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누가 소문을 퍼트린 게냐!
“어휴, 말도 마시지요…….”
이제 보니, 관사의 손에는 하나의 명부가 들려있었다.
“허 대인께서 도대체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세자께서 청아하고 맑은 소녀들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여인들을 보내오신 겁니다.”
그러나 끌려온 것치곤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세자의 시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 주의 주목이나 되는 놈이 세자에게 여자나 갖다 바치다니. 그것도 새하얀 대낮에 말이야. 적당히 숨기기라도 해야지…….’
진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인, 허 대인과 후야께선 편청(偏廳)에서 얘기를 나누시는 중입니다. 그쪽으로 모실까요?”
“됐어. 나중에 허문정 그 사람이 가고 나면 만나도록 할게.”
진양은 도저히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편청 쪽에서 허문정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필…….’
진양을 발견한 허문정은 눈빛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관료의 기질이 물씬 풍기는 걸음걸이로 말이다.
“하하하! 진 동생,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제 막 폐관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보아하니 승급한 모양이구려. 상처도 다 나은 것 같은데, 축배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을 했다.
“아닙니다. 상처는 아마 오랜 시간 더 요양해야 완전히 나을 듯합니다. 게다가 영태도 겨우 한 품계밖에 응집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좋은 소식도 아닙니다. 그저 나중에 운 좋게 절세의 보물이라도 찾아 부족함을 메꿀 수 있길 바랄 뿐이지요.”
진양은 잔뜩 실망한 척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그의 앞에 나타난 영태의 허상은 겨우 한 품계뿐이었다.
영태 수도사 중에서도 가장 미래도, 답도 없는 그런 유형이었다.
특별한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그의 발전은 여기까지일 것이었다.
이보다 더 처참한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허문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동정하는 듯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진양을 위로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언젠간 반드시 빛을 보는 날이 오게 될 겁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기에 허문정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곧장 자리를 떠나버렸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양은 피식 웃었다.
‘난 또. 부족한 실력을 채워줄 보물이라도 찾아주겠다고 장담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괜히 도와줬나…….’
보물을 뜯어낼 마음은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허문정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뜯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진양이 영태로 진급했으나 겨우 한 품계밖에 응집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흘렸으니, 소식을 궁금해할 자들의 귀에는 곧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양 자신도 누군가 겨우 영태 일 품계만 응집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영태 경지에 오르지 못하거나, 아니면 최소 일곱에서 여덟 품계는 응집하는 법이거늘.
게다가 겨우 일곱에서 여덟 품계밖에 응집시키지 못한 자들은 이미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문정 같이 뻔뻔한 녀석마저 겁을 먹고 도망치다니.
진양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현재 상황으로선 스스로를 약해 빠진 비운의 수도사로 포장하는 편이 가장 나았다.
뒤를 봐주는 명문 가문이나 문파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대영 신조 사람들에게 있어 진양은 그저 산수에 불가능하다.
산수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 약해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편청으로 들어서자 여양후가 진양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이어서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정말로 겨우 한 품계밖에 응집하지 못한 겐가?”
“뭐, 그렇긴 합니다만…….”
진양이 바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인간이 대낮부터 여긴 무슨 일입니까?”
“일이 있으니까 왔지. 신전후 녀석, 아주 제대로 걸려들었어. 그게 아니었다면 허문정 저 인간이 이리 대담하게 굴 수 있을까?”
여양후는 통쾌하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밀창고 때문입니까?”
“맞아. 이제 막 들은 소식인데, 녀석들 정말로 전조 현경사의 비밀창고를 찾은 모양이더군. 게다가 안에는 대윤 신조의 제군 법신까지 들어있었다고 해. 법신이 남아있다는 건 대윤 신조의 대제가 정말로 죽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별도의 수작을 부려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제군 법신이라…….”
조각상이 도장을 넘기겠다고 말하기 무섭게 도장을 습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법신과 대제는 본체와 분신 정도 되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습득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지금까진 대윤 신조가 멸망하며 대제도 함께 죽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대제는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닌 듯했다.
“흐흐,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게다가 남아있는 제군 법신도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중요한 건 대윤 신조의 전국 옥새를 누군가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는 거지. 제군 법신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더군. 게다가 옥새를 가져간 사람이 대영 신조의 사람이라던데. 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신전후는 아마도 상당한 곤욕을 치르게 될 게야.”
