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항상 겸손해야 해
여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나자 단약을 복용한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용혈보술을 펼치며 본격적으로 상처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양의 꼴은 상당히 처참했다.
피부에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가거나 힘의 근원을 다친 게 아닌 이상 이 정도는 연체 수도사에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의 상처였다.
진양은 상처를 회복시키면서 획득한 기능서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꽤 많은 물건을 얻긴 했으나 막상 살펴보니 대부분의 것들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조무래기 녀석들에게 얻은 하얀 기능서는 대부분 중복된 내용들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전부 놈들이 맡은 임무에 관한 내용이 전부였다.
진양은 기능서의 내용에 정신을 집중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어두운 밀실 안에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상석에 앉아 지령을 하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령은 ‘형부 입구에서 계무도를 죽여라’였다.
그런데, 다소 뜻밖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지령을 내리고 있는 사람은 진양이 이전에 초상화에서 보았던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헌국공의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열댓 명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마지막까지 임무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을 줄이야.
자신도 모르게 한탄이 나왔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신조였지만 사실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말이 세간을 떠돌긴 했으나 직접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진 만큼 진양은 무조건 헌국공의 짓일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헌국공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빨랐을 뿐만 아니라 예리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진양이 연체 수도사라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그 짧은 시간 내에 연체 수도사를 상대할 자들을 준비시킨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진양을 죽이려고 했던 건 겉보기엔 헌국공을 도와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헌국공을 궁지로 내몰기 위했던 것이었다.
만약 여기서 계무도가 죽는다면 오행산은 무조건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반응은 설령 헌국공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는 못해도 평생 씻어내지 못할 원한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또 한편으로는, 판국을 뒤집으려는 자를 죽여 다시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심지어 헌국공조차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빚을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상대에게 한 방 먹이면서도 자신은 이득을 보는 것이다.
설령 암살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모든 화살은 헌국공에게 향하게 될 테니 말이다.
형부 관아 코앞에서, 그것도 훤한 대낮에 고발자를 암살하는 대담한 짓을 벌인 자가 형부의 사람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진양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누가 자기네 집 앞에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인단 말인가?
그것도 성패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를 이용하여 역발상을 한 것이었다.
그저 목적을 위해 작은 책임만 지면 될 뿐.
이런 일을 벌인 주모자가 형부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엽건중과 헌국공에 대해서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모든 조사를 마쳐두었다.
두 사람은 비록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숙적 관계는 아니었다.
그저 매우 평범한 관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걸 보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대략적으로 예상이 되었다.
엽건중은 헌국공이 형부 관아 앞에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항의를 할 것이고, 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다면 아마 두 사람은 격렬한 대립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습득한 정보를 통해 알아본 엽건중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직접 만나본 엽건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람들은 되도록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배후에선 검은 손을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는 피해자인 척, 여전히 보수적인 척 연기하다니.
이는 진양에게 상당히 큰 교훈을 주는 사건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영 신조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내가 너무 순진했어…….”
확실히 대도시의 사람들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차라리 남만 같은 황무지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소 거칠긴 해도 적어도 능구렁이 같은 수는 쓰지 않으니 말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자객들에게 얻은 기능서를 살폈다.
딱히 더 이상의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대부분 자객들이 엽건중의 사람들이라는 증거뿐이었다.
평소에는 보수적인 척하며 절대로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으려 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 엽건중 말이다.
두 개의 광구에선 법보를 조종하기 위해 필요한 결인 공법과 할면지법(割面之法)이 나왔다.
결인 공법을 사용하면 형부의 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사용했던 쇠사슬은 형부의 천균쇄(千鈞鎖)라는 법보였다.
상대의 진원을 묶어버리고 육신의 힘을 동결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보경은 괄골경(刮骨鏡, 뼈를 깎는 거울)이라는 물건으로, 연체 수도사들을 상대로 상당히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형부의 법보였다.
이 물건은 사용하면 뼈가 드러날 때까지 연체 수도사의 피부와 살을 벗겨낸다고 한다.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화염 깃발 역시 연체 수도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법보였다.
깃발을 휘두르면 강렬한 화염이 일어나는데, 그렇게 일어난 화염은 연체 수도사의 육신을 불태운다.
