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01
801화 너무 얕잡아보는군
면구를 쓴 여인은 허공에 서 있었다.
그녀의 면구는 잘려 나갔다.
그녀는 돌아서며 손을 뻗었고, 온통 겁에 질린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외쳤다.
“대인, 저를 살려주…….”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흔이 왼쪽 허리부터 오른쪽 어깨를 쓸고 지나갔다.
푸확-!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그곳에 불이 붙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은 한 마리 불새의 형상을 이루었고,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어서 펑- 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불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뱀 문양의 남자, 더 이상 뱀 문양이 남아있지 않은 남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모두 그대를 너무 얕잡아본 듯하오. 과연 수만 년 동안 그 누구도 비난삼법(飛鸞三法)으로 그대와 대적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소.”
비난삼법(飛鸞三法).
여기서 말하는 삼법이란 공법의 등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공법과 비법, 그리고 전법(戰法)을 통칭하여 비난삼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과거 가희의 곁을 지켰던 비난삼위의 이름은 바로 이 비난삼법으로부터 비롯된 것.
공법에 대해 특별히 얘기할 만한 건 없다.
그저 가희가 익힌 공법이 기초일 뿐.
가희 정도 수준에 이르면 공법과 전법의 차이는 무의미해지게 된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마음껏 공법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난령으로 만들어진 장검이 만상천라를 끊어냈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다.
그러나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는 불의 검은 삼법이 여러 도리에 통달하여 하나의 공법처럼 펼쳐진 결과물이다.
적에게 꼬리를 잡혔으나 매우 쉽게 벗어났다.
뿐만 아니라 뱀 문양 남자가 압박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적을 베는 데 성공했다.
비록 등을 내어주긴 했으나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몸속으로 스며든 독을 밖으로 배출해냈다.
뱀 문양 남자는 한층 더 싸늘해진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는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통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녀가 펼친 공법은 결코 그 정도 수준의 실력으로 펼칠 수 있는 공법이 아니다.
그녀는 결코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힘을 쌓아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실력에 걸맞은 경지에 오른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그는 아직 잃어버린 실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약점마저 명확한 상황 속에서 대제희를 쓰러뜨리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비난삼법을 이 정도 경지까지 운용할 수 있다니.
쓰러뜨리긴커녕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남자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남자가 왼손에 한 권의 책을 꺼내든 채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가희는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질러 그를 향해 다가왔다.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기에 그로선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스스로 펼쳐지며 어느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오래된 칠 층 탑이 그려진 장이었다.
겨우 그림에 불과했으나 상당히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가희는 빠른 속도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와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남자는 잠시 멈칫하는 듯싶더니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손에 들린 책장이 다시 스스로 넘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단이 그려진 장에서 멈춰 섰다.
제단 주위에는 일곱 개의 깃발이 꽂혀있었다.
남자는 책장에 그려진 그림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림은 책장을 벗어나 밖으로 튀어나왔고, 이내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제단이 지면에 만들어졌다.
일곱 개의 깃발이 각각 제단의 일곱 방향에 꽂혀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며 깃발이 나부끼자 깃발에 그려진 그림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화염에 불타오르는 해골, 세 개의 늑대 머리와 여섯 개의 발을 가진 이수, 얼음을 닮은 수정이 쌓여있는 모습, 거대한 글씨, 그리고 쇠사슬로 만들어진 거대한 다리와 네 개의 발이 달린 솥.
그리고 어느 한 깃발에는 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깃발을 내린 남자는 제단을 밟고 올라섰다.
다시 한번 책장을 펼쳤다.
어느 장에서 책장이 멈추며 노란 부문이 튀어 올랐다.
제단 중앙에 ‘칠겁(七劫)’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진법이 완성되는 순간.
천 리 넘는 거대한 대지에 기괴한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혔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기괴하게 왜곡되었다.
수많은 비술들이 이곳에서는 모습이 바뀌었다.
각 방향에는 거대한 허상들이 나타났다.
만들어진 허상들은 전부 깃발에 그려진 것들이었다.
가희는 미처 진법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발목을 잡은 것처럼 휘청이며 강제로 진법 내에 머물게 되었다.
진법은 변화를 일으키며 사방을 봉쇄했다.
그러나 뱀 문양 남자는 빛이 되어 진법을 벗어나려고 했다.
가희는 곧장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검은 수천 장에 이르는 거대한 불새의 형상으로 변했고,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날개를 퍼덕이자 뒤집힌 땅은 곧바로 불바다가 되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뱀 문양 남자도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남자가 허공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꽃이 피어올랐다.
