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도망가야 합니다!
“진룡?”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룡이라니? 진작 멸종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당시에도 진룡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곤 합니다만, 가끔씩 극소수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래된 전설인 만큼 남해도군이 벤 것이 정말로 진룡인지는 저 역시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확실히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전설이라면 전부 믿을 순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저곳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아닙니다. 진해패방과 칠십이 개의 천주는 강력한 영기 폭풍이 대황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만큼 한 줄로 세워져 있습니다. 천주를 중심으로 북쪽은 남해, 남쪽은 사해입니다. 물론 패방을 통해 남해로 들어가는 건 가장 안전한 항로이긴 합니다만, 남해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은 감히 이곳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도 안 되겠네. 우리도 해적이잖아.”
유령 해적단.
누가 봐도 이름부터 해적이다.
게다가 고작 남해에서 찔끔찔끔 활동을 이어가는 해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유령호의 선원이 대폭으로 감소하며 해적단의 전투력이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그 명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선장님,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해와 남해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게다가 저희 유령 해적단은 가끔 노획물을 처리하기 위해 남해를 찾아온 적은 있어도 이곳에서 사건을 일으키거나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는 해적단입니다. 오히려 유령 해적단은 남해에 없는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해 쪽에선 크게 반기는 추세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항해 가능하답니다.”
“그래? 별걸 다 알고 있네?”
진양은 속으로 대부 하나는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임 대부가 남겨둔 항해일지에 적혀있던 내용이었습니다.”
도파가 갑판에서 열심히 기록하던 항해일지를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표지를 가진 책자였다.
“뭐야? 어디서 찾았어?”
그렇게 찾으려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물건이 대부의 손에 있었을 줄이야.
“전임 대부의 방에 있었습니다. 상자에 보관되어있었죠. 아직은 시간이 없어서 팔십 년 정도밖에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난 됐으니까 가서 천천히 살펴보도록 해. 쓸만한 내용이 있으면 따로 정리해서 주면 고맙고. 나중에 시간 나면 살펴볼 테니까.”
진양은 두꺼운 일지를 전부 살펴볼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파는 꽤 오랜 시간을 걸려 읽었음에도 겨우 팔십 년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그렇다면 수만 년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일지를 언제 다 읽는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풍림호와 해응호로부터 전갈이 날아왔다.
남해에서 볼일이 있으니 각자 알아서 움직이자는 내용이었다.
풍림호는 본래 모험을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여정 중에 꽤 많은 보물을 얻었을 것이었다.
사냥을 좋아하는 해응호 역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바다 괴수들을 잡아들였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잡아들인 괴수들은 전부 해저 깊은 곳에서만 살아가는 괴수들이었기 때문에 남해에서 처분한다면 상당한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유령호의 재산은 전부 지하 감옥에 있었다.
잡아들인 희귀 종족도 제법 가치가 나가긴 하지만 현상금이 걸려 있는 죄수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남해에서 도망친 자들에겐 높은 액수의 현상금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단 한 번 도망치고 나면 다시 붙잡힐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먼저 그들을 잡기 위해선 무사히 사해를 건너야만 하는데, 죄수 하나 잡자고 유령 해적단과 같은 전함과 전투력을 갖추는 것보단 차라리 고액의 현상금을 거는 쪽이 훨씬 더 저렴했다.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들만 모두 처분하고 나면 유령호도 이제 다른 쪽으로 전업하는 편이 낫겠어.’
현재 유령호의 실력으로 계속해서 이전처럼 현상금 사냥꾼이나 인신매매 사업을 이어가는 건 무리였다.
유령 해적단의 세 척의 배는 모두 새하얀 돛으로 돛을 교체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범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배는 유유히 흘러 진해패방 아래쪽을 지나게 되었다.
진해패방의 상층부는 구름 속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건 하늘 높이 솟아오른 회색의 돌기둥이 구름에 꽂혀있는 것 같은 모습이 전부였다.
그렇게 진해패방을 지나 본격적으로 남해 영역으로 들어서자 영기가 눈에 띌 정도로 온화해졌다.
해수면은 잔잔했고 멀리 수많은 섬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해수면 위로는 마치 누군가 점을 찍어놓은 것처럼 수많은 작은 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현재 유령 해적단의 배엔 조타륜의 도안이 새겨진 깃발이 높이 달려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는 길에 그 누구도 유령 해적단에게 시비를 걸거나 덤벼들지 않았다.
“항해일지에서 수감자 목록 좀 찾아줘.”
도파는 곧바로 항해일지를 펼쳐 진양에게 건넸다.
진양은 항해일지를 대략적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현상금이 걸린 죄수들은 확실히 걸려 있는 액수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인간들투성이였다.
어느 세력의 굵직한 인물을 살해한 사람도 있었고, 해상강도질을 하다가 잡혔던 사람도 있었고, 세력의 미움을 사서 추격을 당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인간들은 데리고 있어봤자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괜히 탈옥할까 봐 시시각각 초조하게 감시해야 하는 불편함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빨리 넘겨버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 외에 의뢰를 받아 잡아 온 죄수들도 있었다.
