 다시 흘러들어오자 광구는 사라졌고, 그 안에는 빛에 가려져 있던 남색 가죽의 책이 나타났다.
“하, 기능서(技能書)가 나왔네.”
진양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다시 중년 남성의 시신을 잡자 똑같이 환영의 손이 나타나 시신을 잡았고 광구가 생겼다.
광구가 사라지자 진양의 손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혈색의 구슬이 나타났다.
빛깔은 따뜻하고 겉면은 매끄러웠다.
색깔은 마치 진짜 피가 스며든 거 같은 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외라는 표정으로 혈옥(血玉)을 만져보았다.
‘아니, 이렇게 귀한 물건이!’
‘설마 정말 이렇게 좋고 이런 진귀한 물건이 나올 줄이야.’
혈색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던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구슬은 부드러우면서도 색이 탁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에 주문이 엉켜있는 것이, 꼭 사람의 모세혈관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손을 꽉 쥐었더니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게 편안해지는 거 같았다.
그것은 옥함(玉唅)이었다.
시체를 묻을 때 시체의 입에 넣는다고 하여 다른 말로는 옥선(玉蟬)이라고도 한다.
물론 상징적이지만,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를 지녔다.
옥함은 시체가 마지막에 내뱉는 숨을 막았기에 사실 불길한 물건이었다.
원래 옥함은 돈으로서 가치가 없었다.
손에 있는 이건 분명히 옥함인데 무언가 달랐다.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게 최상품 중에서도 최상품이었다.
진양은 기쁜 마음에 나무 상자를 꺼내어 그곳에 넣었다.
시장이 열릴 때 팔면 적어도 삼 년은 먹고살 수 있는 값을 받을 게 분명했다.
진양은 그제야 생각난 듯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기능서를 꺼내 보았다.
남색 가죽의 기능서는 대부분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이번 기능서에는 방중술(房中術, 남녀의 성관계에 대한 기술) 목관 악기인 수르나이를 부는 법, 닫힌 문을 따는 법 등, 잡다한 내용만 가득 차 있었다.
만약 진양이 살던 세계의 고대 세계였다면 이 기능들을 가지고 기루를 운영하면 크게 성공할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선도 세계였다. 이곳에서는 큰 효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진양은 백색 가죽, 남색 가죽의 기능서에는 원래 흥미가 없었다. 애당초 비싼 가격에 팔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둘은 수행을 한 수도사였다. 어떻게 퇴폐적인 방중술에 관한 기능서가 나온단 말인가?
기능서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겉면에 라고 쓰여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양은 뭔가 생각난 듯 남색 가죽의 기능서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이내 경쾌한 소리가 났고 남색의 기능서가 사라지면서 작은 빛으로 변하더니 진양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진양은 두 눈을 번쩍 떴고,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의외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다양한 부전들이 담겨 있는 기능서였다.
부전은 일반 부적, 묵록(墨籙), 단서(丹書)로 나뉘었다. 부적은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희귀한 묵룩은 적어도 청림성 이쪽 부근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희귀한 것은 단서였다. 이 부전초해에도 단서는 이름만 있을 뿐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부전초해에 담긴 부적은 모두 서른여섯 종류, 그리고 모두 아홉 종류의 묵룩이 들어있었다. 이들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망라되어 있던 것이다.
이 정도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분명, 이 노인의 신분은 평범치 않은 듯했다.
기쁨도 잠시, 진양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거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축기 수도사는 평범한 신분이 아닐 텐데…….’
진양은 자신이 가진 시체를 만지는 ‘습득 능력’ 다양하게 발전시켜왔다. 시체의 물건을 ‘습득’하는 것은 물론 시체의 원기(怨氣)를 지울 수도 있었다.
원기가 사라지면 아무도 그 시체를 찾아낼 수가 없던 것이다.
진양은 이 능력을 활용해 시체를 처리해주면서 돈을 쏠쏠히 벌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능서 한 권, 혈색의 구슬 하나를 얻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진양은 이 두 사람이 설령 보통의 시체로 변하여 추적이 불가능해지더라도, 이들 배후에 있는 자가 이 물건들을 찾기 위해 추적해올 가능성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휴, 이번 돈은 뭔가 찝찝해, 기능서도 찝찝하고…….”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고는 진양은 옆방에서 나무로 만든 관을 꺼내왔다. 관의 겉면은 금빛으로 빛나고 금으로 만든 실이 둘려 있었으며 담백하고 은은한 향이 나고 있었다. 최고로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그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이 정도 관 하나를 짜려면 거금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관을 짜려면 일 품 영석 두 개면 충분했다.
두 시신을 들어 관 안에 넣었다. 진양이 조치한 두 사람의 사체는 평안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피비린내도 사라지고 죽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순전히 육신만 남은 마치 고승(高僧) 같았다.
