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99
499화 이도에 도착
아무렴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은 죽었으니 마음대로 떠드는 대로 사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스승이 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손무의 후손들이 이번 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한안명은 조용히 침묵을 지킨 채 스승의 말에 집중했다.
“놈들은 이번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인마까지 나타나게 만들었다. 이들을 엄벌하지 않았다면 그 화가 우리 신조의 앞길에도 미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차라리 인마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잘된 일이다. 그러니 넌 일을 제대로 처리한 셈이 되는 게다.
헌국공은 그들이 살아서 이도에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인 만큼 이 일을 물고 늘어질 일은 없을 게다. 이는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고, 대제께서도 조용히 묵인하여 주실 게다.
어쨌든 이 일은 여기서 끝이 난 걸로 생각하거라.”
“그럼 인마와 진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놈들이 헛소문을 퍼트리는 바람에 대제희께도 피해가 가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사건이 종결된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안명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스승에게 물은 것이다.
그러자 노인이 ‘하하하!’ 큰소리로 웃으며 한안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집념에 사로잡혀 오직 복수만을 꿈꾸는 인마는 인내심과 냉철한 이성을 가진 인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리는 원마에 비할 바도 아니지. 녀석이 원마로 변하지 않은 이상 그냥 놔두도록 하거라. 아무리 실력이 늘어봤자 잠재력에 한계가 있는 이족에 불과하니 말이다.
물론 진양이라는 젊은이는 조금 다르다. 그는 곤란한 상황과 마주해도 절대 피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곧장 복수의 칼날을 들이미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게 굴지도 않지. 비록 머리는 똑똑하지만, 그는 너무 어리다. 화를 참을 줄 모르기 때문이지.
이제 서로 이전의 은원을 모두 씻어버리기로 약속을 했다면 더 이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하거라. 정천사에서도 더 이상 세세하게 따지진 않도록 하마. 녀석이 헌국공에게 복수를 하든 뭘 하든 그저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두도록 하거라.”
노인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한안명은 ‘정말 그래도 되나…….’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하진 말거라. 이 늙은이가 보기에 진양 그 녀석은 기껏해야 남을 성가시게 만드는 정도가 전부일 것 같구나. 얼마 전에 국경지대의 정천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누군가 남쪽으로 누군가를 추격하는 듯한 모습을 포착했다고 하더구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는 걸 보아하니 진양 그 녀석 이미 신조의 영토에서 벗어나 남만으로 돌아갔을 게다.”
한안명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스승이 아무리 이번 일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도무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었다.
그러나 진양이 사라졌다는 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순탄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속을 태울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최근 이 년 간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갈 일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 *
이도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소문은 활발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극소수의 조직을 제외하고는 소식이 전파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소식이 퍼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진양에 대한 소설을 써 내려가며 퍼트리고 있었고, 이러한 소문은 상당히 활발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인마에 대한 소식도 어느새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모든 사람에게까지 퍼진 건 아니었다.
마치 먼 나라의 일이라고나 할까.
일전에 벌어진 학살 사건이 진양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지명수배령도 철회되었다.
그러나 진양을 주인공으로 쓰인 소설은 날개 돋친 듯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진양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이도의 동쪽을 걷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이도의 풍경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마치 가지런히 정리된 선반을 바라보는 것처럼 도시 전체가 깔끔하게 정비되어있었다.
너무 높지 않은 산과 그 주위를 흐르는 냇물까지 더해져 싱그러운 느낌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신조의 도성답게 형언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기도 했다.
단순히 풍수지리만 살펴봐도 이곳이 방원 십만 리 내에 흐르는 모든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공기 중에 느껴지는 영기도 다른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고 안정적이었다.
이도의 동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은 두 개의 거대한 호수였다.
