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17
617화 간만에 실력 발휘
진양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성주부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이곳 수도사들의 실력은 확실히 대황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룡의 후예이기 때문도 하지만, 이곳에 있는 원기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경지마다 대황의 수도사들보단 한 단계씩 더 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당장 성주부에 있는 수도사들만 봐도 그렇다.
이들 중 삼안요모와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수준의 수도사는 몇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하게 형편없다고 정의를 내릴 순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강자가 탄생할 확률이 대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당 안으로 들어서니 상석에 수염을 곱게 다듬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진룡의 후예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경지는 대략 도궁 정도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 느껴지는 위압감과 기운은 이제껏 진양이 보았던 도궁 강자들보다는 한층 더 강력했다.
“그대가 허공의 바다 너머에서 왔다는 그 진양이라는 사람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 진양입니다. 성주 대인을 뵙습니다.”
진양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허공의 바다를 건너온 사람과 만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오. 게다가 당신에게선 매우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오. 영성은 충분하지만 그 깊이와 평화로움은 부족하군.”
말을 마친 성주가 옆에 있던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이 장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가 수 장 높이의 청동거울을 가져왔다.
“그대들이 우리 인간들과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는 만큼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소.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이족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소. 그래서 철저하게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오.”
“상관없습니다.”
진양은 청동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에 비친 진양과 몽의의 모습에서 하얀 빛무리와 함께 영혼이 나타났다.
청동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에겐 은백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성주는 손을 흔들어 거울을 물리도록 했다.
그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같은 인간끼리 돕는 것은 당연한 법. 허공의 바다를 넘어오느라 꽤 고생을 했을 텐데. 단순히 혈맥의 근원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단 말이오?”
“저희 집안의 오랜 염원이라서요. 제가 결정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록 돌려서 말하긴 했으나 자신은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뜻이었다.
성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몽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공의 바다를 건너오다가 두 눈을 잃었다고 들었소. 성부 내에 실력 좋은 의원이 있으니 한번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몽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함께 나가자는 뜻으로 손을 펼쳐 보였다.
‘어허, 이러면 곤란한데.’
일부러 따로 얘기를 나누겠다는 뜻이었다.
이건 위험하다.
혹여나 자신과 몽의의 말이 크게 다르다면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풀어주신 호의는 감사하나 제 눈은 치료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몽의는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풀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조금의 빛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치 거대한 심연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육신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몽의는 다시 천으로 눈을 가렸다.
성주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몽의의 눈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누가 파내거나 물리적으로 상처를 입힌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에 의해 빼앗겨갔다는 쪽이 훨씬 더 맞다.
때문에, 애초부터 눈이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것이다.
어떠한 묘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는 그른 상태였다.
허공의 바다는 매우 위험한 곳인 만큼 이런 일을 당한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때문에, 일단은 진양을 어느 정도 신뢰하기로 했다.
“악의가 있어 일부러 상처를 확인하려고 했던 건 아니오. 혹여나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하겠소.”
“아닙니다, 성주님.”
몽의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다시 진양의 뒤로 물러났다.
“진 공자, 혈맥의 근원을 찾는다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설마…….”
성주가 말끝을 흐리자 진양이 이어받았다.
“그렇습니다. 혈맥의 근원을 찾고 체내에 있는 진룡의 후예의 혈맥에 다시 불을 지피기 위함입니다.”
“진룡의 후예의 혈맥이라…….”
“그렇습니다. 저희가 살던 곳은 이미 수도 없이 전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나타난 대마두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죠.
조상 대대로 우리가 진룡의 후계자이며 몸속에 진룡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그저 전설에 불과하죠.
저희는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온 것입니다. 진룡의 혈맥을 찾는 것도 단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죠.”
“허공의 바다에 대한 전설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누군가 그곳을 건너왔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오. 진 공자, 괜찮다면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없겠소?”
성주는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끝까지 의심을 한다 이거지? 좋아. 간만에 실력 한번 발휘해 보자.’
진양은 입에 침을 바르며 본격적으로 지어낸 얘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 *
한참 뒤.
“대단하군……. 참으로 놀라운 문명이오.”