관뚜껑을 못으로 박은 후 관을 주머니 안에 넣은 진양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진흙을 얼굴에 묻히고 영액(靈液)을 눈에 넣은 후 옷을 갈아입고 가발을 썼다. 그리고 몸을 흔들자 체구가 세 촌(寸)이 줄어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누런 얼굴에 탁한 눈빛, 구부정하게 굽은 몸과 새하얀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적막한 기운은 누가 봐도 평생을 혼자 살아온 키가 작은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의 진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것도 진양이 지난 일 년 동안 개발한 능력이었다. 얼굴을 바꾸고 뼈를 축소키고 향수를 만들어 자신의 원래의 기를 가렸다. 이렇게 하면 축기 아래의 수도사나 자신과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절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한쪽 벽에 숨겨진 작은 문으로 나왔다. 곧 그는 성 서쪽의 거리를 오가는 인파들에 묻혔고 사람들 사이에서 진양의 모습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다.
큰길을 따라가다가 성문으로 나왔지만, 성문을 지키는 병사는 벽에 기대어 하품할 뿐 진양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청림성을 벗어나면 온통 광활한 황무지였다. 저 먼 곳에 짙은 안개가 깔린 산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진양이 성 밖으로 나 있는 큰길을 따라 걷다가 큰길에서 벗어나 황폐한 땅을 따라 대략 반 시진을 걷다 보니 어두컴컴한 숲으로 덮인 산이 보였다.
죽음의 땅처럼 보이는 그곳까지 연결된 작은 길이 있었는데, 길옆에는 까마귀 무리가 나무에 앉아 진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까마귀들은 모두 청림성 서쪽 밖의 매장지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시체를 먹으며 살아갔고 가끔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다. 오늘 까마귀들한테는 진양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 거 같았다.
이는 그가 제조한 향수의 효과가 엄청나다는 걸 의미했다. 향수로 위장해서 숨결이 느껴지지 않으니 까마귀들도 그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시체를 묻으러 갈 때는 절대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진양은 계속해서 향을 피웠다.
잠시 후, 까마귀들은 더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작은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가자 안개가 자욱한 숲이 보였다. 무덤으로 가득한 숲속은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진양은 향을 피운 채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귀신의 모습이 보였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절반 정도 가자 진양은 갑자기 걸을 멈췄다.
“머나먼 그 옛날 상장군께서 떠나기 전 말씀하셨었지요. 동백꽃이 만개할 때쯤 절 데리러 오신다고. 삼선산(三仙山) 아래에서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렸지만.”
이상한 노랫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모깃소리처럼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 했다.
하지만 얼마 후, 그것은 처량하게 울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인 것이 뚜렷하게 들려왔다. 깊은 원한이 맺힌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리는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얼마 후, 처량한 노랫소리와 함께 온갖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에 음기가 점점 짙어지면서 더욱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양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속으로 이번 거래는 뭔가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시체의 흔적을 지우고 편안하게 묻어주는 것이 진양의 일이었다.
전에도 이렇게 시체를 수습해왔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장소를 찾아 묻어주면 되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이 두 시체는 흔적을 지워도 누군가 찾아낼 거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곳 청림성 부근의 유명한 음괴귀묘(陰槐鬼墓)는 몇천 년 동안 존재하고 있는 묘지였다.
생물이 자랄 수 없었고 귀신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두 명의 새로운 손님을 묻어주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고 누군가 절대 찾아낼 수도 없는 곳이었다. 시체를 버린 자들도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 절대 없었다.
불안감을 느낀 진양이 이번에는 이곳까지 와서 시체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안 좋은 점도 당연히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진양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구슬픈 노랫소리가 점점 뚜렷하게 들려왔다.
징과 북소리 같은 악기가 노래와 하나가 되어 어울렸는데 소리만 들으면 광대들이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거 같았다.
짙게 깔린 안개 속에 원래는 다른 귀신들이 종종 보이고는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 귀신들은 이성이 없었지만 야생 동물처럼 위험을 감지하는 건 누구보다 뛰어났다.
진양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 귀신을 내쫓지 않으면 움직일 방도가 없었다.
‘전에는 비록 음괴귀묘의 외곽이어도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갔는데.’
잠시 후, 멀리 떨어진 안개 속에서 귀물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홍색 옷을 입고 손에는 징과 북 등 악기를 든 귀물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단번에 보아도 신랑을 맞이하러 나온 무리인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는 기쁨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음침하고 슬펐다.
앞의 무리는 연주하고 있었고, 그 뒤를 여덟 명의 가마꾼이 주홍색의 관을 메고 따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똑같이 홍색 옷을 입은 창백한 얼굴에 억지로 야릇하게 웃고 있는 귀신들이 붉은 꽃으로 만든 나무상자를 들고 따르고 있었다.
진양은 향을 들고 제자리에 서 있었고, 그 귀신들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꼼짝도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