쌍자호(雙子湖), 즉 쌍둥이 호수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하늘에서 바라보면 밤에는 마치 두 명의 거대한 무사가 동쪽을 지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낮에 보면 두 명의 무녀가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엔 매일 이른 아침마다 동쪽에서 몰려온 자기와 영기가 한 곳에 뒤섞이며 수많은 괴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곳은 농후한 영기가 안정적으로 머무는 곳인 만큼 사방에 영성(靈性)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진양이 이곳으로 온 지는 이제 삼 일이 지났다.
그러나 매일 이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노리며 영성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수도사들의 모습도 꽤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붙잡은 영성을 법보에 주입시킨다면 법보는 상당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어서 이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분명 어둠이 깔린 밤이었으나 그곳은 대낮처럼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영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삼 일이나 지났으나 다시 봐도 감탄이 흘러나오는 모습이었다.
‘수도사의 세계에서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곳의 풍경은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이곳은 사방이 수도사로 가득한 곳이었다.
수련하지 못하는 범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노점상부터 땅을 파서 먹고사는 농부까지.
아무리 못해도 기초적인 법기 하나 정도는 다룰 수 있는 수준을 갖추고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구름을 부르는 부적을 이용해 밭에 물을 주는 농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다소 생소한 곳이기도 했다.
신조 사람들이 신조 밖은 야생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성문 앞에서는 짐 검사와 함께 신분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조의 도성인 만큼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인 듯했다.
물론 사고를 칠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라면 별다른 문제 없이 검문을 통과할 수 있긴 했으나, 신조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꽤 깐깐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총 여덟 개지만 평소에는 네 개만 개방한다.
각각 평민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귀족이나 권력가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수도사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나뉘어져 있다.
진양은 당연히 수도사였기 때문에 수도사 통로로 향했다.
이곳에선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붙잡아놓고 간단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지기의 머리 위로 은거울이 높이 달려있었는데, 문지기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비추도록 각도가 맞춰져 있었다.
진양은 자신의 사형인 오행산의 장문인으로부터 받은 영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앞면에는 오행산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진양의 현재 이름인 계무도가 적혀있었다.
직위 등 그밖에 자세한 정보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어서 은거울에 비친 영패의 모습을 확인한 문지기는 곧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오행산에서 오신 분이셨군요. 아무래도 처음 이도에 오신 분이라 규정에 따라 입성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양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은거울을 바라보았다.
영패를 들고 있는 진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거울 속에 비친 진양은 오색 빛깔의 광막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이 정도 수단으로는 진양의 태화역형과 화형지법을 감지해낼 수는 없다.
심지어 몽의조차도 진양의 위장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웬만큼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가 아니고서야 결코 진양이 위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혹시 이도에는 무슨 일로 방문을 하신 겁니까?”
“견문도 넓히고 이도 구경도 하고, 그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장문 사형께서 부탁하신 편지도 전하려고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규정에 따라 질문드린 것뿐이니 너무 불쾌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문지기는 재빨리 명부에 무언가를 기록한 뒤 진양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진양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난 뒤, 그는 부하 병사들을 불러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곳은 명문 문파의 사람들도 자주 드나드는 통로야. 그러니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방금 지나간 그 사람만 해도 오행산 장문인의 사제였단 말이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니까 높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꼭 얼굴을 기억해두도록.”
이어서 성안으로 들어간 문지기는 멀리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오행산 장문인의 사제가 성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확인해 보니 영패도 진짜였고, 보경에 비치는 모습도 정상적이었습니다.”
다가온 자는 아무 말 없이 무언가 묵직하게 들어있는 주머니를 문지기의 소매 안으로 찔러넣었다.
문지기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같은 시각.
성안으로 들어온 진양은 대략적으로 방향을 살핀 뒤 성 동쪽에 위치한 길상가(吉祥街)로 향했다.
편지를 전해주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었다.
인마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준 뒤 진양은 곧바로 오행산으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며칠 머물다가 이도로 온 것이었다.
그가 이도로 간다는 말을 들은 장추우는 가는 김에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진양은 지금 편지를 전하러 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