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65
765화 연나(煙羅) 일족
진양은 가까이 다가가 위풍의 시신을 살폈다.
아무 감정 없는 사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는 진양의 스승이다.
위풍이 그를 도문으로 데리고 들어와 준 덕분에 몽의를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배운 것들은 추후 진양이 강호를 떠도는 동안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만약 이때 배운 것들이 없었다면 절세의 전적을 손에 넣고도 사용법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위풍이 이대로 죽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시신을 살펴보던 진양은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장정의에게 물었다.
“사숙님은 괜찮으신 거지?”
“물론이죠. 스승님은 건강하십니다. 다짜고짜 욕을 하시면서 내쫓으시길래 그냥 시신만 챙겨서 빠져나왔습니다.”
장정의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악! 사형, 왜 그러십니까?”
“멍청한 녀석! 스승님과 사숙님이 어떤 사이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 혈육이 죽으면 누가 가장 고통받겠냐?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이겠지? 사숙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걸 봤으면 곁에서 지켜드려야지, 무슨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어휴, 사숙님도 참. 이런 멍청한 녀석이 뭐가 이쁘다고 그렇게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신 건지.”
“하지만……. 하지만 관문을 모두 통과하고 나니 스승님은 이미 사라지신 뒤였단 말이에요.”
진양이 이를 바득 갈며 버럭 소리쳤다.
“닥쳐! 만약 사숙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네 녀석부터 죽을 줄 알아!”
이쯤 되니 장정의도 어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다시 종문으로 돌아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진양이 그를 막았다.
“됐어. 이제 와서 돌아가봤자 늦어. 그건 그렇고 거점을 옮긴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디로 옮기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그, 그건……. 저도 모릅니다.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사형, 이제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장정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쪽 구석이 시려왔다.
사실 오래전부터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위풍이 죽었다.
그렇다면 몽의도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과 장정의에게까지 숨긴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중요시 여기는 건 오직 단 한 가지.
전승이 실전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진양과 장정의 두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두 사람은 문파의 마지막 남은 향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일단 가서 쉬고 있어. 내가 좀 더 알아볼 테니까.”
반쯤 정신이 나간 장정의를 강제로 방으로 욱여넣은 뒤.
진양은 다시 위풍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잠시 시신을 살펴보던 진양은 관을 열었고, 시신을 긴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시신에 손을 가져다 댔다.
능력이 반응했다.
진양은 피식 웃어버렸다.
“스승님,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어떤 녀석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몰골이 엉망이시군요. 그래도 제자 하나 잘 둔 걸 다행으로 아세요. 덕분에 가는 길에는 말끔하게 가실 테니까요.”
진양은 도구를 꺼내 시신을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터져있는 부분은 모두 꿰매고, 삐뚤어진 입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맞춰놓고, 거뭇거뭇해진 상처는 화장으로 가렸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다시 정성스럽게 시신을 관에 안치했다.
위풍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의 경맥 중 절반이 파괴되었고, 심장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으며, 머리뼈는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현재 진양의 실력으로는 적당히 가려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생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참 동안 시신 곁을 지키던 진양은 마침내 결심한 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시켰다.
하얀 광구 하나와 파란 광구 하나가 나왔다.
진양은 곧바로 광구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파란 광구는 그가 가장 자주 사용하던 능허탁보였다.
이어서 눈을 감고 하얀 광구에 집중했다.
하얀 광구에는 위풍이 주기 직전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 * *
사방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주위는 천지지간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위풍은 온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때문에, 세계의 그림자 속으로는 걸어갈 수가 없었기에 산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사방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안개의 힘에 의해 위풍은 능허탁보 상태에서 강제로 벗어나 산자락을 밟게 되었다.
이어서 공중에서 연기가 모여들며 사람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입술은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빨갛고, 넓고 큰 장포를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무표정으로 위풍을 바라보았다.
“이만 포기하거라. 삼백 리 넘는 산맥 전체에 백연진세(白煙陣勢)가 깔려있다. 상처가 깊으니 더 이상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그딴 건 없다. 남은 건 그저 죽음뿐!”
말을 마치기 무섭게 위풍의 심장과 경맥이 파괴되었다.
생기가 끊어지며 죽음에 가까워진 순간.
영혼이 몸을 뚫고 나오며 여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최후의 일격에 의해 여인은 중상을 입었다.
* * *
진양은 조용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연나(煙羅) 일족의 짓이군요.
