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90
690화 스스로 자초한 일
가희는 다소 이상하다는 듯 진양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눈빛도 이상했고, 분위기도 달랐고, 게다가 늘 습관성으로 하던 버릇까지도 달라져 있었다.
게다가 대답도 어딘가 이상했다.
생판 모르는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쯤 되니 그녀는 눈앞에 있는 진양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최근에 가짜 진양이 나타난 적이 있긴 하지만, 분명 방금 안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진양의 첩신호위가 바로 옆쪽 저택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걸 보았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장정의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하, 혹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갈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요?”
* * *
집 앞에서 제이검군과 인사를 한 뒤 진양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뒤룩뒤룩 살이 찐 누군가 달려들었고, 놀란 진양은 습관적으로 그를 발로 차버렸다.
그를 발로 차버린 진양은 그제서야 이곳에 누군가 매복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설령 제이검군이라 하더라도 허가 없이는 이곳 안쪽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는 없다.
자세히 보니 잔뜩 살이 찐 누군가는 다름 아닌 장정의였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런 망할 놈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탕을 전부 훔쳐먹은 거냐? 아직 제대로 우러나지도 않은 걸 먹어서 뭐 하려고? 어차피 소화시키지도 못 할 텐데. 도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찐 거냐?”
“사형, 오해입니다. 탕을 훔쳐먹은 게 아니라 맞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요…….”
장정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우물거리듯 대답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이었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맞아서 잔뜩 부어오른 것이었다.
심지어 어찌나 부었는지 입을 움직이는 것마저 힘들 정도였다.
눈을 부릅뜨긴 했으나 아무래도 작은 눈이 부어오른 살덩이에 파묻혀 더욱 작게 보였다.
“뭐야? 묵양한테 맞기라도 한 거야?”
진양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장정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여기서 사실대로 말했다간 진양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그게 아니라……. 사실 뭘 좀 잘못 먹어서…….”
“멍청한 녀석! 다 큰 녀석이 적당히 가려서 먹을 줄도 알아야지. 어휴, 쯔쯧.”
진양은 한숨과 함께 혀를 끌끌 차며 가버렸다.
장정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진양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정말로 끝장이었다.
그때 만약 묵양이 나서서 그가 진양의 사람이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장정의는 지금쯤 가희에게 맞아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싹싹 빌며 자신이 진양의 모습으로 이곳에 머물게 된 사정에 대해 설명했고, 또 가희가 믿어주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쯤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위장이 풀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때린 건지는 몰라도 온몸에 부어오른 건 물론이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반에는 조금도 피해가 가지 않았고, 중상이라고 할 만한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하지만 통통하게 부어오른 그의 모습은 요상 단약을 아무리 먹어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부기가 빠지긴커녕 오히려 통증만 더 심해졌을 뿐이다.
통증이 심했으나 괜히 앓는 소리를 냈다간 진양에게 추궁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참는 수밖에 없었다.
눈 딱 감고 한 번 죽었다 살아날까 생각도 했으나 이런 일에 수명을 낭비하긴 아까웠다.
기껏해야 아픈 게 전부였고 몸이 부어오른 게 전부였을 뿐 중상을 입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행히 진양은 뒷마당에 걸어놓은 솥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뒤 곧장 옆 건물에 있는 묵양과 대화를 나누러 갔다.
장정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묵양에게는 먼저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놨다.
하지만 진양이 묻는다면 그는 분명 주저 없이 사실을 털어놓을 것이다.
장정의는 땅에 털썩 쓰러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었다.
‘드디어 한 번은 사형 손길에서 벗어나 보는구나. 정말 쉽지 않군.’
* * *
방으로 돌아온 진양은 계속해서 가희가 가져다준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법상 강자들이 황실의 행사에 참여하는 건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만큼 드문 일이긴 했지만 수만 년에 걸쳐 기록된 자료들이다보니 그 양이 워낙 방대했다.
게다가 명단에 있는 사람들과 기록물을 하나씩 대조해 보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혼자 해도 상관은 없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진양은 이미 이런 반복성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양 한 사람만으로도 수백, 아니 수천 명의 부대나 다름없었다.
진양이 폐관 중인 밀실 내부.
이곳에는 수백 개나 되는 분신이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진양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대기하고 있었다.
분신들은 각자 맡은 자료를 읽은 뒤 한곳에 모여 토론을 했다.
그렇게 토론을 하며 적당히 정리가 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소멸되었다.
그리고 분신이 소멸될 때마다 분신들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들은 전부 진양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진양은 이렇게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정보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이틀 뒤.
정보를 모두 처리한 진양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눈을 떴다.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하마터면 사자결을 발동시킬 뻔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히 성과는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걸러낸 결과 남은 건 단 세 사람뿐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조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단순히 황실의 기록만으로는 조사가 어려웠다.
