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96
696화 재미없는 녀석
진양의 저택.
장정의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나판과 영부를 든 채 몇 번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문을 두드렸다.
“사형, 계십니까? 드릴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전씨 가문에서 보낸 물건이라는데 사형께 드리라고 하더라고요.”
장정의가 문을 두드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 한가운데에 큼직한 금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엔 은빛 과일이 아홉 개가 달려있었다.
장정의는 힐끔 그것을 쳐다보긴 했으나 그 이상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조용히 정당 쪽으로 다가가 가져온 선물을 내려놓았다.
처음 받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용물이 적힌 목록조차도 살펴보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선반에는 나무 상자와 옥병, 그리고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보물들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탐스러운 빛을 뿜어내고 있는 영과도 보였고, 영맥으로 추정되는 영석도 있었다.
하지만 장정의는 마치 돌 보듯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음속은 평온했다.
이전에는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으나 지금은 손이 머리보다 훨씬 더 냉정해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며칠 사이에 양쪽 손목이 수십 번이나 잘려 나갔는데, 이래도 정신을 못 차리면 그건 학습 능력이 없는 것이다.
“허허, 사형도 참. 아직도 이런 방법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장정의는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장정의가 찾아왔을 때, 진양은 뒤쪽에 있는 밀실에서 시괴의 변화 진도를 살피고 있었다.
흘누와 신우의 말만 들으면 상당히 대단한 것처럼 보였지만 진양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했던 상고 팔시의 탄생 난이도나 실력은 크게 상관이 없다.
한때 나타난 적이 있었던 시괴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현재 눈앞에 있는 아직 완전히 탄생하지도 않은 시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시괴의 탄생 난이도가 가장 낮다고 해도 어쨌든 팔시 중 하나다.
강시와 같은 사악한 성질이 짙은 존재에 대해 언급하자면 결코 시귀를 빼놓을 수 없다.
신조의 정세가 안정되고 천하가 평온해지면 시귀가 탄생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설령 어느 수도사가 작정하고 만들어내려 해도 시귀를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신조 영토 밖에 있는 어느 혼란 지대에서 시귀가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한다.
서쪽에 있는 모래 바다 황무지에서도 강시와 같은 이류의 생명체로 구성된 세력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전사의 승려들과 크게 맞붙었던 적이 있다.
당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과거 부도마교 앞에서 침묵시위를 했던 윤전사의 승려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순순히 물러갔던 건 어쩌면 이들이 그들의 본거지까지 밀고 들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괴가 깨어나면 대영 서쪽으로 옮겨서 단련시켜야 하나?’
그곳은 요족조차 받아주지 않는 이족들이 살아가는 곳인 만큼 시괴가 시작점으로 삼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게다가 근처에는 윤전사의 대머리들이 있으니 나중에 그들을 이용하여 시괴를 성장시킬 수도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전 경험이 없으면 자신보다 못한 수준의 상대에게 꺾이게 되는 법.
아무리 시괴에게 스스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 복수를 하라고 할 생각이어도 지금 당장 풀어주는 건 아니다.
시괴가 존재하는 목적은 단순히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소위 말하는 배반자도 강한 원한과 집념을 품게 되면 설령 혼이 날아가고 시신이 토막 나더라도 강시가 되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모두가 그가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리면 된다.
지금쯤 골머리를 앓고 있을 조왕은 죽기 살기로 이 사실을 물고 버틸 것이다.
진양은 의자를 침대 곁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시신의 기운과 원한의 기운이 부글거리는 시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넌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새로운 생명체가 된 거야. 단지 생전의 육신과 기억을 계승 받은 것뿐이지. 생전에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때가 되면 스스로 이름을 짓도록 해. 그리고 때가 되면 누군가 널 보호해 줄 거야. 절대 죽지 않도록 말이야. 항상 조심하도록 해. 다소 멍청해지는 게 가장 좋겠지. 그래야 앞으로 이도를 떠날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
네가 시괴라는 사실은 되도록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이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시괴의 수련에 대해서는 난 아는 게 없어. 하지만 살육을 벌이는 게 정도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 넌 근본적으로 강력한 살기와 원한을 가진 존재니까 항상 경계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빠른 길로 돌아가려다가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수가 있다고…….”
