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27
627화 내 피 같은 머리카락
세 달 뒤.
작업은 진양의 머리털이 거의 다 뽑혀 나갈 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동안 직접 검사해 본 돌다리는 무려 십이만구천육백 개다.
진양은 씁쓸한 표정으로 절벽 끝에 앉아있었다.
머리카락이 뽑혀 나간 자리가 아직까지도 얼얼한 기분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생각할수록 절로 한숨이 나왔다.
십이만 개나 되는 돌다리를 전부 다 살펴보았으나 온전한 다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전부 중간이 끊어진 다리였던 것이었다.
‘괜히 머리털만 뽑혀 나가고 얻은 건 하나도 없다니.’
진양은 한숨과 함께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집중했다.
일단 응룡이 모든 것을 꾸몄고, 또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생각을 이어나갔다.
일단 묘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가 만약 응룡이 남겨둔 사람이라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일까?
어째서 스스로의 신분을 낮춰가면서까지 산귀의 묘축으로서 지내고 있던 것일까?
답은 두 가지.
스스로 원해서거나, 혹은 또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자원해서 된 것이라면 분명 남아있는 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검둥이는 이를 극도로 부정했었다.
검둥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매우 드문 경우인 만큼 일단은 가볍게 볼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어차피 이곳은 응룡의 무덤 안이고, 또 자기 스스로도 응룡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다.
그런데 무슨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단 말인가?
물론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긴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어느 쪽이든 간에 문제의 핵심은 산귀에게 있다는 점이다.
산촌에 있던 노인들 중 산귀낭낭의 사당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모두들 자연스럽게 여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산귀낭낭을 모시고, 그녀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
마을 사람들에겐 그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본능과도 같았다.
산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당시 기록해두었던 것들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산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진양은 진심으로 놀랐다.
스스로 산귀낭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모종의 이유로 사고에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머릿속에는 산귀낭낭의 신상과 마을 어귀에 들어오면서 어렴풋이 들렸던 노랫소리에 대한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나무토막과 조각도를 꺼냈다.
그리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대로 신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똑같은 모습의 신상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멍한 얼굴로 조각도를 든 채 물었다.
“다들 봤어요?”
“뭘?”
요모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방금 산귀낭낭을 조각했는데 갑자기 사라졌잖아요. 다들 못 본 겁니까?”
“진양,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이만 쉬는 게 어때? 아직 시간은 많다고.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어딘가 나사 빠져 보이는 진양의 모습에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이 된 것이다.
진양은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몽의에게 돌렸다.
몽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나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했소. 그저 진 선생이 며칠 내내 멍하게 있는 것만 보았을 뿐이오.”
진양은 고개를 내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조각도도 사라지고 없었다.
몽의의 말대로 오랜 시간 멍하게 있던 게 사실인 듯했다.
하지만 분명 산귀낭낭의 신상을 조각으로 만들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꽤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조각이 사라져버렸다.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진양은 마침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진양의 추측은 사실인 듯했다.
변화가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진양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조각을 할 수 없다면 이번에는 직접 어렴풋이 들었던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양은 절벽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마을 어귀에서 들었던 노래를 천천히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작은 불빛이 진양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모여든 불빛은 다리의 형상을 이루며 어두운 허공을 따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어둠을 밝히며 나아가는 동안 진양의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노래를 절반쯤 불렀을 무렵.
반대편에서 여인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일전에 마을 어귀에서 들었던 것과는 다른 노랫소리였다.
은은한 여인의 노랫소리에는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원망이 묻어있었다.
주황색 불빛이 다리 주위로 몰려들자 주위로 푸른 불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까만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둠 속에 존재하던 공포는 모두 사라졌다.
사방으로 뻗어있던 무너진 다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눈 앞에 펼쳐진 꿈같은 장면뿐이었다.
진양은 덤덤했다.
눈 앞에 펼쳐진 기적에도 기뻐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어서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몽의와 삼안요모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다들 보셨죠?”
두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엄청난 광경이라도 본 것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양은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조심스럽게 다리 위로 발을 뻗었다.
