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31
631화 그럴 리 없어
순식간에 분신을 죽인 빛은 다시 바위 쪽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그의 은발은 수많은 실로 변하며 주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진양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느새 부문검을 뽑아 든 진양이 적을 향해 살기를 발산하며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요모?”
그러나 요모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포효하고 있었고, 그녀의 몸에서는 강렬한 살기와 요기가 뿜어져 나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위급한 순간이었으나 진양은 공격을 포기했다.
대신, 진원을 일으켜 자신의 심장 속에 잠들어있는 화생충을 자극했다.
강력한 자극에 화생충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어서 녀석은 진양의 정혈을 마구 삼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진양의 심장 속에 예전에 연화시켜두었던 서심고가 나타났다.
서심고가 천천히 눈을 뜨자 괴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화생충은 갑자기 나타난 서심고를 힐끔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될 정도로 큰 자극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녀석은 곧바로 진양의 정혈을 삼키는 것을 포기하곤, 빛이 되어 진양의 입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방원 수백 장 내를 뒤덮던 하얀 실이 돌연 듯 멈춰 섰다.
은발의 요모는 손을 뻗어 날아오는 화생충을 붙잡았다.
살기 가득한 붉은 눈동자로 진양을 여전히 노려보며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양은 부문검을 거둬들인 뒤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과 화생충을 가리켜 보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진양은 파망지동과 폐허신목을 발동하며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을 따라 한 층의 기운이 뒤덮여있었다.
때문에, 형상이 흐릿하여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때, 요모의 미간에서 세로눈이 번쩍 떠졌고, 빛이 흘러나와 진양의 몸을 쓸었다.
이어서 시야를 막고 있던 무형의 힘이 사라지며 삼안요모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삼안요모는 황당하다는 듯 진양을 바라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에는 곳곳에 비늘이 자라있었고, 연신 녹색 기운을 뿜으며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못생긴 요괴의 모습이 점점 진양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무사했군요.”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화생충 다시 돌려주세요.”
“화생충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걸 뭐하러 달라는 것이냐?’
잔뜩 겁을 먹은 듯 손바닥 위에 웅크리고 있는 화생충을 바라보며 요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신이 절 공격했을지도 모르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달라는 겁니다.”
다시 화생충을 돌려받은 진양은 그것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심장으로 들어간 화생충은 여전히 잔뜩 겁을 먹은 듯 몸을 웅크린 채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서심고는 고충(蠱蟲)의 제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때문에 화생충이 꼼짝도 못 하는 것이었다.
감히 누가 제왕의 자리를 탐낸단 말인가?
서심고가 당당히 버티고 있는 이상 진양의 심장은 감히 노릴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진양은 애초부터 화생충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저 삼안요모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심장 속에 넣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있던 화생충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
“나인 건 어떻게 안 거지?”
요모는 기괴한 요괴가 진양일 것이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했기에 꽤 놀란 모습이었다.
“여기서 만날 만한 사람 중에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달려들 사람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용의 후예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사용하는 신통력도 그렇고, 거기에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까지……. 이 외에도 이유는 수도 없이 많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내뱉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예전에 습득한 과거의 언어 능력 덕분에 온갖 희귀 종족의 방언까지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는 진양인데, 진양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튀어나온다?
그건 애초부터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요모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생사를 가르는 그 짧은 순간에 그런 걸 발견하다니.
요모는 그저 역겨운 진양의 모습을 보고 일단 처치하고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만약 화생충이 없었다면 그녀는 역겨운 요괴가 진양이라는 사실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 중간에 묘축과도 만났겠군.”
“물론이죠. 녀석이 당신에겐 뭐라고 하던가요?”
요모는 멀리 보이는 청동관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얘기해 보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얘기 못 할 것도 없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요모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 일부러 나 한 사람을 남긴 것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을 죽이면 진룡의 혈맥도 주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었다. 심지어 네가 죽어도 나는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했었고.”
“역시, 영악한 놈이었군요. 서로에게 다른 얘기를 하다니. 애초에 인상이 좋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진양이 피식 웃으며 기이한 눈빛으로 요모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저를 가만히 놔두시는 거죠?”
요모도 피식 웃었다.
