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73
373화 명철아, 명철아~! 명철……!
아쉬울 건 없다.
어차피 또 만들면 되니까.
진양은 미련 없이 곧바로 장신구를 빼서 상자에 넣었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상자 안으로 전부 들어갔다.
그리고 진양을 가로막고 있던 무형의 힘도 사라졌다.
진양은 가볍게 뛰어 배 위에 올랐다.
딸랑-!
배가 흔들리며 선수에 달린 종이 청량한 소리를 냈다.
낡은 배는 끝없이 펼쳐진 수면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면은 마치 거울과 같이 고요하고 깨끗했다.
배가 지나갈 때 은은하게 물결이 일어나긴 했으나, 십여 장 정도 멀어지자 다시 이전과 같이 잔잔한 거울로 돌아왔다.
일정한 간격에 맞춰 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진양은 홀로 생각에 빠져있었다.
흑림해와 관련된 전설 중, 아주 먼 과거 흑림해에 상고 지부의 조각이 떨어졌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괴상한 강, 그리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배, 그 배의 노를 젓는 뱃사공까지.
세 가지를 조합해 보니 뱃사공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지금 선미에서 노를 젓고 있는 뱃사공은 전설로만 들었던 명하(冥河) 뱃사공이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상고 지부에는 총 다섯 개의 수맥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뱃사공이 있는 수맥은 그중에 두 곳이라고 했다.
현재 진양이 건너고 있는 강은 어두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자세히 보면 수많은 원귀들의 모습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주위엔 비린내가 하늘을 찌를 듯 풍겨오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조합해 보았을 때 이곳은 오대 수맥 중 한 곳인 황천수맥에서 뻗어져 나온 물길인 듯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을 홀로 건너는 건 불가능했다.
강을 건너는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방법은 진양과 같이 명하 뱃사공의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었다.
진양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무상자가 놓여있던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래서 미친 듯이 바가지를 씌운 거군.’
진양이 한참 동안 던져넣었던 동전이나 비보들은 거의 쓰레기나 다름없었던 것들이었다.
물론 후광 장신구도 다시 만들면 그만이긴 했지만, 어쨌든 던져넣은 쓰레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멀리 길게 이어진 산맥의 그림자가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산맥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강가에 닿았다.
뱃사공은 노를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리라는 뜻이군.’
진양은 배에서 내리며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럼 이만.”
진양을 내려준 뱃사공은 아무 대꾸 없이 조용히 다시 강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진양은 강가와 이어진 작은 길을 따라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어두운 하늘,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개, 그리고 산맥이 우뚝 솟아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에선 시력이 제약을 받는 듯했다.
다시 땅을 밟았으나 무형의 압력은 여전했다.
강력한 힘에 의해 진원이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에 몸 밖으로 진원을 내뿜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거의 모든 공법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후광 장신구의 위력은 수십 배 이상 늘어났었다.
심지어 기운을 불어넣을 필요도 없이 스스로 후광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부문검 역시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스스로 공기 중에 퍼져있는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곳은 상고 지부의 조각이 분명했다.
같은 시각.
정처 없이 떠돌던 최양평은 진양이 걸어온 길을 따라 강가에 도착했다.
“명철아, 어디 있는 게냐! 이 스승이 네게 먹일 탕을 끓이려고 좋은 재료를 잡아 왔는데 말이다…….”
최양평의 손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축 늘어진 음패수가 들려있었다.
진양을 떠나보낸 그는 곧바로 다시 보금자리로 향했다.
일단 며칠간 푹 자고, 나중에 진양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때 남은 빚을 갚을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약속한 이상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이대로 도망치는 건 본인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갑자기 나타난 미치광이 노인네에게 다시 붙잡힐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음패수를 잡은 최양평은 진양의 뒤를 쫓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최양평이 강가로 가까이 다가가자 수많은 기괴한 형상의 귀신들이 나타나며 최양평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양평이 매섭게 한 번 노려보자 귀신들은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끝없이 펼쳐진 강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최양평은 천천히 발을 내밀어 강을 밟았다.
그 순간 강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양평의 몸에서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와 주위를 휩쓸었다.
최양평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발을 들어 강물에서 빼냈다.
신발 밑바닥이 완전히 녹아 없어져 있었다.
심지어 발바닥 살도 완전히 녹아 새하얀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뱃사공이 나타났다.
잠시 뒤, 배는 최양평의 앞으로 다가와 멈췄다.
최양평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가볍게 예를 갖추었다.
“반갑소.”
뱃사공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 낡은 나무상자가 나타났다.
“당연히 드려야죠.”
