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61
561화 어쩔 수 없는 거
기관 심보서는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어디론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진양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발견했으면 그나마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달 동안 시간만 낭비하고 제대로 얻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묵양, 그만 포기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아니야. 날 믿어. 이번에는 심보서의 반응이 여느 때와는 다르다고. 이번에야말로 상고의 물건을 발견한 게 분명해. 혹시 모르지. 내가 과거에 만들어둔 물건일지도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수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리가 없다고!”
묵양은 여전히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진양을 설득했다.
진양은 마지못해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보도록 할게. 대신 이번에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그땐 돌아가는 거다.”
또다시 수천 리를 달린 끝에 심보서가 멈춰 섰다.
앞쪽으로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우뚝 서 있었는데, 구름을 뚫고 솟구친 산봉우리를 따라 수백 리 넘게 산맥이 이어져 있었다.
묵양은 천산갑(穿山甲)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긴 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심보서가 가리키는 곳을 파 내려가도록 했다.
그렇게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 인형은 수십 리를 파 내려가고 나서야 멈춰 섰다.
땅굴 끝에 있는 돌벽에는 사람의 머리만 한 크기의 회색 금속구가 박혀있었다.
겉보기에는 수많은 작은 부품들이 달린 나판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그러나 심하게 녹이 슬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금속 부분이 보이는 건 실금이 간 부분뿐이었다.
‘또 부품이군…….’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건 말건 묵양은 성큼성큼 다가가 그것의 표면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보았다.
두텁게 쌓여있던 녹이 떨어져 나가며 검은색 금속 표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분명 내가 만든 것 같긴 한데. 근데 또 수준이 영…….”
“당연하지. 수만 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지금이랑 상고 때랑 어떻게 같은 수준일 수 있겠어?”
“하긴.”
묵양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온 건 맞는 것 같아. 여기가 바로 풍수사의 능침이 확실해.”
금속구를 쓰다듬던 묵양의 손가락이 수십 갈래의 촉수로 변하며 금속의 표면에 드러난 여러 부품들과 연결되었다.
“이건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무진살진(無盡殺陣)이라는 물건이야. 십이만구천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걸 열려면 그중 하나를 맞춰야만 해. 하지만 세 번 이상 틀릴 경우 곧바로 무진살진이 펼쳐지며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버리지.
일념의 바닷속에서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내게 이걸 받아간 건 풍수사가 맞을 거야. 그 말은 즉 녀석의 능침이 이 안에 있다는 뜻이지.”
묵양의 손끝에 달린 촉수들은 빠르고 복잡하게 움직이며 부품들을 발동시켰다.
“이건 나와 풍수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풀 수 없게 되어있어. 그래도 상고 시대에 이걸 만들 때의 나와 지금의 수준은 당연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손이 멈춰 섰다.
이어서 금속구는 중간부터 실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팟-!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며 빛으로 만들어진 문의 형상을 이루었다.
두 개의 문이었는데, 한쪽에는 천(天)이라고 쓰여있었고 나머지 한쪽에는 지(地)라고 쓰여있었다.
끼익-!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리며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계단이 나타났다.
“거봐. 내가 말했지. 설령 상고 시대의 십이사들이라 하더라도 모두 풍수사에게 빚을 진 게 있을 거라고. 풍수사의 능침을 화사가 만들어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묵양은 씨익 웃으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진양은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묵양야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니 깡다구 좋게 성큼성큼 들어갈 수 있겠지만 진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난 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양은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궁전이 나타났다.
매우 거대한 궁전이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대문만 하더라도 백 장에 달했다.
거대한 대문은 큼직한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있었고, 양쪽 옆에는 십여 장이나 되는 거대한 인형 거인들이 무기를 든 채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궁전 정면에는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비석 앞에는 금속으로 만든 상자가 놓여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인형들은 진양이 가까이 다가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양은 후- 하고 비석에 쌓인 먼지를 날렸다.
기껏해야 풍수사의 무덤임을 알리는 비석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꽤 많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격무, 감히 내 무덤을 파헤친다면 저주로 혼내주겠다!’
놀란 진양은 입을 쩍 벌렸다.
그 바람에 턱이 빠질 뻔했다.
“저……. 묵양. 얼른 와서 이거 좀 봐야 할 거 같은데.”
가까이 다가와 비석의 내용을 확인한 묵양은 노발대발 화를 냈다.
“이런 막돼먹은 자식 같으니!’
“어허, 일단 흥분하지 말고 내용부터 살펴보자고.”
진양이 씩씩거리며 비석을 부수려는 묵양을 말렸다.
그런데, 비석의 내용을 읽어갈수록 진양의 표정은 더욱 찌푸려졌다.
