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03
503화 넌 이제 끝이다
진양은 퉤- 하고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빠져버린 턱을 다시 끼워 맞췄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태평살전, 신문 최고봉의 연체 수도사로군요 이제 보니 헌국공 그 인간 생각보다 신중한 사람이군요. 조무래기만 보낸 줄 알았는데, 태평살전을 익힌 수도사까지 보내다니. 아주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인데…….”
그러나 그는 진양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진양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진양조차 상대의 움직임을 느낄 수는 있어도 도무지 따라갈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대의 힘 역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상대는 전장에서 실전을 통해 육신을 단련해온 자인 듯했다.
비록 진양 역시 같은 연체 수도사이긴 했지만, 경험, 살기, 정신력 등 여러 방면에서 상대가 훨씬 더 우위였다.
무엇보다 상대는 도궁을 한 발자국 남겨둔 신문 최고봉 수도사였다.
이대로 육신의 힘만으로 상대를 꺾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둥-
상대의 주먹이 일 척 정도 되는 붉은 종 위로 내리꽂혔다.
입가에서 여전히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는 진양은 한 손에 호양보종을 손에 든 채 씨익 웃어 보였다.
“오행산에서 왔다고 해서 연체 공법만 익혔을 줄 알았냐?”
체내의 진원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호양보종 안으로 흘러들었다.
이 외에 거칠게 요동치는 마수의 힘도 함께 호양보종 안으로 흘러들었다.
흘러드는 힘과 함께 호양보종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일 장 크기로 늘어난 호양보종에서 황금빛과 검은빛이 연신 흘러나왔다.
극심한 힘의 파동이 십여 리에 불과한 공간 내를 강하게 뒤흔들기 시작했다.
상대는 크게 놀란 듯했으나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둥-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만들어진 힘의 물결이 폐쇄된 공간 내부를 휩쓸었다.
힘의 물결이 남자를 덮치는 순간.
남자는 고통스러운 듯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몸 주위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양보종에서 흘러나온 물결이 계속해서 남자의 몸을 뒤덮자 흘러나오던 빛은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파괴되어버렸다.
잠시 뒤.
종소리는 여전히 메아리치며 공간 내부를 맴돌고 있었다.
상대는 이미 백골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백골이 된 상대는 여전히 두 팔을 가슴 앞에 가져다 댄 채 방어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쩌적-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공간 내부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면을 가득 채운 부문과 도문도 천천히 부서져 가기 시작했다.
진양은 호양보종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생전의 자세 그대로 죽어버린 남자의 백골 시신 앞으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육신의 힘으로만 붙었다면 제가 밀렸을 것 같습니다만, 아쉽게도 전 연기 공법도 함께 익힌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다음부턴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덤비세요.”
진양이 자신만만했던 이유.
바로 호양보종 때문이다.
호양보종의 힘은 지금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설령 도궁 강자라고 하더라도 호양보종에서 흘러나온 강력한 힘을 버텨낼 수가 없는 법.
사실 지금은 계무도의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양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했던 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공간에서는 본연의 힘을 사용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딱히 보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남아있는 흔적이야 다 때려죽이고 난 다음 습득 능력으로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현장을 수습하는 일이라면 천천소에게 부탁하면 된다.
내켜 하지 않는다면 요녀도와 십팔명기도전을 주면서 적당히 구슬리면 싫어도 진양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상황이 종료되자 진양은 손을 뻗어 남자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파란색 광구 두 개, 보라색 광구 하나.
전부 기능서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황금색이 나오지 않은 걸로 봐서 태평살전은 물 건너간 셈이로군.’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보라색 하나는 건졌으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
진양은 광구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관을 꺼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남자의 유골을 수습했다.
이어서 쓰러져있는 다른 조무래기들의 시신에도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총 열일곱 개의 백색 광구와 두 개의 파란색 광구가 나왔다.
전부 기능서였다.
‘젠장! 오늘은 수입이 영 아니군…….’
진양은 투덜거리면서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보경과 화염의 깃발을 주워 연화시킨 뒤 주머니에 넣었다.
일련의 작업을 마친 진양은 공간이 알아서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곳은 한 지점을 정해놓고 그곳을 강제로 늘려 만든 공간이다.
알아서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면 진법을 펼친 수도사는 힘의 역류로 인해 중상을 입게 될 것이고, 진양은 이곳에서 빠져나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곳과 비경의 다른 점이었다.