날아든 공세는 마치 허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전부 와해되었다.
그는 마치 한적한 뜰을 걷듯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비록 진정한 칠겁진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 신묘함과 변화무쌍함은 충분히 견줄 수 있는 수준이오. 과연 날 막은 상태로 진법을 와해시킬 수 있겠소?”
“그럴 필요 없다. 난 그저 네 발목만 붙잡으면 그만이다.”
불꽃이 피어오르며 뜨거운 기운이 사방을 휩쓸었다.
마치 봉황이 강림한 것 같았다.
장검을 든 가희의 얼굴은 한층 더 붉은 빛으로 빛났고, 이마에는 금관을 닮은 문양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녀의 기세는 순식간에 수십 배로 증가했다.
뱀 문양 남자가 펼친 칠겁진은 힘겹게 그녀의 기세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어느새 왜곡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영 신조의 대제희 영영이다.”
외침과 함께 칠겁진 내에 가장 먼저 형성되었던 화염 해골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화염새는 곧바로 입을 쩍 벌리며 그것을 삼켜버렸다.
뱀 문양 남자의 표정이 한층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손을 뻗자 손바닥 위로 거대한 황금색 도장이 나타났다.
도장에는 한 마리의 사나운 뱀이 새겨져 있었다.
뱀 문양 남자는 조용히 가희를 응시했다.
비로소 자신과 필적하는 상대를 만난 듯했다.
“대윤 신조의 대국공 정지라고 하오.”
* * *
대제희와 정지.
허공진경 전수자와 위흥조.
그리고 전조 세력이 이끌고 온 도궁 강자가 대영 신조의 사람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선 각 세력의 사람들이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은 대영 신조에도 넘쳐난다.
그러나 대영 신조 밖에는 훨씬 더 많다.
이건 영제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믿지 않는다.
전체적인 장례 과정이 과도할 정도로 간소화된 것, 눈에 보이는 강자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 중신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것.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모두들 조용히 숨죽여 장례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운구 행렬이 시작될 때까지도 영제의 본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조용히 품고 있던 다른 마음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영제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대영을 돕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여기서 전조 세력이 우세를 차지한다면 암지에서 활동하던 자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대영이 상황을 뒤집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제는 결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던 가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영제가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건 태자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보루다.
이 소식이 밝혀지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영제에 의해 짜여진 판이라는 것이 된다.
즉, 애초부터 영제가 패배할 일은 없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것.
* * *
같은 시각.
운구 행렬은 계속해서 황실 묘지를 향해 이동 중이었다.
멀리서 고수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건 진작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건 지금 진양과 크게 상관없는 싸움이다.
지금 진양이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때, 대지를 뚫고 진기(陣旗)가 솟구쳐올랐다.
일대를 진법으로 뒤덮으려는 것이었다.
아직 진법이 완전하게 설치되지 않은 때.
진양이 발을 굴리자 지면에 일렁이던 땅의 기운들이 멈칫하며 멈춰 섰다.
강제로 땅의 기운을 장악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슨 진법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한 견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진양조차도 땅의 기운을 강제로 장악할 수가 없었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이 번쩍했다.
원래의 계획은 포기하기로 했다.
반대로 땅의 기운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다.
진법의 강력한 견인력에 의해 엄청난 양의 땅의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 진법이 완성되지도 않았으나, 모여든 땅의 기운은 이미 사람이 다룰 수 있는 한계점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양의 입꼬리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날 너무 얕잡아보는군. 땅의 기운을 이용한 진법이라. 겨우 이런 걸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의 몸은 지기지신(地氣之身)으로 바뀌었고, 끌어당길 수 있는 땅의 기운의 양이 수십 배 넘게 불어났다.
수천 리에 달하는 땅이 심하게 요동쳤다.
마치 지룡이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끌어 당겨진 땅의 기운은 곧바로 진법 안으로 흘러들었다.
삽시간에 진법의 기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땅의 기운이 진법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진법이 무너지며 땅의 기운이 폭발을 일으켰고,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수도사들은 황급히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진양은 차갑게 쳐다보기만 할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이 지면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순간, 그들의 뒤로 흉폭한 땅의 기운이 폭발을 일으켰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폭발하며 그들의 뒤를 덮쳤다.
법보, 비술, 진원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방어막을 펼쳤으나, 순수한 땅의 기운이 일으킨 충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도망치던 자들의 몸 위로 땅의 기운이 쏟아졌고, 그들은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