처음에는 피부 겉면부터 타들어 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게 된다.
뼈가 드러나면 멈추는 괄골경과는 달리, 화염 깃발로 인해 만들어진 화염은 뼈까지 전부 녹여버리게 된다.
여기까지 전부 형부에서 사용하는 법보들이었다.
분명 암살에 실패한다면 이것들이 증거로 남을 걸 알고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이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할면지법은 여족의 부면지법(剖面之法)과 비슷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본질부터가 달랐다.
죽은 자객들은 얼굴이 없었다.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이 곧 이들의 얼굴이었던 것이었다.
이름도, 신분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모두가 같은 얼굴이 된다.
혹여나 과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흔적은 전부 지워지게 된다.
오직 ‘죽음’만을 위한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
때문에, 혹여나 작전에서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는 자신이 함정에 빠져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었다.
이는 심지어 진양조차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진법 수련사에게는 파란색 기능서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진법을 다룰 때 사용하는 공법이 나왔다.
그러나 이건 온전한 공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간단히 참고만 할 정도의 가치를 가진 공법이었다.
물론 언젠간 써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당장은 배우지 않기로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태평살전을 익힌 수도사에게서 얻은 세 개의 기능서가 남았다.
먼저 두 개의 파란색 기능서 중 하나에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살법이 들어있었는데, 각각 붕(崩), 첩(疊), 관(貫)이 들어있었다.
전부 연체 수도사의 전투력을 증가시켜주는 공법으로 상당히 쓸모가 있는 것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신통력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연체 수련 공법은 익힌 적이 없네.’
나중에 육신의 힘만을 사용해서 적을 상대해야 할 경우도 있으니 아무래도 배워두는 게 좋을 듯했다.
또 다른 파란색 기능서에는 연기 수도사들이 사용하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이건 다소 의외였다.
게다가 이건 앵화낙(櫻花落)이라는 이름을 가진 상당히 보기 드문 환술 공법이었다.
꽤 흥미로운 공법이었지만, 당장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익히기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보라색 기능서가 남아있었다.
예상대로 연체 수도사들이 익히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패왕사갑(霸王卸甲)이라는 공법이었다.
순간적으로 육신의 힘을 끌어올리는 공법이었는데, 총 일곱 단계에 거쳐 힘을 극한까지 쥐어 짜낼 수 있는 공법이었다.
십이마검과 비슷한 공법인 것처럼 보였으나, 십이마검처럼 극단적인 공법은 아니었다.
십이마검과 달리 스스로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만 시전이 가능했다.
물론 원한다면 그 이상의 범위까지도 사용은 가능했다.
상대에게 대처할 틈을 주지 않고 호양보종으로 제압해버렸기에 망정이지, 만약 상대가 패왕사갑을 사용했다면 상대하기 훨씬 더 까다로워졌을지도 몰랐다.
대략 네 번째 단계까지만 시전했어도 도궁 강자 정도의 실력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방심했더라면 진양은 아마 지금쯤 골로 가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얻은 수확물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서가 짭짤하다는 건 아니었다.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이 상당히 컸다는 뜻이다.
이로써 얻은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아무것도 믿지 말라.
세간에 떠도는 소문부터 정보,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것까지 결코 믿어선 안 된다.
둘째, 궁지에 몰린 게 아니라면 거침없이 진원을 소모해서 싸워라.
아무리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라 하더라도 어떤 수를 숨기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단숨에 꺾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괜히 여지를 주었다간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평살전 수도사는 적어도 진양에게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방심한 탓에 진양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대략적인 정리를 마친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역시, 사람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해.’
이번 일로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진양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상처는 이미 모두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급하게 나갈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사건을 묵히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소문도 제대로 돌지 않았을 것이다.
진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천천소’의 이름을 썼다.
그는 비록 겉보기엔 상당히 못미더워 보이는 인물이었으나, 어느 정도 실력과 신분을 갖추고 있는 인물인 건 확실했다.
엽건중을 앞에 두고 건들건들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그걸 보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엽건중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여기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조금 빌붙어도 문제 될 건 없겠지.’
진양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