지면에 있던 도문이 부서지며 부문이 어느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문이 몰려드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쩌적-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광막이 파괴되며 진법 수도사도 진양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인 뒤 파란색 광구 하나를 취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진양은 형부 관아로부터 오 리 정도 떨어진 어느 한적한 골목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자들의 시신도 진양의 주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짙은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풍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소가 진양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그는 진양이 살아있다는 걸 대충 곁눈질로 확인만 한 뒤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헌국공, 이 자식! 가만히 있었더니 누굴 호구로 아나! 감히 내 면전에 대고 친구의 사제를 이런 식으로 공격하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저……. 천 사형?”
“진양, 걱정하지 마시게. 이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하지!”
“…….”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형,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단 말입니다.”
“얘기해 보시게.”
“듣자 하니 신조에 흔적을 없앨 수 있는 물건이 있다던데.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응? 그런 건 갑자기 왜? 설마 이곳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겐가?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그런 건 묻지 마시고 가지고 계신지나 말씀해주세요. 제게 마침 좋은 책이 있어서 그런데…….”
“어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네. 어차피 그 물건이야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니 말이야. 마침 여기 하나 있긴 한데…….”
그는 진양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곧장 검은 구체를 하나 꺼내 바닥에 던졌다.
은은한 빛이 번쩍이며 이곳에 남아있던 기운을 포함한 모든 흔적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심지어 애초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뽀얀 먼지까지 쌓였다.
“자,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천천소가 껄껄 웃으며 진양을 잡아끌었다.
“여긴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두고 가면 됩니까?”
“글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니깐.”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여러 줄기의 빛이 날아왔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형부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확인하기 무섭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건……?”
형부의 관리가 쓰러진 시신에서 가면을 벗겨냈다.
그러나 가면과 함께 얼굴 가죽이 통째로 뜯겨져 나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자객들은 도대체 뭡니까?”
피로 범벅이 된 진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천천소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말 아닌가? 이렇게 많은 자객들이 형부 코앞에서 일을 벌이는데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엽 대인께서 꽤 방심을 하고 계셨던 모양일세.”
말을 마친 천천소는 진양을 끌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천천소는 가소롭다는 듯 그를 발로 뻥- 차버렸다.
“건방지게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 그리고 이 어리석은 놈들. 감히 이 몸 앞에서 이런 일을 벌이려고 하다니.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주 간땡이가 넉넉하게 부은 녀석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이도의 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날이 갈수록 흉흉해지는 느낌이란 말이야.”
천천소는 다시 진양의 팔을 잡고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막지 않았다.
현장에서 다소 먼 곳으로 빠져나온 뒤.
진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형, 그 자객들. 누가 보낸 건지 알 순 없겠습니까?”
“당연하지. 이미 현장은 오염이 되어버렸는데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어휴, 그래도 이도 사람들은 그나마 정의로운 편인 줄 알았는데. 형부 대문을 나서기 무섭게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현장이 전부 오염되어버리는 바람에 누가 벌인 일인지, 누가 제게 원한을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게 되어버렸군요. 사형, 전 아무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죽게 된다면 제 시신은 반드시 오행산으로 보내주세요.”
“응?”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무슨 그런 말을!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널 해치지 못할 테니까.”
천천소는 씨익 웃으며 진양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갈수록 진양이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 장추우 그 위군자 녀석과는 달라서 마음에 드는군. 이래서 그걸 쓰게 만든 거였구나. 하긴, 어차피 작정하고 일을 벌인 자객들인 만큼 아무리 조사해 봐야 털 것도 없을 터. 게다가 내가 쓴 그 물건은 아무나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도 하지. 이런 정황만 봐도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뻔하잖아? 헌국공, 넌 이제 끝이다…….’
두 사람은 다시 청루로 돌아왔다.
“천 사형, 약속했던 책은 일단 치료를 마치고 돌아와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무슨 책? 난 그저 자네가 걱정돼서 그런 걸세.”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책은 잃어버렸거든요. 근데 아직 머릿속에 기억은 하고 있답니다. 나중에 치료가 끝나고 나면 그대로 그려서 드리도록 할게요.”
“그런 건 급하지 않으니 일단 치료에 전념하시게나. 사실 내게도 한 권의 책이 있는데,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서 말이야. 같은 책인지 비교나 해보고 싶군.”
천천소는 굳이 해도 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며 해명을 했다.
“이만 다들 물러가도록 하세요. 상처 치료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진양은 아찔한 옷을 입은 채 대기하고 있는 십여 명의 여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