최양평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참 동안의 진지한 고민 끝에 그는 들고 있던 음패수를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유유히 배에 올랐다.
음패수는 상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뚜껑조차 달려 있지 않은 상자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상자는 천천히 허상이 되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절망 가득한 눈빛의 음패수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또 누군가 같은 곳을 찾아왔다.
얼굴은 소년의 모습이었으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버린 남자였다.
그는 화려한 채색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어깨에는 오색 빛깔의 깃털을 가진 커다란 새가 앉아있었다.
소년은 조용히 강가에 앉아 뱃사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뱃사공이 멀리서 다가왔다.
남자의 어깨 위에 있던 새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람의 목소리를 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이어서 백살의 소년에게 말했다.
“천린, 뱃삯을 내라.”
소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기괴한 모양의 동전을 두 개 꺼내 상자에 넣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음기를 뿜어내고 있는 동전이었다.
하루 뒤, 또 누군가 이곳을 찾아왔다.
듬성듬성 보이는 백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듯한 얼굴, 그리고 등 뒤에 업힌 여자까지.
그를 본 뱃사공은 이전에 보았던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가, 심지어 미동조차 하지 않던 그가 남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것이다.
아내를 업은 남자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낡은 지폐를 하나 꺼내 나무상자에 넣었다.
겉보기엔 매우 평범한 지폐였으나 나무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두 사람이 타면서 한 사람 몫의 뱃삯만 냈지만, 뱃사공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들을 반대편으로 데려다주었을 뿐이다.
한편, 누구보다 먼저 반대편에 도착한 진양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자신보다 더 먼저 온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족적을 따라 걸었다.
꽤 깊이 들어온 것 같은데 여전히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새까맣게 물든 대지는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길게 이어진 산맥엔 식물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풍경이 바뀌었다.
마치 누군가 선으로 그어놓은 것처럼 그 선을 기준으로 산맥이 뚝 끊어졌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음기가 몰려 만들어진 안개가 천지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먼 곳까지는 살펴볼 수가 없었다.
평원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은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더욱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족적은 멀리 앞쪽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다.
‘이걸 계속해서 따라가도 되는 건가?’
바로 그때.
“명철아…….”
뒤쪽 산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진양은 훽- 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최양평이 진양의 코앞에 나타났다.
“명철아! 이 녀석, 혼자 어디로 가버린 게냐? 불 좀 잘 보고 있으라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가버리느냐.”
최양평은 진양의 팔을 붙잡으며 한참 동안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네게 탕을 끓여주려고 쌍두사를 잡아놨는데, 네가 여기까지 도망 오는 바람에 쫓아오느라 뱃사공에게 뱃삯으로 주고 말았지 뭐냐! 물론 걱정하진 말거라. 또 한 마리 잡아 오는 것도 일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잔소리를 듣고 있는 진양은 팔이 박살 나버릴 것만 같았다.
“저, 스승님. 근데 저 팔이 부러질 것 같아요.”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진양의 팔을 붙잡고 있는 최양평의 손을 가리켰다.
“아, 미안하구나. 요즘 힘 조절이 안 돼서 말이야…….”
최양평은 황급히 손을 놓아주었다.
진양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왜 또 쫓아온 거야?’
얘기를 들어보니 음패수는 또다시 재수 없게 최양평에게 붙잡힌 듯했다.
게다가 뱃삯이 되어 뱃사공에게 넘겨진 듯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건 진양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엄청나게 커다란 폭탄이 따라붙게 되었으니 말이다.
“스승님, 유명성종 녀석들을 잡으러 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황천비전 보책은 다시 찾아오신 겁니까?”
“예끼! 보책은 종문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유명성종 녀석들이 그걸 어떻게 훔쳐 간단 말이냐?”
“…….”
진양은 어떻게든 그를 떼어내고 싶었다.
“스승님, 제가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서 말인데. 그동안 쌍두사 한 마리만 더 잡아 와 주시면 안 될까요? 저번에 먹었던 탕 상당히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안 된다. 여기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널 혼자 보낼 순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스승이 너와 함께 할 테니까.”
그때, 최양평의 얼굴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곤 진양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명철아, 드디어 왔구나…….”
“…….”
이렇게 된 이상 그를 떼어내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고, 그 뒤를 최양평이 따라왔다.
그는 따라오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명철아, 여긴 어디냐?”
“아, 명철아. 여기 있었구나.”
“명철아, 배고프지 않니? 탕이라도 좀 끓여줄까?”
최양평과 함께 한지 겨우 하루가 지났으나 진양은 마치 십 년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지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