밀실에서 나온 진양은 새로운 방법으로 끓이고 있는 탕을 살폈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와 최양평의 실력 차이는 불 조절이 가장 핵심인 듯했다.
진양은 최양평처럼 단시간 내에 탕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천천히 끓이는 쪽을 선택했다.
즉, 시간과 실력을 맞바꾼 것이다.
무려 보름이나 탕을 끓인 보람이 있었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앞마당으로 향했다.
앞마당에 도착한 진양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살덩이에 파묻힌 장정의였다.
그를 보니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뭔가를 잘못 먹어서 중독됐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도대체 뭘 먹었길래 며칠이 지나도 붓기 하나 빠지지 않은 모습이란 말인가?
“정의야, 너 도대체 뭘 먹었길래 아직도 그 꼴인 거냐? 너 설마 또 남의 무덤을 파헤친 거냐? 딱 보니 누가 조상님께 올려둔 술을 몰래 훔쳐 마신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요!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전 괜찮습니다. 며칠 더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장정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양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경고했다.
“너 당분간은 자제하는 게 좋을 거야. 이도 부근에는 네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 많다고. 괜히 남의 무덤을 파헤치다가 시신조차 못 찾게 되면 그 길로 끝인 거 알지?”
“사형, 제가 아무리 그래도 똥이랑 된장도 구분 못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저 정말로 최근 며칠 동안은 문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니깐요.”
“그럼 왜 아직도 그 꼴인 건데? 다시 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건 맞지?”
“물론이죠!”
장정의는 바늘구멍만 한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몸 밖으로 영력을 흘려보냈다.
이어서 그의 모습은 뚱뚱한 장정의의 모습에서 뚱뚱한 진양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모습이었다.
“…….”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때, 한숨과 함께 진양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놀란 장정의가 반응을 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세상이 빙글 돌아가는 듯하더니 이내 머리 없는 자신의 몸뚱이가 보였다.
그의 이성은 점점 흐려져 갔고, 마지막으로 어렴풋이 진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식구끼리니까 고마워할 필욘 없어.”
순식간에 달려들어 장정의의 머리를 따버린 진양의 동작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심지어 장정의가 반응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장정의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골로 가버렸다.
장정의가 죽고 시신이 식어갈 때쯤이 되자 잔뜩 부어올랐던 그의 몸에선 바람이 빠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진양은 그제서야 한쪽에 굴러다니고 있는 장정의의 머리를 다시 시신에 맞춰 끼웠다.
시신이 온전한 상태라면 부활에 대한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장정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벌떡 일어나자마자 근처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진양에게 노발대발 화를 냈다.
“사형!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또 이런 식으로 저를 죽이시다니…….”
“어허, 정의야…….”
진양은 점잖은 척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부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목숨까지 내던지는 일은 삼가해야 하지 않겠니? 이 사형을 좀 보렴. 아무리 이화접목의 수준이 독초를 밥처럼 퍼먹어도 무리 없을 정도의 수준에 올랐지만, 내가 언제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 거 본 적 있니?”
장정의는 멍한 얼굴로 원래대로 돌아온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서서 뭐 해? 그리고 너 지난번에 걸렸던 저주 죽어도 안 풀렸던 거 잊은 거냐?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진 모르겠다만, 그새 잊고 또 겁대가리 없이 아무거나 주워 먹다니. 그나마 이번에는 죽어서 다시 회복된 걸로 다행인 줄 알아.
그리고 수명에는 아마 큰 지장은 없을 거다. 이 사형께서 특별히 신경 써서 깔끔하게 작업했거든.”
“사형,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장정의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됐어. 징그러우니까 가식적인 감사 인사는 집어치우자고. 인사까진 안 바랄 테니까 그냥 시킨 것만 제대로 해줘. 일만 잘 마치면 약속대로 기이과도 준다니깐. 괜히 또 헛짓거리 하다가 내 계획을 망쳤다간 그땐 더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알았어?”
진양은 남은 찻잔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징장의는 조용히 떠나는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주룩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형수가 사형보다 훨씬 더 독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기괴한 방법으로 자신을 팬 건지는 몰라도 원래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붓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온몸에 고통이 느껴졌었다.
게다가 변장술을 펼쳐도 뒤룩뒤룩 살이 찐 것 같은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나마 이번에는 죽음을 면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원래대로 되돌려준 사형에겐 고마운 척이라도 해야 했다.
부활에 필요한 수명까지 신경 써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건 장정의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장정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혹여나 언제라도 진양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진양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틀이나 참았는데 전부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활의 부담을 줄여준 사형에게 고마운 척이라도 해야 했다.
생각할수록 억울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전부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