풍수사는 죽기 직전 괴산 산맥의 주체(主體) 산맥에 자신의 능침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이곳은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기 때문에 족히 십만 년은 버티고도 남을 것이었다.
어차피 후손이나 제자도 없었기에 죽고 난 뒤로 찾아와 제사를 지낼 사람도 없었다.
가장 바깥층에는 묵양의 걸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진살진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죽기 직전 고르는 곳마다 누군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생기가 끊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무진살진을 직접 설치한 묵양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묵양이 후세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능침 대문 바로 앞에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물건을 이곳에 둔다면 묵양은 그의 능침을 파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왜 그런지는 그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곳은 그저 생기가 있는 곳으로 그가 스스로 찾아낸 곳일 뿐이었다.
묵양은 금속 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촛농으로 포장되어있는 옥간이 하나 들어있었다.
촛농을 떼어내고 옥간을 펼쳐서 살펴보던 묵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옥간을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풍수사가 남긴 문자에 대한 지식들이야. 곧장 영혼으로 흡수하면 돼.”
진양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것을 미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대략 십여 종의 상고의 문자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단지 문자와 관련된 전승에 불과했으나, 받아들이고 난 뒤 양피지에 적힌 내용들을 떠올려보니 곧바로 내용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확실히 이전에 해독했던 내용들 중에는 틀린 내용들이 있었다.
이것만 챙겨도 여기까지 온 목적은 다 이룬 셈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꽤 놀랐다.
풍수사가 그렇게 강했단 말인가?
“놀랄 거 없어. 재수 없는 일을 피하는 재주라면 그 녀석을 따라갈 녀석은 없을 테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잖아. 감히 이 몸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하다니. 놈은 누군가에게 죽은 게 아니라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 거야. 이 능침은 분명 그가 스스로 찾아낸 생기가 있는 곳일 거야.
일념의 바다에 있던 풍수사조차 스스로 살아날 방법을 찾아냈는데. 진짜 풍수사라면 멍청하게 스스로 땅에 묻히고 부활할 때까지 기다릴 녀석은 아니야.”
한편, 옥간을 다시 접어든 진양의 이미 목적을 다 이룬 듯 흡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볼 거야?”
진양이 능침 대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들어가긴 뭘 들어가. 비석에 쓰여 있는 말 못 봤어? 들어갔다간 저주하겠다잖아! 놈은 분명 자신의 부활을 방해할 자들도 모두 대비해놨을 거라고. 괜히 재수 없게 죽고 싶지 않다면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걸.
어차피 목적도 달성했잖아.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봐.”
묵양은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일말의 부끄러운 모습조차 없었다.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진양은 피식 웃어버렸다.
보통 ‘저주한다’라는 말은 단순히 협박에 불과한 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토록 풍수사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무튼, 상대가 친절하게 자신이 원하는 물건까지 준비해두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능침을 파고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진양은 먼저 돌아서 나갔고, 뒤를 이어 묵양도 따라나섰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것을 분해하여 살펴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체념한 듯 진양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진양이 활짝 열려있는 대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 어차피 알아서 닫힐 거니까. 다시 무진살진을 설치해둔다고 해도 이전과는 다를 거야. 아마 풍수사 그 녀석, 이를 갈걸.”
“괴산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괜히 상관없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트릴 필요는 없잖아?”
진양은 이유 없이 남을 함정에 빠트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팻말을 하나 꺼내 큼직하게 글씨를 적었다.
‘위험!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
진양은 손을 탁탁 털며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래도 들어가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묵양은 못마땅하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볼일을 모두 마친 두 사람을 이도로 향했다.
* * *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
심보서 때문에 시비가 붙을 뻔했던 수도사 무리가 나타났다.
지면으로 내려온 수도사들은 동굴 입구 앞으로 다가왔다.
이들 중 한 수도사가 돌로 만든 나판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나판의 바늘은 동굴 쪽을 가리키며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판이 반응하고 있어. 아무래도 여기가 맞는 것 같아. 분명 엄청난 상고의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좋아. 그럼 들어가 보자.”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금방이라도 닫힐 것 같은 빛의 문이 보였다.
이들 중 한 사람이 ‘괴산’이라는 큼직한 글씨가 쓰인 나무 조각을 꺼내 땅에 내려놓았고, 나무 조각에서 흘러나온 힘이 빛의 문이 닫히지 못하도록 막았다.
“누군가 이미 먼저 들어간 모양이야. 서둘러야 해.”
이들은 세 명만 남기고 전부 안으로 들어갔다.
진양이 남겨둔 경고 표지판은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내부로 들어와 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큼직한 비석이었다.
비석엔 딱 봐도 불길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자, 십 대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