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18
618화 지천에 깔려 있다
진양은 책에 집중하며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혹여나 실수가 없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신분 확인도 문제없었고, 거짓으로 지어낸 얘기도 대충 속아 넘어간 듯했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스스로 지어낸 게 아니라 원래 살던 세상의 역사를 다소 버무려서 떠들어댄 것인 만큼 진위여부를 가려내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용혈을 마시고 용혈보술까지 사용하며 용의 후예의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모두들 안심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는 이곳의 규칙을 크게 어기지 않는 이상 무엇을 하던 크게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다.
진양 일행은 처음 이곳에 나타날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만약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면 앞으로의 일들은 크게 골치 아파졌을 것이다.
* * *
진양은 계속해서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성주에게 받아온 책을 모두 읽은 뒤에는 더 읽을 책을 구하러 밖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어차피 공법과 관련된 책도 아니고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만큼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한 달이는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가져온 책을 모두 읽은 진양은 폐관을 마치며 밖으로 나섰다.
밖에선 삼안요모와 몽의가 진양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나왔군. 안 나오길래 죽은 줄 알았다.”
진양이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요모가 눈알을 부라리며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는 된다.
글자도 못 알아보고, 밖으로 외출도 못하고, 그렇다고 수련을 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골방에 한 달이나 틀어박혀 있었으니 이골이 날 만도 했다.
“정 그러면 제가 글자를 가르쳐드리도록 하죠. 문제없이 글을 알아볼 수준이 되면 직접 계획을 세우도록 하세요. 그럼 되잖아요.”
삼안요모는 대꾸 대신 콧방귀를 뀌며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뭐 발견한 거라도 있소?”
몽의가 물었다.
“이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된 지하 세계인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의 개념은 저희가 알고 있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하늘이라고 하면 보통 지면과 천장 사이에 있는 공간을 가리키거나, 혹은 천장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하더라고요.
상당히 거대한 세계인 건 맞지만, 어쨌든 이곳은 지하 세계가 확실합니다.
이 사람들 역시 끊임없이 이곳을 탐험하고 연구해오긴 했지만, 가장자리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더군요. 벽을 뒤덮고 있는 돌은 진룡의 돌이라고 불리는 돌인데, 그 어떠한 힘으로도 파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략 한번 찾아봤는데요. 검은 돌로 만든 미궁을 제외하면 이들의 발길을 붙잡을 만한 건 딱 두 가지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는 남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심연’이라는 곳인데요. 뜨거운 지맥이 펼쳐진 곳이 아니라 육중한 힘으로 가득한 허공이 펼쳐진 곳이더군요. 그 힘에 닿으면 곧바로 미치게 되고, 침식되면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하나는 북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곳인데요. 책에 적힌 대로라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치 하늘로 향하는 계단과 같은 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곳엔 귀신도 있고, 양생을 하거나 수련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산귀신의 비호를 받아 요괴들을 쫓아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곳에 도달하고 나면 늪의 바다가 나타나는데. 거기서 발목을 잡혀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온 곳은 이 두 곳 사이에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응룡은 분명 길을 만들어두었을 겁니다.
아무래도 남쪽으로 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요. 이렇게 되면 북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가다 보면 밖으로 나가는 길이나 응룡의 시신이 묻혀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어떠신 것 같으세요?”
“이미 다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냥 따르도록 하겠다.”
삼안요모는 순순히 진양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몽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여기서 책에 적힌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진양 한 사람뿐이다.
그렇다고 한 글자씩 전부 번역하여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 말이다.
괜히 시간 낭비를 할 바엔 차라리 진양이 말한 대로 따르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게 세 사람은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진양은 떠나기 전 성주를 찾아가 작별 인사까지 했다.
읽었던 책에 부족한 부분을 탐험하고 내용을 보충하겠다는 핑계도 잊지 않았다.
괜히 아무 이유 없이 밖을 나돌아다니다가 누군가 오해를 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공짜로 부족한 내용을 채워주겠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성주는 흔쾌히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을 위해 신분 영패까지 만들어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성지의 주민으로서 어디서든 신분이 보장된다.
뿐만 아니라, 진양이 편안하게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도록 신물까지 내어주었다.
그렇게 신분 영패와 신물까지 챙긴 진양은 두 사람을 데리고 성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 * *
성지를 떠나 북쪽으로 떠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생명체들의 기운이 느껴졌고, 멀리 나갈수록 이들의 실력도 점점 더 강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반대로 인간이 활동했던 흔적은 점점 더 찾기 힘들어졌다.