성주는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쯤 되니 진양에 대한 의심도 완전히 사라졌다.
문득 다시 정신을 차린 성주가 멋쩍은 듯 웃으며 사과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소.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해선 안 되는데 말이오.”
벌써 며칠이나 시간이 지난 것이다.
“어쨌든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만 가서 편하게 쉬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곳의 규칙만 잘 지킨다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해도 좋소. 그리고 만약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시오.”
“감사합니다, 성주님. 마침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긴 한데…….”
진양은 기다렸다는 듯 얘기를 꺼냈다.
“괜찮으니 편하게 말하시오.”
“용혈이 조금 필요합니다. 선조들의 말대로 제 몸에 용의 혈맥이 흐르고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요. 물론 그냥 받겠다는 건 아닙니다. 저희가 가진 것들 중에 마음에 드시는 물건이 있다면 용혈과 교환하고 싶습니다.”
“괜찮소. 용혈이라면 충분히 있으니 말이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품속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비룡수(飛龍獸)의 정혈이오.”
“감사합니다.”
진양은 곧바로 뚜껑을 열고 그것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자 성주가 말렸다.
“진 공자, 용혈은 침식력이 강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곧바로 마시면 위험합니다. 혹여나 혈맥이 오염되기라도 한다면 비룡수의 모습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 옥병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진양이 말했다.
“하지만 용의 혈맥을 확인하기에 이보다 빠른 방법은 없습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확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어서 말릴 틈도 없이 비릿한 맛이 올라오는 액체를 곧바로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진양의 피부는 곧장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기혈이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몸 밖으로 흘러나온 기혈이 불타오르며 진양은 화염 속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불길은 거세졌고, 금방이라도 진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듯한 기세로 타올랐다.
안 되겠다 싶어 몽의와 성주가 손을 쓰려는 그 순간.
진양의 체내에서 낮은 용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그때, 화염이 붉은 용의 형상으로 변하며 진양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자 진룡의 후예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기운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진양을 휘감고 있던 붉은 용의 모습도 점차 사라져갔다.
그리고 진양에게 느껴진 진룡의 후예의 기운도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잠잠해진 뒤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다소 아쉽군요…….”
성주에게 직접 받은 물건이라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회복량은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완전히 회복하려면 용혈이 더 필요할 듯했다.
“진 공자, 너무 실망할 것 없소. 체내에 있던 혈맥을 활성화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진룡의 혈맥은 충분히 증명된 셈 아니오? 걱정 마시오. 앞으로도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이오.”
성주는 진양이 왜 실망한 지도 모르면서 그를 위로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객잔으로 돌아가기 전, 진양은 혹여나 이곳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고 성주는 흔쾌히 여러 권의 책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진양이 돌아가고 난 뒤.
배웅을 마친 성주가 다시 정청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성부부 내의 고수들이 모여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어떤 것 같소?”
“인간인 것도 확실하고 용의 후예인 것도 확실합니다. 비록 혈맥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희박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족의 첩자는 아닌 듯합니다. 무엇보다 놈들은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보내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게다가 진 공자가 살았다는 그 문명. 설명의 깊이나 눈빛만 봐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결코 할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주부의 고수들은 하나씩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자잘한 내용을 가지고 논쟁이 일어났다.
“그만. 이미 확인은 충분히 했으니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소. 그는 그저 외지에서 혈맥의 근원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 인간에 불과하오. 이족의 첩자도 아니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 없소.”
성주는 단칼에 논쟁을 종료시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같은 시각.
다시 객잔으로 돌아온 진양은 받아온 상자를 열어보았다.
여러 가지 내용이 기록되어있는 책, 그리고 옥간들이 들어있었다.
요모가 무언가 묻고 싶은 눈치였으나 진양은 무시한 채 받아온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객잔 안에만 머무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의 인간들은 요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어요. 제가 요족의 첩자가 아닌지 알아보는 데만 반나절 넘게 걸렸습니다. 괜히 나갔다가 당신이 요족인 사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다 죽게 될 겁니다.”
어느덧 다가온 몽의도 상자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살펴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삼안요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