“하하하! 그게 사실입니까?”
진양 역시 후련하다는 듯 큰소리로 웃었다.
역시, 조각상은 진양을 함정에 빠트리려 했던 것이 확실했다.
‘겨우 그따위 유혹에 넘어갈 줄 알았냐? 흐흐…….’
게다가 놈은 진양을 대영 신조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건 대영 신조의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몰려왔던 대영 신조의 사람들이 전부 함정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 나니 제군 법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됐다.
앞서 시험들을 모두 이겨내고 마지막까지 홀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었다.
옥새와 같은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고도 사용하지 않거나 버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노예 계약서에 서명한다면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대영 신조에게 얘기한 것은 스스로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칼부림을 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누군가를 살짝 모함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함을 당하게 된다면 누구든 진위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영 신조와 싸우도록 부추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설령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크게 가치 없는 것들을 잃는 게 전부였다.
적어도 대윤 신조가 다시 부활하기 전까지는 옥새는 별다른 쓸모가 없을 것이었다.
신조의 사람이라면 신경 쓰지 않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특히, 대제가 가장 거슬려 하는 것이 바로 이 물건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또 다른 무언가 떠올랐다.
“소식은 어디서 듣게 되신 겁니까?”
“신전후가 보냈던 사람들은 제군 법신의 일격에 모두 말살당했는데, 유일하게 함께 갔던 예부의 어느 주사만 살아남아 이 사실을 밖으로 전했다네.
얘기를 들어보니 신전후의 사람들이 제군 법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먼저 손을 썼다고 하더군. 미친놈들! 그래서 전부 골로 가버린 것이지.”
“쯔쯧……. 그렇군요.”
이래서 사람은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들이박을 줄만 안다면 결국 저런 꼴이 나는 것이다.
진양은 순간 구지신후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조에서 예부의 주사를 함께 보낼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조의 옥새와 제군 법신이 걸려있는 만큼 예부 주사가 거짓을 고했을 리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대담한 자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매사에 필요 이상으로 신중하던 허문정이 대놓고 대낮부터 안기휘를 찾아온 것으로 모자라 여인까지 보내온 이유를 완전히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신전후에 대한 처벌이 벌써 결정이 났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문득 무언가 떠오른 진양이 물었다.
“사형, 여기서 신전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실 생각 없으십니까?”
“또 무슨 나쁜 계획이라도 떠오른 겐가?”
진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신전후의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릴 테니까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비밀? 무슨 비밀?”
“신전후 그 인간, 삼신보술을 익혔습니다.”
“뭐?”
놀란 여양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의자가 박살 나버리고 말았다.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허나, 이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입니다.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죠. 겨우 삼신보술로 만들어낸 화신 따위에게 우리 황천마종의 종주를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신조에서는 삼신보술을 익힌 사람들을 판별해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여양후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한참 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다시 한마디 물었다.
“진양, 이건 아주 엄중한 사안이라네. 신조에선 이 공법을 수련하거나 전수하는 일체의 행위를 모두 금지시켰어. 그만큼 확실한 증거 없이 움직였다간 오히려 금기를 건드린 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정말 확신하나?”
“물론입니다. 물론 제게 확신이 없다고 해도 헌국공 쪽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 있을까요?”
“좋다. 곧바로 소문을 퍼트리도록 하마.”
* * *
신전후가 삼신보술을 익힌 건 금기를 범한 행위다.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충분히 그냥 넘어가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만큼 많은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제 막 큰 잘못을 저지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이런 엄청난 꼬투리를 잡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신보술은 신조뿐만 아니라 다른 종문, 심지어 모든 수도사들에게 금기시 여겨지는 공법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물쩍 넘어갈 수가 없다.
대략 이틀 정도 지났을 무렵.
진양에 대한 소문이 성 내에 돌기 시작했다.
영태 일 품계라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소문이 흘러나가는 걸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주목부 내.
허문정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어떤 등신 같은 놈이 소문을 퍼트린 게냐! 이게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도 되는 일인 줄 아는 게냐?”
그날 진양이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 사람은 허문정이 유일하다.
허문정을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알게 모르게 쓸만한 보물을 뜯어내려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그런데, 겨우 며칠 지나지 않아 온 성 내에 진양에 관한 소문이 돌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사실이 진양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허문정은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