연수요정을 잡아달라는 의뢰였는데, 단공도라는 섬에 있는 세력으로부터 받은 의뢰로 무려 삼십 년 전에 받은 의뢰였다.
그러나 선수금 같은 건 없었다.
아마 연수요정 자체가 희귀한 존재라 그런지 의뢰하는 자와 의뢰를 받는 자 양쪽 모두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니 등종(燈宗)이라는 문파에서도 연수요정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한 기록이 있었다.
가장 처음 의뢰를 받았던 건 무려 일천팔백 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새롭게 진양에게 선발되어 선원이 된 죄수들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었다.
도파는 유령호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바다에서 건져내게 된 경우였는데, 이마에 ‘죄’ 낙인이 찍힌 걸 보고 우선은 감옥에 가둬둔 것이었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 진 몰라도 우선 대황까지 데려가려고 했었던 듯했다.
흑피에 관한 기록도 있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먹어 치워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식성에 질린 어느 섬의 사람들이 붙잡아 유령 해적단에게 넘겨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양이 계속해서 신경 쓰던 뱀나무는 예상과는 달리 누군가 의뢰한 것이 아니라 유연히 외딴 섬에서 붙잡아 온 것이었다.
뱀나무는 섬에 살고 있는 생명체란 생명체는 전부 잡아먹어 버렸다.
그 결과 섬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버렸고, 이렇게 되자 먹을 것이 없어진 뱀나무는 다른 생명체들이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 깊은 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유령호의 손에 잡혀 독으로 가득 찬 액체에 담가진 것이었다.
여족의 전설에 따라 뱀나무는 여족들 사이에서 신성한 나무로 여겨진다.
때문에 유령호는 뱀나무를 잡아 여족에게 가져가서 여족이 가진 보물과 바꿔올 생각으로 잡아 온 것이었다.
진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나저나 뱀나무를 어떻게 빼내야 하지?’
진양조차 오 층 이하로는 내려갈 수가 없는데, 무려 팔 층에 있는 뱀나무를 빼 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뱀나무를 독에 담가서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둔 거지? 여족에선 신성하게 여겨지는 나무라며?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를 아무렇게나 독에 담가도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진양은 항해 일기를 탁- 덮은 뒤 다시 도파에게 돌려주었다.
이어서 지도를 꺼내 남해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는 한 섬을 가리켰다.
“일단 공명도로 가자. 거래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따로 미리 통보해두도록 해. 만약 상황이 잘못될 경우에는 만만한 상대다 싶으면 우리가 먼저 치고, 못 이기겠다 싶으면 곧바로 도망치는 걸로. 이상!”
도파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그가 왜 머뭇거리는지 알고 있었다.
진양의 시선이 새로 온 선원들 중 한 사람에게 향했다.
번쩍거리는 대머리에 커다랗게 이름이 새겨진 자였다.
“범건?”
“선장님, 절 기억하시는군요.”
범건이 머리를 긁적이며 재빨리 진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당연하지. 원래는 외눈 아래 있던 사람이었잖아.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순간 진양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소연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짓이로군.’
범건이 대답했다.
“외눈 대인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가서 선장님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뭐, 어찌 됐든 잘 왔어. 너, 남해 쪽 세력에 대해 잘 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좋아. 잘됐네. 그럼 대부랑 같이 공명도에 가서 감옥에 있는 죄수들 좀 처분하고 와.”
두 사람을 함께 붙여둔다고 해서 불안할 건 없었다.
한 사람은 ‘죄’ 낙인이 새겨져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 역시 ‘유배’ 낙인이 찍혀있다.
오히려 도망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때,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멀리 해수면 위로 은은한 불빛이 떠오르며 물결을 따라 움직였다.
“갑자기 웬 등불?”
진양은 눈에 진원을 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민가의 대문 앞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주홍색의 등불이었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등불들은 해수면 위로 하나 둘씩 떠오르며 조금씩 유령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선장님, 즉시 배를 돌려야 합니다! 놈들은 무두등롱(無頭燈籠)이라는 녀석들입니다!”
어느새 잔뜩 굳은 표정을 지은 도파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등불은 어느새 유령호와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한편 먼 바다에선 한 척의 작은 배가 등불을 피해 재빨리 달아나는 모습도 보였다.
진양은 친히 조타륜을 돌려 배를 왼쪽으로 돌렸다.
급선회가 이루어지며 배가 심하게 기울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순간 다행히 완전히 선회를 마쳤다.
그사이 뒤늦게 등불을 발견하는 바람에 피할 시기를 놓친 작은 배도 있었다.
작은 배로 가까이 다가온 등불은 갑자기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손잡이는 없었지만 아래로 길게 술이 늘어진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등불의 모습이었다.
등불이 튀어 오르며 등불 너머로 희미하게 비추는 불빛이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