“진양, 네 잔머리는 도무지 따라가질 못하겠구나.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니다.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다. 게다가 네겐 나를 죽일 기회가 수도 없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지. 이제 와서 널 못 믿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느냐?
게다가 녀석이 응룡의 남아있는 이성이라는 사실도 애초에 믿지 않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도 남았을 텐데. 자신의 힘은 믿지 못하는데 남을 믿는다? 거기에 쓸데없는 거짓으로 남을 속이기까지 하다니. 녀석의 말은 애초부터 믿지도 않았다.”
“이야, 제법이네요. 아무래도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요.”
진양이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말했잖아요. 전 신용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고요. 한 번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죠. 어쨌든 이제서야 절 믿어주시는 모양이군요.”
요모조차 아무렇지 않게 묘축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은 걸 보니 몽의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했다.
일단은 안심이었다.
그런데, 묘축의 말이 전부 다 거짓은 아닌 듯했다.
삼세경의 일을 생각해 본다면 묘축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악룡을 저지하는 건 고사하고, 기껏해야 진양 일행에게 장난을 칠 수 있는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어쨌든, 계속해서 대화를 하다 보니 갈라진 이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요모는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삼세경에서 나온 가짜를 손쉽게 베어버렸다는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리곤 진양에게 물었다.
“너도 아마 그 거울을 봤겠지?”
“물론이죠. 저도 마찬가지로 저와 똑같이 생긴 가짜와 마주쳤었거든요.”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라 불안했을 텐데. 혹여나 더 다친 건 아닌가?’
“다쳐요? 제가요? 왜요? 애초에 싸울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살살 구슬려서 되돌려 보냈거든요.”
“…….”
요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진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양이 얼마나 교활한 인간인지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진양은 서쪽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봉우리로 접근하는 길은 총 세 개가 있었다.
북쪽은 깎아진 듯한 절벽이 있었고, 이 외에 동, 서, 남쪽으로 각각 길이 하나씩 있었다.
동쪽에선 요모가 왔고, 남쪽에선 진양이 왔고, 남은 건 서쪽뿐이었다.
‘금방 도착하시겠군.’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몽의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하루가 지났음에도 몽의가 나타나지 않자 진양은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나 악전고투 끝에 중상을 입은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오시는 거지?’
진양이 그를 찾아 나서기 위해 서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산 정상에 있는 관이 부르르 떨리며 파도와 같은 힘이 밀려왔다.
그것을 본 진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럴 리 없어. 사숙님께서 놈의 꼬임에 넘어가셨을 리 없잖아!”
* * *
같은 시각.
몽의는 이미 엄청난 힘을 이겨내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언덕 정상에 오르자 관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을 코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묘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대는 과거 응룡조차 감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한 만큼 다른 사람과는 달리 매우 특별하다. 난 그대를 속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대 역시 굳이 진상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진위 여부쯤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진양이라는 자를 매우 아낀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매우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심지어 응룡의 정혈로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지.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기 보이는 청동관 안에 들어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악룡도 함께 들어있지.
악룡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양의 상처 역시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온전히 그대에게 달렸다.’
진양이 틀렸다.
몽의는 전혀 묘축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몽의는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본다.
때문에, 묘축이 사용하는 기묘한 힘으로는 그를 세뇌시킬 수 없었다.
묘축의 말이 맞다.
몽의는 진상을 굳이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한편, 그는 가짜와 함께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과감한 일들을 수도 없이 벌일 수 있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수많은 일들을 예측하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결과가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잡았다.
진양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 관 속에 있다는 건 사실이다.
관을 열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도 알고 있었고, 묘축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점괘의 결과는 절망적이진 않았다.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면 당연히 하는 쪽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험한 일들을 마주해봤지만, 단 한 번도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몽의는 등잔을 하나 꺼내 불을 밝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옆쪽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다면 북쪽으로 가시오. 그곳에서 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허나 만약 죽지 않는다면 열흘 뒤에 나를 데리러 오시오.’
몽의는 자신을 옥죄여오는 압력을 이겨내며 나판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산 정상에 내려놓고 발동시켰다.
이어서 강력한 압력과 함께 청동관에서 파동이 흘러나왔고, 주변을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