스승님, 비록 깊은 사제지간의 감정이 있던 건 아니었으나 어쨌든 당신은 나의 스승이었죠. 물론 당신 때문만이 아니라 몽 사숙님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복수는 제가 할 테니 이만 편히 쉬십시오.”
잠시 멈춘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도문의 조상 사당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향불이 끊이지 않게 할 테니 안심하십시오.”
이어서 관뚜껑을 덮은 뒤 봉인을 했다.
적절한 곳을 찾아 위풍을 묻어주려고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고민 끝에 나중에 도문의 새로운 거점에 찾아가게 되면 그곳에 묻어주기로 결정했다.
서재로 돌아온 진양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전부 가져와 연나 일족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상고 인간 십이사에 속한 자들은 모두가 어디 내놓아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물급 인물들뿐이었다.
일념의 바다에서 보았던 모조품들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죽은 뒤에도 후손과 후계자들이 그들의 명맥을 이어가긴 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후손은 오직 셋뿐이었다.
후계자가 아닌 후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환해 일족과 연나 일족은 전승을 수련하기 위해선 반드시 혈맥이 필요하다.
맹가 일족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 중 오늘날까지 생존한 사람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몽사, 환사, 그리고 향사의 전승 중 마지막까지 남은 건 환사와 향사의 것뿐이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환해 일족과 연나 일족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상고 십이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대연 신조에서 연나 일족이 가지고 있던 지위는 대영 신조에서 환해 일족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비슷했다.
많이 잡아야 본거지가 영역에 있는 것에 불과했기에 약간의 관계가 있는 것일 뿐.
예를 들어 외부 제자들을 보내 신조의 관직에 앉힌 것도 사실은 크게 관련이 없다.
게다가 연나 일족은 환해 일족과 마찬가지로 혈맥 전승과 기예 전승에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혈맥이 희박해지고 인원이 줄어들며 근친혼을 한다고 해도 혈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충분히 강력한 혈맥이 없다면 수많은 공법과 신통력을 수련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공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공법을 물려줄 수가 없게 된다.
그저 훗날 진한 혈맥을 가진 천재가 나타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악성 순환이 계속되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게 된다.
과거 맹가 일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인간 세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환해 일족와 연나 일족이 최대한 자취를 감추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그 어떠한 손실도 감당할 수 없었다.
환해 일족에 비해 연나 일족의 상황은 조금이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자신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법보를 외부에 판매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상당히 인색했다.
판매하는 물건들은 전부 소모품뿐이었던 것이었다.
위풍이 어쩌다 연나 일족과 엮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위풍이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건, 게다가 시신까지 도문으로 돌아왔다는 건 몽의도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 상부상조해온 사이인 만큼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몽의가 아무리 추후의 대국을 고려하여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절대 연나 일족의 사람들을 가만히 놔둘 리는 없다.
현재 몽의의 실력으로 누군가를 죽이려면 굳이 친히 나서서 육탄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양은 몽의가 거점을 옮기자마자 가장 먼저 연나 일족을 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양은 몽의와 위풍의 초상화를 꺼냈다.
그러나 위풍의 초상화를 한 번 살펴보곤 다시 집어넣었다.
이어서 받침대를 세운 뒤 몽의의 초상화를 걸고 축유향을 피워 몽의를 소환했다.
잠시 뒤.
연기가 초상화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젊어진 몽의가 그림 속에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진양을 바라보았다.
“사숙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새로 이전한 거점이다.”
“그러니까 그게 어딥니까?”
“그건 차차 알게 될 게다.”
“그럼 스승님께선 어째서 연나 일족과 엮이게 되신 겁니까?”
몽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진양,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일세. 자네가 도문의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알고 있고, 나 역시 자네를 엮이게 하고 싶지 않다네.”
“향불을 남겨두기 위해선가요?”
진양이 다소 차가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몽의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다네. 늘 그래왔든 계승자와 묘지기라는 자리는 도문 내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네. 어떤 상황이 터지든 이 두 사람만은 반드시 그 상황에서 배제되게 된다네. 자네 말대로 향불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서지. 너희 두 사람이 무슨 일을 벌이든 그건 도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걸세. 설령 우리가 전부 다 죽는다고 하더라도 자네들이 조상 사당의 향불을 계속해서 이어가기로 한 이상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
진양은 몽의가 무모한 모험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연나 일족에게 복수를 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입 밖까지 튀어나왔던 말은 다시 쏙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