진양 일행이 빠져나온 통로는 이곳 사람들에게 흑석미궁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한번 길을 잃으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은 고사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한다.
진양 일행이 그곳에서 우연히 틈을 발견하고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마주쳤고, 수도 없이 짐 검사나 신분 검사를 당했다.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검사는 점점 더 까다로워졌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불심검문을 받은 지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묵직한 위압감과 함께 얼굴을 가린 갑옷 입은 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주위로 뿜어내고 있는 기운은 이곳의 공기조차 움직일 수 없도록 강력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강자가 나타나기 무섭게 삼안요모의 미간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진양이 황급히 그녀를 말리며 강자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무슨 일로 저희 앞을 막으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너희들, 정체가 뭐냐? 어째서 그런 이상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거지?”
진양은 곧바로 성주에게 받아온 신분 영패와 신물을 꺼내 보여주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희들은 용의 후예의 유민들입니다. 비록 혈맥은 오래전에 사라졌으나, 제가 계승자입니다. 혈맥의 근원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신분 명패를 살펴본 그는 곧바로 신물을 만지작거렸다.
그곳에는 성주가 남긴 의념이 들어있었는데, 일종의 친필 서한 같은 것이었다.
이어서 강자는 진양에게 신분 영패와 신물을 돌려주며 말했다.
“동쪽으로는 가지 마시오. 요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만약 붙잡히게 된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수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진양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삼안요모도 조심스럽게 신분 영패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진양이 성주와 가까워지려고 온갖 노력을 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신분 영패와 신물이 있었기에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신물은 신분 영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방금 만났던 강자는 신분 영패만 보았을 때는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신물을 보고 나서야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고 이들을 보내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강자가 그녀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실력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특히 그의 체내에 있는 용의 후예의 혈맥은 지금까지 보아온 그 누구보다도 강력했다.
단순히 기운만으로도 그녀를 짓누르는 효과를 발휘했으니 말이다.
진양 일행은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 하루쯤 지났을 무렵.
진양이 돌연 듯 요모에게 말했다.
“이곳은 강자가 탄생할 확률이 대황에 비해 현저히 높은 곳이라고 말했었던 거 기억나죠? 당신보다 강한 사람이 지천에 깔려 있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든 최대한 나서지 않도록 하세요. 만약 당신의 정체가 탄로 난다면 그땐 다 같이 죽게 될 겁니다.”
요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이 얼마 전에 강자가 나타났을 때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당시 하마터면 그녀는 참지 못하고 힘을 쓸 뻔했다.
갑자기 인간 강자가 나타나 이들을 가로막았으니, 혹여나 정체가 탄로 난 줄 알고 긴장했던 탓이었다.
이어지는 여정은 별다른 사고 없이 순조로웠다.
중간에 강력한 요괴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문제없었다.
진양은 놈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난 뒤 혈맥을 빠짐없이 모두 수집해두었다.
나중에 모아둔 양이 충분해지면 진룡의 피를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진양은 계속해서 길을 걷다 보니 책에 나온 대로 계단 따라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계속해서 위로 향하던 진양은 마침내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산봉우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바로 대지와 하늘을 잇는 산봉우리, 책에 접천봉(接天峰)이라고 적혀있던 바로 거기요. 접천봉을 넘으면 마지막으로 인간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 나올 거에요. 거기서 조금 더 앞으로 가다 보면 늪의 바다가 나올 겁니다.
다들 조심하세요. 이곳에 괴이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책에 적혀있었거든요.”
하루의 휴식 뒤 세 사람은 접천봉을 넘었다.
접천봉을 넘자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느 곳은 이상할 정도로 구름이 몰려있었는데, 또 어떤 곳은 구름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안개 사이로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과 같았는데, 진양 일행은 그곳을 통해 먼 곳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앞쪽으로는 접천봉처럼 하늘과 맞닿아있는 산봉우리가 여럿 있었다.
마치 지하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우뚝 서 있는 산봉우리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곳까지 멀리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외에는 거대한 산봉우리는 없었다.
대부분 불룩 솟은 작은 언덕뿐이었다.
은연중에 멀리 마을처럼 보이는 무언가 희미하게 보였다.
세 사람은 계속해서 걸었다.
하늘을 밝게 비추던 빛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의 장막이 깔리며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새까만 규룡의 모습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