어느 순간부터 시괴에게 이성이 생겼다고 느낀 순간부터 진양은 끊임없이 그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연계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이제 막 연화시킨 법보에게 느껴지는 연계점과 같아 보였으나, 완전히 같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한 느낌은 시괴가 완성되어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졌다.
진양은 어쩌면 훗날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시괴가 중간에 죽어버리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성이 완전히 각성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의 실력이 강해질수록 신조의 기반은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 녀석은 결코 빛으로 나아올 수 없다는 것을 진양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신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신조가 광활한 영토를 손에 넣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켜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신조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탄탄한 뿌리를 가진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꺾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정면으로 달려드는 건 미련한 짓이다.
영제는 팔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법신 하나만 남기고 일념의 바다로 향할 뱃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신조 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정상급 강자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제가 이토록 안심하는 것만 봐도 설명이 된다.
진양은 영제를 죽이고 살아남고 싶었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조의 규칙 내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력과 부하를 양성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시괴는 진양이 보기에 정상급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다.
게다가 시간도 길게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양이 시괴를 중시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고 한들 결국은 남이다.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시괴는 닭과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에 서줄 사람이다.
그러니 진양도 크게 공을 들이는 것이다.
애초에 봉호도군 정도 되는 부하가 셋 정도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영제고 뭐고 그냥 찾아가서 죽이면 끝이니까.
‘역시, 이 세계에선 힘센 사람이 목소리도 큰 법이군.’
단시간 내에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건 진양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당장은 조금 고생을 해도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한참 행복한 미래에 젖어있던 진양은 콧노래를 부르며 밀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상자가 가장 먼저 보였고, 상자 위에는 선물 목록이 올려져 있었다.
방과 마당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물론 사형으로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사제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녀석이 고개를 숙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재미없는 녀석. 이렇게 쉽게 꼬리를 내리다니.’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었던 듯했다.
어차피 이미 잔뜩 쫄아버린 녀석에게 비슷한 식으로 유혹을 해도 넘어오진 않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보름 정도 쉬어가기로 하고 상태가 회복되면 그때부터 다시 교육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양은 상자 위에 올려진 목록을 살펴보았다.
목록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선물로 보내온 물건들은 대부분 상당한 값어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물론 비싼 만큼 양도 적긴 했지만 그래도 전부 아무 데서나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명성이 높은 편도 아닌 젊은 사람에게 이런 물건을 보내오다니.
전씨 가문을 통틀어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대장로가 유일했다.
선물을 보내온 걸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대장로도 슬슬 꼬리를 내릴 준비가 된 듯했다.
‘뭐, 선물을 받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법이지.’
받은 선물을 하나씩 꺼내 습득 능력을 사용하여 연화시킨 뒤 곧바로 검부를 꺼내 제이검군을 불렀다.
잦은 호출에 다소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제이검군은 전혀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진양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대장로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 *
전씨 가문의 영지.
전씨 가문의 가주는 한 권의 책은 손에 든 채 반 시진이 넘도록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책장조차 넘기지 않았다.
잠시 뒤.
관가가 돌아오자 그제서야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물건은?”
“무사히 전달했습니다.”
진양에게 선물을 전달하러 갔던 관가는 지난번 제이검군을 설득해달라며 뇌물을 들고 찾아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무작정 돌파해 보자는 생각으로 진양을 찾아갔었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 의문이 들긴 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저 가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잘했다.”
가주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로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가문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심지어 자세한 상황까지 알고 있는 건 가주가 유일했다.
가주는 분명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대장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진양과 대화를 나눈 이후로 거짓말처럼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촉박했다.
비록 장례와 관련된 준비는 모두 마쳤지만 대장로가 죽고 난 뒤에 연쇄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양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게 되었다.
가주는 일단 한숨 돌렸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진양이 찾아오지 않자 대장로의 기운은 또다시 눈에 띌 정도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직접 대화를 나눠봐도 힘없는 대답이 전부였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별일 아니라며 일축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상황이 또다시 이렇게 되니 가주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