다리에 발이 닿는 순간 은은한 빛의 물결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빛으로 이루어진 다리는 순식간에 실체화되며 수정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되었다.
몽의와 요모도 진양의 뒤를 쫓아갔다.
주위에서 수많은 푸른 불빛이 피어오르며 일행을 따라 움직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어있는 다리였다.
그런데, 노래가 끝날 쯤이 되자 어느새 다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분명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출발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노래가 끝나자 심연 위로 피어오르던 불빛, 그리고 다리까지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검둥이 이 녀석.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 혼란을 주고 있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산귀낭낭과 응룡은 분명 평범한 관계는 아니었을 거라니깐.’
한편, 몽의는 지면을 밟자마자 곧바로 두 손을 땅에 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칠이 다소 벗겨진 나판을 꺼내 지면에 내려놓았다.
한참 뒤.
그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사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천지간의 생기가 끊어져 있소. 심지어 이곳에 있는 천지원기조차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없는 상태요.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소. 아마 이곳에 응룡의 시신이 묻혀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 세계는 응룡의 무덤 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공간일 것이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넓은 황무지를 따라 새까만 벽이 좌우로 수천 리나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벽은 천장과 맞닿아있었다.
앞으로 수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도 거대한 석벽이 세워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맞닿은 벽은 앞쪽으로 더 이상 길이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석벽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만들어져있었다.
작은 건 직경이 백여 장에 불과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이 있었고, 큰 건 수십 리에 달했지만 겨우 세 개뿐이었다.
‘으으……. 내 피 같은 머리카락.’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분신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분신은 스스로 소환을 해제했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펼쳐진 건 복잡한 동굴뿐이었다.
가장 큰 동굴로 들어갈 경우, 길을 잘못 들지만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지하 세계에 도착하게 된다.
진양 일행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진양이 가장 먼저 직경이 십여 리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동굴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몽의와 요모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안에 갇히게 된 진양은 뒤를 돌아보았다.
단단한 석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손으로 가볍게 쓸어보니 자신의 힘으로는 부술 수 없는 벽이었다.
뒷길이 막힌 것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뒷길을 막고 있는 벽은 점점 더 두꺼워졌고, 진양과 대략 한 걸음 정도의 거리를 남기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분명 분신이 들어왔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진양의 본체가 들어오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왜? 설마 분신에는 영혼이 없어서 그런 건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벽은 점점 더 두꺼워지며 진양의 등 뒤를 쫓아왔다.
그러다 갈림길과 만나게 되었다.
진양의 시선이 오른쪽 길로 향했다.
일전에 분신을 보냈을 땐 오른쪽은 막다른 길이었다.
이어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뒷길을 단단히 막고 있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오른쪽으로 간다면 뒷길이 막혀 영영 갇히게 된다.
진양은 왼쪽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동굴 미궁의 끝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양이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뒤따라오던 벽이 입구를 막아버렸고, 더 이상의 퇴로는 없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막혀버린 뒷길을 바라보았다.
‘아직 사숙님께 제대로 된 길이 있다는 것도 말씀 못 드렸는데. 혹여나 길을 잘못 드셨다가 갇히게 되신다면 어떡하지?’
* * *
같은 시각.
동굴 밖에서 발목이 묶인 두 사람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분명 진양이 분신을 보내 조사를 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 번에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오. 허나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는 법. 요모, 먼저 고르도록 하시오.”
몽의가 가장 큰 두 개의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이 세 개의 동굴이 가장 크오. 게다가 우린 마침 세 사람이고. 진 선생이 가장 큰 동굴을 조사할 때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는 걸 고려한다면 남은 두 개도 별다른 위험 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오.”
잠시 고민하던 요모는 두 동굴 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입구는 사라지며 석벽으로 변했다.
몽의는 남은 마지막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로 들어온 몽의는 조용히 앞을 향해 걸었다.
그의 등 뒤로는 한 걸음 정도 되는 거리를 두고 벽이 계속해서 쫓아오며 퇴로를 막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면 막다른 길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은 몽의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